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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52화 (152/167)

152화 극 (5)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맥은 곧장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왔다.

타는 목부터 축인 그는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SD카드를 뽑아 자신의 나스(—네트워크 저장 장치)와 연결했다.

이윽고 모니터에 떠오르는 촬영본.

“흐음······.”

맥이 작게 침음성을 흘리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아래로 아쉬움 가득한 표정이 흘러내렸다.

“너무 정신을 놔버렸어.”

마치 필름이 끊긴 다음 날, 잠에서 깬 이의 한탄과도 같았다.

백승결이란 배우에 대해 알고 싶었고, 그의 베일을 벗길 기회라 생각했다.

그랬던 맥의 계획은 인터뷰가 시작되며 완벽히 물거품이 되었다.

촬영이 허락된 한 시간 내내 그는 백승결의 베일은 커녕 그 근처에도 못 갔다.

백승결이 방어적으로 나와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질문에 대해 거침없이, 그리고 명확하게 자신의 이야길 쏟아냈다.

‘그게 문제였지.’

백승결의 말에 크리스 감독도 진지하게 이야길 이어갔고, 어느새 누가 인터뷰어고 누가 인터뷰 대상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준비한 질문을 하나 던질 때마다 그게 주제가 되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야말로, 인터뷰가 아니라 대화를 해버린 것이다.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지나, 연기로.

그리고 다시 영화로.

존경하는 감독과 확 꽂힌 배우랑 함께.

영화와 연기에 대해 이토록 밀도 있는 대화라니!

그렇게 대화에 빨려 들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영화를 세 번이나 더 보고, 며칠을 꼬박 지새워 만든 질문지는 3분의 1 정도밖에 쓰이지 못했다.

‘망했다···!’

그걸 깨달았을 땐 너무 늦어버렸다.

신나서 떠들다가 인터뷰가 끝나버린 것이다.

정말 황당한 건, 그런 와중에 만족감은 충만하다는 것.

마치 하고 싶은 게임을 하고 싶은 만큼 낭낭하게 플레이한 것처럼, 그는 기분이 산뜻했다.

머릿속으론 ‘망했다!’를 여러 번 외쳤음에도 말이다.

기획과는 달리 산으로 가버린 컨텐츠.

맥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촬영본을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을 확인한 그가 기함을 토했다.

“미친. 언제 시간이 이렇게······.”

편집점을 찾으려 보다가 어느새 30분이 사라져 있었다.

촬영본 전체 시간이 한 시간이니 절반이나 본 것이다.

“이건 진짜 망했네···.”

크리스 감독은 예상했던 대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필터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명확했다.

그리고 백승결 배우는······.

‘의외로 달변가란 말이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있어서만큼은 크리스 감독보다도 뛰어났다.

적당한 설명,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선명한 생각.

배우라 그런가, 말의 호흡까지도 맛이 살아있었다.

그래서였다. 진짜 망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어느 부분도 편집하고 싶지 않아!’

잘라냈다간 이 느낌이 아닐 것 같았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무엇 하러 자신이 망치를 들이댄단 말인가!

‘나의 구독자들에게··· 아니, 모두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어!’

설령 이 미친 짓거리의 결말이 자신의 평균 조회수인 300만은 커녕, 100만을 넘기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맥이 의자를 끌어당겼다.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 미친 짓 시작.

간단한 컬러그레이딩 작업과 자막만 달고서 편집프로그램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뮤튜브를 열어 그곳에 영상을 밀어 넣었다.

통째로.

<미친듯이 떠들어버렸다. (with. 크리스 디벗, 백승결)>

그렇게 자신의 채널에 올라간 영상을 보며 맥은 허탈하게 웃었다.

“요즘 뮤튜브 트렌드는 이게 아닌데··· 짧고 굵은 영상인데··· 크리스와 백승결이란 천혜의 기회를 이렇게 날리다니··· 모든 뮤튜버들이 나를 비웃을 거야······.”

그리고 그 헛헛한 웃음이 진짜 미친 사람의 그것으로 바뀐 건 불과 몇 시간 뒤였다.

[조회수 : 702.6만]

“???”

불과 4시간 만에 평균 조회수를 아득히 뚫었다.

—천만 구독자 됐다고 이렇게 편집도 안 하고 이렇게 막 올리시면··· 너무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크리스 감독 팬이었는데, 너무 좋습니다.

—방금 다 봤는데 시간 확인하고 깜짝 놀람. 한 20분 본 것 같은데, 한 시간이 지나있네.

—맥과 크리스 감독 팬으로 시청했다가 백승결에 반하는 영상

—윗 댓글에 진짜 공감된다. 백승결 이 사람 엄청 호감이네요. 외모뿐만 아니라 뇌도 잘생긴 듯.

—맙소사. 백승결 서귀호 때부터 팬이었는데! 심지어 한 시간짜리라니···!

이건 뭐랄까.

댓글은 마치 천사들의 합창 같았다.

시청자들이 이런 양반들이 아닌데? 트루먼 쇼인가?

“허허허······.”

미친 짓의 결과물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는 맥이었다.

한 시간짜리 영상에서 이런 조회수라니.

이 기세라면 일주일 안에 최근 자신의 영상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당신의 죽음을 막으면’ 시사회 리뷰조차도 뛰어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토록 대단한 결과의 원인을 댓글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모두가 백승결이 언급한 결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조차도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던. 소름이 돋았던.

그 ‘파코스의 대답’ 말이다.

—랜시가 재앙이면 핵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대체 뭐냐는 질문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네. 영화 보면서 사막 배경에 대한 설정 정도로 생각했는데.

—결국, 예언자는 바늘구멍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건가. 미래는 보지만 과거는 돌아보지 못하는 예언자.

—파편적인 미래를 아는 건 오히려 독이라는 거지. 랜시를 죽이는 게 정말 옳았느냐는 오로지 예언자의 예언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는데, 그녀가 보는 건 결국 미래의 일부일 뿐이니까. 정작 진짜 재앙은 막지 못했던 것처럼.

—백승결이 얼마나 파코스에 대해 연구하고 영화에 대해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는 인터뷰였다.

—크리스 감독 표정도 꽤 놀란 것 같더라.

—자, 이제 누가 감독이지?

#

“팀장님, 영화사에서 메이킹 필름을 공개했어요.”

이른 아침, 하람의 홍보팀.

문을 빼꼼 열고서 보고하는 직원에 홍보팀장이 어기적어기적 팀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직원이 갸우뚱했다.

“어디 불편하세요?”

“어제 힐 신고 기업 특강을 세 시간 동안 했더니 아주 죽는 줄······.”

“아, 맞다. 대기업 진출 축하드려요!”

“대기업 홍보팀한테 마케팅을 가르치러 가시다니! 역시 우리 팀장님!”

하람에 투자를 하고 있는 굴지의 대기업. SJ에 가서 마케팅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고 온 그녀였다.

하람이 규모는 작아도 연예계에선 소수정예의 탑급 매니지먼트로 분류되고 있지만, SJ에 비하면 구멍가게나 마찬가지.

그런데 구멍가게 직원이 대감집 직원들에게 특강을 하고 온 것이다.

홍보팀장이 훗 하고 웃으며 거만한 표정을 짓는다.

“오냐. 오늘 회식은 내가 쏠 테니까 다들 점심 많이 먹어라.”

“엥, 뭔가 이상한데요? 점심을 적게 먹는 게 맞지 않······.”

“김 대리. 다시 잘 생각해봐. 오늘 우리 주파수가 잘 안 맞네?”

“하하··· 맞네요. 많이 먹어 둘게요. 아주 턱끝가지 채워둘게요. 더 이상 먹고 싶지도 않게.”

찔끔한 표정으로 눈치를 챙기는 직원을 보며 홍보팀장이 만족스레 웃었다.

“그나저나, 어떠셨어요?”

“뭐, 간만에 강의라 재밌었어. 가서 승결이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다가 온 것 같지만. 뭐, 그쪽에서도 그거 들으려고 부른 거니까.”

“무슨 얘기 하셨는데요?”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오호. 뭔데요 그게?”

“진심(眞心)이지.”

“오오······.”

“그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 것.”

“주식 같은 거군요. 그 기업을 사랑하라.”

“오···나의 사랑 삼전이여··· 나는 외제 사과의 수려한 외모 따위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그대만을 바라보며 안드로이드 품에서 살았거늘. 어째서 날 배신한 것이오!”

홍보팀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직원에게 물었다.

“쟤 많이 물려있니?”

“네. 꽤 많이······.”

“제겐 이빨 자국이 수십 개지요. 여기가 삼전. 여기가 테슬···읍.”

보다 못한(—함께 물려있는) 직원이 그의 입을 막았다.

황당한 표정으로 웃던 직원들이 다시 홍보팀장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래서요? 그분들 반응은 어땠어요?”

“다들 아주 감명 받은 표정이더라. 아마 상상도 못 하고 있을 걸. 승결 배우가 스스로 차린 밥상에 우리가 숟가락을 얹고 있는 거라고는.”

음흉하게 웃은 홍보팀장이 처음 자신을 부른 직원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암튼, 메이킹 올라왔다고?”

그 말인즉슨, 백승결의 촬영 장면들이 세상에 공개되었다는 뜻이었다.

“어디 보자. 대체 뭘 담았는지.”

“넵. 틀어드릴게요.”

홍보팀장은 곧바로 메이킹 필름을 감상했다.

모든 배우들의 촬영 장면들이 나왔지만, 백승결의 장면은 유난히 특별했다.

영화사 쪽 홍보팀이 편집을 그렇게 한 게 아니었다.

단지 백승결의 연기가 특별했을 뿐.

그린스크린 위에서 연기하는 백승결은 ‘이런 상황에서 이 정도로 몰입을 한다고?’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역 없이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소화하는 장면에선 홍보팀도 같이 들썩거렸다.

이게 CG가 아니라고? 그런 의문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충격적인 메이킹 필름이 끝나고.

홍보팀장이 침묵 끝에 입을 뗐다.

“자료 정리 끝났지?”

“그거 말씀하시는 거죠? 현태 씨가 준 자료.”

“그래. 우리들이 쏘아 올릴 존나 큰 공. 이름하여······.”

그녀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언어 천재.”

진심(眞心)이었다.

#

맥의 뮤튜브에 올라간 인터뷰 영상이 엄청난 화제라는 소식을 접하기 무섭게.

그걸 신호탄으로 뒤이어 했던 인터뷰들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물론 이 많은 미국인들이 모든 반응이 좋을 수는 없겠지만······.’

아니, 사실 모른다.

어떤 안 좋은 반응이 있는지 일부러 보지 않았다.

확실히 내가 사람들의 반응에 조금 예민해진 것 같긴 하네.

‘나답지 않아······.’

그렇다고 김성운이 우려했던 만큼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훌훌 털었다.

그리고 스케줄을 하나하나 밟아나갔다.

그곳에서 수많은 팬들을 만나며 남아있던 걱정마저 모두 씻어냈다.

여전히 팬들을 만나는 건 즐거웠고, 그들에게 연기에 대한 이야길 듣는 건 더더욱 기분 좋았다.

그러던 차에 영화사와 하람 홍보팀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영화사에선 메이킹영상을 공개했고.

하람 홍보팀은 바통을 받아 굳히기에 들어갔다.

과거 내가 영어와 폴란드어를 공부하던 영상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에 대한 인식이 또 한 단계 진화해버렸다.

이게 옳게 된 진화인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맙소사.

별명이 생겼다.

그것도 미국인들이 만든 미제.

김성운에게 그 별명을 듣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이건 틀린 진화였다. 암흑 진화지.

사실 김성운의 표정에서부터 불안하긴 했는데, 그래도 미국인들의 작명센스를 믿었건만.

‘G.A’라니.

이건 아니지 않나······.

그래, 나도 설마 했었다.

근데 그게 맞았다.

‘천재 배우’의 약자.

귀국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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