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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56화 (156/167)

156화 극 (9)

딱. 딱.

최영기 실장의 손톱이 남아나지 않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물어뜯다가 열 손가락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서성였다.

흡사 수술실 앞에서 산모를 기다리는 남편의 표정과도 같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 다리가 저린 최영기 실장이 옆 방에 앉아 있을까 싶어 돌아설 무렵.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문이 열리며 안 감독이 나왔다. 그 뒤로 신승찬이 따라 나온다.

재빨리 두 사람의 표정을 얼른 살폈지만 좀처럼 결과가 짐작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승찬이 어땠나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짐짓 여유로운 척, 수고하셨다는 덕담과 함께 날씨가 좋다는 둥 마음과는 다른 소릴 내뱉었다.

평소였으면 그냥 대뜸 결과부터 물어봤겠지만, 미팅이 벌써 4번째였다.

이제는 묻기도 무서웠다.

그가 엘리베이터를 잡으러 움직이며 물었다.

“내려가시는 거죠?”

“아, 아뇨. 오늘 대표님 뵙기로 해서요.”

“대표님을요? 그러면···.”

문이 열리자마자 얼른 대표실이 있는 층을 누르는 최영기 실장.

이윽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안 감독과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1초···2초···3초.

입을 꾹 닫고 있던 그가 홱 하고 고갤 돌렸다.

“뭐지? 왜 대표님을 보러 가지?”

“모르죠.”

“미팅 때 들은 거 없어?”

“전혀요.”

“아무래도 너 때문인 거 같지 않아? 그래도 소속 배우라고 챙겨주는 건가? 대표님이 압박 좀 넣어주려나?”

여러 번 뜨는 물음표에 신승찬이 툭 던지듯 말했다.

“다행이네.”

“그치. 다행이지.”

“아니, 그 전에 출연 확정 되어서 다행이라고요. 온전히 내 힘으로 따내고 싶었거든요. 물론 온전히 내 힘이라기엔 큰 도움을 받긴 했지만.”

잠시 벙쪄 있던 최영기 실장이 이내 말뜻을 알아듣고 화색이 되어 물었다.

“뭐야, 확정된 거야? 됐어? 야, 근데 왜 말을 안 해!”

“안 물어봐서?”

“야잇···!”

“그리고 감독님한텐 뭐 날씨가 어떠니 이상한 소리만 하고 있더만.”

“그거야 물어보기 무서우니까··· 암튼, 잘됐다!”

“다음 주부터 촬영 준비하자고 하시네요.”

“그래. 진즉 이렇게 됐어야지! 에라이, 안 감독 저 양반 진짜 사람 피 말리게. 뒷통수를 확······.”

“입 조심 좀 해요. 지난번에 뒷담으로 그렇게 문제가 생겨놓고선.”

신승찬의 경고에서 홍보팀 욕을 하다가 팀장에게 걸렸던 기억을 떠올리는 최영기였다.

“알겠어. 알겠어. 조심할게. 그나저나, 이제 한시름 놓겠네!”

“그러게요. 승결이한테 전화해야겠다. 거기 몇 시지?”

들썩거리던 최영기 실장이 신승찬의 혼잣말에 멈칫하며 인상을 팍 쓴다.

“쓰읍······ 이 좋은 대화에 꼭 그 이름이 나와야겠냐. 걔한텐 왜?”

“그야, 승결이 덕분이니까?”

당연하지 않겠냐며 되물은 신승찬이 최영기 실장의 똥 씹은 표정을 보며 말했다.

“승결이 덕분인 걸 어떡해요. 걔가 해준 원포인트 레슨은 정확했어요.”

“아니, 그냥 축하 파티에서 조언 짧게 해준 게 전부라며.”

“그러니 더 대단한 거죠.”

“대체 뭐라고 했는데?”

최영기 실장의 물음에 신승찬이 떠올렸다.

‘네가 했던 역할 중에······ 백강이라는 캐릭터랑 희원이란 캐릭터를 합치면 될 것 같은데?’

연기를 볼 필요 없다던 백승결이 한 말을.

처음엔 황당했다.

무슨 게임하는 것도 아니고 합체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머릿속에서 두 캐릭터를 함께 떠올리는 순간···.

스파크가 튀었다.

백승결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안 감독님 말로는 외모도 생각했던 것과 싱크로율이 높고, 목소리 톤도 완벽하다고 했었어요. 그럼에도 선뜻 결정을 못 내린 건, 내 안에 그 캐릭터와 주파수가 맞는 감정들이 없어서였고.”

“그런데?”

‘네 안에 없다면, 빌려와. 네가 연기 했던 캐릭터들한테서.’

백승결이 덧붙였던 말을 되새기며 입 밖으로 내자, 최영기 실장의 표정이 점점 더 미궁으로 향했다.

“어렵네··· 그게 가능하다고?”

“무지 힘들었죠.”

한숨을 내뱉듯 고충을 토로하는 신승찬.

하지만 그에겐 그 힘든 연기가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말한 당사자가 직접 보여주었으니까.

“파코스가 걔한테 그런 캐릭터였다더라고요. 자신에겐 없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뒤틀린 영웅 심리를 빌려왔대요. 임훈에게 집착하던 서귀호한테서.”

“···그게 비슷한 감정인가?”

“결국 기저에 있는 감정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의 문제니까요. 뭐랄까. 스킬 트리처럼요.”

“인생이 게임이냐···.”

“걘 그렇게 살고 있죠.”

신승찬이 옅게 웃자, 최영기 실장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썹을 시소처럼 기울였다.

“제기랄··· 고마워해야 해 말아야 해.”

“고마워해요.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배우가 큰 도움을 받았는데, 매니저도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쩝. 그래도 난 걔 싫어. 아주 여기도 백승결 저기도 백승결 다들 백승결, 백승결. 네가 걔보다 뭐가 못해서!”

“아무도 못 한다고 안 해요. 가만, 형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야, 야잇! 아냐! 아니라니까?”

급발진하는 최영기 실장을 보며 신승찬이 피식거렸다.

그리고 홀가분한 듯 숨을 들이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래도 승결인 형 칭찬을 하던데요.”

파티에서 백승결이 ‘그래도 자기 배우가 최고이길 바라는 게 어디야’라고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그 자식이? 허 참. 뭐라고 했을지 뻔하지 뭐. 바라지도 않는다!”

됐다며 손짓으로 훠이훠이 밀어내던 그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따라 타는 신승찬을 보며 콧잔등을 긁던 그가 엘리베이터 특유의 먹먹한 부유감을 느끼며 슬쩍 묻는다.

“근데, 뭐라는데? 궁금한 건 아니고. 그냥 뭐라 씨불였나 싶어서······.”

#

한편, 하람의 대표실.

“오셨어요?”

하선경 대표가 자신의 방으로 찾아온 안 감독을 반겼다.

“아, 네. 안녕하세요, 대표님.”

“마실 것 좀 드릴까요?”

그녀가 자신의 업무를 보는 책상 위에서 찻잔을 세팅하고 있었다.

이에 안 감독이 괜스레 입이 마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답했다.

“물 마시겠습니다.”

끄덕거린 하선경 대표가 브리타 정수기에 여과된 물을 유리컵에 따랐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신의 찻잔과 물이 찰랑거리는 유리컵을 가지고 소파로 다가오는 그녀.

“감사합니다.”

“갑자기 제가 보자고 해서 놀라셨죠?’

“하하, 조금요.”

멋쩍게 웃은 안 감독이 유리컵을 반쯤 비우고서, 가지고 있던 노파심을 드러냈다.

“혹시 신승찬 배우 때문에 보자고 하신 거라면······.”

“전혀 아녜요. 그건 감독님의 영역이니까요. 나서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게 대표의 역할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직 실력에 비해 인정 못 받는 신인들의 경우죠. 신승찬 배우도 당연히 제가 나서는 걸 원치 않을 거고요.”

명확한 대답에 안 감독이 안도하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승찬 배우 괴롭힌다고 욕 먹을 각오도 하고 올라왔거든요.”

“에이, 욕을 먹다뇨. 절 뭐로 보시고. 전혀 아니죠. 독을 드시게 한다면 모를까.”

“······.”

“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서늘하게 웃으며 손을 휘적거린 하선경 대표가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우리 배우 자존감은 신경 써주세요. 연기에 대해 누구보다 진심인 배우니까.”

“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이야기 매듭 지었습니다. 다음 주부터 촬영 준비하기로요.”

“어머, 잘됐네요? 끝나고 절 만나야 해서 그러신 건··· 당연히 아니겠죠?”

“절대 아니죠. 오늘 신승찬 배우의 연기가 정말 최고였습니다. 제가 그리던 그림 그대로였어요. 갑자기 그렇게 연기가 변한 이유가 정말 신기한데······ 아, 일단 대표님 먼저 말씀하시죠. 대표님이 하실 얘기가 있다고 해서 온 건데 제가 먼저 떠들뻔했네요.”

신승찬 배우의 연기를 떠올리며 순간 흥분했던 안 감독이 호흡을 가라앉히며 바통을 넘겼다.

“그럴게요. 제가 좀 급해서.”

빙그레 웃은 하선경 대표가 기다렸다는 듯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 작품 한번 읽어봐 주시겠어요?”

스윽, 안 감독 쪽으로 밀려오는 종이 뭉치.

그것을 본 안 감독이 되물었다.

“대본이네요?”

“이번 영화 끝나고 나서 차기작으로 한 번쯤 고려해보셨으면 해서요.”

“하하, 신선하네요. 매니지먼트 대표님께 대본을 받아보는 건 또 처음인데요?”

“저도 감독님께 이렇게 대본 드리는 건 처음이에요. 보통은 반대잖아요?”

“그렇죠. 대본이라···. 한 번 읽어보긴 하겠습니다만······ 이 영화에 투자를 계획하고 계시는 건가요?”

“투자는 계획하고 있죠. 그게 영화는 아니지만.”

“···?”

갸우뚱하는 안 감독에게 하선경 대표가 말했다.

“저희가 제작해보려고 하는 연극이에요. 감독님이 봐주시고 괜찮은 연출가분이 있나 추천 좀 해주셨으면 해서요.”

“연극···이었군요?”

순간 안 감독의 눈빛이 달라진다.

그만큼 연극을 사랑하는 감독이 바로 그였다.

실력이 좋다 보니 자연스레 더 큰 시장으로 오게 된 그였지만, 여전히 그에게 연극은 고향과도 같았다.

이를 모르지 않기에, 하선경 대표의 선빵(?)은 안 감독의 흥미를 제대로 자극했다.

“네. 그리고 저는 이걸 차후에 영화화까지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땐 감독님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연극을 만들기도 전에 영화화부터 염두에 둔다?

이쯤 되니 내용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안 감독이었다.

대본을 집어 든 그가 표지를 훑으며 물었다.

“그런데, 작가의 이름이 없네요?”

“아, 그게.”

이에 하선경 대표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직 필명을 안 정했대요.”

“···?”

안 감독은 잠시 의아했지만, 연극 대본에는 종종 필명을 쓰는 경우도 있었기에 이내 그러려니 하며 주억였다.

“일단 읽어보겠습니다.”

“네, 연락주세요. 그래서 아까 하시려던 얘기가 뭐였나요?”

본론을 마친 하선경 대표가 찻잔을 들어 올리며 가볍게 물었다.

“아, 그게. 백승결 배우 말입니다. 아주 다재다능하더라고요?

쿨럭—!

갑자기 하선경 대표가 다급하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연거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놀란 안 감독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런데 백승결 배우가 다재다능하다뇨? 그게 무슨······.”

“아, 그게. 그 친구가 연출 쪽에도 재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장면을 잘 찍는 것도 연출이지만, 그 장면 속 배우에게서 캐릭터를 뽑아내는 것도 연출이다.

그렇기에 안 감독은 백승결이 연출 쪽에도 재능이 있다 확신했다.

신승찬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자신조차 하지 못했던 그것을 그는 너무 가볍게 해내 버렸으니까.

하선경 대표가 얼빠진 얼굴로 본다.

그럴 만도 하지. 할리우드에서 날아오르다 못해 화성까지 가버린 배우가 갑자기 연출 쪽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니 황당한 게 당연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답은 안 감독에게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글이 아니라요?”

“네? 글이요?”

“아, 아녜요.”

고개를 흔든 그녀가 뭐가 그리 심각한지 눈알을 굴리다가 다시 묻는다.

“근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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