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 복귀했습니다-161화 (161/167)

161화 흉내자들 (4)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흡사 미제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형사들처럼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작가가 누구인가.’

그 질문에서 시작된 추론은 문체라는 첫 번째 단서로 이어졌다.

“이거 보면 누구 안 떠오르세요?”

“글쎄······.”

“이것만으로는 어렵나.”

“사실 문체만으로 작가를 찾는 건 어렵지. 소설도 아니고 대본인데. 신인일 수도 있고.

“게다가 요즘 대본 특유의 뭐라고 해야 돼··· 인터넷 감성? 그런 것도 없고요.”

“정석적이지.”

평소 쓰는 단어들을 기반으로 지문마저도 가볍게 가볍게 쓰는 요즘 신인 작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쓰이는 단어도 다채로웠고, 표현력도 발군이었다.

그런 면에선 소설을 닮은 듯 했지만, 어떤 장면을 선명히 묘사하는 장면에선 배우에게 지시하는 감독과도 같았다.

“아무리 봐도 쌩 신인은 아닐 것 같은데······ 쌩 신인이 이 정도 글빨이 있을 수가 없지 않아요?”

“소설 쓰다가 넘어왔을 수도 있고, 경우의 수야 많지. 세상에 은거 기인이 얼마나 많냐.”

“근데 나이가 좀 있어 보이긴 해요. 캐릭터들간의 대화는 안 그런데, 지문에선 조금 올드한 느낌이 있어요.”

“나도 비슷하게 느꼈어. 근데 이게 올드하다기보단··· 책을 많이 읽은 티가 난달까. 대본에 대한 이해도 빠삭하고.”

“그래서 표현력이 좋아. 단순히 화났다, 짜증 났다 뭐 이렇게 감정을 뭉탱이로 퉁 치지 않고 아주 깊게 파고들잖아.”

갑론을박이 한참 동안 이어지다가, 한 직원이 물었다.

“이거, 작가님하고는 언제 통화하신다고 했죠?”

“모레나 글피.”

“근데 왜 화상 회의예요? 작가님이 부끄러움이 많으신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미국에 있대.”

“여행으로요?”

“아니, 아예 미국에서 살고 있나 봐.”

“흐음, 미국에서 산다라······ 배우들에 대해 이렇게 잘 아는 거면 분명히 업계 사람인 건 맞는 것 같은데.”

“요즘은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내용들이 워낙 많아서 그것도 모르는 거야. 갑자기 18살 여고생 작가가 튀어나올 수도 있어.”

안 감독의 농담 아닌 농담에 직원들도 간혹 그런 상황이 있다며 동조했다.

“여고생인데, 유학 생활 중에 외로워서 팬틱을 쓰던 친구인 거예요. 그러다가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진 거죠.”

“팬픽 쓰던 문체는 아닌 것 같던데.”

“아니면 그런 사람일 수도 있죠. 딸 분유 값을 벌기 위해서 밥 먹을 돈 아껴서 카페에서 글을 쓰는······.”

“그거 해리포터 작가 아니냐.”

“아 어쩐지, 익숙하더라.”

“넌 글 쓰지 마라. 클리셰 범벅 되겠다.”

“오히려 대박 날지도 모르죠~.”

머릿속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공을 던지듯, 이런 저런 이야길 하던 직원들 사이에서 어느새 배틀이 붙었다.

작가의 정체를 맞추기 배틀.

“전 그냥 의외로 평범한 유학생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면, 연출학과 다닐 수도 있고. 미국에서 그걸로 유명한 대학이 어디지?”

“오히려 공대생인 거예요.”

그때 잠자코 선배들의 생각을 듣고 있던 막내 직원이 손가락을 튕겼다.

“저 느낌 왔어요.”

“뭔데?”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그녀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작가, 배우예요.”

“오? 그럴듯해. 일단 이 이야기가···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잖아? 근데··· 미국이라는데?”

“그래서 지금은 배우가 아닌 것 같고······.”

말끝을 늘리던 그녀가 자신의 추측을 덧붙였다.

“연기자로 실패해서 미국으로 도피한, 전직 배우인 거죠.”

#

며칠 후.

나른한 오후가 팽팽하게 당겨진 것은,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었다.

안 감독이 ‘흉내자들’의 작가와 화상 통화를 약속한 날!

회의가 진즉에 끝났음에도 회의실을 나서지 못하는 직원들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직원들이 작가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통화는 오직 안 감독만 할 수 있었고, 그 결과도 안 감독 혼자 간직해야 했다.

애초에 비밀이란 건 서서히 무너지는 모래성과도 같다는 걸 하선경 대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조건을 내걸었지.

“아니, 대체 작가가 누구길래 하람 대표가 그렇게 지켜주는 걸까요?”

“아무래도 막내 말이 맞는 거 같아. 옛날에 배우하던 사람이면 하선경 대표가 숨겨주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그렇다니까요. 이 작품을 연극으로 먼저 하자고 한 것도 그 한풀이일 거예요. 여기 봐요. 배우의 애환을 정확히 알고 있잖아요.”

“그래. 충분히 일리 있어. 배우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빠삭하게 알고 있더라고.”

선배들이 동조하자 신이나 덧붙이는 막내 직원이었다.

“한국에선 배우 하다가 실패했다고 그러면 다들 한심하게 보는 게 있잖아요. 심지어 나이가 많으면 더더욱. 그래서 해외로 도피 이민 한 거죠. 거기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카페에서 소설을 쓰고, 출판을 하려고 했는데 12번 거절 당하고 그러다가 우연······.”

“왜 또 거기로 가.”

“아, 이것도 해리포터 작가구나. 어쩐지 익숙하더라.”

막내가 귀여운 듯 웃는 선배들.

그 사이에서 막내는 저 혼자 진지하게 고민을 이어갔다.

“아, 누구지. 미국으로 간 덜 유명한 중년 쯤 되는 배우가 누가 있더라. 저 이런 거 감 되게 좋거든요.”

그때 안 감독이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곤 ‘어이쿠 시간이 벌써···.’라며 손을 휘적거렸다.

“이제 다들 나가. 나 팬 미팅할 거니까.”

확실히 팬미팅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작품을 너무 재밌게 읽었고, 바로 마음이 동했으며, 덕질하고,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기를 매일 반복했으니.

“뭐하던 분인지 꼭 물어봐 주세요! 그 정도는 저희한테 알려줘도 되잖아요!”

“팬이라고 전해주세요! ‘흉내자들’보고 엄청 울었다고도요!”

“근데 왜 그런 결말을 냈는지는 진짜 좀······.”

쫓겨나듯 회의실을 나가는 직원들의 아쉬움가득한 당부를 들으며, 안 감독이 통화 준비를 시작했다.

긴 회의 테이블에 노트북의 위치를 잡고서 어느새 너덜너덜해진 대본을 가져왔다.

[흉내자들]

스윽, 대본의 구겨진 부분을 펼치며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으니 질문할 것들을 정리하며 대본의 내용도 다시 한번 복기한다.

[타인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

작품의 부제처럼, 타인을 연기하는 수많은 배우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누군가는 배역에 동화되어 폭력적으로 변하고, 누군가는 배역을 소화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또 누군가는 작은 배역에 온 힘을 쏟지만 그나마 있던 대사도 사라져버리며, 누군가는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스턴트을 감행한다.

유명배우도, 무명배우도.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는 와중에 현생은 또 얼마나 가혹한지.

누군가는 스캔들이 터지고, 누군가는 어머니가 쓰러진다.

하나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있는가.

이 작품은 그것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전시한다.

“그런데 왜······ 대체 왜······.”

머리를 쓸어넘기며 안 감독이 한숨처럼 내뱉었다.

“이런 결말이었을까.”

대본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착 가라앉는 것도 잠시, 이제 곧 그 결말을 만든 사람을 마주할 생각에 다시 기분이 부유한다.

“얼른 물어보고 싶다.”

무슨 1990년대로 돌아가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뭐하던 사람인지도 모르는 묘령의 작가와 하는 첫 미팅.

자연스레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이름을 안 알려줬지?

신인인가? 아니면 중고신인?

아무리 봐도 업계 사람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막내 말마따나 정말 실패한 중년 배우일까?

그때 핸드폰으로 링크 하나가 도착했다.

안 감독은 노트북에 그 주소를 치고 들어가 떠오르는 화면을 주시한다.

······잠시 후, 화면에 떠오른 작가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놀랐고.

‘무슨 작가가 이렇게 잘생겼······.’

이내 소스라치게 경악했다.

‘어?’

어어어···?

#

화면 속 안정상 감독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며, 나는 그냥 씩 웃었다.

—아니, 근데······ 이거 뭐 딥페이크 이런 거 아니죠?

저 황당한 질문이, 지금 그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대변하는 듯했다.

“그런 걸 왜 하겠어요.”

—그쵸. 그렇긴 한데······ 어떤 우연한 계기란 게 진짜 있었네? 이렇게 작업을 하게 되나.

이어지는 그의 중얼거림.

“네?”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묻자 그가 파바박 손을 휘저으며 고갤 흔들었다.

—아뇨, 아뇨. 그냥 혼잣말이었습니다.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웃어 보인 그가 이어서 묻는다.

—그나저나, 미국에 계신다는 게, 할리우드였네요?

“네, 맞아요. 촬영 일정이 잡혀 있어서 직접 찾아뵙긴 어려운 상황이라서요.”

—그쵸. 당연히 그래야죠. 국가대표가 올림픽을 나갔는데 누가 감히 귀국하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 정도는 아닌······.”

—우리한텐 그 정돕니다. 할리우드는 배우들 뿐만 아니라 이 업계 모두의 꿈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니까요. 근데 심지어 엄청난 흥행작 속편의 주인공이다? 이건 그냥 화성을 넘어서 태양계를 벗어나는······.

화상 통화 특유의 낮은 해상도를 뚫을 정도로 선명하게 감정을 표현하던 안 감독이 들썩이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흠흠, 너무 흥분했네요. 안 그래도 배우님 얘기를 엄청 했었거든요.

“제 얘길요?”

—신승찬 배우한테 이번 역할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다면서요.

“아, 네. 맞아요.”

—하아, 그거에 대해서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아무튼, 이번에 당죽막2 주인공 맡으셨다는 것도 저희 직원들 사이에서 한동안 난리였고요. 그런데, 배우님이 ‘흉내자들’의 저자일 줄이야······.

연이어 감탄사를 내뱉던 그가 자기가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말이 많았다며 화두를 돌린다.

—작품. 작품 얘기해야죠. 이건 작품에 대한 미팅인데. 하하.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아녜요. 배우님인 걸 알게 되니 작품에 대해 더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아지네요.

그가 어느새 차분해진 얼굴로 작품 얘길 시작한다.

들 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손에 들린 대본을 내려다보며 한없이 진지한 모습이었다.

—우선, 작품 너무 좋았어요. 솔직히 보는 내내 두근거렸습니다. 뭐랄까. 분명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나의 꿈이었는데도, 뭔가 더 해야 한다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연극도 제가 맡고 싶다 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안 감독의 극찬에 짧게 화답하자, 그가 말을 이어간다.

—하나의 영화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치열한 배우들의 삶. 그리고 배우가 아닌 개인일 때의 삶까지. 모두 적나라하게 보여주더라고요. 꼭 다큐멘터리 같기도 했어요. 대신 코믹한 장면이나 맛깔나는 대사로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지 않게 텐션을 잡아주고요.

거기까지 말한 그가 시선을 내렸다. 그의 손에 들린 대본이 화면 프레임 안으로 슬쩍 들어왔다가 나간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정신없이 읽었어요. 그렇게 영화가 개봉하는 장면을 기대하면서 신나게 읽고 있었는데··· 뒷부분이 얇더라고요? 그래서 안타까워했죠. 열린 결말이구나. 개봉하면서 끝나겠구나. 하긴 결국 이런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성공했고 모두가 행복했습니다··· 같은 결말은 조금 식상하니까. 과정이 중요하니까. 아쉽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쉼 없이 말하던 그가 대본으로 향해있던 시선을 올리며 내게 물었다.

—왜 그랬어요?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 질문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한탄이 절로 나오더군요.

“저도 쓰면서 한탄했어요.”

—새디스트였군요.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안 감독이 저렇게 말할 만했다.

작품 내내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감정을 갈아 넣는 등장인물들.

그 노력의 끝에서······.

영화는 고꾸라진다.

그냥 망한 게 아니다. 아예 퍽 엎어져 버려, 완성조차 하지 못한다.

그게 ‘흉내자들’의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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