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화
1. 난 여전히 쏘고 싶다(2)
실력 방송.
막상 상현은 별로 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그런 시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실력이 좋은 방송이 더 많았다.
그가 즐겨 보던 스트리머 ‘풍선껌’이 괴상하리만치 게임을 못하던 거였다.
‘풍선껌은 게임을 안 하는 사람들이 보는 방송이었구나.’
그제야 상현은 깨달았다. 그는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런 방송이 알고리즘에 추천됐던 것이었다.
실력 방송은 대체로 게임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이 주 시청자였다. 그 방송을 보고 배우고, 자신도 더 잘해지기 위해서다.
‘고작 게임에 이런 공부까지 하다니.’
상현은 무심코 자신이 게임을 무시하고 있었단 걸 느꼈다. 여기도 스포츠 업계와 같았다.
실력을 키우고, 그 실력으로 겨뤄 증명한다.
운적 요소는 거의 없다.
실력 대 실력의 싸움.
진검 승부.
경쟁!
“……좋다.”
꿀꺽.
물을 한 모금 삼키며 상현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방식의 삶이었다.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서 한 단계씩 올라서는 것.
반면 사회는 이런 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운이 거의 3할은 작용했으며, 인맥이 능력보다도 서너 배는 중요했다. 상현만 하더라도 낙하산이었다.
거기에 학연, 지연까지 합친다면, 막상 업무 능력이 정말 측정되기나 하는 건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외모가 뛰어난 게, 일을 잘하는 것보다 나아 보였다.
요약하자면, 사회는 그 매커니즘이 너무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상현은 단순한 게 좋았다.
“……해보자.”
그는 어쩌면 이 게임의 세계가 자신과 잘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 *
퇴사 이틀 후.
사내 카페에서 만난 동료가 상현에게 외쳤다.
“너 미친 거야!?”
그는 상현이 회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 터놓고 지내는 동료, 김주혁이었다.
주혁은 상현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가고, 미국의 이름 있는 대학원을 나온 뒤, 대기업에 취업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
“……미친 거 같냐?”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반대한다면 상현도 한 번쯤은 고민해 볼 문제였다.
“그, 그럼 이게 미친 게 아닌 거 같냐?”
“아니, 왜. 나 진짜 잘해.”
“……게임 해본 적 없다며.”
“응.”
“하?”
주혁은 얼굴로 보여줄 수 있는 표정 중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며 윽박질렀다.
“야 이 병신아! 근데 전세금으로 모으던 돈을 털어서 캡슐을 산다고?!”
하도 크게 소리를 질러서 주변 직원들이 다 돌아볼 정도였다.
“그…… 퇴직금도 있거든? 그러니까 소리 좀 낮춰라.”
“아니, 갓 대리 달고 잘린 놈이 퇴직금이 몇이나 나온다고!?”
“구조 조정으로 잘린 건 좀 달라, 인마.”
“하아.”
주혁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상현은 조금 말투가 툴툴대는 친구이긴 했지만, 어지간한 대학 잘 나온 놈들보다 똘똘하고 괜찮은 놈이었다.
‘가끔 이 지랄해서 문제지.’
그런데 가끔 그 똘똘함이 똘기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평일엔 사내 식당, 주말엔 컵라면만 먹으며 여태 모으던 전세금을 죄다 캡슐에 꼬라박겠다고 말하는 지금 같은 순간.
“야. 차라리 시발 강원랜드로 가. 그게 더 낫겠다.”
“……나 카드 게임은 못하는데?”
“그냥 비유야. 비유우우우!”
아오, 답답한 새끼.
주혁은 생각했다. 역시 천재라는 놈들은 어딘가 하나 나사가 빠진 구석이 있다고.
“너 양궁 쉰 지 얼마나 됐어.”
“음…….”
“기억도 안 나지?!”
“으음…….”
“그런 놈이 무슨 갑자기 다시 활을 쏴? 그것도 게임에서? 전세금을 털어서? 야. 그냥 좀 정상적으로 살아봐.”
“으으음…….”
상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 새끼 안 듣고 있잖아?!’
역시나 늘 그렇듯이 자기 관심 없는 얘기는 듣지 않는다. 특히나 잔소리는 말 그대로 귓등으로 흘리는 재주가 있는 놈이다.
“하아. 얼마라고?”
“4천!”
‘이건 대답 졸라 빠르네.’
주혁은 한마디 하려다가 겨우 참아냈다. 어차피 또 안 들을 게 뻔하다.
“캡슐만 4천이고, 그거 가동하는 전기비도 장난 아닐 테고, 무슨 또 요상한 장비……. 필요 없나?”
“음……. 그건 아직 몰라. 근데 그냥 캡슐 하나면 그냥 다 해결되지 않을까? 4천이나 하는데.”
“1억 5천짜리 차를 사도 옵션 붙이는 데 돈 든다. 이 사람아.”
“윽. 그렇구나.”
상현은 생각했다.
‘역시 엘리트는 다르네.’
김주혁과 대화하면 뭔가 얻어 가는 게 많다고.
“너 나 퇴근할 때까지만 좀 기다려. 알았지? 그사이에 사지 말고. 내가 아는 사람 연락해서 더 싸게 사는 곳 알아볼 테니까.”
“오……! 고맙다!”
“여기에 있어라. 오늘은 칼퇴니까.”
그렇게 말하고 김주혁은 얼른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커피를 들고 저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던 게 바로 엊그제. 상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가슴이 쓰라렸다.
‘잊자.’
이 쓰라림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절차일 것이다.
* * *
오후 다섯 시.
상현은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대충 시세를 알아보고, 퇴직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 주식 차트나 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게 내가 너보다 더 쫄아 있는 것 같냐.”
“오. 왔냐?”
상현이 고개를 거꾸로 치켜들며 주혁을 바라봤다. 마치 박쥐처럼.
“……보통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 않냐.”
“아. 그런가.”
상현은 다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 옆으로 고개를 돌린 박쥐가 되었다.
“하여간 존나 신기한 놈이야. 일단 가자.”
“어디? 찾았어?”
“따라오기나 해.”
주혁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슈트 자켓을 입으며 앞장섰다.
상현은 대체 주혁이 어떤 인맥을 동원해서 캡슐을 싸게 산다는 것인지 기대되었다.
‘오백 정도는 깎아주려나.’
* * *
“엥?”
“뭐가 엥이야.”
“여기 캡슐방이잖아.”
“그래. 일단 잔말 말고 따라와.”
“아니…… 난 캡슐을 사려는 건데. 쓸려는 게 아니라.”
주혁의 손에 이끌려 따라가자, 이내 반갑게 인사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주혁이 왔네? 옆에가 그 친구?”
“아. 형. 간만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상현은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른 인사를 했다. 주혁이 아는 형이었던 것이다.
“상현 씨라고 했나?”
왠지 캡슐방이 아니라, 진실의 방 같은 걸 운영할 것 같은 인상의 남자가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상현의 그 남자의 두툼한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유상현입니다.”
“반가워요. 난 이강석이라고 하는데, 여기 사장이에요.”
“아…… 예.”
“따라와요. 캡슐 아예 처음이라면서요?”
“예.”
“그런데 벌써 구입을 고려하시는 건 안 되죠.”
‘설마 설득하려는 건가.’
상현은 뒤돌아서 주혁을 찌릿 노려본다. 그는 그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일 뿐이다.
일단 상현은 주혁의 체면을 생각해서 사장을 따라갔다.
“자. 여기 들어가 보세요.”
“……?”
“상현 씨 인체 정보 등록하는 곳이에요.”
“아.”
“아예 등록 처음이라면서.”
“예.”
“여기에 곧 문 닫을 테니까 팬티만 입고 잠시 컴퓨터가 시키는 대로 기다리세요.”
쿵.
상현은 졸지에 갑자기 거대한 우주 긴급 탈출선 같은 곳에 갇혀 버렸다.
* * *
상현이 들어간 사이 둘이 얘기를 나눴다.
“형. 남는 중고 있다고 하셨죠?”
“어. 캡슐방에서 쓰는 건 워낙 부품이 빡세게 돌아서, 한 천오백에 팔아도 돼. 봐서 진짜 돈이 없다 싶으면 천 정도에 팔 만한 것도 있어.”
“와. 고마워요.”
“별거 아냐. 그냥 원래 가격이야. 쯧……. 웬만해선 말리고 싶은데.”
“형도요?”
“그래. 저런 사람들 가끔 있어. 뭐에 홀린 듯이 캡슐 중고로 사겠다고 하는 사람들. 요즘 게임이 돈이 좀 되지 않냐. 잘되는 게임에서 좀 잘나간다거나, 방송이 잘된다거나 하면 일확천금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에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쟤 말고도 또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똑똑한 줄 아냐? 개멍청한 놈들투성이다. 아…… 물론 네 친구가 그렇다는 건 아냐.”
“쟤 개멍청해요.”
사장은 호쾌하게 웃으며 다시 일어섰다. 슬슬 상현의 신체 스캔이 끝났을 테니까.
그는 스캔방 쪽으로 걸으며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뭐요……?”
“자기가 현실에서 잘했던 걸 게임에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근데 막상 그렇지가 않아. 옛날이나 지금이나 게임엔 신체적 한계가 없어. 오로지 정신력 싸움이라고. 현실에서 축구를 잘하는 거랑 게임에서 잘하는 거랑은 달라.”
“풀 다이브도요?”
“그래. 현실에선 자기 피지컬로 커버하거나, 압도하던 걸 게임에선 그렇게 못하거든. 신체적 변별력이란 게 없다고.”
“아…….”
“아마 저 친구, 오늘 내가 시험 삼아서 리얼 올림픽이라는 가벼운 게임 하나 시켜보면 바로 포기할지도 모른다. 네가 잘 위로해 줘라. 사연이 좀 안 됐더만.”
“……알겠어요.”
주혁은 걱정됐다.
‘게임이랑 실제랑 많이 다른가?’
그도 가상현실 게임을 안 해본 게 아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신체를 가진 그의 입장에선 게임과 현실이 많이 다르다고 느낄 법한 일은 없었다.
현실에서 몸으로 잘하던 걸 게임에서 못하는 경우보단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았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프로들은 체감이 클 법도 하다. 그 우수한 신체 능력을 게임에선 활용하지 못하니까.
‘차라리 잘됐지. 전세금도 아끼고.’
그는 대충 상현을 위로할 말을 생각해 두었다. 캡슐을 안 사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기며.
-스캔 완료.
잠시 후. 상현이 스캔룸에서 나온 뒤 가장 앞에 있는 캡슐로 들어갔다.
“자. 한번 테스트해 보는 거예요.”
사장이 상현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양궁을 주로 하셨다니까, 오히려 테스트가 쉽겠네요. 리얼 올림픽이라는 게임인데. 제가 양궁으로 세팅해 놨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제 문을 닫을 거니까. 여기서 스코어를 한번 내보세요. 그리고…….”
‘그러고도 캡슐을 살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장은 이 말을 차마 뱉지는 않았다. 어차피 알아서 그렇게 되리라.
쿵.
캡슐의 문이 닫히고, 사장과 주혁은 관람모드로 모니터를 켜놓았다.
-우아아아아…….
올림픽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화면에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엔 왠지 모르게 하얀색 유니폼이 끝내주게 잘 어울리는 상현이 서 있었다.
기리릭.
그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마치 수년간 매일같이 당겼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