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1화
5. 미션 임파서블(1)
“아, 그거 귀찮다니까.”
“야. 이런 거 중요해, 인마. 내가 매니저니까 말 들어.”
“하아…….”
도토리묵을 만나러 출발하기 약 3시간 전.
그렇다. 무려 3시간 전부터 주혁은 상현의 집에 와서 그를 닦달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시상식 가냐고…….”
“겨우 이게 시상식이냐, 너한텐? 이건 그냥 샐러리맨 ‘전투 폼’ 정도지.”
주혁은 상현의 투정을 일갈하며 머리채를 잡아채서 포마드를 발라주었다.
“으으…… 아, 알았으니까 당기지 마!”
상현도 결국엔 주혁의 손에 자신을 맡기기로 했다. 일단 -정말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지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주혁은 그의 매니저다.
게다가 아주 고스펙의 매니저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미안할 지경인데, 거기에 투정까지 부려선 꼴이 좋지 않을 거다.
‘하자는 대로 다 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감았다.
칙. 칙.
그 위로 스프레이가 뿌려졌다.
* * *
주혁의 노력은 헛된 게 아니었다.
그의 ‘전투 폼’은 확실히 전투력을 상승시켰다.
물론 무심한 편인 상현은 전혀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도토리묵과 그의 매니저, 나연은 이미 둘이 풍기는 기운에 압도당한 상태였다. 스트리머들 사이에선 이런 유의 정돈된 ‘사회인’스러운 인간은 별로 없으니까.
나연은 아예 입을 떡 벌리고 가만히 앉아만 있을 정도였고, 그 말 잘하는 도토리묵조차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잠시 후에야 천천히 일어나 손을 마주 잡았다.
“아…… 상현 씨. 반갑습니다. 저는 도재묵이라고 합니다. 옆에 분은…….”
“전 유상현 씨 매니저 김주혁입니다.”
김주혁은 그사이 만들어 온 명함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 지적인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미소였다. 마치 영화에나 나오는 엘리트 같은.
‘뭐야. 이 이력은…….’
그리고 그의 명함에 적힌 이력은, 그가 엘리트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엘리트임을 화려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아하하하…… 대단하신 분이 매니저네…….”
“과찬이십니다. 옆은…… 누구시죠?”
주혁이 멍하니 둘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 저, 전 ‘그냥’ 매니저입니다. 대단한 매니저 아니구요. 안녕하세요!”
나연은 긴장한 티가 역력해서는 인사할 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주혁은 그녀의 엉뚱한 행동을 보고는 겨우 웃음을 참아야 했다. 상현은 아예 관심이 없었고.
어찌 됐든, 일 얘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떻게 방송이 진행될 거고, 어떤 질문이 오갈 건지, 예민한 질문이나, 하고 싶지 않은 콘텐츠 등을 살펴본 후, 도재묵은 수당 이야기로 넘어갔다.
“자, 이제 돈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데…….”
상현은 자신이 아예 무보수로 나갈 생각이었으나, 도재묵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아니요. 그건 안 되죠. 그랬다가 나중에 말 나와요. 하하.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쌍팔년도에는 아예 인방이라는 게 없는데……. 상현의 입술이 옴짝달싹했으나. 주혁이 말을 끊었다.
“그래도 보수를 받는 건 저희 쪽에서 미안할 지경인데요. 정 주셔야 하면 현재 처우에 맞게 최저임금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최저임금도 굉장히 많이 받는 축일 거다. 상현의 현재 수익은 최저임금은커녕 기초 수급비 신청을 해도 좋을 정도니까.
“으음. 이 업계는 시간당으로는 잘 안쳐요. 상현 씨가 방송하는 날 나오는 도네이션은 반으로 나눠 드릴게요.”
“!”
주혁과 상현이 동시에 놀랐다.
‘수익이 꽤 높던데…….’
마니아 층이 두터운 도토리묵의 방송을 이미 다 분석하고 온 차이기에, 저 말이 얼마를 주겠다는 건지 대충 감이 잡혔으니까.
‘최소 하루에 200은 터지는 방송이야. 그럼 100을 주겠다는 건가?’
주혁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상현은 그저 가만히 주혁의 계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계산에는 약한 편이다.
‘야. 그게 대충 얼마냐?’
‘100은 최소 넘을 듯.’
서로 귓속말로 의견을 주고받은 뒤, 고개를 끄덕인다.
이 둘 입장에서 하루에 100이라니, 광대 노릇도 할 수 있을 액수였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아이고. 제가 감사합니다. 앞으로 크게 되실 분들을 먼저 모셨으니까요. 하하하!”
도토리묵은 호쾌하게 웃어 보이고, 그날 만남은 마무리됐다.
* * *
무서운 놈.
상현은 집에 도착한 후, 주혁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생각했다.
[주혁 : 야, 이거 녹음 파일이다. 혹시 모르니까 너도 하나 갖고 있어라.]
[주혁 : 도토리묵.mp4]
이런 놈이야말로 대기업 임원까지 갈 수 있던 게 아닐까? 대체 왜 회사를 나온 걸까?
[상현 : 고맙다.]
사실 상현은 이 뒤에 말을 좀 더 치려고 했다.
‘근데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할까?’
방송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주혁에게 나눠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늘 그렇듯이 주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주혁 : 수익은 월 300 이상 발생 시, 그 추가금에서 20% 떼어 줘.]
물음표가 붙을 정도로 상현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일단 월 300 이상의 수익이 한동안 나올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이는 최소 생활을 보장할 때까진 돈을 받지 않겠다는 뜻이다.
[상현 : 야. 그걸로 되겠냐?]
[주혁 : 나야 모아놓은 돈 많아.]
주혁이 한 말이 거짓은 아니다.
그는 투자에도 꽤 관심이 많아서, 주식만 팔아도 당장 작은 집 하나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또한 주혁은 상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 산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 시장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했고, 1년은 충분히 투자해 볼 만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시작이 상현과 함께라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라고.
주혁은 나름대로 그가 그리는 계획이 있는 것이다.
[주혁 : 그리고 인마. 형은 다 계획이 있다.]
[상현 : ㅇㅋㅇㅋ]
물론 상현은 그가 그리는 계획엔 별 관심이 없었다.
‘금수저는 배포가 다르네.’
이렇게 생각하고 말뿐이었다.
* * *
다음 날.
상현은 방송을 켜고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도토리묵을 만난 날은 방송을 쉬었기에 던진 멘트였다. 그는 아직 프로 방송인이라는 인식은 없어서, 굳이 시간이나 요일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방송해도 크게 욕은 먹지 않았다.
-하악. 아몬드 방송 못 참지!
-키야. 오늘 잭팟이네! 딱 맞춰서 퇴근!
오히려 그의 깜짝 등장을 즐기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루비소드 님, 가지볶음 님, 명사수 님, 젤리텔리 님…….”
이어서 상현이 채팅창의 익숙한 아이디들을 주르륵 불러나갔다.
-나도! 나도 하이!
-아하! 아몬드 하이라는 뜻.
-아하아아!
-와. 0군 호명……!
-나도 0군 할래!
그러자 자기 이름도 불러달라며 채팅들이 마구 올라온다. 물론 이제 하나씩 다 부르는 건 한계가 있기에 적당히 서른 명 정도를 불러주고는 멈췄다.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겐 굉장히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을 터다.
그가 호명을 멈췄을 때도, 채팅은 계속 올라왔다.
-와. 아몬드!
-알람 듣자마자 바로 옴.
-아몬드 센세.
-아하~!
-아하!
-아몬드 쉑……. 이틀 만의 방송이라니. 벌써 방송으로 밀당하냐?
사람 수 자체가 늘어난 것 같았다.
‘뭐야? 아직 게임도 안 켰는데. 이상하네.’
시청자 수를 확인해 봤다.
[현재 시청자 : 314명]
무려 300명의 시청자가 방송을 켜자마자 들어왔다.
‘너무 많은데……?’
조금 이상할 정도로 많다. 게임을 하고 있을 때도 200명 남짓한 게 저번 방송이었는데.
오늘은 방송을 켜자마자 314명.
게임도 안 하는 상태치고는 너무 많은 숫자였다.
-아하! 아몬드 님. 도토리묵 님이랑 합방하신다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임?
-와, 도토리묵 출세했네. 아몬드랑 합방하고.
-ㄹㅇ임?
-벌써 1티어 스트리머랑 합방이라니. 무친 속도…….
-콩나물무침 버려지는 속도…….
왜 오늘 사람이 많은지, 채팅에 그 답이 있었다.
‘소문이 났구나.’
어떤 루트인지는 모르지만, 도재묵과 만났다는 사실이 새어나간 것이다.
“합방이요? 저 같은 하꼬가 무슨.”
상현은 대충 눈치껏 넘겨 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선 도토리묵이 확실하게 정해뒀었다. 자기가 타이밍에 맞게 홍보할 테니 그전까지는 함구하라고.
상현은 그 화제를 빠르게 돌려, 게임 쪽으로 넘어왔다.
“합방 말고, 한 방에 죽는 보스 보러 오세요. 오늘 마적단 두목 잡으러가거든요.”
상현도 300명의 시청자를 놓치긴 싫었던지 으레 도발적인 멘트를 던진다.
단순 호기심에 찾아온 시청자들까지 붙잡기 위해서다.
-보스 한 방에?
-ㄹㅇ?
-보스는 헤드샷 한 방에 안 죽어 뉴비야…….
‘뭐야. 보스는 한 방에 안 죽어?’
상현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두르카는 보스가 아닌가요?”
그런데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이 웃는 채팅만 올라온다.
-ㅋㅋㅋㅋ너무하넼ㅋㅋㅋ
-두르캌ㅋㅋ
-부르카라고 부. 르. 카.
-부르카 원래 카리스마 쩌는 캐릭터인데…… 불쌍…….
-부르카든 부르릉카든 한마디도 못하고 뒤졌는데 아몬드가 기억하겠냐고 ㅋㅋㅋㅋㅋ
-엌ㅋㅋㅋ 아몬드한텐 그냥 엑스트라임.
“아니. 두르카는 보스 아니냐구요.”
상현은 계속 두르카라고 불렀다. 본인도 인지를 못 하는 모양.
-ㅋㅋㅋㅋㅋ
-두르카는 엘리트 몹 판정이고, 보스 아님. 보스들은 대따 커요 일단 덩치가.
-보스는 보면 바로 보스 몹인지 알듯.
그렇구나.
상현은 그제야 보스와 엘리트 몹의 차이를 알게 됐다.
엘리트 몹까지는 -그게 매우 어려울지라도- 일단 헤드샷에 한 방에 갈 수도 있지만, 보스는 안 된다.
보스는 설사 헤드샷을 맞는다고 해도 한 방이 아니다.
‘와 씨. 그럼 어쩌지?’
앞서 보스를 한 방에 잡는다고 호언장담했는데.
허언장담이 되게 생겼다.
하지만 그 허언장담이 효과는 좋았다.
-보스 한 방 어그로 같지만 대기 타봄.
-ㅋㅋㅋㅋ 나도 구경하고 가야지.
-합방 구라였네. 그래도 보스는 보고 감.
루머를 확인하러 온 300명의 시청자들이 아직 대기 중이다.
‘좋았어.’
이때를 틈타서 상현은 제대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보스를 한 방에 못 잡아도, 나머지를 멋지게 처리하면 좋아할 거야.’
이제 슬슬 자신감도 좀 붙었고, 게임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도 했다.
도토리묵과 합방하기 전, 소문이 조금 새어 나가고 기대감이 절정에 오른 지금이 기회였다.
제대로 된 프로 스트리머로 도약하기 위한 기회.
그리고 그걸 마치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알림이 울렸다.
띠링.
[루비소드 님이 ‘1만 원’ 후원해 주셨습니다.]
[미션 : 보스 한 방 컷 성공 시 10만 원]
무려 10만 원어치의 첫 미션.
꿀꺽.
상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받는다.’
그는 ‘수락’을 눌렀다.
-ㅋㅋㅋㅋ 뉴비 커여워…….
-저거 안전 자산이라구.
-불가능한 미션을 받아버리누…….
-아몬드는 아가야…… 암 것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