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9화
8. 암살 임무(1)
국내 최대 게임 유통사 펑크.
그곳에서 일하는 오 실장에겐 큰 고민이 있었다.
그의 나이 때 일상 겪는 탈모나, 아이의 성적 고민이 아니다.
“이놈의 양놈 판타지 게임은 괜히 들여왔나.”
북유럽에서 수입해 온 킹덤 에이지라는 게임의 판매량이 그의 고민이다.
분명 전문가 평도 굉장히 높고, 플레이 경험도 상당한 고평가를 받았는데…….
영 상업적인 힘을 쓰진 못하고 있었다.
물론 들여올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 이게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룰 게임은 아니란 것을.
“그래도 정도가 있지.”
다만 회사 입장에서 어느 정도 선 이하로 구매 수가 떨어져 버린 건 의외였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안 팔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지금 망조가 든 게임에 미친 듯한 할인 외에 새로운 이벤트를 신청해도 임원진 쪽에서 결재가 나지 않을 거다.
새롭게 이벤트를 걸려면 뭔가 근거 혹은 명분이 있어야 했다.
‘가령 스타플레이어가 나온다거나…….’
이 스포츠가 있는 게임도 아니고, 한번 사고 플레이하면 끝나는 게임에 스타플레이어라니.
피식.
오 실장은 실소했다.
‘암담하구만.’
그저 떨어져 가는 구매 수를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
자기가 결재해서 수입 한 게임이 차근차근 망겜의 스텝을 밟아가고 있는 걸 눈 뜨고 봐야만 하는 오 실장의 심정은, 그야말로 타들어갔다.
“……?”
그런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 실장에게, 구세주 같은 영상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뭐야, 이건…….”
활 챌린지를 하고 있는 듯한 한 플레이어의 영상이었다.
편집이 잘된 탓도 있겠지만.
그 영상에서 보여주는 플레이는 진짜였다.
‘심지어 초짜?’
더군다나 그 영상의 주인공은 이 게임을 플레이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초짜.
심지어 용모도 눈이 부실 지경이다.
‘이 새낀 왜 모델을 안 하고, 인방을……. 아니지, 인방 해줘서 고맙다!’
이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원석이었다.
심지어 광고 단가도 메이저 스트리머보다 쌀 테지만, 포텐은 엄청나다.
‘잘만 밀어준다면……!’
쿵!
그는 저도 모르게 키보드를 내려쳤다.
“……이거다!”
직원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곧장 링크를 타고 이 아몬드라는 사람의 생방송 채널로 직행했다.
거기서 지난 방송들을 켜서 살펴봤다.
‘이건…… 된다!’
시청자들의 반응, 상승 추세, 실력, 방송 능력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인터뷰 영상을 보니 용모마저 빼어나다.
띠링.
그때, 팔로워들에게만 가는 알림이 울렸다.
[‘아몬드’가 방송을 시작합니다!]
오 실장은 조용히 입을 떡 벌렸다.
‘운이 좋군!’
아몬드는 정해진 방송 시간이 없는데, 마침 방금 방송을 켠 것이다.
오 실장은 얼른 채팅 채널에 들어가 검은 인트로 화면을 바라보며 아몬드의 등장을 고대했다.
‘어……?’
근데 그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시청자 수가 이렇게 많았나?’
그가 봤던 영상에서는 시청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아진 걸까.
* * *
잠시 마이크 테스트를 하던 상현.
그는 멍하니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대체 뭔…….’
이게 대체 뭘까?
아니, 뭐 때문일까?
‘도토리묵 합방? 퍼펙트샷? 매드무비?’
어떤 요인을 들이밀어도 말이 되고, 동시에 말이 안 됐다.
[현재 시청자 : 1,003명]
시작과 동시에 천 명이 넘어버린 시청자 수.
방송을 켜고서 시청자는 계속 상승했다.
시청자 수 언급이 전혀 좋지 못한 일인 걸 알고 있음에도 입술이 절로 달싹거릴 지경이었다.
1천 명.
라이브 시청자 1천 명의 벽이라는 게 있다.
1천 명부터는 전업 스트리머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달성하기도 어렵다.
근데 그의 시청자들은 그것도 모자라는 듯, 마구마구 더 모여들었다.
[현재 시청자 : 1,120명]
100명 단위로 치솟는 시청자 수.
‘이걸 언급을 해야 해, 말아야 해?’
판단하기 힘든 그 간극 속에서, 상현은 결국 벙어리가 됐다.
그러는 사이 채팅은 계속 올라온다.
-아하!
-아하!
-아하아아!
-뭐야. 왜 말이 없어?
-방송 켜! 아몬드 방송 켜! 아몬드 방송 켜! 아몬드 방송 켜! 아몬드 방송 켜! 아몬드 방송 켜! 아…….
-켰다, 병신아.
-도배 컷 좀.
-방금 켰는데, 뭔 컷이야 ㅋㅋㅋ
-아몬드 근데 매니저 있음? 저번에 보니까 누구 있긴 하던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화력의 채팅.
거기에 광기 어린 사람들까지 몇몇 보인다.
‘도토리묵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땐 괜찮았는데.’
그땐 무려 5만 명이 지켜보는 방송이었는데도 괜찮았었다. 근데 그건 프로 스트리머인 도토리묵과, 역시나 프로 매니저인 이나연이 옆에서 서포트 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그걸 깨닫는다.
‘굉장히 잘 케어해 준 거였구나.’
막상 이 정도 관심과 채팅을 홀로 다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꿀꺽.
상현은 마른침을 삼킨다. 그리고 생각했다.
‘……끝내준다!’
긴장감, 부담감.
이런 것들과 싸우는 걸 넘어 상현은 그런 것들을 찾아다니는 경지에 이른 천생 스포츠맨이다.
묘한 쾌감이 전신을 휩싸고 도는 감각.
몸을 움직이는 엔진이 서너 배는 더 요란한 소리를 내는 걸 들을 수 있었다.
파르르 떨려오는 손끝에서 긴장뿐 아니라,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흠. 흠.
잠시 목을 가다듬은 뒤.
그는 활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트하! 시작부터 환영이 열렬하네요.”
슬슬 느리게 올라오던 채팅창이 다시 급속도로 빨라진다. 상현의 심장 박동처럼.
-아하하하하!
-우하하하!
-아몬드 형, 하이!
-아몬드, 오!
-오빠 얼굴 보여줘! 얼굴 보여줘!
-아, 그러고 보니 아몬드 본방은 얼굴이 안 보이네 ㅋㅋㅋ
-헐. 본방은 얼굴 안 보여?ㅠㅠ
-왜 목소리만 나와?
-뉴비들 존내 많네 ㅋㅋㅋ
-원래 노캠임.
-사실상 힘을 숨겼다 봐야짘ㅋㅋㅋㅋ
-얼굴 좀 ㅠㅠㅠㅠ
아무래도 인터뷰로 유입된 시청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캠을 언급하는 채팅이 많았다.
‘캠이라…….’
상현이 캠 기능을 찾아보는 사이.
띠링.
주혁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캡슐 안에서 볼 수 있는 DM(Direct Message)이었다.
[주혁 : 야. 이거 봐라. 새끼 부럽네.]
띠링.
추가로 보내온 사진 자료.
그걸 보니 왜 캠 요구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여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에 돌고 있는 상현의 사진이었다. 그가 게임을 하는 모습, 캡슐에서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었던 인터뷰 장면 등등.
상현이 여태 얼굴을 드러냈던 장면들은 거의 다 캡처가 되어 있었다.
‘워우.’
그 밑에 달린 댓글은 스스로도 낯 뜨거워서 못 볼 정도였다.
그렇지만 분명 기분이 좋았다.
심장이 두근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사랑을 받는 건, 엄청 흥분되는 일이었다.
마약이란 게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야. 나 관종인가 봐.]
그는 주혁에게 DM을 보냈다.
[주혁 : ??]
[존나 좋아.]
[주혁 : ㅋㅋㅋㅋ 천직이네. 얼른 캠 켜라, 그러면. 도배충들 컷하는 것도 힘들어.]
[오키]
상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고. 캠 버튼이 눌렸다.
송출 화면 한구석에 작은 사각형이 생겼다.
“트하!”
그 사각형의 틀 안에는 씩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상현의 얼굴이 담겨 있었다.
-와우!
-오늘부터 캠 켜는 거야?!
-ㅠㅠㅠㅠㅠ핵존잘!
-흐어어어ㅠㅠㅠㅠ
-키야.
-캡슐 안에서도 저 정도라니.
-무쳤다.
-형! 결혼하자!
채팅이 늘어나는 건 물론, 게임 시작도 전부터 후원이 들어왔다.
[우류류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핵존잘.]
[도레미 님이 ‘2천 원’ 후원했습니다.]
[형 퍼펙트샷 오졌어. 그때 도네 못 해서 지금 함]
몇몇은 마치 밀린 후원을 한다는 듯이, 합방 때 못 한 후원을 지금 해준다고 한다.
그걸 다 일일이 읽어줄 수는 없었다.
‘게임 스트리머 하고 싶은데.’
그가 도토리묵에게 했던 말처럼.
본질은 게임 스트리머다.
“후원 감사드립니다. 많이 지체돼서, 일단 게임 시작할게요.”
[킹덤 에이지. 시작.]
* * *
슈웅.
아몬드의 아바타가 다시 킹덤 에이지의 세상에 소환됐다.
휘이잉.
싱그러운 바람이 스쳐 가는 이곳은 아직 봄이었다.
“아몬드.”
그 봄바람과 같은 목소리가 살랑이며 들려온다.
에밀리아였다.
그녀는 언덕 위에서 가만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현이 도토리묵과 함께 2, 3시간 정도 더 플레이했을 때.
나머지 고블린 굴을 전부 토벌했었는데.
그 잔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실력에 대해 익히 들었어요.”
“영광입니다. 영애님.”
꽃향기가 나는 금발이 바람에 사르륵 아몬드의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에밀리아가 고개를 돌린 것이다.
그녀는 아몬드를 일으켜 똑바로 눈을 마주 봤다.
“저희 영지에서 항상 골머리를 앓았던 고블린들을 이토록 쉽게 퇴치해 주시다니.”
“저 혼자 한 건 아닙니다.”
“아뇨. 로만 중대장님께 다 전해 들었답니다.”
에밀리아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히로인 후보인 에밀리아의 생각보다 빠른 적극성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뭐야?
-호감도작이 대체 얼마나 된 거냐?
-아몬드 호감작 안 했는디?
-ㅋㅋㅋㅋ걍 얼굴 빨임 ㅅㅂ
-글고 보니 그렇네. 진짜 얼굴 아니잖앜ㅋㅋ
-걍 인싸의 기운이 풍기는 것이지.
-무협지냐 ㅋㅋㅋㅋㅋ
아몬드도 이런 전개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다음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대에게 맡기고 싶은 임무가 하나 더 있답니다.”
“…….”
그냥 임무를 하나 더 주려는 거였다.
-ㅋㅋㅋㅋㅋㅋㅋ
-고마우니까 목숨도 주시죠ㅋㅋㅋㅋ
-그럼 그렇지.
-로만한테 안 주고 왜 직접 말함? 원래 이럼?
-호감작 전개가 아니라, 미친 피지컬작 전개인 듯.
아몬드가 되물었다.
“저한테 말입니까? 임무는 로만 대장에게…….”
“아뇨. 그대가 혼자 해줬으면 합니다. 이는 저 혼자 결정한 게 아니랍니다. 영주님께서도 그러는 게 좋겠다 하셨습니다.”
혼자서 하는 임무라니. 대체 그게 뭘까.
혼자서 하는 거니 아마 간단한 것이리라.
“저기 성이 보이시는지요?”
“예.”
“저 성의 성주를 죽여주세요.”
“!?”
아몬드의 표정과 실제 캡슐 속 상현의 표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이 게임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상현이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요구였다.
-누나 진짜 나 죽어!?
-ㅋㅋㅋㅋ ㄹㅇ 죽여 버림ㅋㅋㅋㅋㅋ
-‘죽어주세요’를 잘못 말한 거 아냐?
-누나 나 죽어! 누나 나 죽어! 누나 나 죽어!
-에, 에밀리아…….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원래 이런 캐릭이 아닌뎈ㅋㅋ
-전투력 측정기가 고장 났나 봄ㅋㅋㅋㅋ
채팅창의 반응도 같았다.
“저…… 혹시 저 성안에서 성주가 자주 외출합니까?”
“아뇨. 몰래 잠입하셔야 합니다.”
“……?”
“?”
에밀리아는 안 될 거 있냐는 식으로 고개를 갸우뚱한다.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실력이세요.”
그녀는 다시 아몬드의 두 손을 꼭 잡는다.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순진무구한 눈빛은…….
진심으로 아몬드를 믿고 있었다!
[입시귀족 님이 ‘2천 원’ 후원했습니다.]
[번역) 당신은 충분히 화살로 성을 무너뜨릴 수 있으세요!]
[에밀리아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누나 나 죽는대서 죽으라 했는데, 문제라도?]
[에밀리아 앙뚜아네트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번역) 죽어라. 서민.]
아몬드의 상황이 처절해 보였는지, 후원이 들어온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몬드가 곤란한 상황이라 여겼다.
[1. 수락]
[2. 거절]
아몬드는 아주 잠깐 고민했을 뿐.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여러분. 갑니다.”
띠링.
그는 1번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