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0화
8. 암살 임무(2)
오 실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주를 처치한다고?’
그 역시도 킹덤을 참 좋아하고, 여러 번 플레이해 본 하드유저였다.
그런데 이런 무모한 퀘스트는 본 적이 없다.
‘방패와 창이라면 모를까…….’
킹덤에서 가장 안정적인 세팅인 방패와 창. 이 둘의 숙련도와 장비 퀄리티를 극한까지 올려놓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활은…… 거의 원거리 요격이나 암살용인데.’
활로 성을 침투해서 성주를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경비 시스템 때문인데.
한 놈을 죽일 때 소리가 나면 곧바로 모든 경비병들에게 신호가 간다.
그러니까 만약 둘이 함께 돌아다닌다면, 동시에 죽이거나, 아예 피해서 돌아가거나, 하나씩 아무 소리도 없이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 성주…….’
심지어 지금 지목된 탈로란트라는 성주. 그와 아몬드와의 상성도 최악이다.
‘절대 화살로는 못 죽여…….’
설사 저 수많은 경비 병력을 피해서 성주를 요격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아몬드는 성주 탈로란트를 죽일 수가 없다.
그가 늘 입고 다니는 갑옷 때문이다. 다른 기사들의 것보다도 훨씬 더 무겁고 촘촘한 그 검은 갑주.
‘만약 이걸 진짜로 활로 클리어한다면…….’
그런 성주를 정말 활만으로 잡아낸다면?
오 실장은 상부에 완강하게 어필할 수 있으리라. 이 사람은 스타성이 보장된 사람이라고.
그러니 미리 홍보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스타가 될 재목이라고 주장해도 무방하겠지.’
오 실장은 아몬드가 마음에 들었다.
이미지도 멀끔하고, 실력도 좋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스타가 되진 않는다.
스타가 되는 건 거기에 어떤 마법을 한 스푼 더 얹어야만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화면 속의 아몬드가 선택지를 골랐다.
* * *
“역시. 그대라면 수락하리라 여겼어요.”
에밀리아가 화사한 미소를 짓는다.
그것만으로도 앞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미모였다.
-크. 1번이 옳았네.
-ㄹㅇ 목숨이 뭐 중요함? 에밀리아 누나가 웃으면 됐지.
-죽으러 드가자~!
-ㄹㅇㅋㅋ
시청자들도 아몬드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반응이 좋았다. 그들은 나름 이 미션을 아몬드가 어떻게 클리어할지도 기대하고 있었다.
-아몬드가 어케 할지 ㄹㅇ 궁금하네.
-어케 하긴. 걍 뒤지겠지 ㅋㅋㅋ
-유입이냐? 아몬드는 안 죽거든? 후원 리액션 할 때만 죽어.
-ㅋㅋㅋㅋ 10만 원 후원하면 바로 죽음ㅋㅋㅋ
물론 그의 실패를 점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성에 들어가서 성주 죽이는 건 에바 아님?
-ㄹㅇㅋㅋㅋ
-이거 공성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진짜 어렵다는 거 알 텐데. 유입은 유입이구만 ㅋㅋㅋ
-킹덤 해보지도 않은 놈들일 듯.
그 이유는 바로 이 킹덤 에이지라는 게임의 난이도 때문인데. 그중에서도 성을 공략하는 공성전 콘텐츠는 실제 전쟁 저리가라 할 정도의 난이도다.
실제로 성벽을 하나하나 기어 올라가야 함은 물론이고, 적들의 AI가 멍청하지도 않아서 조금만 들켜도 곧바로 수많은 병사들이 몰려온다.
성을 잠입하는 건 실제 우리나라의 38선을 넘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평하기도 했다.
-38선 넘어서 탈북하는 게 더 쉬움
-아 38선은 좃밥이지 ㅋㅋㅋ 어딜ㅋㅋㅋㅋ
물론 과장이 섞인 평들이긴 했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아몬드도 물론 어려울 거라는 건 예감하고 있었다.
‘어렵긴 하겠지. 혼자서 성에 잠입해서 성주를 죽인다는 말. 듣기만 해도 벅차잖아.’
그럼에도 수락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어려운 걸 해내야 뜨는 거야.’
그는 이 방송에 모든 걸 건 인간이다. 여기서 물러날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거다.
‘몸도 이제 엄청 익숙해졌고. 진짜 할 수 있을지도.’
훈련과 최적화 덕분에 아몬드는 이제 거의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상.
이런 상태에서라면 불가능한 게 없을 듯했다.
‘성이라고 해봐야, 그렇게 많지도 않아.’
아몬드도 -자신의 피지컬을 제외한-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
중세의 성이라는 곳이 사실 그리 으리으리하지도 않고, 막상 지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중세 성이면 보통 많아 봐야 50명 아닌가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감을 내비친다.
-엌ㅋㅋㅋㅋ
-아몬드 : 50 대 1은 껌이다.
-중세 성은 그냥 큰 저택 정도긴 하지 ㅋㅋㅋ
채팅을 보던 아몬드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나저나…….’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에밀리아 영애의 눈.
‘대체 저 여자가 사람을 죽이라고 할 법한 이유란 게 뭐야?’
에밀리아라는 여자는 -비록 게임 캐릭터라지만- 전혀 누군가를 증오한다거나,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타입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임무를 맡긴다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화면이 깜깜해지더니.
다시 컷 신이 시작된다.
상현의 통제를 벗어난 아몬드가 영애에게 묻는다.
“영애님. 저 성의 성주가 뭘 잘못했습니까?”
“…….”
에밀리아는 잠시 말이 없이 아몬드를 바라본다.
“아몬드. 용병은 이유를 묻지 않아요.”
“…….”
말해주지 않을 셈인가?
그렇게 생각할 무렵, 에밀리아는 다시 언덕 아래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뗐다.
“……저들은 영지민들을 사실상 노예로 만들고 있답니다.”
“……?”
“단순히 소작농이 아니라, 실제로 노예상들에게 영지민들을 팔고 있는 것이죠. 어린아이와 여자까지도.”
“그래서는 영지 운영이 안 될 텐데요.”
“아뇨. 오히려 운영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랍니다. 높은 이자로 돈을 빌리게 하고, 그걸 계속 갚게 하다가 결국 몸까지 노예로 만드는 것이죠.”
“성주가 죽으면 일은 해결이 되는 겁니까?”
“……저희 가문이 통치할 겁니다.”
“그럼 왜 전면전을 하지 않고…….”
“명분이 없습니다. 이쯤이면 용병님께는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보상은 차고 넘칠 만큼 드릴게요.”
여기까지 말한 후.
다시 장면이 넘어간다.
* * *
아우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와 큰 달.
화창했던 봄의 언덕은 온데간데없다.
아몬드는 어느새 밤하늘이 컴컴한 시간대로 와 있었다.
두둥.
이런 사운드와 함께 표시되는 거대한 텍스트.
[성주 탈로란트를 암살하라!]
임무가 부여됐다.
‘이제 시작이구나.’
스륵.
아몬드는 침착하게 옥수수밭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속삭이며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이거 제가 말하는 것도 판정돼요?”
잠복 시 중얼거리는 것도 인게임에서 캐릭터들이 눈치채냐는 질문이었다.
-글쎄요~
-한번 중얼거려 보시든가~
-ㅋㅋㅋㅋㅋ
-설정 가서 바꾸실 수 있어여 ㅋㅋㅋ
-그거 설정 가능.
설정이 가능하구나.
아몬드는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리얼리티가 중요한 게임인데.’
그는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
“그냥 갈게요.”
스륵.
어둠에 몸을 숨기며 속삭였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아몬드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각사각.
진짜 훈련받은 암살자라도 된 듯 발걸음이 정교했다.
이전의 아몬드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특징이다.
-오…….
-무빙이 심상치 않네.
-활만 잘 쏘는 게 아닌감?
-최적화해서 달라진 듯.
-도토리가 순간 집중력이 넘사라고 했음.
시청자들은 그 원인을 타고난 재능이나, 최적화에서 찾았지만.
아몬드는 오늘 캡슐 들어오기 전에 했던 행동이 그 원인임을 알았다.
‘훈련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괜찮구나.’
캡슐에 탑재된 훈련 프로그램을 무려 3시간이나 성실히 임했기에, 지금 가상세계에서의 움직임이 상당히 좋아진 것.
그렇게 보초가 거의 없는 성벽 한 면까지 접근을 성공한 아몬드.
탁.
그는 시커먼 벽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음은 어떻게 이걸 안 들키고 타고 올라갈 거냐는 문제였다.
아몬드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화르륵.
성벽 위로 순찰을 도는 횃불이 둘 보인다.
꿀꺽.
아몬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막상 근처에 오니 꽤 긴장된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는 느낌.
물론 일단 저 위에 둘부터 처리해야겠지.
‘2명이라…….’
현재 그의 시야각에 들어오는 병사는 둘.
‘한 놈이 죽으면 반드시 나머지 한 놈이 소란을 피울 텐데…….’
동시에 처리하거나, 아예 둘 다 모르게 처리해야 한다.
-소리 내고 죽일 거면 둘 동시에 죽이셈.
-동시에 어케 죽임?
-그니까 소리 안 내고 죽여야지 ㅋㅋㅋ
-저거 뒤로 가서 암살로 하나씩 입 막으면서 죽여야 함.
입을 막으면서 죽인 후 천천히 눕히면 소리가 안 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아몬드의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안 돼.’
솔직히 아몬드는 활 쏘는 것 외의 방법으로 저 둘을 처리하는 건 자신이 없었다.
‘활을 쓰고 싶은데.’
다만 활을 쓰면, 하나가 활에 맞으면 다른 하나가 보게 될 거다.
어쩔까 고민하던 아몬드.
‘아.’
그는 화살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더니. 시청자들에게 속삭였다.
“활로 동시에 죽이면 될 것 같네요.”
그의 선언에 시청자들은 모두 채팅창에 갈고리(?)를 걸었다.
-???
-???????
-?
-설마 뭐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동시에 화살 두 개를 발사?
-에이ㅋㅋㅋㅋ
-그거 여기서 안 됨. 그건 영화고, 여긴 킹덤이야!
그야 그들의 상식선에서 화살로 두 명의 보초를 동시에 다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
아몬드의 생각은 달랐다.
‘할 수 있어.’
기리릭…….
아몬드의 활시위가 당겨지기 시작하고.
-와, 진짜 쏜다고?
-ㅋㅋㅋㅋ 50 대 1 ON!
-다 몰려들겠는데.
-아몬드, 첫 데스 가냐?
-오빠, 이거 한 사람 쏜 거 들키면 나머지가 소리 질러여!
온갖 걱정과 조롱도 함께 올라왔다.
그러나 아몬드는 온 신경을 활에만 쏟았다. 이미 채팅창 같은 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
‘일단 왼쪽 놈. 포물선을 최대한 크게 그려서……. 늦게 떨어지게 한다.’
전술을 되뇌며, 활의 각도를 위로 휙 올려 버렸다.
그리 오래 재지도 않았다.
피융!
순식간에 화살이 위로 솟구친다.
그 즉시 아몬드는 다른 화살을 시위에 메겼다.
‘왼쪽 화살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서 최대한 일직선으로 오른쪽 놈을 맞힌다.’
기리리릭……!
아까와는 다르게 아주 강하게 당겨지는 화살.
“후우.”
숨으로 약간의 박자를 비운 뒤.
피이잉!
엄청난 파워로 쏘아진 화살이 밤공기를 가르며 날았다.
그리고 두 개의 화살이 살갗을 꿰뚫는다.
푸푹!
왼쪽 병사와 오른쪽 병사가 정확히 동시에 쓰러졌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타이밍.
-헉. 왜 동시에?!
-어케 된 거야???
각도 차이로 인한 타이밍을 활용한 것이다.
첫 발은 각을 가파르게 쏴서 느리게 맞게 하고, 다음 발은 직선에 가까운 각으로 쏴서 빨리 맞게 한 것이다.
결국 아몬드가 말한 대로 활로 동시에 둘을 처치한 셈이다.
그제야 시청자들도 상황을 이해한다.
-와아아아아아아!
-개미쳤다.
-돌! 았! 다!
-ㅁㅊ…… 괴물이네.
-ㄹㅇ 이게 가능함?ㅋㅋㅋㅋ
-와 ㅋㅋㅋㅋㅋ
-아몬드! 그는 신인가! 아몬드! 그는 신인가!
-와 대존멋 ㅠㅠㅠ
채팅창에서의 환호는 물론. 이제 시청자도 1,400명대 가까이 되는 방송이니, 후원도 짭짤하게 쏟아졌다.
[루비소드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헐.]
[도랏맨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엄마! 난 커서 아몬드가 될래요! 엄마! 난 커서 아몬드가 될래요!]
[양양이 님이 ‘3천 원’ 후원했습니다.]
[이런 게 될 거라고는 제작진도 몰랐을 듯 ㅋㅋㅋ]
* * *
오 실장이 멍한 얼굴로 아몬드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어…… 진짜 몰랐다.’
비록 제작진은 아니지만, 나름 게임 유통사의 실장으로서 게임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도록 봤었다.
특히 킹덤은 그도 애착을 갖고 있는 게임이었기에, 수많은 플레이어를 봤었다.
그런데…….
‘저런 놈은 처음이야.’
아몬드 같은 자는 없었다.
오 실장은 조용히 전화기를 들었다.
“야. 내가 지금 톡으로 보내는 애, 무조건 섭외해. 그리고 내일 회의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