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34화 (34/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34화

13. 기사(2)

“안녕하세요. 아몬드입니다.”

이런 말과 함께 시작되는 영상 속에는 말끔한 차림의 유상현이 세련된 검은 벽돌을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

그 벽 한편엔 게임 유통사 ‘펑크’의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제가 이번에 올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펑크의 파트너 스트리머가 되었습니다.”

앞서서 기사가 있긴 했지만 상현의 입에서 오피셜로 나온 건 처음이었다.

이 영상이 올라온 후,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엔 이런 제목들의 게시글들이 퍼졌다.

[속보! 오피셜. 아몬드 펑크 파트너 스트리머!]

[아몬드가 펑크 파트너 스트리머라고 인정!]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사실을 밝히는 것과는 차이가 큰 터라, 이미 한 번 관련 주제로 커뮤니티가 뜨거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글들이 게재되기 시작했다.

-뭐야. 아몬드 방송 켬?

-방송 안 켰는데?

└올튜브 채널 만듦!

└아하 ㄱㅅㄱㅅ

그 덕분에 한 번의 홍보도 없었던 아몬드의 올튜브 채널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강력한 마케팅은 입소문이라 했던가.

기존 아몬드의 팬이 너도나도 올튜브 채널에 모여들어서, 영상이 올라간 지 5분 만에 조회 수 5천을 넘겼다.

사실상 신입 스트리머가 인사만 하는 영상에 이 정도 조회 수 추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아, 끝으로 이 채널에는 오늘 그간 했던 게임 영상들이 편집되어 올라올 예정입니다. 일전에 화제가 됐던 매드무비 영상도 리마스터되어서 올라가니까 많은 관심 바랍니다.”

아몬드의 끝인사와 함께 영상이 끝났고.

-오늘 생방은 안 함?

-그런가 봐.

-영상 막 올라온다!

그와 동시에 영상들이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서지아가 그간 모아왔던 아몬드의 방송을 편집한 압축본들이다.

[킹덤 에이지 EP1 : 활 고르면 안 됨?]

[킹덤 에이지 EP2 : 너무 쉬운데요?]

[킹덤 에이지 EP3 : 전설의 퍼펙트샷]

이렇게 3개의 영상이 일단 맛보기로 올라갔다.

단 이틀 만에 편집했다기엔 양이 엄청난데, 서지아에게 듣기론 그전부터 아몬드의 편집자가 되는 걸 상상하며 미리 만들어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주혁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니, 그러면 우리랑 딜할 때 하기 싫다는 듯이 한 건 연기야?”

상현은 늘 그렇듯이, 별 관심 없는 표정이다.

“뭐…… 글쎄다.”

“지아 씨도 오늘 회식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회식은 무슨. 사실상 우리 둘이 술 처먹는 자리에 어색하게 끼는 건데.”

“……그건 그렇네.”

주혁은 이걸 동거+파트너 스트리머 기념 회식이라 불렀으나.

사실상 휴가 내고 친구랑 술이나 퍼마시는 자리였다.

“에라이. 마시자!”

타앙.

둘은 맥주잔을 거세게 부딪치며 꿀꺽꿀꺽 맥주를 마셨다.

바사삭.

상현이 금빛으로 튀겨진 닭다리를 하나 베어 물면서 묻는다.

“그래서…… 왜 집 나왔는지, 말해봐.”

“아, 내가 어제 시청자층 분석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하시는 말이…… 어?”

말을 하다 말고 주혁이 술집의 입구를 바라본다.

상현의 고개도 똑같이 돌아갔다.

‘저건…….’

익숙한 실루엣들이 보인다. 설마하니 여기에 들어오나 싶었으나.

주혁과 상현이 애초에 이 치킨 집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회사 근처에서 가장 맛이 좋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하아, 제길. 야, 보지 마.”

“미친. 왜 여기로 와가지고.”

“여기가 제일 맛있잖아.”

둘은 서로에게 작게 욕을 속삭이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이전 회사 사원들을 마주치는 건 정말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 김 대리, 유 대리?”

쭉 올라가는 순수한 음색의 고음. 소유정이다. 머릿속이 그냥 꽃밭인 여자다.

눈치가 없다는 소리다.

“와! 진짜 반갑다! 너희 어떻게 된 거야!?”

그녀의 소란에 다른 사람들도 주혁과 상현의 존재를 눈치챈다.

“뭐야. 김주혁이?”

심지어 가장 눈치채면 안 되는 존재도 눈치챈다.

김주혁이 대판 싸우고 나왔던 그 부장, 상현에게 퇴사를 권고했던 그 박 부장이다.

“너희들 여기서 뭐하냐? 근처로 이직했나?”

박 부장의 표정이 참 묘했다.

증오와 반가움이 섞인 희한한 표정이다.

그중 반가움은 종류가 좀 다를 것이다.

‘김주혁이 저 새끼. 인맥 닿는 곳엔 소문 다 퍼뜨렸는데, 이직했으려나?’

자신이 맥인 엿이 얼마나 잘 들어갔는지 궁금했기에 반가운 것이다.

“……하하. 잘들 지내셨습니까?”

주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를 받았다.

상현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였다.

“인마. 그러고 나가서 어디로 갔냐?”

“…….”

주혁은 박 부장의 말에 대답을 못 했다.

‘유상현 매니저가 됐습니다!’

이런 말은 여기서 죽어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할지 뻔하니까.

“저놈은 무슨 타조냐? 그러고 고개 돌리고 있으면 내가 여기서 사라진다냐? 크허허허!”

박 부장은 승리감에 젖은 웃음을 터뜨렸다. 상현과 주혁의 반응을 보아하니 딱 봐도 지금 빈털터리 신세 아닌가?

“인사할 사이도 아닌데, 무슨.”

상현이 고개를 돌려 박 부장을 마주보며 받아쳤다.

“뭐?”

박 부장이 으름장을 놓듯 되물었으나, 상현은 오히려 눈을 똑바로 보며 다시 읊었다.

“인사할 사이 아니잖아요, 우리.”

“……!”

박 부장 근처에 있던 사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뭐야?’

‘쟤 왜 저래.’

‘원래 좀 이상해.’

‘낙하산 주제에.’

사실상 들으라는 듯 속삭이는 사원들.

박 부장은 이빨을 다 드러내며 씩 웃었다.

‘저렇게 공격성을 드러내니 하수지.’

아무리 퇴사했다고 해도 저런 행동은 사회에서 쉽게 용인되지 못한다. 결국 사회의 평가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리는 게 사회생활의 요점이다.

박 부장이 아무리 싫어도, 아무리 그와 이제 관련이 없을지라도 이런 행동은 해선 안 됐다.

“이것 봐.”

그가 상현에게 삿대질을 시작한다.

“이러니까 사회에서 도태된 거야.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잖아? 그치?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네가 인마. 아무리 나랑 사이가 별로였어도 이런 자리에선 그냥 쿨하게 인사받아주고 하는 거야.”

외운 듯한 대사가 술술 흘러나온다.

한두 번 겪는 상황이 아닐 터다.

부장은 역시나 능숙했다.

“너만 안 좋은 거라고, 이렇게 지랄하면.”

그러나 상현도 술이 좀 들어간 상태였다. 본래라면 담담하게 그냥 넘겼을 상황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제 박 부장과는 정말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쿨하게 인사를 받아?”

상현이 맥주를 한 번 더 들이켰다.

주혁이 놀라서 속삭였다.

‘야. 왜 그래?’

상현은 대답 없이 그냥 부장을 노려보기만 했다.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주혁의 눈이 바삐 돌아가며 이걸 어떻게 말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으나, 상현의 입이 열리는 게 더 빨랐다.

“굳이 남의 테이블까지 와서 어디 이직했냐, 임마 점마 하고 물으면 쿨하게 받아줘야 하나? 너도 이거 쿨하게 받아 봐. 그럼.”

주혁은 자신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미, 미친?!’

돌발 상황이었다.

상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쿵.

일어나는 폼을 보아하니, 그냥 인사나 하려고 일어난 건 절대 아니다.

부장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뒷걸음질 쳤다.

“뭐, 뭘 받…….”

그때였다.

통통한 실루엣의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아아니! 상현 씨! 여기서 뵙네?!”

펑크의 오 실장이었다.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을 텐데, 오 실장은 그런 거 하나도 모르겠다는 듯 상현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상현 씨 지금 올린 영상 조회 수 엄청나던데? 우리 ‘펑크 본사 이사님들’이 아주 신나셨어. 내 안목이 탁월했다고.”

“…….”

상현은 갑작스러운 만남에 말문이 막혔다. 벙어리가 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 부장도 마찬가지다.

‘펑크 본사……? 이사진?’

가상현실 게임과 관련된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이미 GDP 지분 1위가 된 시대.

박 부장의 나이일지라도 펑크가 어떤 회사인지는 알았다. 아이돌 모르던 부모님들이 SM, JYP, YG는 다 알았듯이.

심지어 펑크는 국제적으로 위신이 엄청난 게임 유통사다.

아무리 아성이 대기업이라도…… 그건 국내에서만 통하는 이야기.

펑크의 주가 총액과 비교하면 구멍가게일 터다.

‘그런 초거대 기업이 대체 왜…… 유상현이랑?’

지금 그런 곳의 간부로 보이는 사람이 유상현에게 붙어서 친하게 대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아부를 떤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사님 중에 한 분이 상현 씨랑 식사하고 싶으시대. 저기 오마카세 집이 있거든요? 안 그래도 내가 그거 물어보려고 연락하려 했는데.”

그러는 사이, 펑크의 직원들도 합류했다.

“헐. 아몬드다.”

“저분이야?

“와…… 진짜 잘생겼어. 실물.”

“아까 회사 들어왔을 때 볼 걸…….”

하나 같이 무슨 유명인을 대하는 듯한 태도에 박 부장은 당황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저…… 시, 실장님. 저 조카가 사인…….”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오 실장에게 와서 아몬드의 사인을 부탁하기도 했다.

“아, 혹시 괜찮나?”

“……아, 예. 물론이죠.”

“고맙구만. 나도 하나 해줘. 어차피 파트너 계약서에 하나 있지만! 으하하하!”

그의 농담에 사원들도 시끌벅적하게 웃었다. 굉장히 능숙하게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박 부장의 패거리는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사라지게끔.

‘대, 대체 뭐야? 유상현 저놈이 뭐라고? 게다가 파트너 계약?’

꿀꺽.

박 부장은 마른침을 삼킨다.

‘저 자식이 뭐라고…….’

원통한 기분이었다. 그가 아는 유상현은 분명 별것 아닌 놈인데.

어디 있는 집 자식이라 빽이 있다느니, 그래서 낙하산이라느니 떠드는 자들도 있지만.

박 부장은 그런 거 믿지 않았다.

‘설마 진짜……?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상현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혼란스러웠다.

“……가, 가자.”

그렇기에 그냥 이 자리를 피해버린다.

“네?”

“나가자고.”

“아니, 여기 벌써 주문…….”

“아 새끼가! 말 못 알아듣냐! 나가자고!”

“……아, 알겠습니다.”

결국 박 부장과 사원들은 술집에서 나가버렸다. 나가는 순간까지 그 눈치 없이 해맑은 소유정은 상현과 주혁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돼서 다행이야!’라면서.

“하…….”

주혁과 상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숨을 뱉었다.

그때 오 실장이 상현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이력을 봤을 때 대충 예상은 했네만…… 좋게 나온 건 아닌가 봅니다. 뭐…… 가끔 저런 사람이 있죠.”

역시, 오 실장은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상현은 곧장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굳이 저 때문에 거짓말까지…….”

“응? 뭔 거짓말.”

“……본사 이사님들이 좋아했다거나, 조회 수랑…… 이사님이 무슨 식사까지 하자고…….”

“아하하하. 들켰나? 내가 과장 좀 했어. 저런 사람들은 이…….”

탁탁.

그가 자신의 빛나는 명함을 튕겨 보인다.

“이름값에 약하거든. 내공이 없으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래요. 잘들 먹고 가세요. 아…… 그리고 이사님이랑 언제 식사 가능하신지는 나한테 보내주세요.”

“?”

상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농담이신가요?”

“예? 하하하! 아뇨. 그건 진짜예요.”

“예!?”

“본사 이사들 어쩌고만 거짓말이고 나머진 다 진짜라구요. 조회 수 안 봤어요?”

그제야 상현은 올튜브 앱을 켜서 자신의 채널에 들어갔다.

“!”

조회 수를 확인한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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