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40화
15. 나 홀로 1등(2)
4인 스쿼드 ‘월요일조아’는 간만에 복귀한 유저들이 모인 클랜이었다.
특히 이들 중 저격을 담당하는 ‘깐풍징어’는 무려 다이아 랭크까지 갔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현실에 치여 약 1년 정도를 쉬다가 돌아왔고. 랭크는 초기화되어 있었다.
다행히 게임은 크게 바뀐 게 없었다. 몇 가지 템이 추가되고, 새로운 맵 몇 개가 생겼을 뿐이다.
원래 진행하던 클래식한 맵을 고른다면 예전의 그 실력이 그대로 발휘될 터다.
‘이 레이팅은 X밥이겠지. 뭐.’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돌격하던 아군 둘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
하늘에서 날아온 뭔가를 맞고서.
그 와중에도 적은 옥상에서 전혀 얼굴도 내밀고 있지 않았다.
‘저게 뭐야? 대체 뭘 맞고 죽은 거냐?’
깐풍징어는 이때 알았어야 했다.
이 게임이 더 이상 그가 생각하던 그 게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 * *
“후. 맞은 건가?”
아몬드는 여전히 옥상 벽에 등을 기댄 채였다.
그는 상대가 자신의 화살을 맞는지 안 맞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야, 뒤로 쐈으니까.
킬 로그를 보고 한 명이 죽은 건 알 수 있었다.
[아몬드 → 집게사장]
[처치하였습니다!]
[47/100]
-와우 맨.
-이건 미쳤다. 인간의 영역이 아님.
-걍 뽀록 아닌가?
-와……ㄷㄷㄷ
-오빠 진짜 쩐다 ㅠㅠㅠ
피식.
아몬드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채팅창에서 떠드는 말들 때문이다.
지나치게 좋아하는 모습이 웃겼다.
‘이번 건 좀 신기하긴 하지.’
하긴. 그간 보여줬던 활쏘기와는 조금 달라 보일 거다. 상대를 보지도 않고, 뒤로 화살을 쏴 올려서 맞힌 것이니까.
하나 아몬드의 입장에선 이전에 하던 방종 리액션 같은 것의 응용 버전일 뿐이었다.
‘어렸을 때 이상한 짓거리 많이 해보길 잘했네.’
양궁 선수 시절. 같이 선수 준비하던 친구들과 별의별 서커스 같은 묘기를 부리곤 했는데.
지금처럼 하늘 위로 쏴서 원하는 방향에 착지시킨다든가, 하늘 위로 화살을 쏘고 그걸 다시 맞힌다든가…….
말 그대로 거의 서커스였다.
그때 코치님은 활 망가진다고 늘 혼쭐을 내곤 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해보길 잘한 것 같다. 그런 게 여기서 쓸모가 있을 줄이야.
잠시 추억에 잠겨 있는 사이─
──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격조 중 한 명은 죽지 않고 부상만 입었기에 집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옥상 문으로 들어오겠지.’
적이 이 옥상으로 올 수 있는 입구는 단 하나였다.
그곳만 보고 있으면 된다.
다행히 아몬드가 자리 잡은 곳에서 보인다. 여기라면 견제 사격도 받지 않고, 문을 지킬 수 있다.
다만─
‘상대는 총인데.’
아몬드는 활이다.
일대일 정면으로 붙으면 투사체의 속도 차이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컴파운드 보우도 힘이 꽤 좋은 편이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활치고는 그렇다는 것이지, 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탁, 탁…….
슬슬 옥상 쪽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몬드는 어찌 됐든 화살을 꺼내 든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적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여기서 움직이는 순간 곧바로 저격수의 타깃이 된다.
몸을 날려서 총알을 피하는 건 이론상 불가능하다. 결국 적이 못 맞혀주길 바라야 하는 건데.
아몬드는 다른 사람의 능력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극복한다.’
여기서 자신의 능력으로 개척할 것이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믿는 게 바로 자신의 활 실력이니까.
‘온다.’
퉁…….
마지막 계단을 밟는 소리와 동시에 옥상 입구 문고리를 잡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찰칵.
‘집중해야 돼.’
아몬드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세상과 자신의 의식을 단절시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숨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심장 소리가 거슬린다고 여겨질 정도로.
그는 자신만의 세상에 들어갔다.
그리고 활시위를 당겼다.
기리릭──
“!”
시위를 놓았다.
─파앙!
-???
-?
-안 열렸…….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근데 활시위는 미리 놓았다.
끼익……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문이 아주 조금 열린 사이, 그 틈.
휘익?
날쌘 바람이 그 틈을 지나간다.
푸욱.
“컥……!”
끼이익…….
문이 열렸다.
손으로 연 게 아니라, 쓰러지며 몸으로 열었다.
[아몬드 → 스폰지봅]
[기절했습니다.]
상대의 복부에는 방금 아몬드가 쏜 화살이 꽂혀 있었다.
-문 여는 타이밍에 맞춰 쏜 거냐!?
-돌았다……
-아몬드. 그는 신인가?
-닉 가리면 개고인물인데?
-혹시나 앉아서 올까 봐 밑으로 쏜 것도 개굿.
-이거 진짜 개고수들이나 하는 건데…….
-와…… 오늘 첨 하는 거 맞음?
문이 열리는 타이밍을 재고, 그 사이에 샷을 욱여넣는 플레이.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나 할 수 있는 초고도의 센스 플레이다.
“그냥 타이밍만 잘 맞춘 거예요.”
아몬드는 진통제 하나를 까먹으면서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그리 쉽게 말할 기술은 아니었다. 엄청난 감각과 집중력을 타고 나야만 가능하다.
-능──멸
-그 타이밍을 못 맞춰서 우리가 주식에 돈을 꼬라박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엇 왜 눈물이…….
-아, 타이밍만 맞추면 되는구나!
시청자들은 그의 그런 반응이 능멸 혹은 기만이라 여겼다.
그만큼 방금의 플레이는 정교했다.
아마 상대도 전혀 이런 플레이를 예상할 수 없었을 터다.
그래서 방금 죽은 스폰지봅은 억울했다.
[스폰지봅 : 야. 저 새끼 미친놈인데? 이 랭크 아닌 것 같아.]
[깐풍징어 : 뭐야. 왜 당했어. 한 명 아냐?!]
[스폰지봅 : 한 명인데…… 문 열자마자 죽었어.]
[깐풍징어 : 아 ㅄ]
[스폰지봅 : 아니, 문 여는 타이밍에 맞춰서 화살을 욱여넣었다니까? 이걸 내가 어케 피해 ㅅㅂㅋㅋㅋㅋ]
[깐풍징어 : ?? 이 레이팅에 그딴 놈이 어딨어. ㅈㄹ하지 마. 걍 문을 조심해서 안 열었던 거겠지.]
[스폰지봅 : 아, 걍 구하러나 와.]
[깐풍징어 : 어떻게 구하러 가. 널 걔가 쏴 죽일 거 아냐.]
[스폰지봅 : 안 쏴 죽이는데? 나 기어서 1층으로 가는 중.]
스폰지봅의 메시지를 읽은 깐풍징어는 황당했다.
“안 죽여……? 그 자식. 무슨 자신감이야?”
스폰지봅을 죽이지 않았다는 건, 와서 구하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상대가 둘임에도 불구하고, 오면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거다.
“그, 그냥 가지 말자. 스폰지 쉑 버리자. 진짜로 타이밍 샷으로 쏜 거면, 개고수잖아.”
옆에서 같이 견제 사격을 하던 ‘별가뚱이’가 겁먹은 목소리로 말한다.
“뭐?”
“누가 봐도 함정이잖아. 스폰지 새끼 그냥 버리자고.”
“……야. 넌 존심도 없냐? 어? 여기 레이팅이 어딘 줄 알아? 오늘 처음 하는 새끼도 잡히는 레이팅에서, 도망치자고?!”
‘이 새끼 왜 이렇게 진지해.’
별가뚱이는 깐풍징어의 기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거 그냥 게임인데.
“이거 대놓고 도발하는 거잖아.”
“그렇군. 그러니까 더욱이 그냥 가야지.”
“뭔 소리야. 우리 복귀할 때 다시 다이아랭크는 가 보자고 했잖아!”
“여기서 도망친다고 랭크가 떨어지진 않아…… 징어야…….”
“내 자존심이 떨어진다.”
깐풍징어는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저격 총의 거치대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앞으로 가려는 준비였다.
“아니, 진짜 가? 차라리 내가 갈게. 네가 엄호해. 저격수잖아.”
“너 혼자 가면 치료하는 동안 어떻게 하게.”
“아……”
이래서 곤란하다.
한 명이 부상을 당하면, 팀에서 한 명이 빠지는 게 아니라, 그걸 구하는 사람, 그 주변을 지키는 사람까지 필요하다.
“좋아. 가자.”
별가뚱이와 깐풍징어는 결국 유리한 고점 자리를 포기하고, 스폰지봅을 구하러 갔다.
지나가는 길에 집게사장의 시체가 보인다.
“집게사장만 불쌍하게 됐네…….”
“걘 괜찮아. 아이디부터 그럴 운명이잖아.”
둘은 언덕을 내려와, 아직 죽지 않은 동료를 향해 걸었다.
터벅. 터벅.
“뛰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제발 닥쳐. 뚱아. 조준하면서 가야 저놈이 함부로 못 튀어나올 거 아냐.”
“아…….”
별가뚱이는 깐풍징어를 따라서 건물의 3층 옥상을 조준하며 걸었다.
에임이 조금씩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전술 같았다.
“어. 저기 있다. 1층 문 앞에서 기고 있네.”
“하…… 추한 새끼.”
둘은 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옥상에서 쏘는 각 없어질 때까진 이러고 가야 돼.”
“오키.”
건물 바로 앞까지 붙으면, 옥상에서는 쏠 각이 없어진다.
터벅. 터벅.
그들은 천천히 각을 좁혀갔고, 슬슬 옥상에서는 둘을 쏘기 힘든 수준까지 다가왔다.
그때 조금 긴장이 느슨해졌을 뿐이었다.
아주 잠깐 잡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을 뿐이었다.
피잉─
그사이에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하늘 위로 날아가는 화살이 보였다.
‘아. 정수리!’
‘정수리다!’
둘의 등골에 소름이 동시에 쭉 끼쳤다.
저 극단적 포물선의 종착지가 자신들의 정수리임을 알았다.
아까 두 동료가 어떻게 당했는지 봤기에.
아차 싶었다.
그들은 에임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곧바로 몸을 날렸다.
다만 앞으로는 몸을 날리지 않았다.
그건 예측당할 확률이 너무 높았다.
좌, 우, 후방 셋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러면 스폰지봅을 구하러 가는 길과는 멀어진다. 하나 어쩔 수 없다.
저걸 제대로 맞으면 방탄모가 찌그러지고,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거다.
“흐압!”
“큭!”
둘은 데구르르 구르며 각자의 방향으로 몸을 던졌고.
폭……!
결국 화살은 모랫바닥에 박혔다.
회피 성공이었다.
“피했──”
그들은 몰랐다.
정말로 안도해 버린 그 순간.
사실 그때가 진정 아몬드가 노린 허점이었음을.
푸욱!
“─다?”
말을 끝맺는 순간 별가뚱이의 눈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아몬드 → 별가뚱이]
[처치하였습니다!]
[28 / 100]
“미친?!”
깐풍징어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혼란스러웠다.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이런 각도로 화살이 날아올 일은 없는데?!’
그 대답은 머리 위로 드리운 그림자가 대신해 줬다.
아몬드의 그림자다.
고개를 올려, 그 그림자의 근원을 바라본 깐풍징어의 눈은 공포 영화 포스터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미친 새끼.’
떡 벌린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활을 든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건물 너무 가까이 다가온 적을 쏠 각이 안 나오니, 투신 낙하를 해서 각을 만든 거다.
그전에 쏜 화살은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못 보게 하려는 미끼였을 뿐이다.
“빠, 빨리──”
깐풍징어는 놀란 와중에도 총을 위로 들어 올리려고 했으나.
그 무거운 저격 총을 치켜들어 에임을 조절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푸욱!
눈과 눈 사이에 정확히 화살이 박혀 버린다. 방탄모가 있었지만, 이마까지만 가려주는 ‘일반’ 등급의 방탄모였다.
그래서 결과는 즉사다.
[아몬드 → 깐풍징어]
[더블킬!]
[26 / 100]
──쿠웅.
상대의 죽음과 동시에 아몬드의 몸이 땅으로 처박혔다.
“으윽!”
꽤 높은 곳이었다.
아몬드는 머리가 어질할 정도의 격통을 느꼈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후…… 진통제 먹어두길 잘했네요.”
아마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면,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 왔을지도 모른다.
[30초 후 블루존이 줄어듭니다.]
100명 중 이제 26명만이 남았다.
아몬드는 상대의 물건을 뒤져서 의료품을 사용한 후, 발걸음을 옮겼다.
-ㄷㄷㄷㄷ
-돌았다.
-이게 말이 되냐!?
-와 액션 영화인 줄…….
-옥상에서 떨어지면서 쏠 생각을 하네……ㄷㄷ
-개쩐다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후원창에서는 돈이 쏟아졌다.
[지엔장 법률사무소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이분 고소합니다. 제 팬티를 못 쓰게 만들었군요.]
[덜렁 님이 ‘5천 원’ 후원했습니다.]
[진짜로 지렸습니다. 게시판에 인증 갑니다.]
[에이미 애미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에, 에이미! 여깄었구나! 풍선껌 같은 나쁜 사람 쫓아가지 말랬지!?]
[JamMini 님이 ‘5만 원’ 후원했습니다!]
[엄마! 나 커서 아몬드가…… 못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