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71화
25. 꿈만 꿔야 했던(3)
[30분!!! 30분 돌파했습니다아아! 전자파 기록까지 39초!!!]
유하연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에, 모든 스태프들이 돌아본다.
‘이럴 수가…….’
‘진짜?’
‘결국 여기까지 온 거냐?’
처음엔 아무도 아몬드가 전자파의 기록을 깰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막 캡슐 게임을 해본 초짜가 어떻게 순수 기량으로 전자파를 따라잡겠는가?
아무리 천재라는 게 존재한다지만 전자파도 천재 중의 천재다.
그걸 손쉽게 이기는 천재라는 게 또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전자파에 대한 믿음은 두텁다. 아무리 생채기가 나고, 흙이 조금 파질지라도 그것은 단단한 지면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아래를 들여다볼 정도로 팔 수 없는.
그러나 30분이 지나버린 이 시점.
슬슬 그들이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사실 매끈한 얼음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 * *
후우웅!
콰광!
아몬드는 미칠 듯이 날아오는 무기와 순식간에 지나가는 레이저 광선, 바닥에서 솟구치는 불길을 신들린 듯이 피해내고 있었다.
[전자파의 기록을 깨기까지 15초!!!]
이제 15초가 남았다.
아몬드는 날아온 방패를 추가로 잡아 들고 투사체를 쳐내고 있었다.
“에, 엔지니어님! 동기화! 싱크로 수치가 비정상 단계입니다!!”
엔지니어의 조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뭐?”
“싱크로 수치가 97%에요!!”
“무슨 말도 안 되…….”
엔지니어의 말은 뚝 끊기고 말았다.
집중력 수치가 높으면 가상 싱크로 수치가 올라간다는 건 정석이다.
그런데 그게 한계가 있다.
자기 영혼이 다른 몸에 들어가서 자기 몸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 봐야 85%다.
사실 그조차 위험한 수치다.
그렇다. ‘위험’한 수치다. 이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 기량은 올라갈지 몰라도, 가상공간의 저 아바타와 실제 인간이 동기화된다.
점점 하나에 가까워진다.
대충 듣기만 해도 위험천만해 보이고, 실제 연구 결과에서도 좋은 쪽으로 추측이 되고 있진 않다.
그래서 일단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자동으로 튕겨 나가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안 튕기는 거야!?”
“그, 그야 테스트 버전이라 그런 리미트는 설정이 안 되어 있었는데…….”
“미친…… 그랬지!”
이건 방송 사고다.
새로운 캡슐의 프로토타입을 소개한다고, 아직 상용화 안 된 제품으로 ‘살아남아라!’ 테스트를 진행한 것이다.
[기록이 이제 7초 남았습니다! 진짜 눈앞이에요! 역사가 다시 쓰이는 날이 오늘인 걸까요!?]
* * *
쩌렁쩌렁 울리는 유하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아몬드에게도 닿았다.
그러나 그의 귓가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소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콰광!
파지직!
훙!
쿠우웅!
다채로운 굉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부 아몬드의 아바타 하나를 노리기 위해서 달려든다.
카아앙!
아까 낚아챈 방패로 날아든 철퇴를 쳐냈다.
휘리릭.
철퇴는 무거운 머리 부분을 쳐내도, 뒤쪽의 쇠사슬이 뱀처럼 달려들며 몸을 휘감으려 한다.
아몬드는 방패를 던졌다.
촤르륵.
그 방패로 휘감기며 날아가는 철퇴. 아몬드의 몸 대신 방패가 희생된 것이다.
아까도 이런 식으로 방패를 여러 개 버렸다. 이제 또 언제 다시 방패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훙!
바로 다음 순간 날아오는 대검.
그건 피해냈다.
콰과광!!
그다음은, 대포알이 날아온다.
또 피했다.
[5초 남았습니다!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후우웅!
이번엔 거대한 창 다섯 자루가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각이다.
게다가 현재 딛고 있는 타일이 서서히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
곧 있으면 여기서 용암이 치솟아 쇳덩이들마저도 다 녹여 버릴 것이다.
자리를 옮겨야 했다.
바로 움직였다.
뜨거운 열기가 치솟으며 뺨이 그을린다. 그가 서 있던 타일에서 솟구친 용암 때문이다.
쉬이익!
이젠 날아오고 있는 창들을 신경 써야 한다.
조금이라도 먼저 날아오는 창 3개의 사각지대로 몸을 욱여넣었다.
치익…….
옷깃이 스치며 찢어졌다.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긁힌 자국은 여러 개다.
이를 악물고 손을 뻗었다.
[이제 3초 남았습니다아아!!]
타악.
날아든 창 중 하나를 겨우 잡아챈다.
두 개의 창이 더 날아든다.
하나는 막아내야 하고, 하나는 피해야 한다.
바로 옆 타일로 뛰었다. 동시에 창을 몸 쪽으로 훅 당기면서, 휘둘렀다.
탕!
육중한 충격이 어깨에 전달되며, 날아오던 창 하나가 튕겨 나간다.
나머지 하나는 아까 있던 타일로 곤두박질쳤다.
쿵.
그 타일은 곧이어 심연으로 빠졌다.
창 2개는 처리했다. 잠시라도 안도할 순 없었다.
콰아앙!
뒤이어 대포알이 날아들었다.
[2초 남…….]
아까의 그 타일로 돌아가면 쉽게 피해진다. 그러나 거긴 이미 심연이다.
역시나 하나둘 정도는 쳐내야…….
“!”
그때, 아몬드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1초!!!]
‘뭐야…….’
오른손.
오른손이 저릿했다.
콰아아아아!
터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노이즈와 함께 그의 모든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GAME OVER]
* * *
“위험하다고요! 꺼어어어! 꺼야 한다…… 엉?”
고래고래 고함을 치던 엔지니어는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GAME OVER]
게임이 끝나 있었다.
멱살이 잡혀 있던 감독도 땀을 닦아내며 멍하니 그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잠시 뒤에야 그는 정신을 차리며 엔지니어를 밀쳐내고 외쳤다.
“기록! 기록 어떻게 됐어! 유하연 쟤는 왜 말이…….”
[도, 동점…… 동점입니다!]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가 말했다.
동점이라고.
“……도, 동점?!”
치이이익…….
캡슐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유하연이 튀어나왔다.
“초 단위로는 동점이에요! 적어도 표기가 된 숫자까지는!”
그러는 새에 엔지니어는 아몬드의 캡슐로 뛰어갔다.
주혁도 그 뒤를 따라갔다.
“기록 체크해 봐! 체크!”
감독은 엔지니어의 조수를 붙잡고 윽박질렀다.
“으아아아, 알겠습니다!”
갑자기 포니테일을 붙잡힌 조수는 깜짝 놀라 달려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표시 단위를 0 밑의 네 자리까지 늘렸다.
“……이럴 수가.”
“왜? 또 동점이야?”
“……예.”
“X발 0.000001 초라도 더 안 빠르냐고!”
“그, 그 더 늘려 볼게요.”
[00:30:31.3959400192……]
[00:30:31.3959400192……]
버그라도 걸린 듯 똑같은 숫자였다.
“무슨 원주율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기계 고장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조수도 머리를 긁적였다.
“……이, 일단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죠.”
스승의 말을 그대로 읊는다.
그때 캡슐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야! 유상현!!!”
“괜찮으신 겁니까!”
주혁과 엔지니어의 목소리다. 그 다급함에 오 실장도 뒤뚱거리며 달려갔다.
“에라이. 감독님!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이거 다 사전에 안전 체크한 거야!”
감독은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일단 아몬드의 캡슐 쪽으로 달려갔다.
* * *
축축하게 젖은 느낌이다.
뿌연 안개가 가득한 와중에.
“하아…….”
얕은 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살아 있는 건 분명했다.
그래, 난 아직 살아 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캡슐 게임 하다가 죽은 사람은 5년 전에 멸종했다.
“야! 야! 일어나 봐!”
김주혁 목소리다.
“메디컬 팀 불러! 그냥 지금 불러!”
“저, 매니저님!! 그렇게 흔들면 안 돼요!”
“아니, 상현 씨! 이게 무슨! 이봐요, 감독님!!!”
“아, 아니야! 아니라니까? 사전 체크 다 했어! 이건 그냥…….”
그 뒤로 섞여드는 다른 육성.
화가 난 오 실장이다.
슬슬 초점이 돌아온다. 안개가 걷혀 나가고,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서로 얼굴을 벌겋게 붉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
“메디컬입니다! 비켜주세요!”
청량한 여자 목소리.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파고들었다.
그러자 구급차를 비켜주듯이 갈라선다.
하얀 조명이 나오는 막대기가 동공을 정면으로 비춘다.
하얀 빛 너머로 보이는 여자의 실루엣.
길게 늘어지는 검은 머리칼이…….
환영처럼 아른거린다.
“전부 네 등만 바라보고 있는 거 몰라?”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한소연……?’
상현의 입이 꼬물거리며 누군가의 이름이 불러졌다.
“상현 씨? 의식이 있으신가요?”
그제야 제대로 들려오는 원래의 목소리다.
‘아…….’
착각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가 여기 있을 리가.
환한 빛 때문에 눈을 감고 싶지만, 의사의 손가락이 눈꺼풀을 꽉 붙들고 있었다.
그녀는 상현의 동공이 축소되는 걸 보고 나서야 빛을 거두었다.
“……의식 있습니다.”
그제야 탁 막힌 것 같은 성대에서 제대로 음성이 흘러나왔다.
“!”
“하아……!”
“아이고. 진짜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안도의 한숨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상현은 힘이 축 빠진 몸을 일으켰다. 근육통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당연히 없지.
몸을 움직인 적이 없으니까.
그는 몸을 일으킨 후, 오른손을 가장 먼저 들어서 펴보았다.
저릿한 감각과 함께 덜덜 떨리는 모습.
“일단 메디컬 체크해 보겠습니다. 상태를 보니 필요할 것 같아요.”
의사가 간호사들과 함께 사람들을 물리치고 상현을 들것에 실었다.
* * *
의사가 상현을 데려간 이후.
엔지니어는 다시 분석에 들어갔다. 어차피 메디컬 쪽에서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던가?
그는 그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었다.
‘시간 기록은 똑같을지라도…….’
전자파와 죽은 시간은 아예 똑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기량 분석마저 똑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 수치는 다를 수 있어.’
그는 이제야 제대로 계산된 데이터들을 하나하나 목차에 정리해 넣었다.
이 모든 값을 정해진 식대로 도출해 내면 특정한 하나의 값이 나온다.
가상현실 기량 수치.
그걸 통칭 VNS라고 부른다.
옛날 마우스 게임에서 APM수치를 재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
도출된 값을 본 엔지니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역시나 시간이 같다고, 모든 수치가 같을 수는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이잉.
순식간에 프린트된 그 종이를 들고 감독에게 향했다.
“하아. 너무 아깝네. 기록이 나와야 이게 이슈가 되는데 말이야……. 동점으로는 주작 소리나 듣게 생겼어…….”
한탄과 함께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던 감독에겐, 이런 선물이 따로 없을 거다.
“감독님.”
엔지니어가 그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응?”
“보세요. 시간만 같을 뿐입니다. 우연찮게요. 대신 분석값은 다릅니다. 이러면 신빙성이 올라가죠.”
“……끙. 그래? 이게 뭔데?”
“VNS 수치입니다.”
숫자놀음에 약한 그는 별 흥미가 돋진 않았다.
그러나 값을 쳐다본 뒤에도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이 정도라고!?”
VNS 평균치는 83이다.
프로 게이머 평균치는 97이다.
100을 넘으면 프로 게이머 자질이 충분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자파는 291이라는 괴물 같은 수치를 갖고 있다.
“……이거, 진짜야?!”
“예!”
그걸 뛰어넘는 게 아몬드였다.
“아몬드는 비긴 게 아닙니다. 적어도 이 수치로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