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73화
26. 기록(2)
VNS 수치가 높다고 해서, 게임을 잘한다고 할 수는 없다.
IQ가 높다고 수능 성적이 상위권으로 가는 건 아니듯이. 말 그대로 어떤 ‘기량’을 수치화해서 나타낸 것일 뿐이다.
다만 경향성이라는 말을 쓴다면 조금 다를 수 있다.
과거 키보드 마우스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APM 수치가 높은 경향이 있다.
학업 성취율이 높은 아이들은 IQ가 높은 경향이 있다.
똑같이, 가상현실 게임에서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플레이어들은 VNS 수치가 높은 경향이 있다.
세계 최고 플레이어인 전자파는 VNS 수치 역시 세계 최고다.
그런데 그 수치가 지금 갱신되었다.
무명의 스트리머에 의해서.
“지금 VNS 세계 기록이 갱신되었는데요! 진짜 엄청난 일입니다! 이제 아몬드 님의 메디컬 체크가 끝나서, 곧 오실 예정입니다! 조금만…….”
그러니까 이렇게 유하연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떠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와, ㄹㅇ임?
-내가 이걸 생방으로 보다니
-Nooop!
-its BS af cant believe this
-ㅅㅂㅋㅋㅋ
-살아남아라는 어찌 됨?
-진짜 그거 기록 깨졌다고? 에반뎈ㅋㅋ
-lololololol
-WTF
-Almond? never even knew such a player ever existed. stop bs-ing
-오우 채팅방 렉 걸려 ㅋㅋㅋ
-A Fking Noooob just bit JJP’s record? lol
[현재 시청자 7.6만]
그러니까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7만 5천의 시청자들이 그 1시간의 메디컬 체크를 기다렸던 것이다.
대체 누구냐.
누가 전자파의 기록을 깼다는 거냐.
이게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당사자가 그에 대한 어떤 소감을 말할지도.
“아몬드 님이 지금 들어오십니다!”
카메라가 아몬드가 다가오고 있는 통로 쪽을 비췄다. 그러자 모든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ㅋㅋㅋㅋㅋ 하연 찡 갑자기 극존칭
-이제 서열 정리된 거지
-oh he’s coming
-dat guy…….
-오 온다.
-wow he’s cute
-Almond? never heard of him…….
-아몬드 님 들어오십니닼ㅋㅋㅋㅋ
-어허~! 아몬드 납신다아아아!
처음 이 세트장에 왔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들.
‘대체 뭐야?’
아직 VNS가 뭔지 주혁으로부터 듣지 못한 상현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어찌 됐든 그는 다시 방송을 해야한다고 하니, 처음 앉았던 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몬드 님! 드디어 오셨군요!”
“예…….”
유하연의 하늘을 찌를 듯한 텐션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현.
-반응 뭥밐ㅋㅋ
-뭔 상황인지 모르는 거 아님? 기절해 있었다몈ㅋ
-와, 아몬드!! 이제 진짜 월클이다아아아!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당신이 세계 기록 갱신했다구여
세계 기록.
그런 단어가 채팅 도중에 잡혔다. 주혁도 그랬다. 내가 전자파의 기록을 깼다고.
“VNS 세계 기록을 달성한 기분이 어떠신가요?!”
드디어 그 질문이 나왔다.
모든 채팅창이 일시적으로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그의 말을 듣기 위해서 잠시 채팅을 멈춘 것이리라.
오로지 이 소감을 듣기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던 자들이니까.
“저…….”
“네?”
“그게 뭔가요? 매니저한테 물어보니까 안 알려주던데.”
“…….”
순간 정적이 일었다.
채팅에서는 천천히 ‘?’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
-엥?
-?
-what…….
그 물음표가 전부 웃음소리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
-진짜 모름?ㅋㅋㅋㅋ
왜냐하면 아몬드의 표정이 너무나 리얼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진짜 리얼이었다.
아몬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개념이었다.
사실 게임에 관심이 조금만 있었어도, 알 법도 한 개념인데.
그가 얼마나 최근에서야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외국인 시청자들마저도 ‘nooob’을 연발하며 마구 웃어댔다.
그리고 와중에 당연히 신기해했다.
-아니, 저 ㅁㅊ놈은 VNS도 뭔지 모르면서 전자파의 기록을 깼다고?
-VNS는 순수 재능이니까 뭐……ㅋㅋㅋ
-무친 재능ㅋㅋㅋㅋ
-진짜 모른다는 점에서 팡대 재능까지 탑재 완벽…….
-와 ㅋㅋㅋㅋ
정체조차 모르는 걸로 세계 최고를 이겨 버린 아몬드.
그건 누가 봐도 진정한, 압도적인 천재의 모습이었다. 오히려 전자파보다도 더.
“아…… 그, 그…… 진짜 모르시나 봐요?”
“……예.”
유하연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뭐 하는 인간이야?’
아몬드를 지켜보면서, 참 특이한 사람이다 싶긴 했었는데, 지금만큼 그런 생각이 진하게 들었던 적은 없었다.
“아하하! 역시 천재 중의 천재! 아몬드 님 대단하시네요!? 뭔지도 모르는 걸로 세계 최고를 이겨버리시다니!”
“그러니까 그게 뭐냐구요.”
“아…….”
유하연은 또다시 벙쪄 버렸다.
이걸 굳이 방송 중에 설명해야 돼? 라는 표정.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냥 시원하게 알려줰ㅋㅋ
-자연스럽게 넘어가려 했지만. 어림도 없지!
-ㅋㅋㅋㅋ아몬드 전혀 좋지 않은 표정.
-읔ㅋㅋ
세계 최고다.
천재다.
기록을 갱신했다.
이런 말들이 갖는 무게감은 엄청나지만. 아몬드에게만큼은 별로 영향력이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저런 말을 밥 먹듯이 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그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1등을 하는 게 중요했지, 알지도 못하는 VNS 따위로 1등을 해봐야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가 지금 관심 있는 건 오로지 하나였다.
“제가 듣기로 전자파 기록이랑 동률이라 했는데. 왜 갱신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 살아남아라 챌린지는 동점이 맞습니다!”
-0.00001초 단위로 동점ㅋㅋㅋ
-이거 ㄹㅇ 주작 아님? ㅋㅋㅋ
-이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캡슐을 3주 전에 처음 사용해 봤다잖냐
-ㄹㅇㅋㅋ
척.
그때 유하연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나! 게임 내에서 저희가 ‘기량 측정’이라는 걸 진행하는데요. 그 ‘기량’의 단위가 VNS입니다. 그게 전자파를 앞섰다는 겁니다!”
갑자기 말이 잘 정리된 유하연.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스태프 중 작가 하나가 팻말에 써놓은 대사가 눈에 들어왔다.
-대본 on!
-작가님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ㅋㅋㅋㅋㅋㅋ국어책 읽냨ㅋㅋ
-아몬드는 어찌 됐든 알아들은 표정.
아몬드도 스태프의 팻말을 읽어서 이해했든, 유하연의 설명을 듣고 이해했든 어쨌든 이해한 상황이다.
VNS라는 게 대강 말하자면, 선수의 스탯 같은 걸 말하는 거라고.
“그래서 말이죠!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제야 자신이 세계 기록 보유자라는 게 체감이 되시나요?”
“근데…… 이거 공식인가요?”
상현은 기록에 관해서 참 철저한 인간이다.
애초에 고등학교 때부터 늘 세계 기록을 바짝 따라잡고 있던 그였기에.
비공식이냐 공식이냐는 늘 그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비공식으로 깰 거라면, 그는 이미 고등학교 때 세계 챔피언 대접을 받았을 테니까.
“……예?”
“VNS라는 게 기준이 정말 모호한 것 같아서요. 특히나 판타지아 기계로 한 건 공식 기록으로는 못 쓰일 것 같은데.”
“아…….”
유하연이 다급하게 다시 스태프 쪽을 쳐다봤다.
-ㅋㅋㅋㅋㅋㅋ유하연 개털리넼ㅋㅋㅋ
-처음엔 이기더만 초반 여포구나!
-엌ㅋㅋㅋ 당황스러워하는 거 커여워!
-아몬드 뭐 이리 날카롭누 ㅋㅋㅋㅋVNS 당연히 공식 수치 아님ㅋㅋㅋ 걍 재미로 측정하는 수준
-재미로라고 하기엔 그래도 의미 있지
-ㅈㄹ ㄴ
-VNS는 의미 있는데 판타지아가 측정해서 그렇지 ㅄ들아 ㅋㅋㅋ
정보를 접수한 유하연은 다시 방송을 진행했다.
“아. 세계에서 인정하는 공식 수치는 아니라고 합니다. 아직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요.”
“그러면 그냥 비공식 1등이네요.”
“아하하…… 그, 그렇죠. 그래도 비공식으로라도 전자파의 기록을 깬 기분은……?”
‘이젠 제발 소감 좀 말해!’라고 말하는 듯한 유하연의 미간.
그걸 읽은 것일까.
드디어 상현이 소감을 말했다.
“아쉽네요.”
“!?”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쉽다니. 기록을 깼잖아!?
“아…… 아쉽다구요? 세계 1등이신데요?!”
“비공식으로는 누구나 세계 1등이죠. ‘엄마는 우리 아들이 1등이야’도 세계 1등이고.”
“아, 아니…….”
말문이 턱 막혀서 할 말이 없다.
기록에 관해서는 늘 수십 번도 넘게 이야기를 나눴던 상현의 논지를 그녀 혼자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인드 ㅅㅌㅊ ㅋㅋㅋ
-이걸 겸손이라고 해야 하냐!? 헷갈린다! 아몬드!
-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아들이 1등ㅋㅋㅋㅋㅋㅋ
-아들! 엄마는 커서 아몬드가 될 거란다!
채팅을 읽으며 유하연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그래서 아쉬우신 거예요? 비공식이라……?”
“그것뿐만은 아닙니다.”
“그럼?”
“본게임을 이기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본게임이요? 그래도 비기셨는데.”
“그게 아쉽죠. 코앞에서 기록을 놓쳤으니.”
“아…….”
유하연은 이젠 의아할 지경이다.
‘하나도 기쁘지 않나?’
아몬드는 완전히 가상현실 게임 경력이 전무하다고 봐도 되는 초보자다. 그런 상태에서 세계 최고와 비겼다는데.
어떻게 된 게 그리 기뻐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게 놀랍고 신기했다.
자신의 엄청난 천재성을 목도했는데, 기쁘지 않은 걸까?
나라면 내게 그런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면 기뻐서 죽었을 거다.
그런데 아까 활을 쏠 때가 오히려 더 기뻐 보였지, 지금은 별로 그런 기색이 없었다.
‘저게 무슨 표정이지?’
아몬드의 표정을 잘 읽을 수는 없지만 절대 기쁨은 아니다.
차라리──
‘설마, 화난 거야?’
화가 난 것에 가깝다.
그렇다. 그는 지금 화가 난 상태다!
어이가 없었다.
대체 저 남자의 승부욕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유하연으로서는 머리가 아득해질 지경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런 말을 늘 머리에 박아두고 사는 그녀에겐,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그게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사실 그 불편함조차 초식 동물이 육식 동물을 보면서 느끼는 종류의 불편함이었다.
경계, 경외, 공포 따위의 감정.
그리고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뒤따라온다.
‘이 사람은 언젠가 전자파를 넘겠구나.’
이 사람은 최고가 되겠구나.
“확실히 아쉽긴 하겠어요. 눈앞에서 기록을 놓치셨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캡슐 경험도 얼마 없으신데, VNS 기록이라도 깼다는 건 엄청난 거 아닐까요? 앞으로 전자파 이상의 플레이어가 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전자파 이상의 플레이어.
아나운서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망언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유하연은 진심이었다.
이 남자는 정상에 오를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의 유하연은 그렇게 확신했다.
뒤이어 나온 아몬드의 대답이 그 확신을 더해줬다.
“될 수 있을 겁니다.”
담담한 어조였다.
자신을 부풀리려는 기색 하나 없이 담백한 감상을 뱉듯, 자신은 최고가 될 거라고 했다.
-ㄷㄷㄷㄷㄷ
-와우
-패기 ㄷㄷ
-오진다
-트래시 토크 장인 아몬듴ㅋㅋㅋ
-크~
도발적인 멘트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다. 여기 어디에도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물론 그렇다 해도 여기서 대답이 끝났다면 역풍이 엄청났을 거다.
나중에 악의적인 편집을 거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전자파의 팬들이나 대중들은 도발로 받아들일 게 분명했다.
“아──”
다행히도 상현의 대답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뒤에 더 남아 있었고.
이 말이 앞의 말보다 훨씬 유명해졌기에 그 앞의 대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그래도 VNS 기록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 왜죠?”
“어쨌든 경기는 비겼으니까요. 꼭 경기 지고 볼 점유율 높았다고 위안하는 축구 보는 것 같잖아요…….”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듯이 인상을 팍 찌푸리는 모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헉ㅋㅋㅋㅋㅋㅋㅋ
-쟤 왜 진짜로 화났냨ㅋㅋㅋ
-자고 있던 국대 감독 화들짝!
-미친ㅋㅋㅋㅋ 갑자기 축구를 왜 때려 ㅋㅋㅋ
-가만히 있던 국대 화들짝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
푸핫.
진지하던 유하연도 빵 터져 버린다.
“아. 재밌었습니다. 아몬드 님. 다음에 또 해체 분석기 나와주실 거죠?”
“더…… 해체하실 게 있나요?”
“음~ 엄청 많을 것 같은데요!”
둘이 떠드는 소리가 페이드 아웃되며 방송은 종료됐다.
[스트리밍 종료]
엔딩 크레딧처럼 아몬드의 슈퍼 플레이 장면들이 재생됐고.
이날 모든 게임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의 이슈 글은 당연하다는 듯 아몬드라는 단어로 도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