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79화
28. 잰슨 VS 아몬드(2)
파워 슈트라는 아이템이 있다.
이름처럼 몸에 착용하면 파워가 넘치는 슈트다.
흔히 SF 장르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꽤나 현실성을 추구하는 배틀 라지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이지만.
전설 아이템의 메리트를 높여주기 위해서 계속해서 성능을 올리던 중.
현대전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파워 슈트라는 게 등장하고 말았다.
사실 전설 등급이 아니라, 그 위인 신화를 만들어서 붙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이 파워 슈트의 성능은 굉장했다.
아이언맨의 슈트만큼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방어력이 뛰어나고, 힘 넘치는 도약으로 달리기도 빠르다. 그 가속 덕에 주먹으로만 쳐도 체력의 3할이 날아갈 수도 있다.
전체적인 신체 능력이 3배 정도 상승한다고 보면 된다.
다만 이 파워 슈트는 그냥 운이 좋다고 아무 구역에서나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로지 무기고 지하 창고나, 에어 드롭 상자에서만 나온다.
에어 드롭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지하 창고만이 정해진 장소였다.
물론 이 지하 창고에서조차 매번 나오는 건 아니다.
아주 낮은 확률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걸 발견하면 흔히 말하는 ‘올튜브 각’이 나온다.
아몬드도 그런 면에서는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자신이 아니라 적이 그걸 들고 나왔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지하 창고 계단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아몬드가 묻는다.
“저게 뭐죠?”
쿠웅──
계단 밑에서 슬쩍 보인 적의 정체를 확인한 아몬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묘한 빛의 슈트를 입은 사람이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빨랐으니까.
배틀 라지에서 인간이 뛰는 속도는 정해져 있는데.
저건 그 속도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지금 제대로 본 건가?’
아몬드는 파워 슈트의 존재를 처음 봤다.
그가 참고했던 배틀 라지 영상은 대부분 실력 증진용이기 때문에, 이런 파워 슈트가 나오는 운빨 망겜 판은 없었다.
그런 건 너무 예외적인 판이라, 실력 증진에 도움이 안 되니까.
-이래서 저 잰슨이라는 놈이 밑에서 다 쓸었구나 ㅋㅋㅋㅋㅋ
-와 미친ㅋㅋㅋㅋㅋ
-파워 슈트?
-헉ㅋㅋㅋㅋㅋ
-이게 무기고지 예압!
-돌았냐 ㅋㅋㅋㅋㅋ
-실화야? 오늘 파워 슈트를 볼 줄은 몰랐다.
쾅!
굉음과 함께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잰슨 → 소리지르는팬티]
[68/100]
아무래도 저게 마지막이다.
잰슨은 이제 아몬드에게 올 것이다.
‘입구를 막아야겠네.’
아몬드는 시체에서 파밍한 화염병을 던져놓았다.
화르르륵!
거센 불길이 상대의 앞길을 막았다. 그리고 활시위를 당겨 언제든 쏠 준비를 마쳤다.
코너를 돌아 나오면──
-슈트 화염 면역인데…….
-방독면도 있어서 연기도 면역. 그냥 어지간한 건 다 면역임. 쏴 죽이는 거 말고는.
-ㄷㄷ 피해여 얼른 그냥!
콰아아앙!
쩌렁쩌렁한 굉음이 울리고.
쉬이이익──
갑자기 계단을 치고 올라오는 푸른 신형.
쏜살같이 달려든다.
‘이건 못 쏜다.’
아몬드는 직감했다. 저 푸른 신형이 마음먹고 피하면 화살로는 못 맞힌다고.
그런 생각과 동시에 아몬드는 몸을 옆으로 굴렸다.
쾅!
푸른 신형은 저 건너편 벽을 부숴 먹었다.
그리고 뒤돌아서 웃었다.
“키야! 님이 아몬드지?!”
역시나 잰슨이다.
파워 슈트를 입은 잰슨.
아몬드는 그제야 파워 슈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미래적인 느낌은 없었다.
말이 파워 슈트지 사실상 디자인이 덜 된 히어로 쫄쫄이 같았다.
그나저나 날 알고 있다니.
-앜ㅋㅋㅋ 또 저격?
-아냐. 킬 로그 보고 아는 거지.
-모르지 또 배우일지도 ㅋㅋㅋㅋ
-저격러인데 파워 슈트인 건에 관하여…….
-토 나온다 씹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 슈트 ㄹㅇ 게이 같네. 매우 강한.
-ㅋㅋㅋㅋ파슈 유일한 단점. 창피하다!
파워 슈트의 생김새고 뭐고, 아몬드는 당황스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
‘이런 건방진 쉑…….’
상대는 지금 소년 배틀물에서나 가능한 여유를 부리고 있다.
상대의 뒤를 잡아놓고 여유롭게 말을 걸다니.
아몬드는 곧바로 활을 격발해 응수했다.
파앙!
“오우!”
상대는 빠르게 움직여서 피했다.
그렇다.
화살 정도는 그냥 움직여서 피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빨랐다.
‘그래도…… 못 맞힐 정도는 아냐.’
다만 맞히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무리 파워 슈트라도, 배틀 라지는 현대전을 기본으로 하는 게임.
그냥 ‘운동 능력이 정상 범주를 벗어났다’ 정도의 느낌이지. 정말 히어로물에 나오는 괴물 같은 파괴력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파워 슈트는 공격 기능이 없다.
무기는 그냥 일반적인 총이었다.
“슈트 입었는데, 인사라도 하게 해줘!”
투두두두둥!
놈은 엑스트라 같은 대사를 지껄이며 총을 갈겼다.
저 총 역시 영웅급 무기인 터라, 연사 속도, 반동, 파괴력, 무엇 하나 떨어지는 게 없었다.
아몬드가 한발 빨리 컨테이너 박스 뒤로 숨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 거다.
그가 있던 곳 바로 뒤에 있던 나무 상자처럼.
퍼어어엉! 퍼엉!
저렇게 터져 버렸을 거다.
“와. 씨…….”
아몬드의 입에서 간만에 힘든 기색이 흘러나오자.
-ㅋㅋㅋ엌ㅋㅋㅋ
-와. 제발 죽어라! ㅠㅠㅋㅋㅋㅋ
-한 번만 죽어주세여, 아몬드!
-진짜 여기서 죽나?!
-활 들고 죽는 건 처음이지?
시청자들은 즐거워했다.
활을 못 찾아서 재수 없게 죽은 판은 있었지만, 아몬드가 활을 들고 죽는 건 처음이었다.
그때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보나 마나 ‘오……’ 하고 다시 큐를 돌릴 터다. 다 알고 있지만, 아는 그 맛이 무섭다고.
시청자들은 그 장면이 보고 싶었다.
‘어림도 없지.’
아몬드는 순순히 그런 장면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실력 방송이니까.
팅……!
그는 시체에서 파밍한 연막탄의 뚜껑을 따버렸다. 연이어서 3개의 연막탄을 따버린다.
쉬이이이이이이익……!
뿌연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에이 뭐야! 숨지 마요!”
퍼버버엉! 퍼엉!
건너편 컨테이너 박스가 너덜너덜해 졌다.
다행히 아몬드가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아몬드 님! 사진 한 장만 찍자구요!!! 우하하하!”
-미친 ㅋㅋㅋㅋㅋ
-광기 그 자체 ㅋㅋㅋㅋㅋㅋㅋ
-무수한 악수 요청이!
-저 새끼 뭐 하는 놈이얔ㅋㅋ 시밬ㅋㅋㅋ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상대는 자신의 힘에 취해 있었다.
아몬드는 리커브 보우 하나뿐이고, 자신은 파워 슈트에 영웅 등급 돌격 소총이 있으니.
충분히 건방을 떨 법도 했다.
[30초 뒤 블루존이 축소됩니다!]
설상가상.
블루존이 곧 있으면 줄어든다.
‘위치…….’
맵을 확인한 아몬드는 아연실색했다.
“오…….”
가장 먼 곳에 그려진 파란 원.
이번에도 블루존 위치는 아몬드를 내다 버렸다.
“한 번을 안 도와주네요.”
-오멘
-이거지! 오멘?
-오──멘
-ㅋㅋㅋㅋㅋㅋㅋ
-오…….
-오오오오오
-ㅗㅗㅗㅗㅗㅗ
정말 아몬드를 위험에 몰아넣는 신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인공지능 러비가 동 실력 대비 너무 강한 아몬드를 견제하는 걸까?
무기고에 하나 남은 적이 파워 슈트를 입고 있는데도 도와주지 않는다니. 아몬드는 서운할 지경이다.
그러는 중에도.
투두두두두두두!
잰슨은 총을 난사하고 있다.
“엄마! 난 커서 아몬드가 될래요!!!”
─라고 외치면서.
“미친놈이…….”
아몬드의 입에서 자연스레 욕이 흘러나왔다.
-엌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레전드네 ㄹㅇㅋㅋㅋㅋ
-미친놈이…… 이건 귀하군요.
-오멘……
-이건 신성하군요.
-ㅅㅂㅋㅋㅋㅋㅋㅋ
-레게노!
-잰슨 미친 새끼다 진짜로 ㅋㅋㅋㅋ
잰슨은 아몬드가 나올 때까지 저 짓을 멈추지 않을 생각인 듯했고.
계속 저런 식으로 다 박살 내면, 아몬드는 결국 죽을 터다.
“오오오멘! 오오오오오! 멘!”
투두두두두두두!!
점점 난사되어 터져 나가는 곳이 아몬드의 근처로 오고 있었다.
어두컴컴했던 컨테이너 박스 안쪽엔 이제 너덜너덜해진 빛이 숭숭 들어온다.
아몬드는 일단 계속 위치를 옮겼다.
‘도망만 칠 수는 없다. 생각을 하자. 내가 가진 이점.’
자신은 활 하나 들고 있고.
상대는 온갖 무기로 무장.
활이 총에 비해 가진 이점은 포물선 타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포물선을 활용할 시에, 장애물을 넘겨서 죽일 수가 있다.
근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 여긴 무기고 창고이고, 천장이 있다. 아마 천장에 박힐 터다.
‘그건 기각.’
포물선 타격은 안 된다.
지붕이 있는 곳에서는 불가능하다.
투두두두두둥!!!
다음 난사가 쏘아지고, 도탄 중 하나가 아몬드의 다리를 스쳤다.
푸슛……!
붉은 핏방울이 흐르고, 이동 속도가 저하됐다.
이젠 진짜 대결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정면 대결은 안 된다.
아무리 상대가 방심 중이라고 해도, 파워 슈트에 총을 든 상대와 활로 전면전은 무리였다.
포물선은 안 되고, 그럼 남는 화살의 이점이 대체 뭐란 말이야.
그때 아몬드의 머리에 스쳐 가는 단어.
‘커브 슈팅.’
화살에 커브를 넣어서, 장애물을 끼고 상대를 맞히는 기술이다.
모르는 자가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실전에서 쓰던 궁술이다.
물론 아몬드는 쏴본 적 없다. 올튜브에서 본 게 전부다.
확신은 없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남은 수가 그것뿐이었다.
“발──견!”
쿠웅!
잰슨이 활짝 웃으며 컨테이너 박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흠칫!
-미친! 공포 영화냐?
-ㄷㄷㄷㄷ
-개꿀잼이네 잰슨ㅋㅋㅋㅋ
-꿀잼슨ㅋㅋㅋㅋㅋ
-쒯
투두두두두!!!
그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아몬드는 뒤로 몸을 던지며 활을 쏴댔다.
깍지에 껴놓은 4개의 화살이 순식간에 난사됐다.
파바바방!
“오우!”
상대는 흠칫 놀라며 피했다.
머리 쪽을 노리고 4발이나 날아오면 파워 슈트라고 해도 위험하다.
상대가 흠칫 물러선 덕에 아몬드는 또 빠져나갔다.
‘에임이 구리네.’
체력이 조금 닳긴 했지만, 기습을 한 것치고는 양반이다.
상대는 에임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아니면 파워 슈트를 입어서 흥분한 탓도 있겠다.
어쨌든 이런 실력이라면, 승산이 보인다.
‘완벽한 장애물을 찾아야 돼.’
장애물을 끼고, 커브샷을 쏜다면.
이길 각이 보인다.
총기로 뚫을 수 없는 튼튼한 것 뒤에서 쏴야 한다.
아몬드의 눈에 건물 기둥이 들어온다.
거대한 창고이니만큼, 기둥도 두텁다. 저 기둥 뒤에서라면 해볼 만했다. 여차하면 기둥을 싸고돌면서 시간을 끌 수도 있을 거다.
여러 경우의 수가 스쳐 갔으나,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다.
타다다닥!
이를 악물며 뛰었다.
하체 부상을 입은 아바타가 비명을 내지르듯이 몸을 뒤틀었지만, 아몬드는 계속 뛰었다.
상대가 발견했다.
“아아아아몬드! 싸인해 줘요!!!”
투두두두두두두!
잰슨은 또 난사를 시작했다.
푸슛!
탄 하나가 어깨를 스친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됐다!’
기둥 뒤로 숨는 데에 성공했다.
[블루존이 축소됩니다!]
블루존이 움직인다는 알림이 울렸다.
그 순간과 동시에 아몬드는 화살을 노킹했다.
딸깍…… 소리는 나지 않았다.
스트링 정중앙에 노킹하지 않아서다.
눈치 빠른 시청자들이 묻는다.
-어? 활시위 잘못 건 거 아님?
-너무 급하게 건 듯.
아몬드는 스트링의 중앙이 아닌, 1/3 지점쯤에 화살을 걸었다. 본래 거는 위치가 아니다 보니, 고정 장치가 없어서 딸깍 소리도 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더 쏘기 힘들다. 그래도 쏴야 한다.
아몬드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 기둥을 조준했다.
“후.”
약간의 호흡을 머금고. 신체의 모든 리듬을 이 활에 맞췄다.
심장 박동마저도 느리게 흐르게끔.
“와하하하하!”
투두두두둥!
기둥마저 폭파시킬 기세로 쏴대는 잰슨. 그가 요란을 떠는 덕에 위치가 가늠이 된다.
대강 가늠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스륵.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이 거대한 기둥, 그곳으로부터 약 다섯 발 정도 뒤에 있으며, 우측으로 돌아오려는 중이라는 것.
아몬드도 활을 우측으로 꺾었다.
화살은 여전히 스트링의 1/3 지점에 걸려 있었고, 그것을 쭈욱 당겼다.
기리릭.
정석대로면 등변을 가진 부채꼴 모양이 나와야 정상이지만, 이번엔 일그러진 부채꼴이다.
이내, 활과 시위가 그려낸 부채꼴은 부드럽게 무너져 내린다.
릴리즈다.
피융!
-뭐야. 왜 기둥에다 쏴?
-멘탈 나갔나?
-헐, 실수!?
기둥을 향해 날아가던 화살.
그것은 이내, 바람을 비껴가며 몸을 튼다.
-???
-뭐야?
-헐!
-미친?
기이한 각도.
그런 표현이 어울렸다.
화살은 마치 자아를 가진 듯, 기이한 각도로 휘었다.
쉬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