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80화
28. 잰슨 VS 아몬드(3)
-미쳤다……!
-화살이 휘었어?!
-???
-헐?
화살이 마치 자아를 가진 듯.
기둥을 돌아, 정확히 적의 눈알을 파고들었다.
푸욱!!
“엄마! 나 커서 아몬드가 될──”
잰슨의 시야에 시뻘건 구름이 꼈다.
푸슛!
선혈이 낭자했다.
“아이……!”
게임이니 고통은 덜하다만. 보이는 게 없다.
기둥을 돌아 돌진하려던 잰슨은 엉뚱한 곳에 꼬라박는다.
쿵……!
그 즉시, 아몬드의 활이 움직였다.
오른손 깍지에 껴뒀던 남은 3발의 활이 순식간에 연사됐다.
식견이 없는 자가 보면 손가락만 움직여서 활을 쏘는 듯했다.
피유웅!
피융!
핑!
날아간 화살은 전부 잰슨의 머리에 정확히 꽂혔다.
아무리 파워 슈트라고 해도, 헤드샷을 4발이나 맞고도 살게끔 설계되진 않았다.
[아몬드 → 잰슨]
[처치하였습니다!]
[66/100]
* * *
잰슨은 죽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열기는 전혀 죽지 않았다.
-와. 이거 대체 뭐냐?!
-방금 내가 제대로 본 거 맞냐!?
-버그? 버그 아님?
-이거 또 리폿 당하게 생겼넼ㅋㅋㅋ
-이게 뭐다냐
버그.
이런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그의 플레이는 기존의 상식을 파괴했다.
물리 법칙을 거부했다.
아무리 여기가 가상현실 공간이고, 게임 속이라지만.
이 게임은 판타지 게임이 아니다.
파워 슈트를 제외한 모든 아이템은 전부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물리 법칙에 기반해서 움직인다.
-파워 슈트 나오고 나서 이거 망겜 됐네 ㅋㅋㅋ
-파워 보우도 나옴?
-ㄹㅇㅋㅋ
-저거 그냥 리커브 보우야 ㅋㅋㅋㅋ
-정보) 리커브 보우는 컴파운드 보다도 더 선호되지 않는 쓰레기다.
파워 슈트를 넘어 파워 보우가 나온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쯤 되자 잰슨의 시체를 파밍하던 아몬드가 직접 해명한다.
“아, 여러분. 이거 실제 활로도 되는 거예요.”
-???
-그걸 님이 어찌 아셈
-아몬드 님 실제 활 쏴보심?
-ㅋㅋㅋㅋㄹㅇ
-??? : 아, 이거 진짜 된다고!
무심코 나온 ‘실제 활’이란 말.
사실 시청자들에겐 그리 와닿지 않는 해명이었다.
일반인의 기준에서 실제 활을 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심지어 쏴본 사람을 아는 경우도 별로 없을 듯하다.
-혹시 진짜 실제 활 쏴보셨나요? 어쩐지 활 쏘실 때 느낌 장난 없던데.
-뭐 하던 사람이지?
뜨끔.
순간 아몬드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실언을 했다.
“……아뇨. 누가 활을 쏩니까. 요즘 세상에.”
그는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파밍을 시작했다.
다행히 화제를 돌리기 딱 좋은 요소가 하나 있었다.
[파워 슈트]
“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파워 슈트를 뺏어서 입을 수가 있었다. 상대를 죽이는 데에만 급급해서 이런 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 파워 슈트가 제 거네요?”
안 그래도 피지컬 기량 위주로 플레이를 하는 아몬드.
그에게 이 파워 슈트는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으니.
이 승급전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와 파워 슈트를 입은 아몬드라니.
-이거 ㄹㅇ 움짤 100개 각
-서지아 님 열일해야겠네 오늘 ㅋㅋㅋㅋ
-걍 이미 이겼네.
“저 오늘 플래 2 켠왕하겠습니다.”
-이놈의 자식잌ㅋㅋㅋㅋㅋ
-와! 켠왕! ㅋㅋㅋㅋㅋㅋㅋ
-파워 슈트 보자마자 켠왕 선언
-단 ‘한 판’ 켠왕ㅋㅋㅋㅋ
-비겁한 견과류 쉑…….
착.
아몬드는 씩 웃으며 파워 슈트를 입어봤다.
우우웅!
황금빛의 햇살이 내려와 아몬드를 감쌌다. 전설 아이템을 착용하면 터지는 효과였다.
아몬드로서는 처음 겪는 효과.
“제가 전설 아이템을 다 먹어보네요.”
-그러고 보니 진짜 첨이구낭
-눈물이 앞을 가린다 ㅠㅠ
-오빠 운빨 진짜 그지 ㅠㅠㅠ
-아몬드가 전설이라니!
그간 파밍 운이라고는 한 톨도 없던 그가, 드디어 전설 아이템을 먹었다.
그것도 전설 중의 전설로 불리는 파워 슈트를 먹었다. 이는 시청자들에게도 감회가 새로웠다.
-아몬드는 역시 인간 파밍이지.
-이마저도 인간 파밍이라니 ㅋㅋㅋ
-ㄹㅇ ㅋㅋㅋ 절대 상자 깡은 안 되지~
물론 이마저도 사실 운이 좋아서 먹은 게 아니라, 운이 나빠서 먹은 거에 가까웠다는 게 웃음 포인트다.
적이 파워 슈트를 입고 나타난 게 절대 운이 좋다고는 할 수 없잖은가?
하지만 아몬드는 전혀 그런 거에 서운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익숙한 운빨이다.
‘와…….’
단지 그는 향상된 신체 능력이 주는 느낌에 감탄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현실성에 기반한 게임만을 플레이했었기에.
파워 슈트가 주는 고양감이 익숙지 않았다. 낯선 감각이다.
다만 싫지 않은 낯선 감각, 즉 신선함이다.
[유독 가스에 노출되었습니다!]
[빠르게 블루존 안으로 이동하세요!]
파지지지직──
블루존이 축소되면서 스파크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유독 가스로 인해 시야가 뿌예졌지만.
아몬드는 여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파워 슈트의 기능을 체크했다.
[방독면 효과로 인해 유독 가스 대미지가 반감됩니다.]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방독면 덕이다. 이게 있으면 블루존 밖의 유독 가스에서 피해를 덜 입게 된다.
더군다나 첫 번째 블루존 축소에선 대미지가 매우 적기 때문에, 사실상 아몬드는 지금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있다.
이렇게 몸풀기 체조 같은 걸 할 수 있을 정도로.
팔, 다리 등을 휘둘러 볼수록, 아몬드의 눈이 커다래진다.
‘가볍다!’
몸 구석구석.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친다. 덕분에 몸이 너무나 가벼웠다. 위험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 몸보다 내 힘이 더 강할 것만 같은.
마치 정말 내가 인간 유상현이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이거 개사기템이군요. 그럼 천천히 의약품을 파밍하면서 자기장을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개사기템이군요! ㅋㅋㅋㅋㅋㅋ커엽
-간만에 템다운 템을 먹어서 신난 아몬드.
-신이 아몬드의 승급전을 도와주네ㄹㅇ
-이야 든든하다! 파워 슈트!
-신이 아니라 잰슨이 도와줌
아몬드는 가볍게 조깅하듯이 달려서 무기고를 빠져나갔다.
타앙!
파워 슈트의 가벼운 달리기가, 스태미나를 소비하면서 달리는 전력 질주만큼 빨랐다.
타앙! 타앙!
발을 뗄 때마다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몬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온갖 의료품을 파밍했다.
난생 처음으로 풀파밍이라는 걸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 * *
[30초 후 블루존이 축소됩니다.]
두 번째 축소가 일어나기 직전이다.
“벌써?”
파밍을 하던 아몬드는 깜짝 놀랐다.
미처 신경도 쓰지 못했다.
파워 슈트를 입고 다니는 감각이 너무 재밌어서, 순간 이게 생존 게임이란 걸 잊어버린 것이다.
‘너무 신났나?’
이 정도로 이 게임에 몰입해 버릴 줄은 몰랐다.
현실을 초월한 힘을 갖는 느낌이 이렇게나 매력적이구나. 처음 알았다.
‘이래서 다들 릴(LIL)을 하는구나.’
이제 왜 릴(LIL)이라는 게임이 전 세계 1등인지 알 것 같았다.
그 게임 안에서는 모두가 초인이다.
10명의 초인, 괴수, 기타 판타지적인 기괴한 힘을 갖고 있는 자들이 싸우는 게 바로 릴.
라이프 이즈 레전드(Life is Legend)다.
한마디로 10명이 파워 슈트 그 이상의 무언가를 입고 싸운다는 뜻인데.
재미가 없을 수가 있나.
‘궁금하긴 하네.’
아몬드도 그런 류 게임이 궁금해졌다.
영상에서 보던 정신없는 대규모 한타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다고 생각해보니, 짜릿했다.
특히 지금 파워 슈트를 써보니 그런 기대감이 더 차올랐다.
‘나중에 해봐야겠네.’
그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 이미 아몬드는 ‘풀파밍’ 상태가 되었고.
[블루존이 축소됩니다!]
두 번째 블루존 축소가 시작됐다.
“구급상자 5개에, 진통제 10통, 에너지 드링크 10개, 의료 키트까지 하나 찾았네요. 이거 약국 차려도 되겠는데요? 풀파밍입니다.”
-그 와중에 총은 하나도 안 집는 상남자;
-아몬드, 리커브 보우 소유자 : 풀파밍
-견과류 풀파밍 ㅋㅋㅋ
-아, 아몬드인데 의료상자만 많으면 풀파밍이지 십련들아 ㅋㅋㅋㅋㄹㅇㅋㅋ
-ㄹㅇㅋㅋ
-그냥 ㄹㅇㅋㅋ만 쳐 어차피 승급전 이겼어~
“의료품만 있는 건 아니고, 영웅 등급 뚝배기랑 조끼 얻긴 했어요. 근데 이거 파워 슈트랑 같이 낄 수가 없네요.”
-ㅇㅇ 파워 슈트 핸디캡? 이런 거라고 보시면 됨
-파워 슈트가 그래서 머리가 약하지
-그거까지 낄 수 있음 개사기지
-아이언맨 하실려고?
아몬드는 처음 알았다.
파워 슈트에 방탄모를 낄 수가 없다는 사실. 그러니까 파워 슈트도 무적은 아닌 셈이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덕분에 잰슨을 죽일 수 있었던 거니까 할 말은 없다.
어찌 됐든 파워 슈트의 스펙은 괴랄하며 압도적이다.
“그럼. 학살하러 가 보겠습니다.”
이제 그 괴랄한 스펙을 직접 활용할 시간이다.
탕.
그는 두 주먹을 부딪쳐 보며, 씩 웃었다.
두근──
심장이 뛴다. 기대가 된다.
그간 플레이했던 것과 얼마나 크게 다를지.
“혹시 이번 판은 킬당 미션 없나요?”
늘 킬당 미션 같은 게 걸렸던 것 같은데. 이번 판은 잠잠하다.
파워 슈트 때문이다. 성공할 게 뻔한 미션을 거는 게 무슨 재미겠는가?
-미친ㅋㅋㅋㅋ
-자낳괴 아몬드 ㅎㅋㅋㅋ
-야, 인마. 누가 거냐?
-그만 처먹어 아몬드! 그만 처먹어 아몬드! 그만 처먹어 아몬드! 그만 처먹어 아몬드!
-행성 주인 하시려고?
“아쉽네요. 그럼…….”
아몬드는 남은 사람 수를 체크한 후.
자신 있게 말했다.
“54명 남았으니까, 여기서 한 30킬 정도 추가해 볼게요.”
* * *
푸핫.
휠체어에 앉은 여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넓은 벽에 걸린 TV에서는 오늘도 아몬드의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킬당 미션 없나요?]
파워 슈트에 온갖 의료품 파밍까지 다 해놓고 물어보는 질문이라기엔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그 뻔뻔함과 어딘지 모를 어리숙함이 그녀의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러운 웃음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아몬드를 보는 그녀의 입꼬리는 계속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본인만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언제부터일까?
아마 그때부터다. 아몬드가 그녀의 예측을 깨버린 순간부터.
그녀는 아몬드의 무기고 정면 돌파 전략을 저평가했었다. 전략 자체의 문제는 없으나, 연속으로 같은 전략으로는 승급전에선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는 스트리머니까.
파워 슈트까지 차려입은 저격러가 등장했을 땐, 정말이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단언할 수 있었다. 그건 절망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이미 그 판은 거기서 끝나야 했다.
그런데도 아몬드는 어떻게든 돌파해 냈다.
그것도 그녀가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화살이…… 휘어?’
활을 저렇게까지 활용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신선함.
그녀가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호기심 혹은 호승심.
이제는 분명 느끼기 힘들 거라 여겼던 감정들. 그것들만이 그녀의 천 근같이 무거운 입가에 미소를 걸 수 있었을 터인데.
그녀의 입가엔 지금 이 순간까지 미소가 만연해 있다.
궁금한 걸까? 이기고 싶은 걸까?
[여기서 30킬 정도 추가해 볼게요.]
아몬드의 패기 넘치는 발언이 이어졌다.
그 후로는 파죽지세.
허튼 소리를 한 게 아니란 걸 증명하듯, 파워 슈트를 획득한 아몬드는 그야말로 혼자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다.
블루존 안으로 그가 들어간 순간부터 배틀 라지는 생존 게임이 아니라 호러물이었다.
순식간에 생존자의 3할의 머리에 화살이 박히며 킬 로그로 사라져 버렸다.
리커브 보우 같은 경우, 활을 당기는 힘이 세다는 전제하에 컴파운드 보우보다도 파괴력이 더 상승하는데.
파워 슈트를 낀 아몬드의 활은 아득히 먼 곳까지도 화살을 쏘아 맞힐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빠른 연사가 된다.
그러니까 멀리서 쏘는데, 소리는 없고, 연사도 빠른데 정확도가 100%인 셈이다.
밸런스가 무너졌다.
이런 표현이 딱 맞는 한 판이었다.
100명의 결국 생존자 중 51명이 아몬드에게 학살당했다.
당연히, 1등은 아몬드였다.
[오…… 승급했네요.]
승급전은 1등으로 마무리하면 굳이 3판을 치를 것 없이 직행이다.
아몬드의 티어가 화려하게 빛나며 바뀌는 순간.
웃고 있던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분명 다른 미소였다. 귀여운 동생을 보는 듯한 느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짝. 짝. 짝.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꽤 하네.”
나지막한 중얼거림과 함께, TV는 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