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83화 (83/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83화

29. 팬서비스(3)

“오멘! 믿습니다!”

“…….”

주혁의 이상한 건배사 아래.

짠.

주혁, 지아, 상현의 술잔이 부딪혔다.

“크.”

“으.”

“캬.”

각자 다른 감탄사를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각자의 그릇에 담긴 찌개를 흡입했다.

“여기 꽤 맛있네.”

주혁이 낙지를 우드득 뜯어먹으면서 말했다. 김치찌개에 낙지를 넣어준다길래 긴가민가했는데, 상당히 시원한 맛이 난다.

“그러게.”

상현도 뜨끈한 두부를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말이 없는 건 지아뿐이다.

그녀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찌개를 마구 흡입 중이었다.

“지, 지아 씨는 약간 국밥류가 취향인가 봐.”

지아가 주혁을 물끄러미 올려보더니, 입에 든 것을 마저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맛있잖아요. 아닌가.”

“아. 맛있죠!”

“야. 술이나 더 따라.”

아직은 어색한 셋의 술자리다. 상현은 이럴 땐 그냥 술이 약이라는 걸 알고 있다.

“오케!”

주혁이 신명이 나서 소주 뚜껑을 땄다.

쪼르르.

셋의 술잔이 다시 가득 찬다.

꿀꺽.

셋 다 아무 망설임 없이 전부 한입에 털어 넣었다. 내일이면 숙취로 끝장나겠지만.

셋 다 내일 하루 그냥 쉬어도 되는 직업 아니던가?

“따라!”

상현이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이쯤 되면 찌개집이 아니라, 술집을 가야 분위기상 맞지만.

여기서 움직이기 싫었다.

계속 여기에 박혀 있고 싶었다. 이제야 겨우 알아보는 사람들이 다 사라졌는데, 또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볼 것 아닌가?

유명인 행세는 즐겁지만, 술자리에 사람들이 따라붙는 건 싫었다.

“좋아. 좋아.”

주혁이 또 술을 따랐다.

셋은 또 단번에 들이켰다.

어색할 땐 이게 약이랬다.

* * *

약도 과하면 사람이 죽는다.

어색함이 너무나 과하게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야! 아몬드……!”

휙.

지아의 손가락이 상현의 눈앞에서 휘청였다. 이게 내가 휘청이는 건지, 서지아가 휘청이는 건지.

“너…… 지이인짜. 인기 많다?”

주혁이 옆에서 말렸다.

“저, 저 지아 씨?”

“아이씨.”

툭.

지아는 주혁의 몸을 밀어버렸다. 아니, 밀어버리려 했으나, 그냥 그 안으로 쓰러져 버렸다.

너무 체구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단 너무 취했다.

“조호오겠다! 근데 영상 누가 만들어주냐!? 어!?”

“네가 만들지.”

상현도 취했던 걸까. 서로 어느새 말을 놓았다.

“그래! 어?”

“그래서 어떡하라는 거야.”

“그러니까! 조…… 좀…… 아! 몰라! 우씨.”

툭.

서지아는 다시 옆으로 쓰러졌다.

이번엔 주혁의 반대편이다. 아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복도 쪽이다.

주혁이 거의 멱살을 잡듯이 그녀를 끌어올렸다.

“오우. 지아 씨. 아니, 지아야. 너 나이도 어린애가 왜 이러냐.”

“주혁쓰. 넌 나이 들어서 좋겠다?”

푸핫.

상현의 웃음이 터졌다.

주혁쓰라니.

지금 김주혁의 표정을 보니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거, 거참.”

“그래. 주혁쓰. 나이 갖고 뭐라 하지 마.”

“네놈까지? 너도 서른이잖아! 인마!”

“왜냐면 나도 사실 28살이거든.”

“……뭐?”

김주혁의 표정은 이제 말로는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저 새끼가 지금 뭐라 하는 거지?’라는 게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다.

“무, 무슨 말이야 그게?”

“나 군 면제잖아. 소년 가장이라. 그럼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봤냐? 군대 2년이 없는데, 대학도 안 갔는데.”

“씨, 씨X. 2년 정도 뻘짓 한 줄 알았지!”

이럴 수가.

유상현이 아직 28살이라니.

“그, 그럼 30대라고 왜 뻥쳤어?! 방송에서도!”

“그야, 그냥 내 주변 사람들 다 그렇게 알고 있고, 28살이나 30살이나 거기서 거기니까.”

김주혁은 한 손으로는 서지아 멱살을 잡고, 한 손으로는 상현 머리끄덩이를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이 새끼 나보다 3살이나 어리다고?!”

“이제 곧 29살인데, 뭐.”

“나도 이제 곧 32살이야, 이 새끼야! 뭔 막장 논리냐!”

“누가 유학 갔다 오래?”

푸하하하하!

상현은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웃어댔다.

‘이 미친 악마 같은 새끼.’

주혁은 여기에서 빨간 약 파란 약을 고를 수 있으면 파란 약을 고르고 싶었다.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싶었다. 그냥 이건 다 허상이고, 사실 상현은 나보다 한 살 어린 30살이라고……. 원래 알던 대로 알고 싶었다.

“야. 뭐 어때. 원래도 어린 건 알고 있었잖아.”

“한 살 차이랑 같냐!?”

“거기서 거기야. 유학파가 뭐 그런 걸 따져.”

“아니, 유학은 내가 갔지, 네가 갔──”

퍽!

그때, 갑자기 서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어났다.

그 통에 주혁의 턱이 지아의 머리에 후려 맞았다.

“컥!”

일어나는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저 덩치 큰 주혁이 다 휘청일 정도였다.

상현은 또 우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와중에 지아는 주변 일 따위 다 모른다는 듯 시선이 휴대폰에 고정되어 있다.

“저…… 전……!”

그녀는 휴대폰 알림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전? 전 뭐.”

“저, 전자…….”

“?”

주혁과 상현은 서로 멀뚱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자파가 방송 켰어.”

* * *

예전의 상현이었다면, 스트리머가 방송을 켜는 게 그리 놀랄 일이냐. 시큰둥한 태도였겠지만.

‘3년 동안 안 켰다고 하지 않았나?’

전자파의 공백기는 3년이다.

그 이후로는 그냥 광고 촬영 정도만 간간이 진행할 뿐이라고 했다.

사실상 이제 스트리머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고.

게임 플레이조차 하지 않는다고.

‘설마.’

상현의 머리에 ‘파파파’라는 시청자의 닉네임이 스쳐 간다.

그는 얼른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서 트리비를 확인했다.

들어가자마자 떡하니 메인 화면에 전자파 스트리밍 화면이 나온다.

‘시청자 수는?’

아직 표시되지 않았다.

방금 켰던 모양이다. 상현은 얼른 클릭해서 들어갔다.

“……어?”

[현재 방송이 종료된 채널입니다]

이게 뭐야.

방금 알림이 울린 것 아니었나? 오류인가? 와이파이 탓인가?

“어…… 꺼, 꺼졌다.”

지아도 똑같이 말했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꺼졌다는 뜻이다.

“방송이 잠깐 켜졌다가, 꺼졌네.”

“…….”

하.

상현은 헛숨을 뱉었다. 본인도 모르게 은근히 긴장했던 것이다.

단순히 전자파가 방송을 켠다는 사실 자체에.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 어쩌면 라이벌이다.

전자파의 화려한 이력을 생각하면, 아직은 주제넘은 발언이 되겠지만……

분명 라이벌이긴 했다. 이미 기록으로 다툰 전적이 몇 번인가.

물론 그가 프로게이머이던 시절의 기록은 엄두도 못 내지만. 하다못해 스트리머 시절 쌓은 타 게임의 기록이라면 아몬드도 승산이 있다.

“……뭐야. 오류였나 보다.”

주혁도 휴대폰을 내리고 소파에 등을 기댄다.

매니저인 그조차도 적잖이 긴장했던 것 같다.

전자파의 등장은, 사실 아몬드의 캐릭터가 겹치게 될 거라는 악재이기도 했다.

적어도 주혁의 머릿속에선 그랬다.

“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흐으…….”

털썩.

지아는 이제 상에 엎어져서 잠에 들었다. 원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전자파의 방송 시작 때문에 잠시 초인적인 힘으로 일어났던 모양이다.

‘전자파 팬이었나?’

지아의 성향을 고려하면 전자파 팬이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오랜 기간 활동이 없어서 그 비슷한 계열인 아몬드로 옮겨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만 가자.”

상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에 가서 계산서를 내미는데.

“아. 돈 안 받습니다.”

“……예?”

사장이 돈을 안 받는단다.

“왜, 왜요?”

“그야 저희 프랜차이즈 모델 섭외 받으셨잖습니까? 하하하!”

사장이 ‘나도 알 거 안다고~’ 하는 눈빛을 보낸다.

알 거 알긴 개뿔.

“그거 아직 수락 안 했는데요.”

“!?”

아직 광고를 받을지 안 받을지도 모르는 브랜드였다.

“아…… 그, 그렇습니까? 하하하! 대표 그 양반이 참…… 서, 설레발도.”

“여기요.”

상현은 카드를 내밀었다.

그래도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잘됐습니다. 저희 후계점! 딱 기억해 주세요! 하하하!”

그는 기어코 계산을 받지 않았다.

“꼭 광고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고! 대표님한테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나갈 때까지도 90도 인사를 하면서 배웅을 나왔다. 적잖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야. 난 꼰대들이 아부 같은 거 왜 그렇게 좋아하나 했거든?”

“……왜인데?”

“모르겠냐? 난 받아보니까 딱 알겠네! 으하하하!”

주혁은 나쁜 기분이 아닌 걸 떠나서 매우 좋은 모양이다.

휘청이는 서지아도 본인이 업어버렸다.

상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야. 지아 씨, 내가 업고 갈게.”

“엥? 너도 취했잖아.”

“아냐. 취하긴 무슨.”

“됐어. 내가 키가 더 큰데.”

“내가 힘 더 세거든.”

그야 운동선수 출신이니 당연한 말이다. 주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지아를 내려서 상현에게 옮겨주었다.

“나중에 후회 마라?”

“나 뒤에 모자나 제대로 씌워줘라.”

“알았다.”

상현은 외투에 달린 모자를 쓰고, 몸을 꽁꽁 싸맨다. 누군가 또 알아보면 골 아플 것 같으니까.

“네가 근데 웬일이냐. 여직원들이 그렇게 데려다 달라고 해도 안 해주더니.”

상현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왜 지아는 데려다주는지, 본인도 생각해 본다.

“팬 서비스.”

이게 그의 대답이었다.

“엥?”

“뭔 엥? 이냐. 얘가 거의 내 첫 팬이잖아.”

“……아. 그랬지.”

“이 정도는 해줘야지.”

아몬드 팬 서지아.

처음에 지아를 알게 된 계기였다.

그렇다. 그녀는 편집자이기 이전에 아몬드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야! 아몬드……! 너…… 지이인짜 인기 많다? 조호오겠다! 근데 영상 누가 만들어주냐!? 어!?」

지아의 입김에 섞여 들려오는 환청에, 상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쩌면 진짜 팬인 자신을 두고, 다른 팬들에게만 잘해준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리라.

“가자.”

상현은 씩 웃으며 당당하게 앞장선다.

그리고 지옥 같은 계단 앞에서 결국 지아를 주혁에게 넘겨 버렸다.

* * *

새벽 2시.

지아는 깨질 듯한 머리통을 부여잡고 잠에서 깼다.

“……으.”

절로 신음이 나오는 숙취였다.

허나 그녀에겐 익숙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냉장고로 기어간다. 끼익. 한 부분을 가득 채운 숙취 해소제 중 하나를 꺼냈다.

깔끔하게 통 하나를 비워 버린다.

“후.”

플라시보 효과로 이제야 눈이 좀 뜨인다.

「야! 아몬드……!」

엥?

지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술 취한 여자 목소리는 누구야.

내 목소리랑 비슷한 주제에 애교는 잔뜩 섞여 있는 거야, 왜.

「너…… 지이인짜 인기 많다?」

이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방금 원샷한 게 숙취 해소제가 아니라 데킬라 원액이라도 되는 듯이.

「조호오겠다! 근데 영상 누가 만들어주냐!? 어!?」

죽고 싶어졌다.

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농약 같은 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사둘 걸 그랬다.

“하아.”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

대체 술 같은 걸 왜 처먹는 걸까?

‘좋으니까! 맛있으니까!’

곧바로 또 다른 자아에서 튀어나오는 대답.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정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할 일이 많이 쌓였지만.

「이주현 사랑해! 적어주세요!」

갑자기 또 튀어나온 기억 덕분에 별로 해주기 싫어졌다.

하루 정도 늦게 영상이 올라가도 상관없을 거다. 그 빌어먹을 견과류 녀석은.

‘그냥 영화나 보자.’

그녀는 그런 생각으로 렛플렉스(Let, Flex!)를 실행했다.

‘판도라의 상자’라는 게 있다.

영화 제목치고는 정말 고리타분하네.

「팬 서비스」

아몬드의 음성이다.

순간 컴퓨터에서 들려온 줄 알았으나. 그의 따뜻한 등에 기대던 감촉까지 돌아온다.

「내 첫 팬이잖아.」

‘뭐……야?’

지아는 얼어붙은 듯,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저절로 실행된 미리보기에서, 그 저주받은 상자가 열렸다.

하나둘 나쁜 것들이 순식간에 마구 튀어나오고.

가장 빛나는 무언가가 느릿느릿 기어 나온다.

팅.

지아는 창을 꺼버렸다.

대신 편집 프로그램이 실행됐다.

시간을 확인했다.

‘7시간 정도면 되려나.’

아침 9시쯤이면, 될까?

그때면 아몬드가 일어나서 확인해 볼 수 있을 거다.

은은한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컨디션은 최악이지만, 왠지 모르게 손놀림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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