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90화
31. 연습한 아몬드(4)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개판 5분 전.
퍼엉……! 펑……!
상자에서 쏘아 올려지는 화려한 폭죽들.
부우우우웅!
성급한 게 소리로도 느껴지는 엔진음.
철퍽, 철퍽!
늪지대를 뛰어오는 다급한 발소리.
‘개판 났다.’
이 모든 게 개판이 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기가 많은 장소도 아니고 이런 오지 같은 숲 안에 떨어진 에어드롭은 한 번씩 노려볼 만했다.
그리고 에어드롭 안에서 전설 등급 무기라도 얻으면 1등이 매우 수월하다.
‘난 총을 못 쓰는데.’
아몬드는 총을 못 쓴다기보단 안 쓴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총이 의미가 없다.
그래도 일단 에어드롭으로 달렸다.
꼭 총이 아니더라도, 뭔가 다른 좋은 것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놈이 전설 총을 먹는 걸 방지할 필요가 있다.
척!
빠른 동작으로 에어드롭 상자를 열어봤다.
[의료 키트]
[길리 슈트 - 전설]
[방탄조끼 - 영웅]
3개의 아이템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황금빛이다.
“오…….”
일단 영웅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먹는 게 거의 처음이 아니던가?
아몬드는 방탄조끼와 길리 슈트를 연이어 빠르게 착용했다.
사락.
전설 템인 길리 슈트는 이 정글 맵에서 정말 좋은 아이템이었다.
‘진짜 잘 안 보이네?’
덤불에 숨으면 자신의 팔마저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위장 능력이 있다.
방탄조끼는 말할 것도 없이 좋을 터다. 영웅 등급인데 따져서 뭐 하나.
부우우우웅──!
어느새 차의 엔진 소리가 가깝다.
아몬드는 얼른 수많은 덤불 중 하나를 골라 사격 자세를 취했다.
스륵.
길리 슈트 덕에 마치 투명 망토라도 쓴 듯이 배경에 녹아든다.
* * *
자기가 가장 빨리 도착한 줄 아는 플레이어는 차 문을 쾅 닫으며 감탄사를 뱉었다.
“키야!”
그는 차를 엄폐물 삼아 조심스레 상자로 접근해 갔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급하게 서두르진 않았다.
“……잠깐.”
그는 누군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상자 열 때를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무조건 있다.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니다.
“흥.”
그는 다시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를 천천히 상자 근처로 바짝 붙였다.
“이러면 못 쏘지.”
그의 전략은 맞아 들어갔다. 확실히 아몬드 쪽에서는 사격 각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쏠 수 있는 각이 나오는 곳은 이미 본인이 지나왔던 길뿐이니 안전할 확률이 매우 높다.
지켜보던 아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하네.’
상대는 영리했다. 엄폐에 있어서 상당히 노련했다.
“으흐흐.”
다만 그게 패인이었다.
아니, 사인(死因)이었다.
엄폐를 너무 믿은 것이다.
쉬이이이익!
뱀의 혓바닥 소리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려온 후.
그의 이마 정중앙에 화살이 박혔다.
텅!
“컥! 뭐, 뭐야!?”
좋은 방탄모를 쓰고 있었다.
한 방에 죽진 않았다.
“대체 어디──”
연이어 화살이 하나 더 날아왔다.
푹!
그가 빠르게 반응했다. 머리 대신 어깨에 화살이 맞았다.
덕분에 또 목숨은 연장됐다.
다만 해결책이 없다.
“대체 어디서!?”
어디서 오는지 각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 뒤를 돌아봤는데.
쉬이이이익……!
이번에도 화살이 날아온다.
“휘어?!”
주차된 차 앞을 돌아서, 화살이 날아온다.
45도 정도 꺾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90도 가까이 꺾인다.
어느새 거대한 화살촉이 눈앞.
‘이게 말이 돼?’
대처하긴 늦었다.
푸욱!
이번에는 미간 사이에 제대로 꽂혔고, 그는 마비가 된 듯 그 자리에서 부르르 떨고는 쓰러졌다.
[아몬드 → 재간둥이]
[처치하였습니다!]
[29/100]
“휴. 눈치가 좀 빠른 친구였네.”
상대가 생각보다 반응이 빨랐다. 혹시 몰라 연사를 한 번에 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연사했다면 화살이 몸통에만 두 대 맞았을 터다.
“여하튼 하나 치웠습니다.”
킬당 미션 칸의 킬 수가 하나 올라갔다.
[현재 1킬]
미션이 걸린 순간부터 킬을 카운트하는 방식이니, 이제 겨우 1킬이다.
-쒯. 커브샷 이거 개사긴데?
-ㄹㅇㅋㅋㅋㅋ
-이래도 되는 거냐? ㅋㅋ
-ㄹㅇ 범죄 저지르는 느낌임. 혼자 반칙하는 거 같아 ㅠㅠㅠ
-수줍은 여포 이제 좃됐닼ㅋㅋㅋㅋㅋ
한층 노련해진 커브샷.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수줍은 여포’의 지갑을 걱정했다.
“앞으로 한 너덧 명 더 올 것 같습니다.”
에어드롭을 노리는 플레이어들 사냥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니까.
최소 너덧 명, 많게는 열 명까지도 달려들지 모르는 게 에어드롭이다.
[수줍은 여포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 살려, 살려 줘!]
“예. 후원 감사합니다. 여포 님.”
-엌ㅋㅋㅋㅋㅋㅋㅋ
-뒤에 말은 왜 무시해!
-아몬드 : 안 돼! 돌아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수포좌 ㅠㅠㅠ
‘온다.’
잠시 시청자들과 떠들던 아몬드가 입을 다물었다.
철퍽……!
아까 전부터 들려오던 발소리가 이제 꽤 커졌다. 방송을 위해서 작게 중얼거리는 말도 조심해야 하는 거리다.
철퍽. 철퍽.
끈적한 늪을 밟으면서 다가오던 상대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
왜 오지 않는 거지?
소리만 듣고 있는 아몬드로서는 알아챌 길이 없었는데.
다시 에어드롭 쪽을 보고 그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에어드롭 바로 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다.
너무 티가 난다. 이미 누군가 에어드롭 상자를 먹었거나 먹다가 죽었다는 게.
머리가 있으면 다가오지 않을 터다.
에어드롭을 포기하고 돌아가거나,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노려서 사냥할 것이다.
뭘 선택하든지 현재로서 아몬드는 안전했다.
그런데──
철퍽! 철퍽!
상대는 오히려 이쪽으로 더 빨리 다가왔다.
‘뭐지?’
이런 경우는 예상치 못했었다.
철퍽! 철퍽! 철퍽!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다.
이젠 눈으로도 대강 상대가 보였다. 수풀이 움직이고 있는 저곳이었다.
‘미친 거 아냐?’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의 트롤 플레이다.
파앗!
수풀에서 빠져나온 상대는 허겁지겁 달려와서 에어드롭 상자를 부여잡았다. 왠지 굉장히 절박해 보이는 폼이었다.
‘아!’
왜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트롤 플레이가 아니었다.
상대는 부상을 입었다. 현재 출혈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이대로면 어차피 아웃일 테니 눈치를 보다가 도박 수를 둔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 됐네요.”
피융!
그 도박 수에 대한 보답은, 아몬드의 화살이었다.
“!”
상대가 상자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는 그 순간.
푸욱!
차 뒤쪽에서부터 꺾여 날아온 화살이 머리를 꿰뚫었다.
그는 이미 방탄모도 다 부서진 상태였다.
그러니 한 방이다.
철퍼덕!
늪지대의 진흙이 튀어 오르며 킬 로그가 떠올랐다.
[아몬드 → 바나나슈터]
[처치하였습니다!]
[27/100]
깔끔한 슈팅이었다.
아몬드는 새삼 다시 자신의 화살을 내려 봤다.
‘이거 날아가는 속도도 그렇고…… 확실히 더 좋네.’
희귀 등급 화살.
겨우 한 단계 높은 것이지만 확실히 일반보단 더 좋았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깔끔하게 날아간다.
속도도 더 빠르며 그만큼 파괴력이 높은 건 당연지사.
한 단계 차이가 이 정도니. 이래서 배틀 라지가 파밍 게임이다.
아몬드는 새삼 파밍의 중요성을 자각한다.
그리고 영웅 등급 화살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활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쿠구궁…….
심상치 않은 땅울림이 느껴진다.
“……!”
지프차 여러 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에어드롭 때문인지 블루존 때문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여러 대였다.
차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끼리는 잘 싸우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전하면서 총을 쏘는 건 힘드니까.
부우우우웅──
이제 땅울림이 아니라, 귀에도 직접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눈으로도 보인다.
저 멀리에 지프차 3대가 한 번에 오고 있다.
촤라라라락!
늪지대를 갈아버리는 타이어. 강력한 사륜구동 차량이다.
쿠웅! 쿠웅!
차들끼리 서로 부딪친다.
견제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셋 다 치열하게 에어드롭으로 오고 있었다.
끼이이이익!
아마 가장 선두에 오던 차가 이미 다른 차 하나가 주차된 걸 봤는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어!? 저기!”
아니었다.
주차된 걸 보고 밟은 게 아니었다.
길리 슈트를 입은 아몬드를 발견한 것이다.
‘저렇게 먼 곳에서 어떻게?’
길리 슈트는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본 걸까.
-열 감지 카메라 있나 봄
-머리에 쓰고 있는 게 열 감지인가 어떻게 봤냐 ㅅㅂ ㅋㅋㅋ
-ㄹㅇ 재수 옴 붙은…….
-이게 아몬드지.
아. 열 감지 카메라를 먹었나 보다.
“저기! 저놈이 에어드롭 먹었네!!!”
그 카메라맨은 일부러 우렁차게 외친다.
같이 쏴달라는 거다.
티밍 신고를 하고 싶지만, 저런 정도는 티밍에 걸리지도 않는다.
의도적인 티밍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타협이다.
배틀 라지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을 되레 권장한다.
투두두두두두!
지프에서 내린 셋이 일제히 총을 난사한다.
그들은 유리창과 지프 문을 방패 삼아 아몬드를 향해 총질했다.
아몬드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나무들이 터져 나갔다.
콰앙!
나무가 쓰러지면서, 진흙 바닥이 솟아오른다.
푹!
“윽…….”
난사된 총알 중 하나가 아몬드의 복부를 스쳤다.
다행히 영웅 등급 방탄조끼 덕에 체력이 깎이진 않았다. 잠시 충격이 왔을 뿐.
아몬드는 몸을 굴려 이번엔 바위 뒤에 숨었다.
투두두두두두!
총성은 계속 이어졌으나, 제대로 맞는 건 없었다. 아몬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열 감지라고 해도 바위를 뚫고 열 감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몬드는 조심스레 활을 꺼내 들고 당겼다.
‘바위랑 지프…….’
아몬드 앞에 바위. 그리고 적들은 아몬드가 쏘는 각을 다 지프로 막고 있었다.
2중 엄폐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없다.
적절한 경로만 머릿속에 그려낸다면 아몬드에게 엄폐물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거의 모든 각도로 커브를 넣을 수 있으니까.
‘조수석을 돌아서 운전석을 쳐야 해.’
정면에서 쏘는 주제에 옆 창문으로 화살을 쑤셔 넣을 생각을 하다니.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느꼈지만.
기리릭…….
활시위를 당기는 오른손은 자신감이 넘쳤다.
유리를 뚫어야 하니 팽팽하게 당겨진 활.
‘이 화살이라면 될 거다.’
적이 움직이기 전에 순식간에 3연사를 쑤셔 넣어야 했다.
“어…… 어디야?! 야! 너, 너네 쏘지 마! 길리 슈트부터 먹고…….”
그들은 대충 서로를 쏘지 않는다는 식의 정치질을 하고 있었다. 차 안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열 감지 카메라 가진 놈부터.’
그 틈에, 아몬드의 활시위가 놓아졌다.
방심의 사각지대를 파고들 화살이 날아간다.
쉬이이이익──
뱀의 혀가 뻗어 나가는 듯한 소리, 그에 이어서 차의 유리창이 요란하게 박살 났다.
파아아앙!!!
“어?!”
갑자기 생뚱맞게 옆 유리가 박살 나자,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리를 박살 내고 들어온 건 화살이었다.
다행히 화살은 유리를 박살 내는 순간 힘을 잃어 떨어졌다. 그러나──
쉬이이익.
뱀 같은 소리와 함께 날아들어 온 두 번째 화살이, 그의 머리에 꽂힌다.
푹!
“억!”
방탄모가 부서졌다.
이어서 하나 더.
푹!
세 번째 화살이 머리를 꼬챙이처럼 뚫었다.
[아몬드 → 하일히드라]
[처치하였습니다!]
[26/100]
‘됐다.’
제일 귀찮은 놈이 죽었다.
“……미친?”
옆에 있던 동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순간──
파앙!
또다시 유리가 깨졌다.
이제 자신 차례라는 걸 알고 화들짝 놀라는 적.
“제길, 여기…… 커억!”
대처할 시간은 없었다.
푹!
연이어 또 날아든 화살이 그의 뒤통수에 꽂혔다.
그는 애석하게도 방탄모가 없었다.
[아몬드 → 노랑바닐라]
[처치하였습니다!]
[25/100]
마지막 남은 한 명은 대응 사격을 하는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에, 에라이!”
어차피 쏠 각도 없으니 꽤나 현명한 처사라 할 수 있다.
다만 그는 방탄모도 없었고, 차 유리를 열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운전보다는 화살이 더 빨랐다.
푹!
날렵한 화살이 머리를 관통했다.
시뻘건 피가 앞 유리에 끈적하게 튀었다.
“커억……!”
빠아아아아아아앙!!!
경적 위로 얼굴이 엎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무쳤다;;;
-6연 커브샷 뭔데
-아니, 전부 다 창문으로 골인시키는 거 실화야?
-아몬드 : 한국 축구는 나보다 골을 못 넣는다
-도랏맨…….
“3킬 추가요.”
아몬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곧바로 다시 수풀 어딘가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두 눈을 번뜩이며 주변을 살핀다. 다음 사냥을 준비하는 맹수처럼.
경적 소리가 요란했으니, 반드시 누군가 더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