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00화
35. 리액션(2)
휘이이잉──
거친 모래바람이 휘젓고 있는 모래 평원.
물 한 모금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건조한 바람이었다. 생명체가 살 수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황무지.
하나 이런 곳도 한때는 문명이 존재했다.
곳곳에 솟은 묘한 형체의 돌탑들이 그 흔적이다.
만약 이곳이 멸망하지 않았다면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서 구경해도 될 만큼 꽤나 멋들어진 절경이다.
그러나 배틀 라지에서 사용되는 모든 맵은 이미 멸망 이후이며.
이곳은 플레이어들의 서바이벌을 위해서 쓰일 뿐이었다.
유적들은 언제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고, 문화적 가치는 상실된 채.
플레이어들에겐 엄폐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척.
아몬드 역시 그 돌탑 뒤에 등을 기대며 몸을 가리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쥐 죽은 듯.
가만히 등을 돌리고 있던 아몬드.
그는 잠시 눈을 감고 감각을 집중했다.
잠시 후.
귓가에 미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유적을 끼고 획 돌아섰다. 동시에 전방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그가 조준하는 방향엔 뿌연 모래 먼지뿐이었다.
-??? 어딜 쏘려고?
-뭐가 보이긴 하냐?
-지금 모래바람 타이밍이라 잘 안 보이는디…….
-뭣보다 바람 때문에 쏘기 힘들지 않음?
보이지도 않고, 바람도 거세다.
그에 대해 아몬드는 대답이 없었다.
잠시의 심호흡이 이어졌을 뿐이다.
모든 신체 부위가 딱딱하게 굳은 채.
두 눈만이 살아 있는 듯 움직이며 어딘가를 급히 찾고 있었다.
자신이 들은 소리의 근원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저깄다.’
거친 모래바람 사이, 흐릿한 형체 하나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정말 희미해서 바람에 흔들리는 선인장과 구분이 되지 않았으나.
그 형체가 움직일 때마다 모래 밟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까 아몬드가 들은 소리의 근원이 저것임은 확실했다.
아몬드는 흡, 내쉬던 숨을 머금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시간이 멈추는 마법에 걸린 것마냥 그의 몸이 고정됐다. 오른손은 그 마법에서 예외였다. 오른손만이 숨죽인 상태로 움직이며 부드럽게 시위를 놓는다.
파앙.
화살이 모래바람 사이를 뚫고 날았다.
흐릿하게 보이던 형체가 쓰러졌다.
푹!
[아몬드 → 아이스크림몬]
[처치하였습니다!]
[79/100]
킬 로그가 떠오른다.
모래바람 뒤에 있던 자가 죽은 것이다.
-와 ㅅㅂ 보이지도 않는 걸 죽여?
-대체 뭘 쏘는 거지 했는데 ㅅㅂ 사람이었누 ㅋㅋㅋㅋㅋ
-의심을 거두어라! 이건 아몬드다!
-아직도 아몬드 못 믿고 숏치는 호구 없제!?
-아니, 대체 몇 미터를 맞히는 거야 ㅋㅋㅋㅋㅋ
-와 ㅋㅋㅋㅋ
잘 보이지도 않는 적의 머리를 맞혀 버렸다.
그것도 거친 바람을 뚫고서.
묘기에 가까운 궁술이었다.
[궁금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아몬드 님! 배라 화살 바람 영향 안 받음?]
어떤 시청자는 혹시 화살이 바람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닌 건지 궁금해했다.
평소의 슈팅과 다른 게 하나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맞히는 바람에 생긴 궁금증이다.
“약간 왼쪽으로 쐈어요. 바람 영향받습니다.”
-무자식아 아몬드를 뭘로 보고 ㅋㅋㅋ
-그깟 바람이 대수냐!? 아몬드가 궁수인데!
-크으.
-아몬드 무빙샷 안 하면 정확도 미침.
[깨시민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약간 왼쪽? 혹시 중도 좌파……?]
팅!
소리가 나며 음성 메시지가 끊겼다.
주혁이 순식간에 어그로를 쳐낸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 ㅋㅋㅋ 유료 밴 ㅃㅇ
-도네 소리 나오다 중간에 끊겨 버리누. 매니저도 피지컬 도랏네 ㅋㅋㅋㅋ
-정보) 매니저 키 180 넘고 어깨 깡패라 실제로 피지컬이 도랏다고 한다.
-그스그매
채팅창에 매니저에 대한 칭찬이 솟구친다.
주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무렵.
기리릭──
아몬드가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또 누군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각도의 화살이 날아갔다.
푹!
모래바람 사이에서 어떤 형체가 또 맞고 쓰러졌다.
그런데 이번엔 킬 로그가 나오지 않았다.
“씹! 뭐야!?”
상대는 이렇게 외치고는 어딘지 몰라 두리번거리며 일단 뛰었다.
그러나 그 뒤로 다시 날아온 화살이 그의 뒤통수를 꿰뚫었다.
그가 방탄모라는 걸 알자마자 바로 이어서 쏜 덕이다.
[아몬드 → 프롤박테리아]
[처치하였습니다!]
[77/100]
그는 결국 쓰러졌고, 이름만이 킬 로그에 남아버렸다.
아몬드는 다시 유적 뒤에 몸을 숨겼다.
모래바람이 그의 흔적을 완벽히 가려주었다.
-와! 모래 암살!
-와! 샌즈! 어쌔신!
-ㄷㄷ 적들이 넘 불쌍해 ㅋㅋㅋㅋ
-크…… 개간지
이번에도 완벽한 샷을 보여준 덕에 올라오는 칭찬들. 아몬드는 채팅창을 보며 싱긋 웃었다.
타앙, 타앙!
저 멀리에서 총성이 몇 번 들려왔다.
아몬드와는 별로 상관없는 전투였다. 그러나 아몬드는 일부러 총성이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판의 컨셉이 팬서비스였다. 무조건 킬 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플레이할 생각이었다.
-포브스 선정) 유일하게 배틀 라지에서 총소리가 나는 쪽으로 움직이는 남자
-크 여포몬드 다시 돌아왔네
-수줍은 여포좌까지 오면 ㄹㅇ 완벽ㅋㅋㅋㅋ
-그 사람 돈 다 털려서 오겠냐곸ㅋㅋㅋㅋ
시청자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팬서비스 아니겠는가?
투두두두둥……!
멀찍이서 울리던 총성이 꽤 가깝다.
아직도 싸우는 걸 보니 예상대로 꽤 많은 인원이 여기서 대치 중인 듯했다.
[30초 후 블루존이 축소됩니다!]
곧 블루존까지 이동한다.
맵을 확인해 보니 유적지는 이제 블루존에서 벗어나게 된다.
투두두두두둥!
총소리가 더 거세졌다. 다들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이 유적지에서 시간을 날렸다가는 그대로 유독 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테니까.
흐릿한 형체들이 무더기로 달려오는 게 보인다.
‘이쪽으로 오나?’
아몬드는 맵을 다시 확인했다.
아몬드가 그들의 탈출구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아몬드는 선택을 해야 했다.
1. 마침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위치에 있으니, 가장 먼저 가장 안전하게 다음 블루존으로 이동한다.
2. 혹은 길목을 틀어막고, 오는 놈들을 다 쏘아 잡는다.
선택은 당연히 2번이다.
물론 이 작전은 자칫하단 너 죽고 나 죽자 식이 될 수 있다. 매우 위험하긴 했다.
그러나 언급했듯 아몬드는 이미 학살 플레이로 마음을 굳혔다. 자리를 잡고 서서 활시위를 당겼다.
피융!
순식간에 날아간 화살 하나가 적의 머리를 뚫었다.
킬 로그가 떠오르며 적이 쓰러졌다.
방탄모가 없었던 모양이다.
“뭐야!?”
누군가 외치는 소리.
모래바람 너머에서 그의 고개가 이리저리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돌아가던 그 고개에 화살이 바로 꽂혀 버렸다.
모래바람 속 그림자는 물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대신 아몬드의 시야에 킬 로그가 떠오른다.
죽은 것이다.
그다음 뛰쳐나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푸욱!
그 역시 아몬드의 화살에 꼬챙이가 되어 쓰러졌다.
이쯤 되니 달려오던 플레이어들도 아몬드의 존재 정도는 눈치챈다.
‘길막 있네.’
‘누가 막았어.’
‘제길. 입막 뭐야.’
그들은 뛰면서 전방에 각자 총을 겨눴다.
투두두두두!
유적에 맞은 총알이 마구 튀었다.
아몬드는 맞지 않았다.
“저기다!”
“입구 막지 마! 새꺄!”
아몬드가 움직이는 게 보였는지, 총들의 에임이 점점 정확해진다.
더 많은 총구가 아몬드가 몸을 숨긴 유적을 향했다.
투두두두두!
아몬드 앞의 유적이 거세게 진동했다.
‘결국 이렇게 되네.’
이래서 입구 막기는 위험했다.
빠져나오려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팀을 이루고 입구를 막는 자를 쏘게 되어 있다.
자처해서 모두의 적이 되는 선택이었다.
-달려오는 놈 왤케 많누.
-거의 7명은 되는 것 같은데???
-오우 쒯.
-7명은 껌이지 ㅅㅂ 아까 20 대 1로도 싸우지 않음? ㅋㅋㅋㅋ
-20 대 1 은 칼전이고 이건 총이잖어
7명의 적이 총을 쏘니 유적은 버티지 못했다.
쿠웅──
묵직한 굉음과 함께 유적이 쓰러진다.
부서진 돌무더기가 이리저리 떨어진다.
타닥!
아몬드는 빠르게 다음 유적으로 몸을 굴린다.
동시에 이어지는 빠른 연사.
파아앙! 팡!
벼락처럼 발사된 2개의 화살이 유적을 크게 돌아서 날았다.
푸욱!
푹!
2개의 화살은 각각 적 둘을 쓰러뜨렸다.
[아몬드 → 도랏도랏맨]
[처치하였습니다!]
[65/100]
[아몬드 → 우리787]
[더블킬!]
[64/100]
‘다음.’
아몬드의 깍지에 4개의 화살이 잡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4연사.
파아앙!
마치 한 번에 날아간 듯 빠르게 가로지른 4개의 화살이 각각 적들의 머리에 꽂혀 버렸다.
7명 중 6명이 순식간에 죽었다.
“미…… 미친…….”
남은 하나는 얼이 빠진 표정이 되어 탄알이 다 빠진 총의 방아쇠만을 기계적으로 누르고 있었다.
충격에 빠진 듯했다.
무슨 화살이 살아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아서 자신과 함께 뛰던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혼란스러웠다.
푹!
이내 그의 머리에도 어김없이 화살이 꽂혔고, 혼란은 사라졌다.
[아몬드 → 테러종자]
[멀티킬!]
[63/100]
휘이잉──
모래바람만 황량이 불고 있는 사막.
사람의 흔적은 죄다 지워졌다.
아몬드 뒤로 지나간 플레이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무쳤다 ㅋㅋㅋㅋ
-와 개간지
-이게 웨스턴 보우맨인가 그거냐?
-서부영화인 줄
-엄마아아아아아! 아몬드! 엄마아아아아아! 아몬드! 엄마아아아아아! 아몬드!
채팅창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리스크가 있는 플레이를 완벽하게 수행해 냈으니까.
빠밤~!
트럼펫 소리와 함께 고액 후원도 들어왔다.
[가지볶음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와아아! 다이아 승격 미리 축하!]
[우엉부엉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오늘 첨 봤는데 미쳤네요. 다이아 승격 ㄱㄱ!]
[차암새애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누구야! 누가 아몬드 같은 괴물을 만들었어!]
큰 리스크엔 큰 리턴이 따라온다.
이게 바로 아몬드가 받는 리턴이다.
시청자들의 환호와 후원!
아몬드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좋아.’
이 맛에 방송을 한다.
-와 오늘 후원 개터지네 ㅋㅋㅋㅋ
-다이아 승격전이니 후원 개오지지 당연
-키야
-다이아 승격 미션까지 클리어하면 이게 대체 얼마냐!?
-ㄹㅇㅋㅋ
“가지볶음 님, 우엉부엉 님, 차암새애 님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전한 후.
아몬드는 다음 블루존으로 뛰었다.
이후에도 아몬드의 활약은 대단했다.
접촉하는 적마다 깔끔하게 헤드샷으로 보내 버렸다.
심지어 달리는 차 안에서 죽은 적들도 거의 너덧 명은 되었다.
적들 입장에선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창을 뚫고 들어오는 화살에 끔살당한 셈이다.
“미친, 뭐야!?”
“어어억!”
“컥!”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아몬드의 커브샷 기습에 대처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다.
심지어 방탄모가 있어도 연이어 날아오는 화살에 당황하여 멍하니 있는 사이에 죽어버렸다.
이들이 멍청한 아이언 플레이어여서가 아니었다.
이들 하나하나는 전부 브론즈에 가면 학살이 가능한 다이아 랭크에 근접한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럼에도 아몬드의 만개한 기량을 감당 못 하는 것이다.
[33킬]
아몬드는 무려 33킬을 올렸다.
이게 다이아 승격전의 성적이라고 누가 생각할까.
[10/100]
33킬째인 현재, 배틀 라지 필드에는 10명이 남아 있었다.
블루존은 좁아질 대로 좁아져서 10명 모두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견제하는 상황이다.
긴박한 그 상황에도 아몬드의 채팅창은 축제 분위기였다.
-ㅊㅊㅊㅊㅊㅊ
-와
-외쳐! 다이아몬드! 외쳐! 다이아몬드! 외쳐! 다이아몬드! 외쳐! 다이아몬드!
-ㅊㅊㅊㅊㅊ 다이아아아아!
-33킬을 해버리네 ㅅㅂ ㅋㅋㅋㅋ
-다이아큐 33킬 도랐다아아!
-와 진짜 해버렸다
-전자파 ㅈ됐네 ㅋㅋㅋㅋ
-와우
-다이아몬드? 그게 뭐죠? 아몬드는 아는데! 다이아몬드? 그게 뭐죠? 아몬드는 아는데! 다이아몬드? 그게 뭐죠? 아몬드는 아는데!
-아몬드! 내 딸을 가져도 좋네! 아몬드! 내 딸을 가져도 좋네! 아몬드! 내 딸을 가져도 좋네!
10명이 남은 이 시점.
이미 아몬드의 다이아 승격이 거의 확실해져 버렸다.
1등 한 번 후, 순위 방어 한 번이면 승격된다는 게 정설이니까.
전판 1등을 했으니 이번 판은 탑 텐 안으로 끝내면 충분한 것이다.
그때 아몬드가 입을 열었다.
“자. 여기서 아까 받은 70만 원 그리고 오늘 받은 후원들까지 한 번에 리액션 갑니다!”
척.
그는 활로 전방을 겨눈다.
-???
-갑자기?
-설마 여기서 ㅋㅋㅋ
-무슨 리액션?
“제가 할 리액션이 뭐겠어요.”
-아니, 승격전에서 방종 리액션?!
-무친놈아 그만뒄ㅋㅋㅋㅋㅋ
-근데 왜 머리 위로 안 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