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06화
37. 풍선껌(2)
뿅.
이런 효과음과 함께 풍선껌이 등장했다.
말 그대로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와하하!”
풍선껌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손을 내밀었다.
“실물로 보니까 엄청 잘생기셨네!”
실물?
실물이 아니라 실물을 본뜬 아바타인데?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아몬드는 마주 웃으며 손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아몬드입니다.”
“네! 풍선껌입니다!”
풍선껌의 생김새는 늘 방송에서 봐왔다. 다만 캠으로 보는 것과 이렇게 전신을 함께 보는 건 위화감이 있게 마련인데.
풍선껌은 아몬드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빵빵하게 공기를 불어 넣은 풍선 같은 몸매, 작은 키, 순진무구하게 생긴 얼굴.
풍선껌 그 자체였다.
묘사만 보면 만화 속 유치원생과 비슷할 것 같으나, 사실 그의 나이는 거의 40을 향해 가고 있는 아재 중의 아재였다.
“아몬드 님? 근데 어쩌죠? 죽어버린 것 아닙니까?”
“예? 무슨…….”
“다이 - 아몬드 가셨잖아! 와하하!”
가끔 저런 코드의 유머를 쓰는 게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채팅창이 켜져 있었다면 수많은 갈고리를 수집했을 드립.
“죄송합니다. 일단 제가 만든 채널로 가시죠.”
풍선껌은 재빨리 사태를 수습하고 아몬드에게 채널 코드를 쐈다.
띠링.
소리와 함께 아몬드의 시야에 복잡한 코드가 떠올랐다.
아몬드는 그 위로 손을 올렸다.
[이동하시겠습니까?]
* * *
펑!
다소 적나라한 효과음과 함께 아몬드가 소환되었다.
“와…….”
휙 바뀐 배경을 보며 아몬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다 뭐냐?’
풍선껌의 개인 디스 월드 채널. 그곳은 마치 어린아이들만 사는 환상의 세계 같았다.
플랫포머 게임의 대가답게 온갖 점프대와 함정들, 그리고 가시.
종이접기 수공예로 만든 듯한 집들이 보였다.
마을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 역시 마치 수채화로 그려놓은 듯 신비한 분위기였다.
-쿠오오오오!
심지어 저 산등성이 너머엔 공룡까지 보인다.
무섭게 생긴 공룡이 아니라, 털실로 짜서 만든 공룡 인형 같은 생김새였다.
‘이런 거 방송에선 안 나왔잖아.’
이런 개인 채널이 있는데, 막상 방송에 노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 그대로 개인 채널인 모양이다.
“와하하! 개판 5분 전이죠?”
풍선껌은 자신의 마을이 너무 산만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멋쩍게 웃었다.
아몬드가 너무 멍하니 공룡을 보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멋집니다. 제가 생각했던 풍선껌 님 그 자체네요.”
“엇. 그래요? 저를 원래 아셨나요?”
아몬드는 자신이 풍선껌의 꽤 오랜 팬이며, 풍선껌 덕분에 스트리머의 꿈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풍선껌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예?! 그런 거 안 보게 생기셨는데…….”
자기 방송을 ‘그런 거’라고 하다니. 아몬드는 피식 웃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따라 들려왔다.
꺄르르.
맑고 고운 목소리의 여자 웃음소리였다.
“아저씨. ‘그런 거’라뇨. 아저씨 방송이 뭐 어때서.”
“아. 미호야. 마침 채널에 있었네?”
미호?
아몬드는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돌려봤다.
‘헉.’
모델 같은 비율의 늘씬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런데…… 옷이 거의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수준의 노출도와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 중이다.
독특한데 잘 어울린다.
저런 옷마저도 소화하다니.
눈길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이게 사람 때문인지 옷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몬드의 눈길을 눈치챈 풍선껌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디스 월드는 처음이랬죠? 저 옷 캐시템이야, 캐시템. 야 넌 무슨 첫 만남에 그런 걸 입고 오냐.”
“어? 뭐 어때요. 디스 월드인데.”
저렇게 간단히 말하고 털어내기엔 주요 부위만 스티커로 겨우겨우 가린 수준의 옷은 가상세계 캐릭터였어도 보기 민망했다.
본인은 막상 하나도 안 창피해하는 걸 보면 여기선 이런 게 당연한 건가.
‘이게 디스 월드인가.’
아몬드는 순간 사이버 펑크 세계로 돌입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리 구면? 비슷한 거죠?”
미호가 배시시 웃으며 다가왔다.
미호는 전형적인 고양이상의 여자였다. 어딘가 건드리기 위험해 보이는, 이목구비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긴장감 같은 게 있었다.
“네. 예전에 후원해 주신 분이네요. 감사합니다.”
“와. 기억해 주시네요!”
눈이 반달처럼 접히면서 따라 웃는다.
기본적으로 서려 있는 긴장감이, 웃을 땐 다 누그러지면서 그저 귀여운 아이 같아 보인다.
닉네임의 모티브가 왜 구미호인지 납득될 만하다.
조금 바보 같은 남자들이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앗길 것이다.
아, 이미 수만 명의 남자들이 그녀의 방송에서 그러고 있긴 했다.
“저는 진짜 기억 못 하시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잖아요.”
붙임성도 의외로 좋은 것 같았다. 아나운서 유하연이 살갑게 구는 것과는 아예 다른 레벨이다.
그건 능숙한 사회생활 같았다면, 이건 위험한 유혹 같았다.
그나저나 풍선껌은 갑자기 왜 미호를 보여준 걸까.
예기치 않게 마주친 건 아닌 것 같은데.
“미호가 우리 회사 크루 중에 한 명이거든. 뭐…… 크루라고 해도 합방은 거의 없지만. 친한 동생이라 소개시켜 주려고.”
풍선껌이 미호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그리고 귓속말로 ‘사실 쟤가 졸랐어’라고 한마디 더 해줬다.
“아저씨! 뭐라 하는 거예요!”
“어? 아냐, 아냐. 너 이쁘다고.”
“뻥이지! 그걸 누가 귓속말로 해!”
“와하하하! 다른 크루 멤버들도 조금씩 있는데. 인사만 해요. 우리 회사 크루야.”
풍선껌은 미호를 뒤로 하고 아몬드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들은 정말 마을같이 구성된 주택가를 거닐었는데.
주택의 모양이 전부 버섯처럼 생긴 걸 차치하고, 튀어나오는 주민들의 옷 하나하나가 정말 괴랄했다.
형광색 호피를 위아래로 입고 토끼 머리를 쓴 사람부터, 바지를 상의처럼 입고 후드를 바지로 입은 사람까지.
‘미호는 양반이었구나.’
미호는 그나마 정상적인 축이었다.
* * *
대충 마을 주민들과 간단한 인사 후.
아몬드와 풍선껌은 앞으로의 진행에 대해 상의했다.
별로 상의할 내용은 없었다.
인터넷 방송이란 게 본래 즉흥적인 맛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너무 많이 짜두고 들어가진 않는다.
“저격 큐 피하는 것만 잘 숙지하시면 돼요.”
풍선껌은 오랜 스트리머 경력을 토대로 저격러들을 피해서 큐를 잡는 노하우를 알려줬고.
아몬드는 그걸 숙지했다.
상의 시간 대부분은 그걸 얘기하는 데 쓰였다.
“대충 컨셉은 아몬드 님이 저를 끼고 고통스럽게 듀오를 진행하면 됩니다. 그게 보는 재미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네.”
마지막으로 풍선껌은 콘텐츠 포인트를 짚어줬다.
“잠깐 쉬었다가, 우리 방송 시간에 맞춰서 들어오죠. 간식 좀 먹겠습니다.”
“네. 갔다 오세요.”
뿅.
풍선껌의 아바타가 사라졌다.
‘구경 좀 할까.’
아몬드는 디스 월드 안에 남아서 조금 더 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여러 구역을 둘러본 뒤, 아몬드는 벤치에 앉아서 살아 있는 거대 공룡 인형을 관찰했다.
크오오오!
희한한 소리를 내면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한다.
묘하게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놈이다.
왠지 풍선껌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주혁 : 야 어떻게 된 거냐? 풍선껌 지금 방송 켜고 바나나 먹는데?]
간식을 먹으러 간다는 게 바나나였나보다.
[아. 잠깐 쉬고 방송 시간 맞춰서 만나기로 했어. 그새 방송을 켰나 보네.]
[주혁 : 아, 그래? 난 또 말아먹은 줄ㅋㅋ 어땠냐? 괜찮나?]
상현은 주혁에게 풍선껌이 누구누구를 소개시켜 줬다는 둥의 이야기를 했다.
[주혁 : 그래? 회사 크루를 소개시켜 줘? 그거 ㅈㄴ 좋은 신호 같은데?]
[왜?]
[주혁 : 그 매니저가 그랬거든. 풍선껌은 자기가 마음에 별로 차지 않으면 선을 정확히 긋는 편이래. 자기 사람들 소개는커녕 자기 채널에도 초대 안 한다던데?]
[그런 것치고는 정말 순식간에 초대하시던데…….]
마음에 들고 말고 볼 시간이나 있었나? 풍선껌은 아몬드를 만나자마자 정식 채널로 초대했다.
[주혁 : 거기 진짜 풍선껌 채널 맞냐? 그 채널은 방송에서도 안 보여준다던데.]
[오. 맞아. 나도 처음 봐. 여기 이상한 공룡도 걸어 다닌다.]
[주혁 : 맞네! 거기 아무나 부르는 거 아니래 ㅋㅋㅋ 이야! 무한! 호감! 아몬드!]
주혁이 좋아라 하는 걸 보니 풍선껌에게 나름 잘 보인 모양이다.
아몬드는 어안이 벙벙했다. 막상 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마음대로 했을 뿐이다.
피식.
상현이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새끼. 나 기 살려주려고 별소리를 다 하네.’
주혁이 거짓말을 한 거라고.
“재밌는 생각 해요?”
그때, 미호가 벤치 옆자리에 따라 앉으며 물었다.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는 아까의 그 옷이 아니라 평범한 후드티였다. 다행이다.
“아. 잠시 친구한테 메시지가 와서요. 옷 갈아입으셨네요?”
“뉴비한테 보여주기엔 좀 하드한 것 같길래.”
미호가 배시시 웃었다.
하얀 후드티와 그 모습이 훨씬 잘 어울렸다.
싱그러운 봄의 캠퍼스 안, 첫사랑이 될법한 여대생의 모습이다.
근데 왠지 아무 이유도 없이 날 차버리고 다른 선배랑 바람날 것 같은…….
‘뭔 생각이람.’
캠퍼스도, 여대생도 만나본 적 없는 아몬드의 기억이 왜곡될 지경이다.
“그나저나 풍선껌 아저씨가 아몬드 님 마음에 드셨나 봐요. 회사 사람들 다 소개시켜 주는 경우는 드문데.”
미호도 똑같은 말을 한다.
“그래요? 방금 만났는데…….”
“의외로 판단이 빠르시거든요. 게임할 때는 전혀 아니지만.”
이 대목에서 미호는 자기 말이 재밌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여튼 좋은 사람은 금방 알아보셔요.”
“아…….”
“그런데…… 아직도 우리 길드 가입하실──”
“아!”
아몬드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미호도 따라서 놀라 벌떡 일어났다.
“왜, 왜 그래요!?”
[방송 10분 전]
설정해 둔 알림이 켜졌다.
“저 방송 시간이네요. 다음에 또 뵙죠.”
“네?!”
팡!
아몬드는 곧바로 채널에서 사라져 버렸다.
“…….”
미호는 잔뜩 삐진 얼굴이 되어버렸으나, 시간을 확인하고는 표정을 풀었다.
“진짜네.”
하아.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벤치에 앉았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풍선껌의 얼굴을 본뜬 별자리가 찡긋 웃으며 놀리는 것 같았다.
“에라이!”
미호는 풍선껌을 향해 닿을 리 없는 돌을 던졌다.
* * *
저녁 6시.
띠링.
아몬드의 모든 팔로워들에게 알림이 쏘아졌다.
[아몬드 님이 스트리밍을 시작합니다!]
그 알림은 풍선껌에게도 도착했다.
“아. 이제 들어오시네요. 6시 반에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더 일찍 오셨군요!”
-와 ㄷㄷㄷㄷ
-초고수 입장
-개재밌겠누 ㅋㅋㅋㅋ
-ㄹㅇ 듀오함? ㅋㅋㅋㅋㅋ
-듀오 어케 함 랭크 차이 극심한데
-스쿼드 랭크는 아예 없어서 가능함
-아 스쿼드 ㅋㅋㅋ
-개재밌겠누 ㅋㅋㅋㅋ
-미호 님은 같이 안 함?
바나나를 허겁지겁 2개 정도 더 집어먹은 풍선껌이 인트로를 시작했다.
“자!”
쿵! 짝!
그에 맞춰 배경 음악의 드럼 소리가 딱딱 맞게 들어왔다.
“오늘!”
쿵!
마치 웅장한 영화 예고편 같았다.
-와! 채신기술!
-ㅋㅋㅋㅋDJ껌!
-개웃기네
-Mc Gum
물론 그것도 풍선껌이 하면 그냥 코미디일 뿐이다.
“천재 대 천재의 대결!”
-???
-누가 천재임??? ㅋㅋㅋ
-왜 둘 다 천재?!
“방송 천재 VS 게임 천재!”
-엌ㅋㅋㅋㅋㅋ
-미친ㅋㅋㅋ
-천재는 천재야~
-방송 천재 씹ㅋㅋㅋ
쿠궁!
점점 드럼 소리가 과열되기 시작한다.
“과연 승자는 누구일지! 지옥의 풍선껌 과외하기 콘텐츠 시작~~~~ 합니다아아!”
쿠웅──
음악은 곧이어 배틀 라지의 음악으로 바뀌었고.
낙하를 위한 헬기에 탑승한 채였다.
저격을 피하기 위해 방송 화면 밖에서 미리 큐를 잡아뒀던 것이다.
-??? 어느새?
-캬 이게 저격을 피하는 5만 스트리머의 피지컬 ㅋㅋㅋ
-언제 큐잡았누 ㅋㅋㅋ
-역시 풍
-근데 아몬드는?
헬기에는 수많은 아바타들이 섞여 있었다.
풍선껌처럼 커다란 배를 자랑하는 관종 아바타가 아니고서야 누가 누군지 잘 분간이 안 됐다.
그러던 중, 풍선껌이 건너편에 앉은 아바타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무난한 생김새의 남자 아바타.
“어디서 내릴까요?”
-오! 아몬드다!
-쒯!
-견과류! 하이!
-저게 아몬드 아바타여? ㅋㅋㅋ
-오우맨
그가 아몬드였다.
“음. 무기고로 가죠.”
아몬드는 건조한 음성으로 무기고로 가자고 결정했다.
풍선껌은 화들짝 놀란다.
“예……?”
첫판부터 무기고라니.
“무, 무기고요? 그거 맞아요?”
풍선껌이 되물었지만, 아몬드는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초보 때는 이게 잘 먹혀요.”
“…….”
망연자실한 풍선껌의 눈빛.
-풍선껌 표정 ㅋㅋㅋㅋㅋㅋ
-나라 잃은 돼지 ㅋㅋㅋㅋㅋ
-그건 니만 그래…….
-엌ㅋㅋ
-ㅅㅂ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풍선껌의 무기고 스타트 이거 귀하군요…….
아몬드는 아무래도 코치로서의 재능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