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08화
38. 교육 방송(2)
“괜찮죠?”
친절하게 물어오는 질문이었다만.
‘바, 방금 칼로 칼을 쳐낸 거지?’
풍선껌은 그게 무슨 협박이라도 되는 듯,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예, 예…….”
“여기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일단 2층으로 가서 활부터 찾죠.”
“예!”
쪼르르 아몬드를 따라가는 모습.
-캬 나 대학원 시절을 보는 것 같네
-이병! 풍! 선! 껌!
-ㅋㅋㅋ엌ㅋㅋㅋ
마치 쫄병 같은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한바탕 웃으며 놀리기 바빴다.
풍선껌은 악랄하게 놀려대는 시청자들을 보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야 방송이 잘되고 있으니까.
놀림을 받든 말든 일단 콘텐츠가 흥하면 스트리머는 기쁜 법이다.
[현재 시청자 5.5만]
평균보다 5천 정도 더 높은 시청자 수.
아몬드 채널의 사이즈를 고려해 봤을 때 이는 놀라운 성과였다.
‘역시는 역시네.’
역시 코칭 콘텐츠는 잘 먹힌다.
코치와 풍선껌의 엄청난 실력 대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딸려오는 호통과 고통!
언제 먹어도 든든한 국밥 같은 콘텐츠다.
‘엄청난 실력자가 고통받는 모습. 누군들 싫어하겠어.’
아직 아몬드는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지도, 고통을 받지도 않았다.
보통 그 둘은 같이 시작된다.
“오, 활!”
마침 아몬드가 2층에서 활을 주웠다.
사실 여기서부터가 본 게임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아몬드 님이 활을 집었습니다. 여러분! 어때요?! 기대되죠?”
-형 왜 해설을 하고 있어 ㅋㅋㅋㅋ
-국내 최초 캐스터형 플레이어
-십ㅋㅋㅋㅋㅋㅋ
-릴드컵인 줄 ㅋㅋㅋㅋ
* * *
아몬드는 힐끔 채팅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풍선껌 화력인가?’
[현재 시청자 1.1만]
다이아 승격전 이벤트 때와 비슷한 시청자가 나왔다.
아마 풍선껌의 시청자들이 건너온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몬드에게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었다.
풍선껌이 코치로 초대할 정도면 보통 엄청난 실력자들이었으니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부담감이 밀려왔다.
“후우.”
아몬드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어차피 부담감 같은 건 그에게 익숙한 감정이다.
그는 능숙하게 활을 들쳐 메고, 2층 난간 끝으로 걸었다.
“자, 여기서 지하 창고로 들어가려는 애들 쏘면 돼요. 무기고 1층에선 활이 유일한 원거리 무기니까 아주 유리합니다.”
흔히들 ‘언덕 궁수’라고 불리는 전술이었다.
풍선껌에게 설명해 봐야 아무런 효과도 없을 테지만, 아몬드는 일단 설명해 줬다.
“와. 그렇군요. 들었죠? 여러분? 잘 활용하시면 돼요~”
-형한테 말하는 거잖앜ㅋㅋㅋ
-아니, 왜 우리한테 ㅋㅋㅋ
-본인은 할 마음 ‘0’
풍선껌 본인도 잘 알고 있다.
자기가 무기고에서 활로 사람들을 쏴죽일 일은 없을 거라는 걸.
피식.
아몬드도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이제 쏠게요.”
기리릭.
아몬드가 활시위를 당긴다.
풍선껌의 방송에서 선보이는 첫 발이었다.
‘와…….’
풍선껌은 입을 떡 벌렸다.
‘실제로 보는 건 느낌이 달라.’
그 유려한 자세는, 실용적인 전쟁 궁술과 섞였음에도 켜켜이 쌓인 숭고한 우아함이 배어 있었다.
고작 활을 쏘는 자세 따위에 감탄할 줄 몰랐던 풍선껌은, 다급하게 중계를 시작했다.
“오오! 다, 당깁니??”
‘당깁니다!’라고 풍선껌이 말을 끝맺기도 전.
파바바방!
순식간에 화살 4개가 날아갔다.
손가락만 움직여서 활을 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른 연사였다.
-무친 뭐야!?
-벌써 나감?
-??
날아간 화살 4개는 각각 4명의 머리에 박혔다.
퍼버버벅!
동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제히 쓰러지는 넷.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비명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언덕에 궁수다!”
“아오!”
“빌어먹을!”
지하 창고를 향해 혈전을 벌이던 플레이어들에게, 이런 언덕 궁수만큼 분통 터지는 존재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몬드를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어…… 어!?”
풍선껌은 갑자기 어그로가 잔뜩 끌려 버린 이 상황에 당황했다.
‘이거 맞아?’
“풍선껌 님. 얼른 활 들고 쏴요!”
“아, 아. 저, 저도요!?”
-풍선껌 : 난 해설인데요?
-그럼 니도 쏴야지 ㅅㅂㅋㅋㅋㅋ
-아니, 그걸 뭘 묻고 있냐 ㅋㅋㅋㅋ
-안 쏘려고 했다는 게 학계 정설
풍선껌도 그제야 허겁지겁 활을 하나 찾아 들고 와서 언덕 밑을 조준했다.
‘아니, 나 활 거의 안 쏴봤는데?’
활은 처음이었다.
누가 배틀 라지에서 이런 똥템을 쓴단 말인가?
푹! 푹!
그러는 와중에도 아몬드의 화살은 적들의 이마를 꼬챙이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와, 씨…….’
풍선껌도 따라서 활을 당겨봤다.
대충 잡는 폼을 따라 하면 반은 가겠지…… 라고 생각하며 당긴 활시위.
기릭─
그는 시위를 놓으며 첫 발을 쐈다.
팅~!
소리부터가 뭔가 이상했다. 무슨 기타 줄 끊어지는 소리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날아간 화살은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면서 바닥에 꽂혀 버렸다.
-엌ㅋㅋㅋㅋㅋ
-이건 무슨 트릭샷임? ㅋㅋㅋㅋ
-와 이거 마구인가요!?
이럴 수가.
‘이, 이런 쓰레기였다고?!’
활이라는 무기는 상상 이상의 쓰레기였다.
그냥 제대로 쏘는 것조차 어렵다니.
왜 총이 신분제 해방의 시발점이 되었는지 알법했다.
이런 걸 아무것도 못 배운 평민들이 어떻게 제대로 쏘겠나?
“이,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여러분. 솔직히 배틀 라지하면서 누가 활 많이 쏴봅니까? 하하.”
풍선껌은 변명을 중얼거리며 다시 활을 집어 들었다.
두 번째 화살은 제대로 날아갔다.
피잉!
다만 사람을 맞히진 못했다. 그냥 허공을 갈랐다.
‘크, 큰일이다.’
풍선껌은 식은땀이 흘렀다.
본래라면 이렇게 두 번이나 실수한 상황에선 죽어야 마땅했다.
특히나 여기가 무기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
“…….”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
바로 옆에 저 인간 덕이다.
파앙!
팡!
파앙!
살아 있는 터렛처럼 화살을 발사해 대는 아몬드 덕에, 적들은 감히 풍선껌 쪽을 노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미쳤다 ㄹㅇ
-와, 나 저 짤 본 적 있어. 인간 터렛 아몬드! ㅋㅋㅋㅋ
-이게 견과류입니다. 으딜 껌 따위가!
채팅창도 풍선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쳤다…….’
나이 마흔 가까이 먹고 누군가의 게임 플레이를 보면서 이렇게 감탄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몬드의 활 솜씨는 진짜 귀신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아무런 군더더기도 없는 동작들, 그리고 호흡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격발.
시위를 당길 때의 활은 마치 버그가 걸려 그 자리에 고정된 것마냥 미동도 없었다.
시위를 당길 때 얼마나 큰 힘이 들어가는지를 고려하면 정신이 나간 수준의 밸런스 조절 능력이었다.
시위를 당기는 힘과 활을 지탱하는 힘이 정확히 일치해서 +-0이 되어 이루는 균형.
그걸 아몬드는 숨 쉬듯이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무려 4연사를 계속 쏘아댄다.
그 4발의 화살은 전부 상대의 급소로 향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몬드의 담력이다.
‘저게 말이 돼?’
적들이 칼이나 도끼를 자신을 향해 던지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대로 활로 쏴서 맞혀 버렸다.
탕! 탕!
공중에서 요격되어 떨어지는 날붙이들.
심지어 풍선껌을 향해 던진 것들도 전부 떨어졌다.
아몬드는 처음부터 자기가 전부 쳐낼 수 있다는 걸 확신한 듯이 미동도 없었다.
“풍선껌 님도 쏴보세요. 연습해야죠.”
그는 풍선껌에게 이렇게 코치도 할 여유까지 있었다.
오히려 가르침 받는 풍선껌이 여유가 없어 당황하고 있다.
“아, 네, 네!”
풍선껌은 결의에 찬 눈으로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누구나 처음엔 못 쏴요. 그냥 맘 편하게 당기세요.”
‘아니잖아…….’
아몬드는 처음부터 잘 쐈다.
내가 봐서 안다고! 게임 켜자마자 잘 쐈잖아! 풍선껌은 그렇게 생각하며 어찌 됐든 활을 당겼다.
입에 발린 위안이라도 어쨌든 들으니 용기가 생기긴 했다.
“호흡을 멈추고, 잠시 다른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고 쏘세요.”
흡.
풍선껌은 호흡을 멈추고, 집중했다.
그의 시선은 무기고 밖으로 도망치는 적의 등을 쫓았다.
‘다른 공간에 있다…….’
아몬드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활시위를 놓았다.
파앙!
날아간 화살은 일직선으로 쭉 공기를 가로지르더니, 적의 등짝에 그대로 푹, 꽂혔다.
“으어억!”
철퍽 엎어진 그의 머리 위로 화살이 하나 더 꽂혔다.
푹!
아몬드가 한 발 더 쏴서 마무리를 지은 것이다.
“오!”
비록 죽이지는 못했지만 풍선껌은 자신의 화살이 맞았다는 것 자체에 놀랐다.
물론 상대가 아몬드에게 겁먹고 허겁지겁 도망가는 중이어서 쏘기 훨씬 쉽긴 했다.
-무슨 동물 사냥하누 ㅋㅋㅋ
-캬! 상황을 그냥 다 만들어놓고 쏘게 하네
-이럴 수가 ㅋㅋㅋ 실전인데 훈련 같네
-베스트 코치 아몬드!
-이게 코치지
-코치(물리)
풍선껌도 알고는 있었다. 이건 실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몬드가 거의 정리해 놓은 상황을 마무리 지으면서 연습하는 식이었다.
‘근데 뭔가 자신감이 솟는 기분이야.’
그런데 그게 또 효과가 있었다.
풍선껌같이 자신감이 부족한 부류는, 이런 상황이라도 만들어서 ‘승리 경험’을 부여해 주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피식.
아몬드든 그런 풍선껌을 보며 코치가 잘되어간다고 느꼈다.
“계속 그렇게 쏘세요. 저도 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그는 1층의 적들을 향해 계속 활을 쏴댔고.
풍선껌도 덩달아 활을 쐈다.
파앙! 팡!
이제 두 발 중 한 발 정도는 맞히게 되었다.
“좋아. 여러분. 한 놈 더 간다!”
풍선껌은 자신의 상승한 실력에 취해 외쳤다.
그런데, 시야 끝에 누군가 보였다.
건너편 2층 난간이다.
‘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몬드처럼 언덕 궁수 플레이를 하는 놈이 하나 있었다.
다른 점은 그 녀석은 1층이 아니라, 2층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다.
‘이런.’
씨익.
눈이 마주친 놈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고,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았다.
파앙!
화살이 쏘아졌다.
미리 봤지만, 반응이 느린 풍선껌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몸은 가위라도 눌린 듯 움직이질 않았고, 머리로만 생각이 빗발쳤다.
‘어쩌지?’
화살촉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아, 아몬드!’
풍선껌의 눈이 천천히, 힘겹게 움직여 아몬드를 쳐다봤다.
‘구해줘!’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그러나 보이는 건 아몬드는 등뿐이다.
그는 1층 유저들에게 활을 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망했다.’
풍선껌의 동공이 흔들리며, 절망이 깃들었다.
흐릿한 시야 끝에서 가까워져 오는 화살이 느껴진다.
저건 머리로 올 것이다. 이대로 맞으면 그대로 전투 불능이 될 터다.
그 순간.
캉!
“……엥?”
날아오던 화살이 화살과 부딪혀서 떨어졌다.
“미친!”
건너편에서 쏜 플레이어가 뱉은 욕이 여기까지 들렸다.
어떻게 된 거지?
-????
-뭐여?
-헐
-이게 그 커브샷?
-커브가 저렇게까지 되냐!?
커브샷?
풍선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채팅을 봤지만, 커브샷이라는 게 뭔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건너편에도 적이 있었네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는 아몬드가 중얼거렸다.
그것으로 아몬드가 화살을 쳐내준 것은 알 수 있었다.
‘아몬드가 맞힌 거야?’
대체 어떻게?
정답은 다음 순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피유웅!!
아몬드의 화살이 다시 쏘아진 것이다.
그런데 그 경로가 기이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각도로 꺾어졌고.
급기야는 건너편에 있던 언덕 궁수의 이마에 꽂혔다.
‘대, 대체 이게 몇 도나 꺾인 거야?’
거의 180도에 가깝게 경로가 틀어졌다.
전방을 보고 있던 아몬드가 어떻게 후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는지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방금 보여준 화살보다 더 꺾이게 쏴서 맞힌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가는데.
믿기지 않았던 풍선껌이 물었다.
“설마 아까도 이걸로 맞힌 거예요!?”
“예. 이건 커브샷이라는 건데, 꽤 유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된다고? 라는 문장이 풍선껌의 얼굴 전체에 도배된 듯한 표정.
-엌ㅋㅋㅋ
-미쳤누 ㅋㅋㅋ
-버그 아녀?! ㅁㅊ
“버그 아니고 실제 활로도 된대요. 영상에 있습니다. 시위 중앙이 아니라, 비껴서 걸면 그 각도에 따라 많이 꺾여요.”
아몬드는 다시 밑의 적들을 향해 활을 쏘면서, 시청자들에게 설명까지 해주고 있다.
-믿을 수가 없다!
-아니, 실제로 된다고 그걸 또 실제로 한다는 게 말이 됨?
-헐ㅋㅋㅋㅋㅋ
-와, 아몬드 듣던 거보다 더 지리네
-아니 ㅅㅂ ㅋㅋㅋㅋ 진짜 신세계네!?
-이건 밸붕 아냐??
풍선껌의 5만 시청자 중, 아몬드를 보지 않는 자들도 다수였는데.
‘와 저거 될 놈이네…….’
풍선껌은 생각했다.
아마 앞으로는 저들도 아몬드의 방송을 보게 될 것 같다고.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 아몬드는 자신의 방송보다도 더 커질 것 같다고.
그나저나…….
‘근데 왜 아몬드가 고통받는 장면이 안 나오지?’
너무 몰입해서 플레이하느라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뭔가 방송이 흥하고는 있는데.
본래 컨셉대로는 안 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