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17화
41. 저스트 채팅(2)
대낮부터 포차식 술집에 두 아재가 모였다.
“아. 형님 오랜만입니다.”
먼저 와 있던 풍선껌에게 한 남자가 인사를 건넨다.
“오. 타코야. 아니, 너 머리가!?”
풍선껌은 일어서서 그를 맞이하다가 깜짝 놀란다.
어쩐지 갑자기 포차 안의 조도가 밝아지더라니.
머리에서 번쩍이는 빛이 발광하고 있었다.
“아…… 하하.”
타코라고 불린 남자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폐관 수련한다더니, 머리 밀어버린 거야?”
“아뇨.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풍선껌은 일단 앉으라는 듯, 그의 컵에 물을 따른다.
“그럼? 왜 갑자기 또 대머리가 됐는데? 애써 머리 다 심어놓고!”
“형, 형님. 목소리 좀만…….”
다행히 이 시간부터 포차에 있는 사람은 주인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타코야끼는 창피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종업원 둘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창피한 거였어? 근데 왜 밀어.”
“민 건 안 창피한데, 심었다는 게 쫌…….”
“아.”
풍선껌은 대번에 이해했다.
20대 중반에 탈모가 와서 머리를 심었었던 타코다. 그것도 나름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일 터다.
풍선껌은 머리를 바싹 붙이고 속삭여 물었다.
“그래서 왜 밀었냐고.”
“그게 말하자면 깁니다……. 일단…….”
* * *
보글보글.
앞서 주문한 푸짐한 해물탕이 끓는 동안.
타코야끼는 설명을 다 마쳤다.
요약하자면 배틀 라지에서 아이템 풀파밍 상태로 1등을 무조건 할 각이 나왔었는데.
아몬드에게 그 1등을 빼앗겼다고 한다.
심지어 그게 엄청나게 중요했던 다이아 승격전이라, 아몬드의 올튜브에도 그대로 박제될 것 같단다.
“그러니까 아몬드한테 발려서 이겨보겠다고 머리를 밀었다? 이거 미친놈 아냐?”
“아니, 왜요. 진짜 쪽팔리다구요. 이미 커뮤니티에서도 저인 거 알아보고 극딜 박는 놈들 있어요. 폐관 수련한다더니 뉴비한테 발리냐고.”
“아몬드가 어딜 봐서 그냥 뉴비…… 아니, 그나저나 그거랑 머리랑 뭔 상관이냐고!?”
“몰라서 물어요? 제가 폼이 제일 좋을 때가 이…….”
탁. 탁.
그는 반짝이는 머리를 쳐 보인다.
“대머리일 때잖아요.”
그거 그냥 애들이 너 놀리려고 만든 밈이야…….
이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던 풍선껌.
그러나 차마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이미 머리를 밀지 않았는가?
“그, 그래도 이거 다시 자라는 거지?”
“그럼요. 말 그대로 심었는데요. 오히려 이렇게 머리 시원하게 오픈하면 탈모에 더 좋아요. 두피 온도가 내려가서.”
“그래. 다행이다.”
탈모에 관해서는 타코야끼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테니 풍선껌은 그냥 넘어갔다.
다만 꼭 말해야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야. 너 그럼 지금 배틀 라지 연습하고 있어?”
풍선껌은 해물탕 위에 거창하게 얹어져 있는 문어를 잘라 가져가며 물었다.
“아. 그렇죠. 아몬드 지금 다이아 4티어인가 그렇던데, 저도 거의 거기까지 갔습니다. 나름 연승해서 MMR도 비슷할 거예요.”
‘역시…….’
역시 이 녀석은 모르고 있다.
“야. 내가 얼마 전에 아몬드랑 합방했잖아.”
“아. 그렇죠. 그거 좀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어땠어요?”
타코 역시 문어를 조금 잘라서 자신의 그릇으로 가져갔다.
타코는 ‘어우. 아주 쫄깃하네’ 감탄을 연발하며 문어를 뜯어먹었다.
풍선껌은 그 광경이 묘하게 잔인하다고 생각됐다.
마치 동족을 먹는 듯한…….
“형님? 어땠냐니까요?”
“아. 그, 그래. 음…….”
풍선껌은 다시 한번 아몬드와의 방송했던 경험을 돌이켜 봤다.
“생각보다 사람 좋아.”
“그래요?”
“어. 생긴 건 완전 연예인인데, 희한하게 되게 친숙하고…….”
“오. 그렇구나.”
“일단 뭐랄까 속이 깊어 보이더라. 나이는 나보다 10살이나 어린데.”
“그래요? 왜요? 그걸 형님이 어떻게 알아요.”
“아니, 왜. 그냥 내 나이쯤 되면 사람을 만났을 때 분위기에서 바로 내공 같은 게 좀 느껴지거든.”
“허…….”
타코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이다.
풍선껌이 허겁지겁 변명하듯이 덧붙인다.
“꼰대 같은 말이 아니라 진짜야. 너도 20대 때보단 지금이 사람 보는 눈 훨씬 좋잖아.”
“음. 그렇죠.”
“내 말도 그런 말이야. 40대는 30대랑 또 달라. 여튼 그 사람 단단해 보였어. 안쪽에서부터 뭔가 딴딴~한 느낌.”
“어렵네요.”
가져갔던 문어를 다 먹은 풍선껌은 다시 전골냄비 위의 문어를 잡고 자르며 말했다.
“엄청난 전문가나, 아무것도 없이 혼자서 인생 해쳐나온 사람의 아우라 같은 게 있더라.”
“실력은 확실히 전문가 맞던데요. 참 내, 어디서 그런 괴물 놈이 나왔는지. 걔 게임 얼마나 했는지 보셨어요?”
“어. 얼마 안 됐잖아. 이제 한 달인가?”
“이거 세상 진짜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불평하는 듯한 말과는 다르게 타코는 특유의 푸드덕거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런 천재들이 한 번씩 나오니까 세상 사는 게 재밌는 거겠죠.”
그는 한때 릴(LIL) 프로게이머였다.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한국 리그에서도 1부 주전으로 뛰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그곳엔 정말이지 천재, 괴물들만 득실거렸다.
천재 앞에 주눅 들거나 열등감을 느끼기엔, 타코 역시 이런 쪽으로 닳고 닳은 인간이다.
“1부 주전으로 뛰던 너도 천재야. 타코야, 날 봐봐. 만년 스톤즈에 브론즈잖아.”
풍선껌의 농담에 타코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풍선껌의 다음 말을 듣고는,
“아! 맞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아까 말하려 했는데. 아몬드 이제 배틀 라지 안 한대.”
“예?!”
탁.
타코가 자르던 문어가 해물탕 안으로 풍덩 들어가 버렸다.
“앗, 뜨거!”
* * *
“앗! 아몬드 님!”
꺄아!
유하연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보는 것처럼 반가워했다.
이전에 봤을 때하고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촬영장에서 봤을 때랑은 다르네.’
아무래도 여긴 디스 월드이고, 공식 인터뷰가 아니라서 격식을 덜 차리는 걸까?
-하연 찡ㅠㅠㅠㅠ
-포브스 선정 유하연이 반가워하는 스트리머
-포브스는 이제 순위도 안 매기누 ㅋㅋㅋ
-누나아아아
-뭔데 하연 누나가 이리 반가워하냐!? 어?! 아몬드 너 뭐냐!?
판타지아의 디스 월드 채널은 화사한 꽃밭이 주욱 늘어진 들판이었다.
마치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환상적인 색감의 공간이었다.
그 위에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손을 흔드는 유하연의 모습은 거의 환상에 가까웠다.
시청자들이 질투 섞인 후원과 채팅을 치는 이유를 알법했다.
“안녕하세요.오랜만이네요.”
“네! 여기 앉으세요.”
꽃이 가득한 들판 한 가운데 놓여진 하얀 테이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야외 결혼식에서나 쓸법한 디자인이다.
‘생각보다 뻘쭘하네.’
아몬드는 잠시 주변을 슥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이 꽃밭이다.
지금 아몬드와 유하연은 이 넓은 꽃동산에 단 둘이 앉아 있었다.
심지어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구도였다.
유하연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마주 앉으니 좀 부담스럽죠? 근데 이게 시청자님들이 보기엔 더 좋아요. 그렇죠?!”
유하연이 아몬드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물었다.
시청자들 대부분은 아몬드의 1인칭 시점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옳소!!
-누나 나 죽어어어어어!
-ㄹㅇㅋㅋ지 이건
-아몬드가 방송을 모르네~~
-누나가 무적권 옳음
‘허…….’
채팅 꼴을 보니 유하연이 뭐라고 해도 어차피 유하연 편을 들 게 뻔해 보였다.
유하연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 덕분에 시청자들을 조련하는 데 있어서 거의 스페셜리스트나 다름없었다.
“자. 그럼 앉아주세요.”
이젠 자리를 잡고 앉은 유하연이 손을 내밀어 앞을 가리켰다.
아몬드는 별수 없이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선. 사진 한 방 찍죠.”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포근한 들바람이 꽃잎을 한 아름 싣고 불어왔다.
사아아아아──
유하연은 얼른 양손을 올려 카메라 프레임을 만들었다.
엄지와 검지가 만든 어색한 네모 안엔 꽃바람에 천천히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아몬드가 담겨 있었다.
바람에 흐트러진 머리를 잠시 정리하던 아몬드의 눈이 카메라 프레임을 향했다.
정확히는 프레임 너머의 커다란 눈을.
“……이게 찍은 거예요?”
두근.
순간 심장이 튀어나올 듯했지만, 유하연은 프로답게 아무런 내색 없이 대답했다.
“네. 잘 나왔어요.”
방금 저게 사진을 찍은 거라고? 아몬드는 이게 장난인지 뭔지 구분이 안 갔다.
이럴 땐 보통 시청자들이 답을 알고 있었다.
-아몬드는 아가야. 디스 월드 같은 거 몰라
-디스 월드 기능임ㅋㅋㅋ
-아리둥절ㅋㅋㅋㅋ
보아하니 디스월드엔 당연한 기능인 모양이다.
채팅을 읽는 시선을 눈치챈 유하연이 물었다.
“지금 시청자 많아요? 몇 명이세요?”
“인터뷰 질문인가요?”
“네. 그렇다고 치죠.”
“저번에 하던 거 하고는 되게 다르네요.”
딱딱하게 벽을 치는 아몬드를 조금은 허물어보려는 듯 그녀가 싱긋 웃었다.
“공식 촬영장에서 하는 것처럼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음…….”
아몬드는 시청자 수를 확인했다.
[현재 시청자 1.5만]
여전히 엄청난 시청자 수였다.
“1.5만 명이네요.”
“헉.”
유하연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나 많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와. 역시 이건 전자파의 기록을 꺾은 영상이 오늘 업로드가 돼서 그런 걸까요?”
자연스럽게 인터뷰스러운 질문으로 넘어간다.
“확실히 그 이후로 크게 상승했습니다. 채널 구독자 수도 그렇고, 시청자 수도 그렇고.”
“와! 잘됐네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
혼자서 신나게 박수를 치는 유하연.
아몬드는 바로 옆에서 봐도 정말 신기했다. 유하연은 채팅창을 보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아무 호응도 없이 저렇게 리액션을 할 수 있을까. 방송 짬이라는 게 괜히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럼 앞으로의 목표는 뭘까요?”
-오오 누나가 우리가 묻고 싶은 걸 묻네 ㅋㅋㅋ
-아몬드는 앞으로 광고만 한답니다!!! 질문 내려주세요!
-ㅋㅋㅋㅋㅋ오늘 무슨 광고가 좋겠냐고 물어보던데!
-엌ㅋㅋㅋ 하연찡이 이 채팅을 봐야 함.
“혹시 다이아에 이어서 최단기간 마스터?”
“음. 아뇨.”
“예? 아니에요?”
“예. 배틀 라지는 이제 슬슬 그만할 생각이에요.”
“여, 여기 판타지아 디스 월드 채널인 거 아시죠?!”
당황한 유하연이 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패기 보소
-ㄹㅇㅋㅋ
-마스터는 왜 안 가 ㅠㅠ
-헐 그럼 설마! 키…… 킹…….
“알죠. 뭐…… 판타지아도 게임이 배틀 라지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네. 그렇긴 하죠.”
“이번에 새로 론칭하는 ‘망나니 용사 키우기’ 같은 게임도 있잖아요?”
아몬드는 은근슬쩍 어필용으로 광고를 해줬다.
어차피 받을 광고인 데다가 여긴 판타지아 채널이니 아무런 문제도 없으리란 계산이 끝난 것이다.
-???
-저게 뭔데.
-그게 뭔데 씹덕아!
-??나만 모름?
-아니, 시발 이거 광고 같은뎈ㅋㅋㅋㅋㅋㅋㅋ
-또 속였어! 아몬드! 이건 광고잖아!
“어? 그 게임 저도 알아요! 이번 년도 엄청난 기대작이죠?”
유하연이 옳다구나 하고 받아쳤다.
아직 광고도 한 번 안 한 미발매 게임을, 서로 당연히 안다는 듯이 콩트를 주고받고 있었다.
-와 ㅈㄹ났다! 아몬드!
-아몬드 자본주의 미소 개킹받네ㅋㅋㅋㅋ
-엌ㅋㅋㅋ 하연찡 반속 피지컬 미쳤누 ㅋㅋㅋ
-기대작? 처음 들어보는데
-아니, 검색해 보니까 아직 클베도 안 한 거임ㅋㅋㅋ
“예. ‘망나니 용사 키우기’ 같은 거도 있으니까. 뭐…… 배틀 라지 안 한다고 섭섭해하실 필요는 없으시죠.”
“그럼 ‘망나니 용사 키우기’를 하실 건가요?”
“아뇨. 그건 모르겠네요.”
-모르긴 뭘 몰라 무자식아 ㅋㅋㅋ
-론칭도 안 한 걸 뭘 고민하는 척하냐 당연히 못 하짘ㅋㅋㅋ
-엌ㅋㅋㅋ
“그럼 다음 게임은 뭔가요? 아님 목표?”
유하연이 다시 집요하게 물었다.
아몬드는 주혁과 이미 정해두긴 했지만 발표는 미루기로 했던 걸 떠올렸다.
그런데 딱히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말해도 될 것 같아.’
그의 직감이 말해줬다.
지금이 적기라고.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 * *
어두컴컴한 방.
오늘도 커다란 화면만이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휠체어 위의 여자를 비추었다.
[예. 그런 것도 있으니까. 뭐…… 배틀 라지 안 한다고 섭섭해하실 필요는 없으시죠.]
[그럼 뭘 하실까요?]
그녀는 진한 호박색의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다.
한동안 끊었다가 간만에 입에 대는 술이다.
한참 기분이 좋은 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릴(LIL)이란 걸 해볼까 합니다.]
쨍그랑!
크리스탈 잔이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