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24화
44. 노말대전(1)
한편, 릴의 최대 커뮤니티 ‘릴프로’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신입 활쟁이 아몬드의 레이나 튜토리얼.jpg]
움짤도 아닌 단순 스크린 샷을 나열한 불성실한 게시물이었으나.
어차피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사진이면 충분했다.
사진 속엔 레이나가 만든 수십 개의 타깃이 떠 있었다.
-타깃 개수 뭐냐?
-저게 뭐임……? 버그야?
-빅프로~
-빅프로!
-튜토리얼 맞음?
└병사들 복장 보니까 튜토 맞는데
-튜토에서 훈련시키려고 많이 만들었나? 실제로는 제한 있지 않아?
└화신이랑 친밀도에 따라 다를걸
└저 정도 뜨려면 친밀도 만렙 찍어서도 좀 힘들 텐데.
-아, 아몬드네. 얘가 걔임? 전자파 이겼다는?
└이기긴 뭘 이겨 ㅄ아
└vns 수치 하나 이긴 걸로 무슨 ㅋㅋㅋ 숨 오래 참으면 수영 잘하누?
└다이아 최단기록도 깼다는데?
└지랄하네 그건 전자파가 그냥 대충한 거고
└죽어도 인정 안 하죠? 죽어도 인정 안 하죠? 죽어도 인정 안 하죠? 죽어도 인정 안 하죠?
.
.
.
댓글들도 다들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늘 그렇듯이- 전자파 팬덤과의 싸움이 시작되어 버렸지만.
어찌됐든 결과는 좋았다.
[빅 195] [릴 6]
순식간에 추천 수(빅) 195를 받으며 ‘빅프로’라고 불리는 게시판에도 노출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혁은 처음 보는 표현들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빅……? 릴?”
아마 ‘Lil(릴)’이 ‘Little(리틀, 작다)’의 슬랭식 준말인 것에서 착안된 용어 같았다.
Lil은 별로인 거고, Big은 좋은 거다.
빅을 많이 받은 게시글은 ‘빅프로’라는 게시판으로 옮겨지는데. 여기는 순위가 매겨지지 않는 이슈글 차트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됐다.
“복잡하네.”
게임 커뮤니티들은 제각각의 용어와 특색이 강해서 처음 적응할 때마다 참 힘들다.
“어쨌든 빅프로에 갔으니 됐지.”
어찌 됐든 간에 주혁의 계획은 성공적인 듯했다.
[현재 릴프로 게시판에 아몬드 언급 중 ㅋㅋ]
사실 저 게시글이 빅프로에 가게 만든 건 주혁이었다.
그가 릴프로 게시판에서 저 글을 발견하자마자 기존 아몬드의 팬층이 많았던 배라31과 킹치만에 링크를 띄웠던 것이다.
그 후, 아몬드의 팬들이 몰려와 릴프로에 몰려가서 ‘빅’을 마구 눌러준 덕에 빅프로 게시판으로 아몬드에 관련된 글이 노출됐다.
“좋아. 아직 화력 살아 있구만.”
아몬드의 팬층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주혁은 미소 지었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
주작 아니냐? 여론 선동 아니냐?
그딴 건 전혀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커뮤니티 세계라는 곳은 정글이었다.
이제 주혁도 그걸 여실히 알고 있었다.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
살아남는 글이 이슈가 된다!
그리고, 마침 아몬드 역시 또 다른 정글에 내던져지고 있었다.
* * *
“아 씨발 레벨 1이잖아?”
아몬드가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듣게 된 말이다.
아무래도 계정 레벨이 1이라서 하는 소리다.
‘와우.’
예상은 했지만, 시작부터 텃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오우 쒯 ㅋㅋㅋ
-포스 넘치네, 다스베이더니?
-아ㅋㅋㅋ 노말에서 뭔 가오를 저렇게 잡아
-확 그냥 아오…….
-모두 외쳐주세요! “멈춰.”
옆의 친구도 거든다.
“그러게. 재수 옴 붙었네. 제기랄.”
“하. 아무리 노말이어도 그렇지 무슨 큐가 이렇게 잡히냐.”
릴에선 실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본인만 본인 신체를 제대로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한 화신의 형태로 보이거나, 설정한 아바타로 보였다.
저들이 설사 아몬드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알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아몬드의 닉네임은 지금 ‘망나니 용사’였다.
“야. 망나니야. 그냥 서폿이나 가라.”
당황스러울 정도로 뻔뻔한 말투.
아몬드는 기분이 나쁜 걸 넘어서 놀라움을 느꼈다.
‘이게 릴인가.’
시작부터 쌍욕을 하고, 명령조 어투에 반말이 기본이다.
더 놀라운 건 릴에선 이게 그다지 비매너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에 갔으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했던가.
아몬드도 별수 없이 그 룰에 따르기로 했다.
그러니 뭔가 세 보이는 말을 해야 하는데…….
「쌍현. 임마. 넌 체육 한다는 시끼가 입이 너무 예의가 발라. 어? 평소엔 예의가 발라도, 게임에선 그런거 읎다! 자 따라 해봐라 ‘───!’ ‘──!’」
사실 바로 사회인이 되어버려서 거의 쓸 일이 없던 옛날 국대 축구 선배의 팁.
그러고 보니 팀 게임을 하는 축구와 릴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상현은 거의 10몇 년 만에 그의 팁을 활용해 보기로 한다.
“───! ──!”
쿵!
아몬드는 눈 딱 감고 냅다 레이나를 선픽으로 박아버렸다.
기분은 이상한데, 속은 후련했다.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
-후련~
-헐ㅋㅋㅋㅋ 아몬드 욕하는 거 첨 봐
-학창시절 on!
-ㄷㄷㄷ
-이게 진짜 인싸지 ㅋㅋㅋ엌ㅋㅋ
-아이 시원해! 이게 인싸지!
-ㄷㄷㄷ 학창시절로 풀다이브하는 느낌입니다. 형님.
-“멈춰.”
1렙이라 아무 말도 못할 줄 알았는지, 대기실에선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
쌀쌀 맞은 레이나의 목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다.
〔다시 날 선택하다니. 용기는 가상하네.〕
아몬드의 손에 푸른 활 데미안이 쥐어지고, 어깨 위로는 푸른 망토가 둘러졌다.
‘레이나?’
‘저거 지금 레이나야?’
레이나를 고른 것을 알고는, 몇몇은 입이 근질거렸으나…….
그 선배의 가르침 덕일까?
그냥 아무 말도 안 했다.
오히려 아까 욕을 했던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
“병신들아. 그냥 입이나 다물고 있지. 왜 괜히 자극해서 레이나 고르게 하고 지랄이야. 어차피 노말인데.”
“맞아. 그냥 내가 서폿 할게요. 그나저나 레이나라니 너무 어려운 거 고르셨네. 얼굴 보고 고르셨나?”
어떻게든 각자의 포지션이 맞춰지고 있었다.
게임이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몬드도 아까의 싸가지 없는 듀오가 거슬렸으나. 일단 게임만 신경 쓰기로 했다.
‘그래. 내 플레이만 신경 쓰자.’
어차피 이건 노말 게임이다.
내 플레이만 잘 연습하기 위해 하는 게임이지, 꼭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다들 라인 정했죠?”
“예.”
“갑시다.”
모두가 준비를 마쳤다.
쿵. 쿠궁.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5초 뒤 전장에 진입합니다!]
[5]
사방이 컴컴해진 후.
[4]
[3]
.
.
.
[1]
쏴아아아아……!
순식간에 하얀 빛이 눈을 강타했다.
드높은 산맥과 깎아지른 계곡이 눈앞에 펼쳐졌다.
쿠오오오옹!
에픽 몬스터인, 드래곤의 포효 소리도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시작이다.’
[전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첫 번째 전장의 시작이었다.
* * *
막상 전장에 들어오니, 플레이어들은 별로 말이 없었다.
그들은 시작하자마자 각자의 라인 탑(Top), 미드(Mid), 정글(Jungle)로 달려가기 바빴다.
아몬드는 바텀(Bottom).
지도상의 남쪽 하단을 가게 되며 거기서 ‘원거리 데미지 딜러’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 원딜러들은 대미지는 폭발적이지만, 보통 초반에 너무 약해서 자신을 보호해 주는 서포터와 함께 행동한다.
그래서 서포터 역시 바텀으로 함께 이동한다.
“쪼렙님.”
바텀을 향해 달려가는 아몬드 옆으로 서포터가 따라붙어 말을 걸었다.
“예?”
“쪼렙님. 정글 리쉬는 할 줄 아시죠?”
정글 리쉬?
사실 모른다.
그냥 영상으로만 봐서 안다.
상대도 아마 정말로 할 줄 아냐고 물어본 건 아닐 거다. 그냥 뭔지 아냐 정도로 물은 것이지.
아몬드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포터는 아몬드가 잘 모른다고 느꼈는지 설명을 덧붙였다.
“저 따라오세요. 리쉬는 정글러가 몬스터 빨리 먹고 갱킹이나 카정 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거예요.”
“아…….”
수많은 전문용어가 뒤섞인 문장들.
‘무슨 처음 취업했을 때 같네.’
처음 취업해서 온갖 외래어와 무역 관련된 전문 용어들을 들었을 때 느낌이다.
외계어를 듣는 것 같았다.
다행인 점은 상현은 그래도 그간 릴 방송을 수차례 봐왔단 점이다. (그게 풍선껌 방송이라 문제다!)
그래도 정글러가 뭐하는 포지션인지 정도는 안다.
탑, 미드, 바텀 세 라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숲을 돌아다니면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포지션이다.
그렇게 레벨을 올려서 아군 라이너와 함께 적 라이너를 기습하기도 하는데. 그게 갱킹(Ganking)이다.
이 갱킹이 빠르고 수월하게 이뤄지게끔 첫 번째 몬스터를 같이 때려주는 게 리쉬(Leash).
그게 지금 이 서포터가 설명하고 있는 행위였다.
“자. 여기서 대기하다가 몬스터가 나오면, 제가 몸빵하고, 용사님이 때리면 됩니다.”
-용사님ㅋㅋㅋㅋ
-닉이야 닉ㅋㅋㅋㅋ
-사람 이름이 어떻겤ㅋㅋㅋㅋ
-용사님ㅋㅋㅋ
-눈을 뜨세요 용사님!
“아…… 네.”
아몬드는 일단 시키는 대로 몬스터가 나오길 기다렸다.
“얼마나 때려야 되죠?”
“적당히 죽지 않을 정도로요. 정글러가 돈이랑 경험치를 먹어야 하고, 저희도 저희 라인 먹어야 하니까. 딱 그 선을 지키면 돼요.”
계속해서 이어지는 친절한 설명.
아몬드는 이 서포터가 마음에 들었다.
“알겠습니다.”
비록, 정글러 놈은 아까 쪼렙이라고 무시하던 탑 라이너 놈의 동료이지만.
그는 이 서포터를 위해서라도 리쉬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수민 님이 미션을 등록하셨습니다!]
[오빠 1승 가자! 화이팅!]
[첫 승리] [10만 원]
아몬드는 오른쪽 관자놀이를 눌러 게임 마이크를 끄고 대답했다.
“오. 수민 님 미션 감사합니다. 이겨볼게요.”
오물거리는 입을 서포터가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귓말이 왔나 보구나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자. 나옵니다.”
쿠구구궁……!
땅이 진동하더니, 무너져 내리며 흙으로 변했다. 거기서 갑자기 집채만 한 늑대 3마리가 튀어나왔다.
[회색 늑대]
정글러가 잡아야 할 몬스터였다.
정글러는 서포터에게 몸빵을 하라는 듯 잠시 뒤로 물러났고.
탱커형 화신을 고른 서포터는 빛나는 방패를 들고 앞으로 달렸다.
크르르르!!
늑대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사람 팔뚝만 한 송곳니로 서포터의 방패를 짓눌렀다.
쿠웅──
그 순간.
“자! 드가즈아!”
정글러가 야만적인 양손 도끼를 휘두르며 늑대의 목을 베어버렸다.
촤악!
“어이! 쪼렙 양반도 쏴!”
정글러가 홀린 듯이 도끼를 휘두르며 외쳤다.
〔타깃팅〕
그때, 레이나의 음성이 들려오며 늑대의 몸 곳곳에 작은 타깃들이 형성됐다.
〔네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구현했어.〕
‘왜 저렇게 작지?’
늑대가 커서 그런가? 갸우뚱했지만.
실제로 사람의 엄지손가락 정도 크기였다.
튜토리얼이 끝나서 크기 보정이 사라진 것 같았다.
대신 개수는 넉넉했다.
한 15개 정도.
저곳을 가격할 때마다 공격력이 증폭되면서 폭발적인 피해가 발생할 터다.
‘좋아. 죽기 직전까지랬지.’
아몬드는 저 중에 약 절반 정도를 맞혀보기로 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파지지직……!
그의 손에 푸른 마나가 깃든 화살이 생겨났다.
파앙!
첫 발이 격발됐다.
펑!
엄지손가락만 한 타깃이 폭발했다. 그것도 정중앙이.
“……뭐?”
방패로 열심히 막던 서포터는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타깃을 한 번에?’
레벨 1짜리가 악명 높은 레이나의 타깃을 한 번에 맞히다니.
그것도 저렇게 작은 걸.
‘레이나의 타깃은 개수가 많아질수록 크기가 작아지는데…… 15개면 대체…….’
레이나가 타깃을 15개로 늘려준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레이나는 실력이 낮은 계약자에게 절대로 타깃을 2개 이상으로 늘려주지 않는다.
타깃이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너 같은 등신은 2개도 고마운 줄 알아’라는 말을, 릴 유저라면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터다.
근데 대체 저건 얼마나 작은 거지?
정글러는 크기를 한번 제대로 재보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퍼어엉!
그사이 또 하나의 타깃이 터져 나갔고.
펑!
퍼벙!
퍼버버벙!
순식간에 연달아 4개의 타깃이 터져 나갔다.
“어…… 어?!”
타깃은 계속 터져 나갔다.
펑! 퍼버버벙!
추가로 3개, 그리고 또 5개.
“자, 잠깐. 이러다가…….”
늑대의 체력이 버그처럼 팍팍 깎여나가고 있었다.
정글러는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급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후웅!
그러나, 그의 도끼날에 닿은 건 늑대의 회색 털 갈퀴뿐.
치익…….
이미 늑대는 쓰러지고 있었다.
“크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늑대는 죽어버렸다.
“……어?”
아몬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아닌데?
분명 죽기 직전까지 치라고 하지 않았나?
[레벨 업!]
정글러 대신 아몬드의 레벨이 올라버렸다.
아몬드가 정글러 대신 몬스터를 죽여 버린 것이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수습할 방법이 없었다.
정글러는 자기 밥그릇을 뺏겨 버린 이 상황에 원래 화를 내야 하지만.
너무 놀랐는지,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급 존댓말ㅋㅋㅋㅋㅋ 개웃김
-엌ㅋㅋㅋㅋㅋ
-아니 늑대 1초 컷 실화?
[야만의몽둥이찬호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연쇄 예절 주입기 아몬드!]
[지나가는 낙타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혓바닥 확장 수술 완료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