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39화
48. 레이나(2)
레이나가 계약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실력이다.
자신의 전설을 현 세계에 얼마나 구현해 낼 수 있는지. 그 실력을 보는 것이다.
즉, 오직 뛰어난 궁수만이 레이나와 친밀도를 쌓을 수 있다.
다른 방법은 거의 먹히지 않는다.
선물과 액티비티 같은 건 오히려 마이너스다.
그나마 손해를 안 보는 수단은 ‘대화’이지만.
그마저도 거의 효용이 없다.
다만, 말했듯이 레이나는 실력의 가치를 가장 높게 친다.
즉, 뛰어난 궁수는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 케이스가 너무 드물어서 그렇지, 그런 전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몬드가 바로 그 케이스다.
[친밀도 : 30]
대화를 한 번 걸었더니, 친밀도가 0에서 30까지 올랐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시청자들이 격분했다.
-아니?!
-뭐야 이거 버그야?
-3.0을 잘못 쓴 거지? 그렇지?
-력~~겨운 인싸 쉑!들은 말 한마디에 친밀도가 30이냐!?
자기들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인 레이나에게, 단 한 번에 30까지 친밀도를 올려 버리는 모습.
당연히 억울함을 느낄 만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억울함을 느끼는 포인트와는 다르게, 이는 아몬드의 얼굴 때문이 아니라 활 실력 때문이다.
‘이쯤이면 다시 게임이 가능한가?’
아몬드는 이쯤이면 되겠지, 하며 다시 물었다.
“레이나. 이제 전장으로 갈 생각이 있는 거야?”
“뭐? 방금 말했잖아. 그런 말 하러 온 거면 그냥 가라고.”
[친밀도 : 20]
이럴 수가.
단순히 친밀도가 30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똑같은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방금 전에 싫다고 한 걸 다시 물어보면 누구나 싫을 터다.
-엌ㅋㅋㅋㅋㅋ
-아몬드 바보냐 ㅋㅋㅋ
-아 아가는 바보야…… 아무것도 몰라
-그냥 좀만 기다리셈ㅋㅋ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아몬드는 마무리는 짓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화나게 했으니 사과는 하고 가야 했다.
‘이거 좀 신기하네.’
무엇보다 그는 지금 이 교류 시스템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킹덤에서 봤던 NPC들보다도 더 정밀한 구조와 높은 자유도를 갖고 있는 게 릴의 화신 같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게임이다.
이 대화가 어떻게 풀릴지, 앞으로 친밀도를 더 올릴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일단 레이나에게 사과를 하고 반응을 보기로 했다.
“미안해. 레이나.”
“뭐가 미안한 거지? 넌 딱히 잘못한 거 없어.”
레이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딱 잘라서 말한다.
-이것이 우치하 일족의 환술 “뭐가 미안한데?”입니까?
-오우우우 쒯!
-무한 지옥 온!
-이게 격투 게임에서 그 ‘올리기’ 같은 거지? 어? 나 연애 안 해봐서 모르니까 누가 설명 좀 ㅠㅠ
-함정 카드 발동!
그녀의 말투나 표정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이건 실제가 아닌 가상이고, 이 세계에선 친밀도가 보인다.
[친밀도 : 50]
친밀도가 다시 30 올랐다. 날 선 말투와는 다르게 그녀의 마음은 풀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아몬드는 흔들리지 않고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다.
‘이제 뭐가 미안한지 말하면 되나?’
보통 뭐가 미안하냐 물어보면 말문이 막히지만, 이 상황은 달랐다. 이유는 뻔했다. 그때 세레모니용으로 강신을 시켜서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 때문이다.
“전투 외의 용도로 불러냈잖아. 그건 내 잘못이지.”
“그게 왜?”
“음……”
다시 이유를 물어볼 줄은 몰랐던 아몬드.
“그냥 불러낼 수도 있지 뭐. 난 네가 부르면 나와야 하니까. 그게 어디가 잘못된 건데?”
‘이럴 수가.’
아몬드는 말문이 막혔다.
-이, 이게 연……애? 나, 난 도망갈래!
-칫 결계인가…….
-아 ㅋㅋㅋ 빨리 생각해 내라고 견과류쉑아!
아몬드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사람이 화난 이유를 모를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간의 사회생활과 인간관계가 주마등처럼 스쳐 가며 그에게 해답을 주었다.
일단 화가 난 상황에 대해서 공감해 줘야 한다.
“아무리 계약관계라도 그렇게 아무렇게나 부르면 나라도 화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해.”
정답을 말하자, 레이나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피운다.
[친밀도 : 60]
그러나 친밀도가 뻔히 보이는데, 허튼수작이었다. 아몬드는 말을 더 이어갔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몰라서 그랬던 거니까.”
“뭘 몰랐다는 거야?”
“네가 기분이 나쁠 거라는 거.”
[친밀도 : 80]
여기서 친밀도가 80까지 올라갔다.
그런데도 레이나의 말투는 여전히 차갑다.
“왜 내가 기분이 나쁜 걸 신경 쓰지? 어차피 계약 관계인데.”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답정너
-그냥 사겨 병신드라 ㅡㅡ
-레이나 본명이 혹시 왜이나인가요?
-레이나 혹시 일본인인가요? 아까부터 ‘왜’를 너무 좋아하는데…….
-연애 “멈춰!”
-레이나 누님…… 친밀도가 빤히 보이는데, 거…… 밑장 빼기는 그만합시다.
-엌ㅋㅋㅋㅋ 레이나 누나아ㅏㅇ아 넘 커여워
만약 이게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면, 시청자들의 말대로 답은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아몬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레이나는 뭔가 다른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녀는 아몬드와 연애 감정을 느낄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단지, 레이나는 지금 자신을 도구처럼 쓰지 말라고 말하고 주장할 뿐이다.
비록 자신이 계약자가 부르면 오기로 되어 있는 계약된 화신이라 해도, 그렇게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계약 관계라고 해도, 하나의 개체로서 인정받고 싶은 거다.
상현이 회사를 다닐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날 심부름꾼이나, 노예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해 줬으면, 낙하산 짐 덩이가 아닌 동료로 인정해 줬으면…….
그는 레이나도 같은 거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정답을 말했다.
“신경이 쓰여. 우린 동료잖아.”
레이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침묵했다.
[친밀도 : 90]
말은 없었지만, 친밀도가 정답을 말했음을 알려준다.
레이나는 아몬드의 눈을 들여다봤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구분하려는 듯.
[친밀도 : 95]
그녀의 친밀도가 더 올랐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네.”
이제야 그녀의 목소리에서 냉기가 빠져나갔다.
-오오오! 95
-무친!
-100 찍겠는데?
-이, 이렇게 쉬운 여자였냐고! 레이나 누나아아!
“내가 그런 걸 싫어하게 된 이유가 있어.”
레이나의 기분이 상당히 풀렸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이 싫었는지를 말하려 하고 있었다.
‘어? 뭔가…….’
아몬드는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뭔가 시작되고 있다.
“옛날얘기야.”
레이나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아몬드의 예상대로, 이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화신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의 전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계약자는 그들의 전설을 이해하고, 더 많이 알수록 화신의 힘을 더 깊이 이끌어낼 수 있다.
‘이거 스토리 모드인가?’
그게 바로 스토리 모드다.
아몬드는 자신이 뭘 듣게 되는지도 모르고,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나가 갑자기 자기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게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들려줘.”
레이나와 잠시 눈이 마주쳤다. 잠시 후, 그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상승했다.
[친밀도 : 100]
친밀도가 100까지 상승해 버렸다.
그리고…….
“말하자면 긴데.”
“괜찮아.”
“좋아. 그럼…….”
레이나가 처음으로 꽤나 밝게 웃었다.
[레이나의 ‘스토리 모드’를 발견했습니다.]
이런 텍스트가 떠오르고.
세상 전체가 멈춰 버렸다.
떨어지던 폭포도 얼어붙은 듯 허공에 머물렀다. 여전히 그 하얀 물거품을 머금은 채로.
정말로 시간이 멈춘 것이다.
세상은 점차 흑백으로 물들어갔고, 눈앞에 이 글자에만 푸른 빛이 깃들어 있었다.
[스토리 모드를 시작하시겠습니까?]
* * *
-헐 스토리 모드?!
-ㄷㄷㄷ 오진다
-‘냉혈의’ 마궁수 잘 봤구요~ 다음 화신 나와주세요
-자 이제 진짜 냉혈의 마궁수를 보여주세요!
-인싸식 냉탕 : 섭씨 95도
-친밀도 100??
-이게 뭐야. 잘못을 하고 사과를 했더니 오히려 친밀도가 오른다!?
-그만큼 활을 잘 쏘신다는 거지~
-와 벌써 스토리 모드라니 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그야 스토리 모드는 친밀도가 상당히 높아야만 뜨는 콘텐츠인데.
아몬드는 그걸 계정 레벨 2에 열어버렸기 때문이다. 보통은 계정 레벨 10~15에 처음 열린다.
‘스토리 모드…… 이거 꽤 좋은 거 같던데.’
아몬드도 얼추 감으로 스토리 모드가 일찍 발견되면 좋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뭐가 좋은 건지는 알지 못했다.
“스토리 모드 이거 좋은 거죠?”
-ㅇㅇㅇㅇ개굳
-ㅅㅌㅊ
-벌써 스토리 모드 하는 거 ㄹㅇ 개이득인 거임
-경험치 쭉쭉 빨듯.
-릴 개발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AI에 안면 인식 기능이 성공적으로 탑재시켰군요!
-레이나 님! 저한텐 안 그랬잖아요!? 예!?
-뒤졌다 오늘 레이나 스킨 다 버린다 날 배신했어……
시청자들의 말처럼, 스토리 모드가 지금 발견된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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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나 스토리 모드]
보상 : 대량의 경험치, 소량의 레전드 코인, 레이나와의 관계 발전, 스킬 이해도 상승.
예상 소요 시간 : 6시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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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경험치, 화신과의 관계 발전 심지어 스킬 이해도 상승.
릴에서 필요한 모든 게 다 주어진다.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콘텐츠였다.
보상의 특성상, 일찍 뜨면 일찍 뜰수록 좋은 콘텐츠였다. 그러니까 RPG로 치자면, 아몬드는 지금 레벨 2부터 전설 무기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당연히 아몬드는 이 스토리 모드를 플레이하고 싶었다. 그는 곧바로 시간을 체크했다.
‘몇 시지…….’
현재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고민이 됐다.
그는 릴 유저이기 이전에 스트리머니까. 방송이 흥하는 게 더 중요했다.
‘기왕이면 사람이 많이 볼 때 진행해야 하나?’
지금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운데, 시간이 시간인지라, 시청자가 5천 정도뿐이었다. 차라리 더 많을 때 진행하면 좋을 수도 있다. 스토리 모드는 어느 시간에 하든 상관이 없으니까.
게다가 지금 더 큰 문제가 있다.
‘공성전 연습하려 했는데.’
릴 공성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서 연습을 하려고 릴을 켰던 건데, 스토리 모드라니. 이래서는 공성전 연습은 또 뒤로 미뤄진다.
“음……. 근데 전 공성전 연습하려했는데. 이거 좀 곤란하네요.”
그는 시간을 조금 미룰 겸, 시청자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루비소드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이거 하면 공성전도 배울 수 있음!]
듣던 중 반가운 소식. 스토리 모드를 하면 공성전도 배울 수 있단다.
-아 레이나 첫번째 스토리는 ㄹㅇ 그렇네
-오 ㄹㅇ
-ㄹㅇㅋㅋ
-스포 절대 하지 마아아!
아무래도 레이나의 첫번째 스토리가 공성전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음…….’
비록 시청자 수는 조금 적지만, 공성전도 배울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몬드는 결정을 내렸다.
[예]
그러자, 멈춰 있던 세상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폭포가 다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레이나의 금발도 다시 바람결에 따라 휘날렸다.
파앗!
온 세상이 하얀 빛으로 타올랐다.
* * *
[초보자 Tip : 모든 계약자는 죽으면 성소에서 부활합니다. 생존전은 예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