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44화
50. 레이나의 이유(1)
캡슐에서 나가자마자, 주혁이 대기하고 있었다.
“야. 광고 티져 나왔대. 한번 틀자.”
“깜짝이야. 언제 왔냐?”
상현은 코를 움켜쥐었다.
주혁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 때문이다.
“뭐야. 술 냄새는 또.”
“지아랑 순대국밥이랑 해서 한잔했다.”
그들은 커뮤니티 주작을 성공(?)하고 축배로 소주를 한 병 깠다. 아, 한 병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3병이었다.
아무래도 정산서 때문에 지아의 기분이 상당히 좋은 날이었다.
“낮술하는 놈들은 한심하다.”
상현은 예전에 주혁이 하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낮부터 술에 취해서 하루를 어떻게 이겨내겠다는 건지.”
“뭐야 갑자기?”
“하루를 술로 시작하면 그날은 계속 이성을 쓸 수 없는 채로 보내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 스트레스를 다시 다음 날 술로 풀고, 결국 한 달도, 일 년도…….”
“야. 그만해. 알았으니까. 광고 튼다고 말이나 하고 와. 내가 이제 틀 테니까.”
주혁이 두 팔을 들며 항복을 선언했다. 상현은 킬킬대며 캡슐로 다시 가서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광고를 튼다는 말에, 채팅 반응이 좋진 않았다.
-아몬드는 바보 ㅠ 돈밖에 모르는 바보ㅠㅠ
-트수: 돈 좋아하지 마 // ???:왜 // 트수: 돈 좋아하지 말라고 // ???: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지 독 하 다 이 견 과 류
-견과류의 견이 혹시 개 견 자인가요?
-아아가는 아가야…… 아무것도 몰라. 광고밖에 몰라.
그러나 이 광고가 얼마 전 아몬드가 모델이 되어 촬영한 거라고 하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거 그냥 광고가 아니라 제가 모델로 촬영한 거예요. 풍선껌 님이랑 미호 님도 나옵니다.”
-오 그거 설마 얼마 전 촬영에서 찍은 거임?
-아몬드 나옴???
-ㄹㅇ?
-미호도 나오는 그건가요!?
-헐 아몬드??
-와 영상 광고 모델임!? 개오지넹
-와! 월클!
시청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간단히 몇 번 플레이하고 마는 광고가 아니라, 영상 광고 모델은 단가가 아예 다르다는 걸.
[루비소드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와! 판타지아 광고 모델! 축하해요! 공지를 안 읽어서 잘 몰랐어요!]
[가지볶음 님이 5만 원 후원했습니다!]
[헐! 광고모델 ㅠㅠ 아몬드 님 나오는구나 대박 ㅠ]
-아니, 광고를 틀었더니, 돈이 또 나오는 방송이 있다?!
-광고 촬영도 돈이고, 광고 트는 것도 돈인데, 거기에 또 돈이 얹어지는 돈 3제곱…… 이게 인싸식 “매스매틱스”인가…….
-헐 근데 나도 뿌듯하당 아몬드 킹덤 때부터 봤는데 ㅎㅎㅎㅎㅎ
-와! 킹덤의 아몬드! 광고도 찍다니! 역시 킹덤!
-역시! 킹덤 무새들! 대단하다! 또 나오는구나!
시청자들의 채팅이 계속 이어지는 중.
“자, 그럼 저는 빠르게 밥 먹고 올게요.”
어느새 화면은 깜깜해졌다.
[FANTASIA]
그리고 세련된 폰트의 글자가 떠올랐다.
[WePLUG]
비록 양산형 광고지만, 꽤나 그럴듯한 모습이었다.
[Presents……]
배경음악이 바뀌며, 연기를 맡은 배우가 등장했다.
남자는 짜증 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야, 팸.]
[예! 부르셨습니까? 용사님? 꺄루루!]
희한한 웃음소리로 웃는 요정이 옆에서 튀어나왔다.
어린이 동화에나 나올 법한 그런 요정이다.
남자가 요정을 보며 말했다. 뭔가 이를 악문 듯한 표정이다.
[마왕…… 죽였잖아.]
[넹! 죽이셨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요정은 해맑게 대답한다.
[10년이나 걸렸는데……]
[그래요! 10년이나 걸리셨네요? 조금 답답하더라구요! 꺄루루!]
남자는 머리끝까지 분노한 표정이다. 당장 요정을 씹어먹을 듯이.
[그 미개하고 더러운 이세계에서 온갖 개고생하면서 죽였잖아! 확실히 죽였잖아!!! 그럼 너도 약속을 지켜야지!!!]
마왕을 죽이면 뭔가를 받기로 되어 있었던 모양인지, 남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꺄루루! 약속? 지켰는데요.]
[집으로 보내달라 했잖아. 돈도 준다며. 내 용사 이야기가 잘 팔려서, 이야기 요정들 사이에서 어깨 좀 폈다며. 돈 300억 주고 집으로 보내준다며!]
[집으로 보내드렸는데요?]
[하…… 그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창문 커튼을 젖힌다.
촤륵.
커튼이 젖혀지자 마자 시뻘건 빛이 들어온다.
내려보이는 도시의 풍경에선, 사방이 불타고 있었다. 온갖 몬스터가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저 멀리에 있던 강변의 고층 빌딩조차 반파되어 절반만 남아 있었다.
게이트가 열렸고, 세계는 멸명한 것이다.
남자의 집이 멀쩡한 게 기적일 정도다.
[여기가 어딜 봐서 내 집이야!! 이게 어딜봐서 지구야!!!]
[여기가 집.]
요정은 지팡이로 벽을 통통 두들기며 말했다.
그리고 창밖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저기 밖이 지구.]
요정은 웃음을 꾹꾹 눌러 참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약속대로잖아요! 아, 통장에 3백억도 넣어드렸어요! 그것도 약속이잖아요?!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꺄루루!]
[이 빌어먹을 썅X이! 무슨 수작이야!]
[예!? 지구가 이렇게 된 걸 어쩌라는 겁니까!?]
[네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 또 날 이용해서 이야깃거리 팔아먹으려고!!]
[꺄루루! 증거 있으세요!?]
남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요정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야!! ──! ──! ────!]
표정으로 봐선 아주 심한 욕을 뱉고 있는 것 같았다. 욕설이 삐처리가 되면서 장면이 넘어갔다.
-앜ㅋㅋㅋㅋㅋ
-아니 ㅋㅋㅋㅋ ㅈㄹ 웃기네
-이러면 망나니 되도 인정이지 ㅋㅋㅋㅋㅋ
-무쳤네 ㄹㅇ ㅋㅋㅋㅋ
-이거 위플러그랑 합동제작임? 팸 나오네 ㅋㅋㅋㅋ
-오우 쒯ㅋㅋㅋㅋ
-악 팸년! 죽여 버렼ㅋㅋㅋㅋ
그리고 실제 게임 플레이에 대한 광고가 시작됐다. 흔히 보던 그 양산형 모바일 게임의 광고였다.
[난 망할 요정에게 속았다!]
[그래도 난 살아야 한다!]
풍선껌이 탱커의 복장을 하고 이리저리 굴렀다.
-엌ㅋㅋㅋㅋㅋㅋㅋ
-껌형 ㅠㅠㅠ ㅋㅋㅋ
-저 탱커 피아식별은 되나요? ㅋㅋㅋㅋ
-여기서도 고생이 많네 ㅋㅋㅋ
-왠지 존나 약해 보여 ㅋㅋㅋ
-에임이 안 좋을 거 같은 탱커? 오히려 좋아…….
[팀원을 모으고!]
성직자 역할을 맡은 미호가 빛으로 적들을 태우면서 등장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모습이, 꼭 천사를 연상케 했다. 복장이 뭔가 불순한 천사.
-와아아ㅏ!
-누나아아아아아! 나죽어어어어!
-복장 무쳤다 ㄷㄷㄷ
-아몬드 쉑…… 급 먹방해도 이 정도면 인정이지.
-갓챠 가져와! 시바 하루 종일 돌릴테니까!!!
그녀가 한번 웃어주자, 채팅창은 온갖 드립으로 도배가 되어서 거의 읽을 수가 없을 수준이었다.
-존스홉킨스 의학 대학, 성직자 미호라면 내시도 치료 가능.
-미호가 60년 일찍 태어났다면 남북 전쟁은 없었을 것.
-미호가 1천 년 일찍 태어났다면 대한민국의 수도는 만주였을 것.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편의점에 들러 미호 화보를 구입해라.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오직 미호만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다……!
이제 마지막 문구가 나오고.
[강해져라!]
아몬드가 등장했다.
-오!
-드디어 땅콩이냐
-아몬드!
-와!
미호가 등장했을 때 만큼의 반응은 아니지만, 역시 아몬드의 방이다 보니 반응이 뜨겁다.
아몬드는 거대한 거인 몬스터와 나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 중이었다.
[크오오오오!]
거인이 슬그머니 아몬드에게 다가오는 순간.
아몬드의 안광이 번뜩이면서 민첩하게 다른 엄폐물로 이동했다.
쾅!
거인의 몽둥이가 아몬드가 있던 공간을 분쇄해 버렸다.
그때 아몬드가 활시위를 튕겼다.
파바바방!
거인의 사타구니부터 머리까지 일직선으로 박히는 4개의 화살.
-와아아아!
-저거 합성 아닌 거 같은데!?
-개쩐다
-슈팅은 직접 하신 건가? 똑같아 게임할 때랑.
-아바타 구현이 아니라 진짜 촬영인데 저게 되네
-와!
아무리 CG가 발전했어도 인간을 3D로 만들어놓은 것과 실제 촬영은 구분이 가능했다.
시청자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건 실제 촬영인 게 명확했다. 그런데도 아몬드는 멋지게 활 솜씨를 뽐냈다.
-실제 운동신경도 조지나 봐
-헐 핵멋있어 ㅠㅠㅠㅠ 오빠아아아아!
-오빠 나 죽어어어어!!
-와 개멋있다 ㄷㄷ
크어어어……!
화살에 맞은 거인이 쓰러지면서, 화면을 전부 가려 버렸다.
쿠웅──
[망나니 용사 키우기]
광고는 여기서 끝이었다.
* * *
와드득.
상현은 아몬드 플레이크를 마저 먹으며 감탄했다.
“와. 이게 이렇게 하루 만에 되는 거야? 진짜 쩐다.”
요즘의 영상 기술력은 그야말로 기염을 토할 정도였다.
하기야, 가정집에서 풀다이브 게임도 가능한 세상이다.
이런 건 더 쉬울지도 몰랐다.
“어. 이게 티져 영상이래. 풀버전은 아직 안 나온 거야.”
주혁도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확실히 좀 기대가 된다. 양산형 게임 같기는 해도.”
“시청자들 반응도 좋아. 지금 광고 틀었는데도 거의 나간 사람이 없어. 500명 정도만 줄었다.”
후루룩.
상현은 얼른 시리얼을 원샷했다.
500명이 줄어든 것도 그에겐 조금 아까웠기 때문이다.
“얼른 다시 해야겠다.”
“근데 그거 먹고 되겠냐? 아침도 시리얼이었잖아.”
“배 부르면 오히려 집중이 안 돼.”
상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잠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제 곧 캡슐로 들어갈 생각인 것이다.
휙, 휙.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쭉쭉 당기는 모습이 여간 능숙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확실히 국대 출신이다.
“야.”
주혁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스트레칭을 하느라 머리를 아래로 처박고 있는 상현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내밀며 대답했다.
“……무슨 박쥐 귀신도 아니고. 여튼 너 내일 병원인 거 알지?”
“아. 어. 알지.”
“너무 무리하지 마라. 오늘.”
“어. 안 해. 무리.”
얼굴을 거꾸로 한 채로 말하니, 신뢰도가 영 꽝이었다.
“참내. 알았다.”
“굳.”
주혁이 컴퓨터 앞에 앉자, 상현도 스트레칭을 마치고 캡슐을 열었다.
* * *
다시 캡슐 안으로 들어온 아몬드.
그는 밀린 후원들을 다 읽어주었다. 그리고 미션 금액도 확인했다.
‘이렇게나 많이?’
처음엔 50만 원으로 시작했던 미션.
[미션]
[레이나 3별 클리어]
[125만 원]
이젠 무려 125만 원이다.
아무래도 3별 클리어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은 모양이다.
-아몬드 님 오늘 엔딩 보실 거?
-오늘 켠왕 가냐?
-드디어?
켠왕. 켠 김에 왕까지의 준말이다.
한 번 켜면 왕을 깰 때까지 안 끈다는 말이다. 즉, 그날 끝장을 보는 컨텐츠인데. 때로는 아예 다음 날까지 넘어가기도 한다.
‘지금 해보지 언제 해.’
스토리 모드 같은 체력에 부담이 덜 되는 컨텐츠를 할 때 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릴 같은 게임은 켠왕을 했다간 켠 김에 염라대왕을 보고 올 것이다.
하지만 레이나 스토리라면 가능했다. 전투 시간이 짧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충분했으니.
“미션금 받아야죠. 켠왕 갑니다.”
더군다나 미션의 제한시간이 오늘까지였다.
125만 원이 쌓인 미션을 그냥 놓칠 순 없다.
-와아아아!
-가즈아아아아!
-캬아아아
-와 아몬드 첫 켠왕!
-진짜야? 헐! 소원성취ㅠㅠㅠ
-바로 치킨 시켰닼ㅋㅋ
-오늘 뒤졌다 교촌 치킨
-뒤졌다 비비큐!
-두 번 뒤졌다 호식이 두마리!
켠왕 선언이 그리 좋은 걸까.
사람들이 신이 나서 닭을 학살하겠노라 선언하며, 후원을 쏘아댔다.
그중 꽤 큰 후원도 있었다.
빠바바밤!!!
[손큰콜로니 님이 무려 50만 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캬! 첫 켠왕! 성공 가시죠!]
갑자기 등장한 시청자 하나가 50만 원을 후원했다.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어?’
-헐 손큰콜로니! 와우!
-와 여기도 이제 큰손 오네
-와! 성좌다!ㅋㅋㅋㅋㅋ
-손큰콜로니 정도면 거의 성좌 맞짘ㅋㅋㅋㅋ
유명한 네임드였다.
‘풍선껌 방에 있던 큰손이다.’
아몬드도 본 적이 있었던 큰손이다. 풍선껌 방에서도 꽤나 호쾌하게 쏘던 사람이다.
풍선껌이 켠왕을 할 때면 늘 와서 한 번씩 쏘던 게 기억난다.
‘나도 이제 그 스트리머가 된 거구나…….’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이 정말 많이 바뀌었음을 체감하며, 아몬드는 게임을 시작했다.
“손큰 님 감사합니다! 꼭 클리어할게요! 리액션은 끝나고 갑니다!”
-역시나 ㅋㅋㅋㅋㅋ
-리액션은 또 방종인가 보넼ㅋㅋ
-와 스토리에선 어떻게 뒤질까 ㅋㅋㅋㅋㅋ
-이 남자…… 관짝에선 어떨까?
-ㅋㅋㅋㅋㅋㅋ한결 같은 리액션!
-와 켠왕 ㅠㅠㅠㅠㅠ
수많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안고, 릴이 다시 실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