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46화
50. 레이나의 이유(3)
“허억…… 허억…….”
그 장면을 목격한 후.
아몬드는 죽어라 뛰었다. 베이스캠프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저 달렸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봐선 안 될 걸 봤다는 것이.
“허억…… 허억…….”
그는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모닥불 불빛이 있는 곳을 발견했고. 거기에 은근슬쩍 스며들어 가서 앉았다.
다른 미니언들이나 혹은 병사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몬드는 그제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채팅창을 봤다.
-와 소름이네
-무쳤다
-이게 릴 스토리모드?!
-별 3개 클리어 루트 제대로 탔나 봄 쩐다
그는 시청자들에게만 들리는 채널로 이야기했다.
“어쩐지. 미니언 숫자가 안 줄더라구요. 대체 어디서 애들을 공급해 오나 했죠.”
-ㄹㅇㅋㅋ
-아니 뭐 당연히 게임이니까 그러려니 함 ㅋㅋ
-와 이런 거였나 봄
-레드팀에서 죽으면 블루팀 되고 이런 거임?
일단 목격한 바에 따르면 죽을 때마다 미니언들은 팀이 바뀌어서 부활한다.
아, 꼭 팀이 바뀌어 부활하는 건 아닐 거다. 죽은 숫자가 너무 안 맞으면 아마 한 팀으로 몰아주든가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릴의 특성상 미니언들이 죽는 숫자는 거의 동일할 수밖에 없다. 팀이 이기든 지든 미니언은 항상 희생되니까.
“서로 바뀌어 가며 부활하는 건지는 아직 모르는데. 적어도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건 확실하네요…… 그리고 계약자들이 이 전쟁에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ㅇㅇ ㄹㅇ 그런 듯.
-그 새끼들 그냥 릴충이야 ㅋㅋㅋ 걍 즐겜중
-절박한 느낌이 없었음. 오히려 아몬드가 활약한다고 뭐라 했잖아
[루비소드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와! 넘 잼써요 ㅎㅎ 레이나 스토리 원래 그냥 그랬는데 이렇게 보니까 좋네요!]
[무지몽매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잠깐 소통 타임에 후원합니다. 잘 보고 있슴돵]
[황건당 님이 5천 원 후원했습니다.]
[미니언들아, 그냥 뒤집어엎자ㅅㅂ]
[킹덤무새 극혐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와! 킹덤보다 낫다! 그죠?]
잠시 시청자들과 말을 하는 시간에 후원이 몰려왔다.
“아. 감사합니다. 루비소드, 무지몽매, 황건당, 킹덤무새 님. 다시 게임에 집중해 보도록 할게요.”
아몬드가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화면이 넘어갔다.
[시간이 흐릅니다.]
* * *
어느새 다시 전장이다.
오늘은 병사가 아니라, 계약자가 미니언들의 앞에 섰다.
어제 아몬드를 구해줬던 철괴 바트였다.
“자. 제군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더러운 타란을 상대로 승리하기 직전이다! 적들의 성소가 눈앞이다!!”
그의 말대로, 어느새 아몬드의 팀은 탑, 미드, 바텀의 포탑을 전부 없애고 이제 적의 성소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성소를 부수면 적의 계약자는 더 이상 부활하지 못한다! 그럼 승리는 제군들의 것이다!”
바트가 자신의 단단한 가슴을 퉁 치며 외쳤다.
“오늘! 반드시 그 승리를 제군들과 나누겠다!”
미니언들은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아몬드도 비슷하게 따라 했다. 그러면서 눈은 미니언들을 살폈다.
어제 새로 살아난 녀석들이 누군지 보기 위해.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잘 모르겠어.’
전장은 쉴 새 없이 흘러가고, 미니언들 얼굴을 일일이 볼 시간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레이나는?’
레이나는 어쩌면 구분이 가능할까.
마침 그녀는 또 아몬드의 옆이었다.
“이봐. 레이나.”
“……왜?”
“혹시 새로 들어온 미니언들이 많은 거…… 알겠어?”
“글쎄. 난 우리 분대만 잘 알아서.”
그렇구나.
하긴 미니언의 숫자가 얼만데, 다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레이나와 친한 미니언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레이나의 분대는 보통 전원이 생존한다. 그러나 어제는 굉장히 난전이었다. 수많은 미니언이 죽었다.
“너희 분대 애들, 혹시 어제 다 잘 돌아왔어?”
레이나는 잠시 멈칫했다.
“……글쎄. 알게 뭐야.”
레이나는 그렇게 잘라 말하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바트의 말에만 손을 흔들었다.
‘뭐지.’
분명 레이나는 미니언들을 아끼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하는 걸까.
그때였다.
레이나가 아몬드의 손을 잡았다.
아몬드는 레이나의 얼굴을 다시 올려다봤지만, 레이나는 여전히 바트를 바라보며 열광하고 있었다. 과하게 열광하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말이다.
그녀는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뭔가를 전달하려는 듯이.
레이나의 입 모양이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아몬드는 입 모양만 보고 말을 알아듣는 재주는 없었다.
‘뭔가 있구나.’
비록 그녀의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어떤 감정은 확실히 전달받았다.
‘레이나가 알고 있어.’
아무래도 레이나는 대강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야 뭔가 갈피가 잡혀가는 것 같았다.
* * *
성소 앞을 지키는 두 개의 탑.
여기까지 오자 적의 저항은 굉장히 거셌다. 3라인으로 나누어져 갈 미니언들이 죄다 여기 모여서 방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평소 병력의 3배였다.
“안 돼애애애!”
“막아아!”
더군다나 적은 배수진(背水陣).
물러설 곳 없는 그들의 투지는 엄청났다.
물론, 투지만으로 이마에 박히는 화살을 튕겨낼 수는 없었다.
푹! 푹! 푹!
아몬드의 활시위가 튕길 때마다 쓰러지는 미니언들.
“컥!”
“윽……!”
펑! 펑!
옆에 선 레이나도 연이어서 화살을 쏘아댔다. 전선은 점점 적진으로 움직였다.
“탑이다! 탑이 보인다!”
“성소가 머지않았다!”
성소를 지키는 두 개의 탑.
그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전선이 빠르게 밀렸다.
그러나 그 말은 두 개의 탑도 우리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콰과과광!!!
단일 공격만 해오던 여태까지의 포탑과는 다르게, 두 개의 탑은 마치 벼락같은 공격을 사방에 퍼부었다.
어린아이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를 찍찍 긋듯이 간단하게 그어지는 마광선.
“으아아아악!”
“끄어어!”
아군 미니언들은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타올라 사라졌다.
그래도 미니언들은 멈추지 않았다. 뒤로 물러간다는 선택지는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뒤로 돌면 아마 아군 계약자에게 죽을 테니까.
“쏴라!”
“끝이 머지않았어!”
“다 이긴 싸움이다!”
미니언들은 두 개의 탑에 몸을 불사르며 맹공을 퍼부었다.
물론 계약자들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끝까지 나아가라아!”
이런 말을 남기며 장렬하게 터져 죽는 계약자도 있었다.
거기에 어떤 처절함이나, 뜨거운 신념, 여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다시 성소에서 부활할 뿐이니까.
하나, 그건 아몬드의 감상이다.
아군 미니언들은 계약자의 그런 행동에 감동을 받았는지, 앞으로 더 빠르게 달렸다.
“계약자님이 길을 터주셨다!”
“한 몸 불살라 길을 만들어라!”
“끄아아아악!”
“으어억!”
계약자가 하나 죽었다고, 수십의 미니언이 타 죽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자잘한 사안에 신경 쓸 새는 없었다.
당장의 승리가 눈앞.
그리고, 적들 입장에선 패배가 눈앞이다.
서로가 눈을 부라리며 달려든다.
“막아!”
“한 번만 막아내도 우리 기회가 온다!”
적 미니언들 중 1열의 용맹한 녀석들 몇이 뛰쳐나왔다.
“죽어 망할 놈들아!”
“타란의 구역에서 나가라아!”
날 선 도끼와 철퇴를 들고 달려드는 미니언들 앞에, 1열의 레이나가 흔들림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접근을 허용하면 궁수가 불리한 대진이지만, 적들의 돌진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레이나 정도의 궁수라면 순식간에 처리해 버릴 거다.
그런데…….
“……!”
활을 든 레이나의 팔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적들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데.
여전히 그녀는 쏘지 못했다.
이제 단 세 걸음 이내까지 도달한 적 미니언 하나.
그가 도끼를 높이 치켜들고─
훙!
레이나의 목을 쳐내기 위해 휘둘렀다.
그 순간까지도 레이나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그저 적 미니언의 얼굴을 뚫어지라 보고 있을 뿐.
“레이나!”
펑!!
좌측에서 날아온 푸른 화살이 도끼 미니언을 사살했다.
“레이나. 정신 차려.”
아몬드가 달려오며 외쳤다.
레이나를 노리는 미니언은 하나 더 있었다.
녀석은 철퇴를 휘둘렀다.
촤르르르!
아몬드가 그 사이로 달려들어, 레이나를 끌어안아 뒤로 넘어졌다.
콰앙!
레이나가 서 있던 자리로 살기 어린 철퇴가 내리꽂혔다. 돌바닥이 뒤집히며 흙으로 부서졌다. 맞았다면 시체조차 곱게 안 남을 것 같은 무식한 일격이었다.
“아, 아…….”
방금 죽을 고비가 2번이나 있었음에도, 레이나는 누워 쓰러진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벌리고 무어라 말하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촤르르륵.
적 미니언은 다시 무시무시한 철퇴를 들어 올렸다.
다른 미니언들보다도 작은 체구. 아몬드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역시.’
레이나가 매번 담요를 덮어주던 그 녀석이다. 레이나가 늘 후열로 가라고 충고했던 녀석.
그는 이젠 레드 팀이다.
그리고 1열이다.
놈은 레이나를 전혀 기억 못 하고 있다.
후웅!
“죽어 썅년아!”
“톰! 흐으으윽……!”
톰인가 보다. 아몬드는 그 이름을 곱씹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누운 채로 급하게 쏜 화살이었으나, 정확히 톰의 오른손에 박혔다.
쿵!
휘두르던 철퇴가 힘없이 떨어졌다. 그새 한 발 더 날아간 화살이 톰의 이마 중앙에 꽂혔다.
“커걱……!”
톰의 눈에서 피가 울컥, 솟구쳐 흘렀다.
“톰! 톰! 토오옴!”
레이나는 이젠 숨길 생각도 없는지, 아니면 하지 못하는지,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줄리아……! 톰!”
아까 죽은 도끼 미니언의 이름이 줄리아인가.
아몬드는 그런 생각과 함께 레이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레이나의 놀라고, 혼란스럽고, 슬픈 눈이 아몬드를 올려봤다. 아니, 노려봤다.
“들키면 안 되잖아.”
“끄으…… 끄으으으윽……!”
레이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울음을 어떻게든 멈추려는 듯, 이를 꽉 물었다. 이빨이 그의 손을 파고들었으나. 아프지 않았다. 게임이니까.
침과 눈물이 왼손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이 광경이 조금 더 아팠다.
하지만 그녀를 위로할 시간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 죽어어어!”
그다음 달려드는 녀석의 얼굴도 익숙했기 때문이다.
‘테오…….’
이번엔 아몬드가 아는 얼굴이었다.
아몬드의 이름을 연호해 주던 그 녀석이다.
테오는 쓰러져 있는 아몬드와 레이나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활은 쏠 수 없었다. 한 손은 레이나의 입을 틀어막았으니까.
아몬드는 옆으로 데굴 구르며, 레이나를 감싼 뒤. 그 건너에 떨어져 있던 톰의 철퇴를 잡았다.
후웅!
그리고 다시 몸을 돌리며 휘둘러진 철퇴.
테오는 그리 싸움에 능하지 못한 녀석이었다. 검을 휘두르는 동작이 너무 컸다.
철퇴는 살벌한 소리를 내며 정확히 테오의 사각으로 들어가 꽂혔다.
콰앙──!
“컥!”
테오는 볼품없이 고꾸라졌다.
그 틈에 아몬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쓰러진 테오를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활이나 마저 쏘지…… 무슨 검이냐. 테오.’
잠시나마 귀에 테오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와! 아몬드. 나도 너처럼 쏠 수 있을까?」
아몬드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화살 통이 다 엎질러져 있었다.
“죽어어어어!”
그 틈을 노리며 달려드는 적 미니언이 또 있었다.
아몬드가 지금 활을 쏠 수 없다고 해서, 미니언이 그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휘익.
아몬드의 상체가 슬쩍 뉘어지더니, 검격을 가볍게 흘려 버렸다. 천 한 장 정도의 차이다.
그 차이로, 아몬드는 상대의 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턱.
그러고는 끌어당겨 버렸다.
“으윽!?”
상대는 균형을 잃고 아몬드의 손에 매달린 꼴이 되어 흔들렸다.
아몬드는 겨우 주운 단 하나의 화살을 거꾸로 고쳐 쥐었다.
“넌 모르는 얼굴이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목에 세 번을 연이어 찔렀다.
푹! 푹! 푹!
상대는 실 풀린 인형처럼 쓰러져 버렸다.
아몬드는 레이나를 돌아봤다.
그녀는 최대한 울지 않으려는 듯, 입을 틀어막고 바닥에 엎드려 몸을 떨었다.
들켜선 안 되기 때문이다.
‘들키면 기억이 지워진다.’
비밀을 알게 된 미니언, 싸우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기억이 지워진다.
레이나는 자신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항상 숨죽이고, 모르는 척, 다른 미니언에 관심 없는 척해왔다.
그러나 적이 되어 나타난 아이들은, 차마 공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 레이나는 이때마다 기억이 지워져 왔겠지.
동료를 쏘는 것만은, 그녀의 인내심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니.
‘레이나는 역시 동료를 아끼고 있었어.’
이제야 전부 이해가 됐다.
레이나의 모든 행동.
그 이유들도.
레이나가 왜 1열에서 싸웠는지, 마나를 왜 아끼지 않았는지, 왜 죽을 듯이 노력했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사랑해마다 않는 아이들을 한심한 새끼들이라고 해야만 했는지.
‘레이나의 이유’를…… 알아냈다.
“이유는…… 동료애.”
동료를 향한 사랑, 혹은 우정.
이것이 그녀의 모든 행동의 이유였다.
띠링.
[레이나의 이유(★★★) 클리어 루트를 발견했습니다.]
[레이나를 이 전장에서 탈출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