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49화
51. 계약자 사냥(2)
“계약자를 어떻게 죽일지, 설명해 줄게.”
레이나는 포박 석궁이라는 무기에 대해 설명했다.
“밧줄이 달린 고리를 쏘는 무기야. 그건 원래 병사들이 우리를 제압할 때 쓰기 위해 가지고 다녀.”
그래서 그녀는 병사들 전용 무기고를 털어야 한다고 했다.
“포박 석궁을 모트, 홀리, 제이, 톰, 테오. 이렇게 드는 거야.”
사실상 여자 아이들, 줄리아와 멜리를 제외하면 모두가 석궁을 들어야 했다.
“계약자들은 우리 공격이 안 먹혀. 난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어.”
레이나는 그간 자기가 관찰했던 것, 그리고 아몬드를 통해서 새로 알게 된 것을 통합해 설명했다.
“하지만 어제 아몬드가 보여줬어. 공격이 안 먹히는 게 아니야. 우리 공격이 너무 약한 거야.”
그녀는 바닥에 돌을 하나 세웠다.
“이게 계약자고, 이게 우리야.”
돌에 비해 작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들.
그게 레이나 분대의 아이들이었다.
“계약자들의 전투를 지켜본 결과, 계약자끼리의 공격도 한 번에 통하지 않을 만큼, 그들의 방어력은 강해. 화신의 가호 때문이지.”
화신의 가호.
저게 게임 내에선 체력바라는 요소로 바뀌는 것이다.
체력바라는 게 없는 레이나와 다른 미니언들이 보기엔 그게 무적의 실드처럼 느껴졌을 터다.
“하지만 화신의 가호도 평생 가는 건 아냐. 무엇보다…….”
턱.
그녀가 가느다란 실을 가져와 나뭇가지와 바위를 묶었다.
“이런 움직임을 제한하는 공격에 취약해.”
“그, 그게 이 포박 석궁이 해야 하는 일이야?”
모트가 질문했다.
“응. 그래. 모트. 똑똑하네.”
“하하…….”
모트는 칭찬 받은 게 좋은지 발그레하게 웃었다.
“이 포박 석궁은, 상대를 묶는 갈고리를 쏴. 직접 보여줄 순 없어. 병사들이 늘 관리하거든.”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는 게 이 말이었다.
연습 시간 따위는 없다.
“저기…….”
톰이 조심스레 손을 들고 묻는다.
“그런데 화신의 가호 때문에 갈고리가 피부를 파고들지 못하잖아.”
화신의 가호는 마치 피부처럼 그들의 신체를 보호하고 있어서, 그게 부서지기 전엔 어떤 공격도 파고들지 못한다.
당연히 갈고리도 예외는 아니다.
레이나도 그것을 안다.
“응. 맞아. 그래서 우린 다른 걸 노릴 거야.”
레이나는 준비한 계획이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계획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아몬드조차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그게 되나?’
극단적이고, 위험했다.
하지만……
“아몬드! 잘해보자!”
모트가 아몬드의 손을 꼭 쥐면서 말했다.
“너라면 할 수 있어!”
“그래.”
모트가 밝게 웃었다.
옆의 테오도 따라서 웃는다.
테오는 기억이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몬드를 좋아라한다.
모트도 기억을 잃는다 해도 그럴까?
* * *
‘그때 웃는 얼굴이나 더 봐둘걸.’
뜯겨나온 모트의 머리를 보며 아몬드는 회상을 마쳤다.
‘그거밖엔 방법이 없던 거였어.’
그리고 깨달았다.
레이나의 계획이 왜 그리 극단적이고, 위험했는지.
‘저딴 걸 죽이려면, 그 정도는 해야 되는 거야.’
리스크가 없다면 리턴도 없다.
계약자라는 괴물들을 죽이려면 저 정도 리스크는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낌새가 이상해서 자리를 옮겨봤더니. 깜찍한 짓들을 하고 있더라?”
계약자 중 기습한 건 유리아였다.
유리아의 하얀 빛의 후광이 이 어두운 밤을 다 몰아내려는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일전에 그 암살자 계열의 계약자와 마주쳤을 때와는 기세부터 전혀 달랐다.
‘훨씬 강해.’
괜히 블루팀이 승리한 게 아니다.
유리아가 그 암살자 계약자보다 훨씬 강했다.
게다가 그녀는 지금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미니언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다.
그때 주의가 분산되었던 계약자와 싸우는 것과는 천지 차이일 터다.
아몬드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기리릭.
유리아가 활시위를 당겼다.
“다 죽든가, 순순히 이쪽으로 와.”
활시위로는 서서히 정체 모를 백색의 에너지가 모여들고 있었다.
뭔진 모르지만, 전쟁에서 봤던바.
저게 끝까지 모아진 후 쏘면 분명 다 죽는다.
아까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미니언들이 횡으로 퍼져 있어서, 유리아가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없었거든.
그런데 한 번 더 운이 좋을까?
아몬드는 고개를 저었다.
‘반격해야 해.’
반격이 답이다. 결국 레이나가 말했던 대로 계약자와의 싸움은 불가피했다.
‘그런데 레이나는?’
아몬드는 주변을 둘러봐 레이나의 생사부터 확인했다. 그녀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저깄구나.’
다행히 레이나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 같이 반격을 할 만한 상태는 아니다.
“아, 아…….”
동공에 초점이 나갔다. 정신이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대개의 미니언들이 계약자를 정면에서 마주하면 그리되듯이.
온몸을 파들파들 떨며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다.
천하의 레이나도 미니언 시절엔 별수가 없는 걸까.
아몬드는 결국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투항합니다.”
어차피 유리아는 아몬드와 레이나를 살려가려고 할 것이다.
「넌 절대 죽지 마. 그러면 곤란할 것 같거든.」
유리아가 아몬드에게 했던 말.
레드팀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계약자들은, 아몬드 같은 강한 미니언은 죽이지 않는다.
그보단 잡아서 기억을 제거한다. 레이나에게 그랬듯이.
기억 제거란 걸 어떻게 하는진 모르지만, 그냥 죽이는 것보단 분명 수고로운 작업일 터다.
그럼에도 그런 수고를 감내하는 건, 강한 미니언이 블루팀에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맞나 보군.’
아몬드의 예상이 맞았다.
아몬드가 다가가자, 유리아가 미소를 짓는다.
“가까이 와.”
유리아의 활이 더 오라는 듯이 까딱인다.
그 화살 끝엔 이미 하얀 빛이 최고조로 달하여 펄펄 끓고 있었다.
저 활시위를 놓기만 하면 아몬드는 즉사할 터다.
아몬드는 최대한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거기 레이나. 네게도 특별히 기회를 줄게.”
유리아는 아직 벌벌 떨고 있는 레이나에게 말했다.
‘나머진 죽일 셈이야.’
나머지 미니언은 어차피 레이나에게 방해만 되는 존재들. 가차 없이 죽일 거다.
‘남은 미니언은 몇이지.’
와중에도 아몬드는 남은 미니언들의 숫자를 파악하려 했다. 계획이 실행되려면 최소 넷은 살아 있어야 했다.
‘이 녀석은 알고 있나?’
아몬드는 유리아를 살폈다.
유리아 역시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다른 미니언들이 어디 있는지 파악 못 하고 있는 거다. 즉, 유리아는 모른다.
이러면 희망이 있다.
휙.
갑자기 그녀가 돌아서더니, 아몬드를 조준했다.
‘뭐야?’
깜짝 놀란 아몬드.
“지금 오지 않으면, 여기 이 녀석까지 죽일 거야. 각별한 사이 같던데. 맞지?”
다행히 죽이려는 게 아니라, 협박성이었다.
아몬드를 죽인다는 말에 반응한 레이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덜덜 떠는 채였으나. 눈에는 초점이 돌아와 있었다.
“어차피 죽으나, 너한테 가나. 똑같아…….”
레이나의 눈이 유리아 눈을 정면으로 올려봤다.
미니언으로서 계약자의 눈을 바라보는 건, 꼭 밝은 태양을 마주하는 듯했으나.
레이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맞잖아? 어차피 똑같아. 기억이 지워지고. 다시 노예처럼, 가축처럼 너희들의 이상한 놀이에 어울려주는 거.”
유리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상한 놀이?”
“뭐가 전쟁이고, 뭐가 더러운 타란이라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죽으면 다시 타란으로 가서 싸우는데. 뭐가 다른 거야!”
하.
유리아는 ‘거기까지 알아버렸냐’며 한숨을 내쉰다.
“놀이는 아니야. 훈련이다.”
“뭐……?”
“어찌 됐든, 넌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구나. 설득도 안 되겠군.”
기리릭……
유리아가 활을 당겼다.
레이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마 이 화살을 피할 수 없다.
그녀의 덜덜 떨리는 다리는 주저앉지 않고 있다는 게 기적일 정도였으니.
“넌 죽이는 게 낫겠다.”
레이나가 저기까지 알아버렸다면 어차피 당연히 투항하진 않을 것이다.
저 사실을 들은 다른 미니언들도 마찬가지로, 아마 다 죽여야 할 거다.
‘그런데…….’
시위를 당기던 유리아는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그 녀석은 왜 투항했지?’
카앙!
그 순간, 왼쪽 팔에 뜨거운 감각이 엄습했다.
활의 균형이 흐트러졌고, 화살이 떨어졌다.
하얗게 타오르던 에너지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역시, 상처는 안 나도 밀리긴 하네.”
뒤돌아보니, 아몬드였다.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살기 어린 눈을 번뜩이는 아몬드.
“너……?”
팅……!
유리아는 반사적으로 활시위를 놓았지만, 화살이 없는 활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또 틈만 내어준 셈.
“화신 레이나는 화살이 없어도 쏘던데. 넌 안 되는 것 같더라.”
훙!
아몬드의 검이 다시 한번 유리아의 턱을 후려갈겼다.
퍼어엉!
검격을 따라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돌아간 유리아의 눈이 분노로 하얗게 번뜩였고.
동시에, 아몬드가 목청 터지라 외쳤다.
“지금이야──”
아까 남은 미니언 숫자를 파악했을 때.
예상외로 충분한 숫자가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기어서 저마다의 자리로 가고 있었다.
‘내가 본 게 맞다면…….’
──촤르르르르르르르!
사방, 곳곳에서 갈고리들이 튀어나왔다.
포박 석궁으로 쏜 갈고리들이다.
제각각의 방향에서 튀어나온 밧줄이 쭉 늘어지며 별을 그렸다.
“포박 석궁? 그딴 게…….”
유리아는 헛웃음을 뱉었다.
갈고리 따위가 내 피부를 파고들 리가 없으니까.
저걸 피하느니. 차라리 눈앞의 이 간악한 꼬맹이를 죽이는 게 낫다.
유리아의 발이 하얀 에너지로 타오르며, 아몬드의 안면을 걷어찼다.
콰아아아앙!
발의 궤적을 따라 하얀 폭발이 일어났다.
활을 쏠 때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미니언에겐 치명적일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유리아는 어디까지나 궁수.
발길질 같은 체술이 그리 뛰어나진 못했다. 암살자 계약자의 공격도 피해낸 아몬드가 그걸 못 피할 리가 없었다.
아몬드는 하얀 폭발의 궤적까지도 가볍게 피해냈다.
오히려──
“!?”
촤르르르륵! 팅!
피하지 못한 건, 아니, 피하지 않은 건 유리아였다.
“가, 갈고리끼리?”
갈고리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쏘아졌었고, 그들은 애초에 유리아의 피부를 노리지 않았다.
쏘고 나서 다시 당겨지는 그 순간.
철컥!
그 순간을 노렸다.
각자의 갈고리가 서로를 걸어서 묶어지는 순간을.
유리아의 신체가 순식간에 갈고리로 뒤덮여 조여졌다.
“으윽……!”
안 그래도 다리를 하나 들고 있던 터다.
그 상태로 갑자기 두 팔과 허벅지 부위가 조여지자,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중심을 잃은 유리아는, 앞뒤로 휘청거리더니.
이내 좌우로까지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점점 가팔라지면서, 회복세는 낮아졌고.
──쿠웅
바닥으로 고꾸라져버렸다.
이때, 모든 미니언들이 흠칫했다.
‘먹힌다.’
‘계약자도…… 넘어져!’
‘된다!’
레이나의 말이 맞았던 거다.
계약자에게도, 포박은 먹혔다.
아몬드는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게 그의 담당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모자라.’
본래 모트가 쐈어야 하는 갈고리가 없다.
그게 있어야 마무리가 되는데.
그때──
촤르르르륵!
“?”
어디선가 날아온 갈고리가, 아몬드의 뒤쪽 나무 꼭대기에 꽂힌다.
그 팽팽한 선을 따라가 보니.
“하아…… 하아…… 이거 찾느라 혼났어.”
레이나였다.
정신이 나갔던 게 아닌 모양이다.
그녀가 도르래를 굴려 밧줄을 느슨하게 풀며 외쳤다.
“아몬드. 얼른!”
아몬드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느슨해진 밧줄을 잡고. 쓰러진 유리아를 향해 달렸다.
태클을 걸듯이 그녀의 머리를 덮쳤다.
“놔! 죽여 버리기 전에!!!”
유리아의 히스테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빨로라도 깨물어 죽이려는 듯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였다.
휘릭!
“죽는 건 너야.”
아몬드가 순식간에 유리아의 목에 밧줄을 둘렀고, 레이나가 방아쇠를 당겨, 다시 도르래를 감았다.
쉬이이이이익──
밧줄이 유리아의 목을 조이며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