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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153화 (153/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53화

53. 지아의 노력(2)

때는 아직 상현이 레이나의 스토리 모드를 한창 클리어하고 있던 시점.

주혁과 술을 마시고 들어온 지아는 냉장고부터 열었다.

벌컥. 벌컥.

숙취 해소에 좋다는 배 음료 한 통을 다 들이켠 그녀는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멍때렸다.

“음…….”

늘 본능적으로 바로 편집점을 잡아가면서 이것저것 옮겨보던 지아는 오늘따라 행동이 더디다.

‘역시 공부를 해봐야 하나.’

릴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 뭐가 대단한지, 어떤 장면이 어떻게 연출되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배틀 라지나 킹덤은 워낙 사실적인 게임이고 룰 자체는 간단해서 일반인도 충분히 이해했는데.

릴은 그렇지 않았다.

팀플레이 게임인 데다가, 스킬도 복잡하다.

‘위기다…….’

그녀는 편집자로서,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나 월 2천만 원 못 잃어.’

그렇다고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엔 너무 좋은 직업이었다.

갑자기 이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털이 쭈뼛 서면서 공포심마저 들었다.

아몬드 얼굴을 하루 종일 보면서 월 2천씩 벌고 출퇴근도 안 하는 천상의 직업을, 고작 릴 때문에 잃어야 하나?!

-여보세요?

“연주야. 나 지아야.”

그녀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즉시 받아주었다. 점심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누구세요?

“나 지아라고. 서지아.”

-허어어어얼! 지아? 이거 새 번호야? 너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회사를 왜 나가? 고작 그 이 과장 그 새끼 때문이야? 어? 나한테 아무런 말도 없었…….

지아는 순간적으로 전화를 끊고 싶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몇 안 되는 사람인데.

전혀 소식을 전하지 않다가, 이렇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전화를 하다니.

‘바로 도움 요청하면 썅년 소리 듣겠지.’

연주는 평소에 안 그런 척해도, 친한 사이에선 입이 거친 친구다.

지아는 일단 만나서 그동안 못 했던 이야기들을 해보기로 했다.

“혹시 오늘 퇴근하고 뭐 해?”

-퇴근? 나 지금 퇴근이야. 반차 냈거든.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었는데. 볼 거야?

“오. 잘됐다. 빨리 볼수록 좋거든.”

-너 무슨 사채 썼냐?

“아이씨. 그런 거 아냐.”

사채를 쓰기는 무슨.

이제 대부업을 해도 될 판이다.

* * *

지아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브런치 카페였다. 회사들이 몰려 있는 곳의 브런치 카페는 가격대가 비싼데, 여긴 그중에서도 비싼 곳이었다.

‘아니, 얘가 미쳤나. 왜 이런 데서 만나자고…….’

허연주, 그녀는 이름처럼 얼굴이 새하얘져서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캐주얼한 복장이지만, 은근히 비싼 티가 나는 옷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시 확인하고는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착장이 갑자기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몇 분이신가요.”

멀끔하게 생긴 스태프가 다가왔다.

그 남자의 턱선을 감상하며 이 카페가 돈값을 한다고 생각했다.

“일행이 있는데. 서지아라는 이름으로…….”

“아. 예. 방금 들어가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웃으며 안내를 해줬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보인다.

허연주는 다시 한번 안색이 새하얘졌다.

‘쟤 미쳤나 봐.’

서지아의 행색이 반폐인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 연주. 왔네.”

막상 본인은 하나도 신경 안 쓰는 듯, 태평한 표정이다.

“어서 앉아.”

“……너 무슨 컨셉이냐? 중국 부자?”

“뭔 소리야. 그냥 간만에 만나니까 돈 좀 쓰려고.”

“아니. 그건 아는데. 뭐냐고 그 행색은.”

“이게 뭐가.”

지아는 자신의 트레이닝복을 내려다보며 정말 뭐가 문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예쁘장하게 생겨서. 그 얼굴이 널 만나 참 고생한다.”

“너가 더 예뻐.”

“앗…….”

연주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린다.

자주하는 장난이다. 지아는 피식거리며 메뉴판을 내밀었다.

“일단 아무거나 시켜. 난 에그 베네딕트만 먹으면 나머진 상관 없어.”

“아무거나? 다?”

“응.”

“와. 결혼하자.”

“꺼져.”

연주는 말처럼 ‘아무거나 다’ 고르진 않았다.

그냥 가장 인기 있는 메뉴 하나를 시켰다. 음료는 나중에 시키기로 하고.

아까의 그 잘생긴 스태프가 주문을 받아갔다. 잠시 근황 대화가 이어졌다.

“야. 너 나가고, 회사에서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알아? 난 다른 부서인데도, 네 얘기 들리더라.”

“……왜.”

“아니, 이 과장이 그 지랄지랄 할 때도 안 나가던 애가, 슬슬 다 끝나가던 차에 돌연 나가겠다고 하니까…… 이상하잖아.”

“그냥. 다른 직장으로 옮긴 거야.”

“다른 직장? 어디?”

허연주의 눈이 위아래로 다시 지아를 훑었다. 직장을 다니는 행색은 전혀 아니니까.

“프리랜서…… 같은 거야.”

“아…….”

그녀의 눈에 약간의 안타까움, 그리고 부러움 같은 게 서렸다.

그 뒤로는 결국 회사 얘기가 쭉 이어졌다.

“결국 그 프로젝트 제대로 성공해서, 이 과장은 이직했다. 무슨 대기업으로 가서, 배가 아프긴 한데. 그 병신새끼 상판 안 보니까 얼마나 좋던지…… 이 여자 저 여자 존내 찝적대더니…….”

“…….”

“아, 호, 혹시 기분 나빠? 그래도 전남친인데…… 내가 실수한 건가?”

“아니.”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기분 좋아. 더 해봐.”

푸핫.

허연주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지아의 솔직함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 과장에 대한 악담을 더 퍼부었다. 그의 흑역사도 몇 개 얹어서.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와.”

전남친 뒷담화할 때보다, 지아의 눈이 더 반짝반짝 빛났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걸 좋아하는 건 같은 모양이다.

지아는 한동안 말없이 먹기만 했다.

그들은 콜롬비아산 무슨 커피까지 추가로 시켜서 카페인도 보충을 해주었다.

그제야 슬슬 허연주가 물었다.

“근데, 날 왜 보자고 한 거야?”

“그냥. 너 얼굴 보려고.”

“뻥치지 마.”

“너 릴 잘한다고 했지?”

릴?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한 주제에 허연주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너 플래티넘인가…… 뭔가 달았다고. 나한테 자랑했었잖아.”

“응. 지금은 골드야……. 그, 그래도 직장인치고는 잘하는 거야!”

“누가 뭐래. 브론즈만 돼도 나보단 잘하는 거니까. 괜찮아. 나 릴 좀 설명해 줘.”

“……여기서? 그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거야?”

기분이 나빠서 묻는 게 아니라, 정말 어이가 없어서 묻는 것이었다.

회사 때려치우고 간만에 만나서 근황 토크 좀 하더니. 게임을 가르쳐달라니.

“너…….”

허연주가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대체 직업 뭐야? 혹시 인터넷 방송해?”

지아는 잠시 고민했지만, 알려줘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긴 한데. 내가 하는 건 아니고. 난 편집해.”

“오오오! 진짜? 스트리머가 누군데?”

“……아몬드라고 있어. 모르겠지만.”

“아몬드?”

연주는 모르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아직 그리 유명하진…….

“꺄아아아아아!”

갑작스러운 비명에, 지아가 흠칫 놀랐다.

“아, 아, 죄, 죄송합니다…….”

연주는 옆 테이블에 사과를 하면서도, 지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 아몬드? 진짜 아몬드 편집자야?”

연주의 눈이 어느 때보다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 내가 도와줄게. 편집!”

“그러면 나야 좋긴 한데. 어차피 내가 알아서 해야 해서…….”

“도와줄게! 한번 도와주면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거야. 그전에…….”

“?”

“캡슐방부터 가자!”

“캡슐방?”

“뭐든 직접 해보는 게 최고야!”

얘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지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질질 끌려갔다.

* * *

“어서 오세요! 텐텐 캡슐입니다!”

지아도 캡슐방을 몇 번 가 보긴 했다.

아몬드처럼 생체 코드부터 등록해야 하는 초짜는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 시작해 버렸다.

튜토리얼은 스킵하고, 하급 봇(Bot)을 상대하는 봇전부터.

〔거. 되게 답답하네.〕

그녀가 고른 화신은 독침 버니라고 불리는 ‘재키’였다.

말 그대로 독침을 쏘는 토끼 같은 녀석인데.

〔야. 똑바로 좀 해. 독침을 쏘는 거냐 애무를 하는 거냐.〕

쪼끄만 놈이 말을 굉장히 험하게 했다.

“야…… 연주야. 얘 원래 이래?”

“응? 아, 어. 신경 쓰지 마. 그 새끼는 띠꺼운 게 컨셉이야. 여튼 저거 포탑 마저 쏴봐.”

“알았어.”

후! 후!

지아는 열심히 피리 같은 것에 대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토끼 귀 같은 것을 달고 피리를 불면서 뛰어다니다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직접해 보니 배운 건 많았다.

“그래도 꽤 하는데? 아무리 봇전이라도, 이해도 못 하는 사람들투성이인데.”

“나도 한때는 캡슐방 다녔어.”

“그렇구나.”

“이경수가 게임 좋아했거든.”

“아…… 이, 이 과장이 그랬구나…….”

갑자기 숙연해지는 분위기.

둘은 입을 닥치고 게임에만 열중했다.

[허허연이 미쳐 날뜁니다!]

[허허연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전설적입니다!]

게임은 연주의 캐리로 완승을 거뒀다.

지아가 한 거라곤 잭키한테 온갖 욕을 얻어먹으며 버틴 것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는 중급 봇, 상급 봇까지 클리어해 내며 완전하게 기초 파트를 익혔다.

〔넌 다신 날 부르지 마라. 독침을 거꾸로 쏠 거 아니면.〕

지아는 마지막까지 잭키에게 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캡슐방에서 나오며, 지아가 투덜대듯이 말했다.

“회사 다닐 때랑 비슷하네.”

“뭐가?”

“욕 먹고 버티고 있으면 갑자기 해결되어 있는 거.”

연주는 또 한 번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독침 버니는 사실 독침을 혀로 쏜다는 말까지 있으니, 지아가 충격을 받을 법도 했다.

“이 언니는 지금도 그거 하는 중이다. 이젠 편집하러 가 볼까?”

* * *

“후아.”

지아는 아침까지 작업 후, 한숨을 내쉬며 뻗었다.

‘연주 덕분에 하루 안에 할 수 있었다.’

하루 안에 해버릴 생각은 없었는데. 연주가 도와줄 때 최대한 많이 진도를 빼겠다는 생각에 어느덧 완성을 시켜 버렸다.

그리고 시간은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완성된 영상은 두 개.

[릴몬드-0 | 레이나 사기캐 아님?]

[릴몬드-1 | 칼날비 피하지 말고 막으세요!]

최초 공개 업로드를 신청한 후, 지아는 긴장된 얼굴로 기다렸다.

영상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약 7~8천 명이 몰려왔다.

-와 이거 그거네?

-망나니 용사 쉑ㅋㅋㅋㅋㅋ 아몬드였어

-칼날비좌 ㅋㅋㅋ

-발또죽……

-레이나 좃사기네 ㅅㅂ

-꺄~ 아몬드!

.

.

.

최초 공개가 끝난 후.

이젠 조회 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5만, 10만, 15만 그렇게 올라가더니…….

‘와.’

#실시간 화제 영상 5위

아몬드 채널로서는 최초로 5위권 안에 영상이 들어갔다.

‘5위라니!’

대기록이었다.

그녀는 얼른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영상 확인!]

톡, 톡.

지아는 자고 옆에서 자고 있는 연주도 깨웠다.

“연주야. 우리 5위 했어.”

“흐으음……?”

연주는 일어나 일단 시간부터 확인했다.

출근 시간이 온 건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지아도 한때 저런 버릇이 있었으니 잘 알고 있다.

“오늘 토요일이야.”

“아…… 맞다. 그래서 나 어제 반차 썼지……. 무슨 말이야, 근데? 5위라니?”

연주는 눈을 비비며 몸을 겨우 일으켰다.

손님용 라꾸라꾸 침대가 삐걱거린다. 저런 곳에서 참 잘도 잔다 싶었다.

“실시간 화제 영상.”

“……?”

연주는 천천히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한참을 응시했다.

“와…… 와아아아! 이거 대박 아냐?!”

“응.”

씨익.

지아가 활짝 웃었다. 피곤에 잔뜩 절어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래서 더 기뻐 보였다.

“지아야! 너 대박이다!”

와락.

연주가 지아를 끌어안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제대로 만들었구나!”

“네가 도와준 거잖아.”

“나, 난 그냥 릴 알려주고 어떻게 하라고 말만 했지. 네가 밤새워서 한 거잖아!”

“됐고. 뭐 하고 싶은 거나 먹고 싶은 거 말해봐.”

“와씨. 너 개멋있다.”

“얼른 말해봐.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음…….”

연주는 찌뿌둥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했다. 아니, 고민하는 척을 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원하는 게 정해져 있었다.

“너…… 아몬드 님 혹시 자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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