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64화
57. 빛과 그림자(5)
툭.
타코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구준모를 돌아보진 않은 채로 말했다.
“……내가 판단한다고 말했을 텐데.”
구준모는 잠시 말이 없다가 되묻는다.
“마스터랑 언랭을 두고요?”
“말했잖아. 넌 마스터니까 오히려 다른 포지션에 가도 잘할 거고──”
“저 원딜 원툴인 거 잘 아시잖아요.”
저벅. 저벅.
구준모가 말을 끊고 타코를 향해 걸어왔다.
“무슨 고민을 하시는 거예요.”
“그냥 있으면 정해질 텐데. 왜 재촉이야.”
“……제가 재촉하는 겁니까?”
타코는 결국 뒤로 돌아서, 구준모를 마주 봤다.
올려다봐야만 하는 키 차이였다. 그러나 타코의 눈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냥 기다리면 될 텐데. 와서 이러는 게 재촉 아니냐?”
“형님이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거죠. 저는 당연히 제가 된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듯 물어본 건데요.”
사실 그의 말이 틀린 건 없었다.
구준모의 입장에선 당연히 자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 터다.
그건 타코도 똑같이 생각했으니, 할 말이 없다.
타코가 잠시 말이 없는 틈에, 구준모가 입을 더 열었다.
“그리고, 이 대회 상금도 나름 있고 우리 같은 스트리머들한텐 중요한 거 아시잖아요. 저…… 나름 실력 방송이라구요.”
“그러니까 결국 이기고 싶단 거 아니냐? 이기기만 하면 되잖아.”
“……그 ……네. 그렇죠.”
대답이 느렸다.
“하아.”
타코는 한숨이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거겠지.
원딜만 해서 마스터를 찍은 그의 스트리머로서의 입장, 입지란 것도 있을 터다.
그의 시청자가 기대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 테니.
“꼭 한 포지션으로 쭉 갈 필요 없잖아. 이런 대회에선.”
이게 타코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더 파고들려면 파고들 수 있었지만, 굳이 저 녀석의 아픈 구석까지 캐물을 필요는 없으리라.
“대회 중에 마음대로 자유롭게 바꿔도 돼. 난 코치니까 이길 수 있는 최적의 수로 할 거야.”
그의 말은 즉, ‘내가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 최악의 경우에도 네가 대회 중에 원딜을 한 번도 못 하는 일은 없게 할 거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구준모는 그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 것 같다.
“……형님이야말로 예민하신데, 이거 그냥 재미로 하는 대회인 거 잊으신 거 아녜요?”
‘재미?’
휙.
타코가 눈을 부릅뜨며 구준모의 앞으로 다가갔다.
“씨발. 재미? 난 이기는 게 재밌어. 이 새끼야.”
“형…….”
“이기는 게 내 평생 직업이었고, 결국 도태돼서 도망쳤지만, 여전히 이기는 게 재밌어. 이기는 게 재밌으면 안 되냐? 도망쳤으면? 난 이제 재미로 게임하는 사람처럼 보여?!”
“아…… 아니, 그런 말이──”
“나한테 코치를 준 이상, 동네 캡슐방 대회라도 난 이기는 선택만 할 거야. 정 X 같으면 네가 코치해.”
구준모는 순간 말문이 막혀, 뒤로 주춤했다.
자신보다 두 뼘은 더 작을 터인 이 남자에게.
구준모는 다시 떠올랐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늘 살아가는지, 스트리머 타코야끼라는 광대의 가면 뒤에 있는 그가 누구인지.
그는 여전히 프로게이머 오진성이었다.
“아…… 알겠어요. 진정해요.”
“너도 연습 똑바로 해.”
타코는 그 말을 끝으로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기분이 안 좋으실 때 건드렸나.’
구준모는 머리를 숙이며 후회스러운 한숨을 뱉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타코의 표정이 좋진 않았는데, 말을 그냥 꺼내지 말 걸 그랬다.
괜한 조급함이 오히려 화를 부른 거다.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이러지 않았겠지.’
구준모는 아까부터 보던 화면을 다시 켰다.
사실 그는 아몬드의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타코의 표정도 살피고 있었다.
타코는 이미 아몬드를 메인 원딜로 쓰기로 점찍은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몬드의 실력은 구준모가 보기에도 무서운 수준이었으니.
이 사람이 차라리 노말 대전밖에 못 하는 저렙이라 다행인 수준이었다.
“하아.”
구준모는 깊은숨을 내쉬며 벤치에 걸터앉았다.
타코가 앉아 있던 그곳이다.
* * *
치이이익──
캡슐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상현이 지친 기색으로 빠져나왔다.
“……하.”
주혁이 습관처럼 의자를 돌리며 수건을 휙 던져주었다.
“릴 공성전은 확실히 좀 빡센가 보다?”
오늘따라 유독 상현이 지쳐 보인다.
그도 그럴 법한 게 게임을 거의 6시간 내내 쉬지 않고 달렸다.
플레이 스타일도 다분히 공격적이어서, 일반적인 유저들보다 체력 소모가 안 그래도 심했을 것이다.
“내 체력이 많이 약한 거 같다.”
상현이 힘이 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잘해놓고 왜 그러냐.”
“대회에선 더 빡셀 텐데…….”
“내가 찾아보니까 릴은 프로들도 하루에 8시간 안 넘긴대. 너도 엄청 잘한 거야.”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난 씻으러 간다.”
상현은 괜스레 자신의 오른손을 주무르며 욕실로 향했다.
“그래…….”
주혁의 어미엔 왠지 자신감이 없었다.
상현의 저 꼴을 보니 갑자기 마음 한구석이 찔려온 것이다.
‘다른 스트리머와의 계약이…… 더 중요했나……?’
주혁 스스로도 자신이 뭘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헷갈렸다.
바닥부터 함께해온 상현의 병원 방문과 새로운 스트리머와 계약할 가능성.
사실 후자가 압도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실제로 그 일은 지아가 대체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마음 한구석을 뭔가가 콕콕 찌르는 건, 이런 합리적인 저울질로 그런 선택을 했던 게 어쩌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 주혁은 다른 스트리머와의 계약 얘기에 욕심을 냈던 거다.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자면 그랬다.
쏴아아아아…….
상현의 씻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리는 동안, 주혁은 괜히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상현이는 몇 시간씩 이어지는 대회를 수행하는 게 가능할까. 미호는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매니저를 부탁한 걸까.
난 알면서도 이걸 수락할까.
미래에 매니지먼트 사장이 되기 위해?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할까?
아니면 섣부른 움직임일까?
“후우.”
다시 한번 내쉬는 한숨.
폐부에서부터 여러 가지 의문과 감정이 뒤섞이는 느낌이었다만.
그것들이 사라지진 않았다.
당연한 얘기다.
숨 한 번 깊게 내쉰다고 걱정거리가 사라진다면, 그가 아성을 나올 일도 없었겠다.
* * *
쏴아아아아…….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상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근력 운동을 요즘에 따로 하는 게 아닌지라,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반인치곤 탄탄한 몸이다.
인체 구조에 예민한 그의 눈으로는 오른쪽 팔의 근육만 조금 모자란 게 보일 뿐.
다른 부분엔 문제가 없다. 오히려 헬스장의 성공 사례 프로필로 올려둬도 손색이 없을 몸이다.
그래서 더 짜증이 솟구쳤다.
‘몸은 멀쩡한데…….’
몸은 건강히 멀쩡한데, 뇌가 안 따라가 준다는 이 기묘한 감각은 누구에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덜덜 떨리는 이 오른손이 근육통이 아니라는 걸 의사조차 제대로 설명을 못 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전엔 그냥 지나치듯 들었던 의사가 했던 게임 시간에 관한 말들이 갑자기 훅훅 찔러왔다.
혹시 내가 무리하는 걸까?
상현은 고통을 느끼고 있진 않았다. 그저 피곤할 뿐이고,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멀쩡했다.
하지만, 이런 떨림이 올 때면 아무리 그라도 조금은 무서운 법이다.
‘방법을 찾아봐야 하나.’
스토리 모드에서 체력 소진이 덜했던 건 확실했다. 같은 캡슐 게임인데 체력 소모에 차이가 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인데, 그래도 확실히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컸다.
이제 상현은 거의 확실히 알았다.
내색은 안 했어도, 그는 스토리 모드를 하면서 그리고 다른 게임을 하면서 늘 자신의 피로도를 기억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어느 정도 확신에 찬 가설을 하나 세웠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동작을 할 땐 뇌가 과부하가 안 걸린다.’
현실에서 가능한 동작만 했을 시, 캡슐 사용을 오래 할 수 있다.
이는 상현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어느 정도 이에 영향을 받는다.
다들 현실에 기반을 둔 배틀 라지 같은 게임보다, 완전히 판타지적인 힘을 쓰는 릴 같은 게임이 훨씬 피로도가 높다고 했다.
그것은 화려한 빛과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으로 인한 감각적 피로도일 수도 있고, 단순히 릴이 머리를 더 많이 써야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상현만큼은 자신만의 가설을 세워본 것이다.
‘이게 맞다면…… 플레이 타임을 늘릴 수 있을 거야.’
그는 실질적으로 플레이 타임을 늘리기 위한 훈련을 한번 생각해 본다.
* * *
[아몬드 오늘 레벨 20달성! 세계 재패가 머지않았다!]
주혁이 머리를 식힐 겸 들여다본 릴프로 커뮤니티.
첫 글부터 주혁의 근심 걱정을 뻥- 하고 멀리 차버렸다.
“푸하하핫!”
이제 겨우 레벨 20을 찍은 주제에 세계 재패 어쩌고 한다는 게 주혁이 봐도 웃겼다.
-하여간 견과류단 오바는 ㅋㅋㅋㅋ
-얘네 또 시작이네
-이제 릴도 재패하냐 믹스넛츠!!!
-ㅋㅋㅋㅋㅋ이젠 걍 웃기네
주혁처럼 이 글에 단순히 웃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벌써부터 나름 아몬드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아몬드 ‘순수 실력’만 놓고 보면 대회에서 나름 기대되긴 하던데?
└일단 브론즈 실력은 절대 아님ㅋㅋㅋㅋ
└노말에서 학살하는 거 보면 확실히 플래는 될 텐데. 풍선껌 팀 화력 그럼 존나 센 거 아니냐?
└ㄴㄴ 풍선껌 팀에 최고 티어랑 포지션이 겹침. 그거 아직 해결 못 함
-아니, 솔직히 제일 꿀잼은 아몬드 팀 아니냐? 서포터로는 머리를 다시 민 타코가 눈을 부라리고 있고, 원딜로는 갓 태어난 늑대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달려들지, 미드에는 나라를 망하게 할 절세미인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예 시를 쓰네 ㅁㅊ
└지라르 드 풍자크 백작…… 고정하시오.
└“주접이란 과목이 수능에 있었다면 서울대를 수시로 갔을 것”
물론, 아몬드를 인정하는 사람보단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세계 최고 플레이어인 전자파도 인정을 안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당연한 일이다.
-응~ 어우단~ 어차피 우승은 단무지~
└그 새낀 우승 못 하면 쪽팔린 거지 ㅋㅋㅋ 바로 그저께까지 프로 하던 놈인데
└3달 전이 그저께로 바뀌는 마술.
이번 대회는 단무지라는 플레이어가 있는 팀의 우승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찾아보니 프로에서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었고, 프로에서의 성적도 준수했다.
타코처럼 우승 경력이 있진 않아도, 인정받는 플레이어였던 것 같았다.
-단무지? 응~ 우리 믹스넛츠 세계관에선 그런 건 안 쳐줘~~~ 호두나 땅콩 갖고 와~~
-짜장면도 아니고 단무지를 데리고 어딜 ㅋㅋㅋㅋ
└짜장면이라는 프로게이머도 있음?
└아니. 없지 당연히 ㅋㅋ
└이 새끼 딱 봐도 아몬드로 릴 유입된 뉴비네 ㅅㅂ 짜장면이 있냐니 ㅋㅋㅋㅋㅋ
-단무지 그거 내가 피시방에서 라면 시키면 맨날 처참히 씹어먹었는데. 그딴 놈이 으딜 아몬드를 이김?
-견과류단 새끼들 안 되니까 시발 이름으로 ㅈㄹ하는 거 보소 존나 유치하게 ㅋㅋㅋㅋ
└ㄹㅇ 잼민이 집단
벌써부터 아몬드 팬과 단무지 팬이 꽤 호각으로 다투고 있다.
이것부터가 사실 아몬드에겐 말도안 되게 좋은 일이다.
애초에 사실상 현역이 프로와 언랭크 일반인이 비교가 되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이야. 여론이 오늘만 같으면 진짜 좋겠네.”
시청자 수도 많이 나오고 슬슬 릴에서도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지이이잉…….
[오 실장]
오 실장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 저녁 시간에 전화하는 건 매우 드문 경우였다.
주혁은 얼른 받아봤다.
그리고 한참 뭔가를 듣더니.
심각한, 동시에 들뜬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짜 그게 됐습니까?”
-아몬드 이미지가 좋은 덕이지 뭐. 축하해요.
주혁은 안도했다.
관리하는 스트리머를 1명 늘리기 전에, 상현에게 줄 큰 선물이 도착했다.
이러면 그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