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65화
57. 빛과 그림자(6)
다음 날 아침.
주혁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대충 토스트로 아침을 떼운 뒤.
달그락달그락.
능숙한 동작으로 설거지도 해냈다.
이젠 생활처럼 녹아든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한 가지 더, 그가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방법을 말하자면, 역시 이거다.
슬리퍼를 신고, 마당으로 나간 뒤.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이는 주혁.
이내, 깊게 한 숨 빨아들이고 내쉰다.
“후우.”
하얀 연기가 흩어지는 것을 보며, 졸린 눈으로 흐리멍덩한 미소를 짓는다.
“이게 인생이지.”
일이 잘 풀려서 그런지,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오는 느낌이다.
그는 믿기지 않아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듯 오 실장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바라봤다.
[주혁 : 그럼 미팅 날짜에 뵙겠습니다.]
[오 실장 : 그래요. 계약서 잘 보고 조율할 것들 살펴보세요.]
[주혁 : 예!]
주혁은 상현이 조깅에서 돌아오면 이 소식을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거의 확정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소식은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띠링.
[지아 : 영상 올라감요]
오늘 또 영상이 업로드되는 모양이다
어제 아침에 이어서 연속 이틀째 업로드다.
[주혁 : 뭐야. 벌써?]
[지아 : 스토리 모드라서, 옛날 킹덤이랑 비슷해서 쉬웠어요.]
아. 스토리 모드였구나.
주혁은 잠시 이마를 쓸어넘겼다.
‘올 것이 왔군.’
아마 이 영상들은 꽤 큰 반향을 일으킬 거다.
[릴몬드 | 레이나 스토리 #1 -여긴 어디? 난 누구?]
[릴몬드 | 레이나 스토리 #2 -미니언의 실체?!]
[릴몬드 | 레이나 스토리 #3 -국내 서버 최초 3별 클리어!]
아, 천군만마(千軍萬馬)란 이런 거구나.
‘국내 서버 최초 3별 클리어!’라는 문장을 보고 주혁은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최초 어그로’를 팩트로 쓸 수 있게 된 상황이다.
릴에선 이례적인 경우다.
그래서인지 상황을 모르는 올튜브 시청자들 중에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찐임?
-구라치고 있네 ㅋㅋㅋㅋㅋ
-한국 최초임??? ㄹㅇ??
-한국 최초 어그로 아님?
└아님. ㅄ아.
-(삭제된 코멘트입니다)
주혁은 주 계정으로 언론 통제를 하며, 부계정으론 해명(?)을 하고 다녔다.
그의 그런 노력 덕분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조회 수가 점점 쌓여갔다.
처음엔 1만, 2만 늘어나더니.
1시간만 지났을 뿐인데 20만이 쌓인다.
“……또 됐어.”
앉은 채로 올튜브 화면만 들여다보던 주혁이 입을 떡 벌렸다.
또 차트 진입에 성공했다.
#인기 급상승 #실시간 화제 29위
올튜브에서 부여하는 태그가 걸리기 시작했다.
게임 카테고리로 29위.
이대로 유지하면 순위로 인한 유입이 늘어나면서 점점 눈덩이 불어나듯이 조회 수가 불어날 거다.
그리고 잠시 후.
[조회 수 30.1만]
#11위
아주 가볍게 10위권이다.
오늘은 좋지 않은 댓글도 몇 없다.
-헐 감동 레이나랑 키스하는 거 감동 ㅠㅠ
-이 사람이 아몬드구나…… ㄷㄷ 오늘부터 구독 박음. 개잘한다
-칼질도 꽤 하는데?
-와…… 15:39 여기가 클라이맥스네여.
└ㄹㅇ ㅠㅠ
└진짜 영화네. 릴 제작진 밸런스 병신인데 이건 칭찬해야 할 듯.
└이런 걸 3별 클리어로 남겨둔 건 욕처먹어야짘ㅋ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
-아니 앞으로 미니언 어케 죽이라고 ㅇㅈㄹ해놨냐 폴리스 씹새들아
└ㄹㅇ ㅠㅠㅠ ㅋㅋㅋㅋㅋ
└아들! 공부 안 하면 미니언이 된단다!?
└내 딸을 미니언과 결혼시킬 순 없네! 당장 꺼지게!
└나…… 복수할 거야. 계약자들에게. (얼굴에 점을 붙이며)
└뭐래는 거냐 ㅄ들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드라마 한 편 뚝딱했네.
미니언 시절 레이나의 스토리에 감격하거나, 분노하는 사람들, 아몬드의 플레이에 감탄하는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컨텐츠를 즐기는 모습을 보자면,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나마 악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레이나와의 키스를 질투하는 것들 정도다.
-아니, 시발 뭔데? 진짜야?! 키스가 된다고?
-레이나 짜응 ㅠㅠㅠ
-레이나…… 나를 배신했어.
-레, 레이나 내가 구해줄게!!
-와 시발 전데협은 트럭을 보낼 것입니다 ^^
-트럭 시위 모집함 (0/100000)
└동참합니다
└한국인이면 솔직히 동참합시다. NOㅏ몬드
└NOㅏ몬드 도랏냐?ㅋㅋㅋㅋㅋㅋㅋ
└무친넘들ㅋㅋㅋㅋㅋㅋ
└NOㅏ몬듴ㅋㅋㅋㅋㅋ
가끔 심하게 과몰입해서 정색하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행히 이 채널엔 없었다.
-아니, 근데 솔직히 내가 레이나에 쓴 돈이 얼만데. 현질 한 번 안 한 재능 타고난 놈이 3별 클리어로 저런 포상 받는 게 말이 되냐? 이거 진짜 트럭 보내야 된다고 생각함.
└ㄹㅇ 존나 빡침.
└ㄹㅇ 이럴 거면 선물 기능 왜 만들었냐고 ㅡㅡ 진짜 개새끼들 찢어버리고 싶네
“…….”
주혁은 방금의 안일한 생각을 바로 취소했다.
역시 아몬드 채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도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뒤에서 상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거, 뭐야. 왜들 저리 화났어?”
아침 운동을 하고 왔는지 땀 범벅인 채로 이온음료를 들이켜고 있다.
“어. 왔냐?”
“응. 저거 뭐냐고. 트럭을 보낸다고? 시위한단 뜻이잖아.”
“몰라서 묻냐?”
“내가 3별 클리어 먼저 해서?”
“그거 비슷한 거긴 하지.”
“대체 뭔데?”
“레이나랑 키스해서…….”
“?”
상현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렇게 말하곤 넘겼다.
“장난 댓글이었구나.”
장난 아니야. 쟤넨 진짜 보낼 수도 있어.
그러나 주혁은 그냥 설명을 관뒀다.
그냥 저대로 장난이라 생각하는 게 마음은 편할 테니.
“여튼, 달동네 살아서 다행이다. 트럭은 못 오거든.”
주혁은 처음으로 후계동 낙후지역의 꼭대기에 사는 게 다행이라고 느꼈다.
‘아. 광고 얘기 해줘야 하는데.’
주혁은 슬슬 아몬드에게 오 실장이 물어온 광고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 했다.
그런데……
“근데 오늘은 순두부찌개나 뭐 그런 거 없냐?”
그 순간 믿기 힘든 말을 들었다.
“뭐……?”
지금 저 녀석이 밥이 없느냐고 물은 건가?
없으면 아몬드나 처먹던 놈이.
아니, 가끔은 밥이 있어도 아몬드만 먹던 녀석이?
“……없나 보네.”
주혁이 끔찍한 표정을 짓는 것이, 왜 없는 걸 묻느냐는 것으로 해석해 버린 상현은 그렇게 그냥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자, 자, 잠깐. 순두부찌개는 지금 없어. 근데 김치찌개는 가능한데.”
주혁은 다급하게 그를 붙잡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아침을 내가 해야 한다. 혹은 아몬드 플레이크만 처먹어야 한다.
“김치찌개? 우리 집에 김치가 있어?”
* * *
“어서 오세요! 만 년 전통! 지옥의 맛! 오강우 김치찌개입니다!”
주혁이 데려온 곳은 오강우 김치찌개였다.
“……아니. 난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으려 했던 건데.”
“그냥 들어가. 우리 이거 무료 쿠폰을 몇 개나 받았는지 아냐? 다 써야지. 점심이면 서비스도 준다고.”
“그건 그렇지…….”
무료 쿠폰이란 말에 상현은 별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광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 어.”
“오 실장님한테, 연락이 쭉 왔거든.”
오 실장이라는 말에 메뉴판을 멍하니 보던 상현의 시선이 돌아간다.
요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 실장님이 광고를 직접 물어오셨어.”
“직접? 왜 굳이?”
그러게, 왜 굳이 그랬을까.
사실 주혁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다.
「만약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면, 내가 광고 하나 가져와 볼게요. 원하는 거 있어요?」
먼저 이런 제안을 한 건 오 실장이다.
미호의 매니저, 그리고 상현의 대회 참여에 대한 보상으로 광고를 가져온다 했다.
「물론 우리 회사 통해서는 아니죠. 그건 원래 제 일이니까요. 외부 루트로 해볼게요.」
회사를 통해서도 아니고, 외부 루트로 받아온다.
이 말은 수수료도 받지 않고, 그저 개인적으로 연결시켜 주겠다는 것인데.
이런 경우, 주혁의 머리에서 나올 결론은 대체로 하나뿐이다.
“오 실장 독립 각 보는 거 같더라.”
“……독립?”
독립이라 하면, 회사를 나와서 따로 차리겠단 뜻이다.
아마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걸로 추측된다.
“그래. 풍선껌이 차린 엔터랑 관계가 긴밀한 이유가 뭐겠냐.”
“풍선껌 회사로? 그건 이직이잖아.”
“음…… 내 예상으로는 파트너 이사로 들어가서 독립할 것 같아.”
파트너 이사는 사실상 회사를 같이 소유하는 개념이다.
독립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아. 커리어 잘나가네.”
상현은 9천 지옥 찌개를 시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법했다.
오 실장이 풍선껌 팀의 펑크를 대신 메꾸려고 뛰어다닐 때부터 그렇게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억측이라 할 수 있다.
펑크 같은 황금 직장도 드문데, 이직도 아니고 독립이라면 리스크가 상당할 터다.
그런 결정을 했다고 추측하려면 좀 더 그럴듯한 근거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한테 미호 매니저도 해보라고 추천했어.”
“!?”
이래서구나.
미호 역시 풍선껌이 차린 엔터의 소속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펑크의 파트너 스트리머였다.
펑크가 조금 엔터 성향을 띄긴 하지만, 엔터와 게임 유통사의 파트너는 엄연히 다르다.
“……그럼 네 소속은 뭐 어떻게 되는 거냐.”
“반 걸치는 거지. 이 바닥은 딱히 회사에 묶이는 것 같진 않더라.”
“하긴, 아성이 보수적인 거지. 요즘은 다 그렇긴 하지.”
연달아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상현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주혁이 다른 스트리머를 맡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기회가 왔달까.
게다가 그 대상이 적당히 잘나가는 사람도 아니고 미호였다.
“그래서…… 할 거냐?”
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몰라.”
“오 실장한테도 그렇게 대답한 거야?”
“이 자식이. 의심하냐? 똑같이 말했어.”
“근데 오 실장이 지금 우리 광고를 물어왔다는 건…….”
주혁은 동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실장은 이미 그 정도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거겠지.”
“그럼 펑크랑 파트너 관계는 어쩐대? 우리도 그렇고 풍선껌 쪽은?”
“우리는 전혀 상관없어. 그냥 풍선껌 엔터랑 펑크 사이의 문제지. 근데 오 실장 하나 빼갔다고 풍선껌 쪽 애들을 다 쳐내는 것도 웃기잖아. 그냥 파트너십은 유지될 확률이 높아.”
상현은 새삼 느낀다. 살벌하다.
아성이든, 펑크든, 풍선껌의 엔터든.
어느 바닥이든 생존 경쟁은 치열했다. 좋은 인재가 있으면 뺏어서라도 가져가려 하고, 좋은 인재들은 언제나 더 높은 페이를 원하기에…….
이런 부분에선 인정사정없을 수밖에 없었다.
‘주혁이도 데려가고 싶은가 보네.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했었지…….’
어디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특히나 스타들이 탄생하는 이런 곳은, 그 빛이 더 강렬하니만큼 그림자도 더 진하겠지.
“그래서 광고는 뭐야.”
상현은 일단 빛에 집중하려 한다.
균형만 잘 잡는다면, 양쪽에서 별일 당하는 것 없이 잘 지나갈 것이다.
주혁은 광고 얘기가 나오자 씩 웃어 보였다.
“역시 오 실장이랄까? 그저 그런 건 안 가져오셨더라고.”
자잘한 협찬, 혹은 광고 정도야 주혁의 이메일에도 산더미다.
의류 브랜드, 건강 식품, 치킨 체인점…….
이런걸 가져와 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오 실장도 잘 알고 있었다.
“아몬드 시리얼. CF 촬영.”
“……오?”
아몬드 시리얼 광고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것도 해외 기업이야. 제일 유명한 곳.”
“그린 다이아몬드?”
상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되물었다.
“그래. 네가 맨날 먹는 거기.”
“와……!”
이내, 그는 누구보다 기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