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71화
59. 실버 vs 마스터(4)
딸기슈터의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마스터라면 당연히 실버 랭크 정도는 손쉽게 썰어 넘겨야 정상이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마음은 가다듬기가 쉽지 않았다.
-야 *@&*(&!!
-!&&%*@(
-*(#((#
와중에도 채팅창엔 욕이 한 바가지다.
베팅 때문에 흥분한 시청자들이 몰려든 것이다.
주혁의 한 수는, 이렇게 아주 잘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베팅을 할 줄이야.’
딸기슈터는 이를 갈았다.
마스터로서, 멘탈적으로 너무 불리한 싸움이었다.
이겨야 본전인 그의 입장에선 베팅까지 걸린 지금의 판은 너무 큰 부담이었다.
[화신을 고르세요!]
하나 곧 죽어도 게임은 시작됐다.
이 세계는 어차피 승자독식, ‘Winner Takes All’이다.
이기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
[이번엔 딸기슈터가 선픽이거든요!? 뭘 고를지 기대됩니다!]
* * *
“아. 폭주족 폴이군요! 원딜이지만, 강한 체력과 기동력을 가졌죠.”
딸기는 폭주족 - 폴이라는 화신을 골랐다.
샷건을 쓰는 화신인데, 원딜답지 않게 강력한 체력과 방어력을 갖췄다.
1 대 1에서 이보다 능통하게 대처할 수 있는 화신은 드물 것이다.
“확실히 마스터다운 적절한 픽입니다. 1 대 1에서 폴만 한 픽은 드물죠.”
반면 아몬드는 어떨까.
이제 아몬드가 픽할 차례다.
“아몬드 님이 픽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란? 란을 골랐습니다?”
아몬드는 순백의 저격술사, 란을 골랐다.
‘나왔군.’
타코는 내심 반가웠으나.
입으로는 전혀 다르게 내뱉었다.
“아…… 란은, 사거리가 긴 대신 정말 몸이 약하거든요? 폴 상대로 쉽지 않아요.”
란은 확실히 1 대 1 매치에서 쓰이기는 힘든 캐릭터였다.
해설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픽이다.
그러나, 타코 개인의 입장은 달랐다.
‘아몬드의 란이라면…… 다르지.’
그가 판단하기에, 아몬드는 레이나보다도 란이 더 어울린다.
아직 그 숙련도가 레이나만큼이 아닐 뿐이다.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타코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 * *
란은 선택받자마자 곧바로 이렇게 물었다.
〔왜 접니까?〕
그다음 말에 아몬드는 더 당황했다.
〔레이나가 슬퍼할 겁니다.〕
아몬드는 최대한 서로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대답해주었다.
“너랑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거든.”
〔……그렇군요.〕
그 말과 함께 묵직한 울림이 느껴졌다.
쿵──
화사한 금발을 이마 위로 쓸어올리며 등장한 란이 아몬드의 앞에 소환되었다. 그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짓는다.
〔이겨야 할 겁니다.〕
아몬드는 그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상대의 픽을 분석하며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폴에게 접근전을 허용하면 진다, 미니언이 앞을 막고 있을 땐 최대한 사각으로, 꼭 마나를 풀 충전으로 쏠 필요는 없다…….’
피지컬만 따라주면 전천후로 모든 대처가 가능한 레이나와는 다르게, 란은 매우 세심하게 다뤄야 하는 화신이다.
싸우는 데 있어서 조건이 굉장히 많이 붙고, 자칫 적에게 공격을 허용했다간 종잇장보다도 쉽게 찢겨 나간다.
[전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모드 : 나락 결투]
휘이잉……!
어느새 다시 소환된 전장.
아몬드는 간단히 아이템을 구비하고 곧바로 내달렸다.
‘미니언들이 도달하기 전에…… 자리를 잡아야 된다.’
그는 평소 계약자들이 가는 동선과는 조금 다른 곳으로 뛰고 있었다.
정면에서 폴을 마주치는 건 란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미니언들을 방패 삼아서 천천히 다가와 샷건을 쏘기 시작하면 란은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각선에서 우측 멀리에서 때리는 게 가장 유리해.’
란은 사거리가 긴 화신이다.
순백의 마나를 모으고 모아 과충전시켜 멀리서부터 저격하듯 쏠 수 있다.
보통 마나의 집합이란 게 일정 시간 현현하면 세계의 질서에 의해 사라지지만.
마나의 순도를 극한까지 높인 란의 공격방식은 그 한계를 돌파했다. 시전자의 시야 끝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압도적인 사거리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때리는 게 란의 방식.
‘그걸 최대한 살려야 해.’
그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 이 화신은 걸어 다니는 경험치다.
아몬드는 그의 우측 수풀로 천천히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왜 여기에 옴?
-미니언 안 먹음?
-이거 기습 노림?
-여기 있다가 폴한테 들키면 사망임
-여윽시 란. 비겁한 수를 준비했군여
이 위치라면 폴의 좌측을 기습할 수 있다.
하나 기습이라고 해서 야수처럼 달려드는 식이 아니다.
아주 멀리서 저격을 하는 것이다.
아몬드는 검지를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충전]
마나를 한 점에 모으는 ‘충전’ 기술의 인지 동작이었다.
파지지지직.
처음엔 푸른색으로 타오르며 모여든 마나가, 점차 밝아지더니.
[순백의 결정]
이젠 새하얀 마나로 탈바꿈하여 타올랐다.
아몬드는 그 순백의 결정이 담긴 검지를 조심스레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언제 방출하는지만 선택하면 된다.
이 순백의 결정을 방출하는 방식은, 각 플레이어마다 다르게 정할 수 있다.
어떤 플레이어는 공처럼 던지기도 하고, 어떤 플레이어는 총처럼 쏘는 인지 동작을 선택한다.
아몬드는 당연히─
기리릭.
활시위를 당기는 듯한 포즈였다.
순백의 결정 주위로 하얀 날개가 퍼지며, 활의 곡선을 그렸다.
마치 정말 허공에서 활이 생겨난 듯이.
아몬드가 플레이하는 란의 시그니처였다.
-벌써 쏴?
-보임?
-안 보이는데.
-보이기도 전에 설마 쏘려고?
-아! 알았다! 미니언들 오면 맞히기 힘들어서 미리 보이자마자 쏘려는 거임!
아몬드는 숨죽인 채로, 적이 등장하길 기다렸다.
‘아마 미니언들이랑 같이 등장하겠지.’
적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거다.
처음에 스킬을 한 대 맞히고 싶어 하는 건 모든 사거리 긴 화신들의 공통점이니까.
하지만, 아몬드가 어디에 숨었는지까지는 예상치 못할 거다.
‘란은 솔로 랭크에서도 거의 쓴 적이 없어. 아마 모를 거다.’
적이 아몬드의 란을 분석했을 리도 없지만, 만약에 하려고 했어도 이건 예상할 수 없다.
주혁과 상의 끝에 만들어낸, 오늘 처음 쓰는 전술이니까.
[미니언이 생성되었습니다!]
전장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오로지 란의 순백의 마나가 타오르는 소리만이 적막히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미니언이 나올 때 그 속에 섞여 있을 거다.’
쿵. 쿵. 쿵.
수많은 미니언들이 몰려오는 땅 울림이 느껴진다.
계약자는 미니언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크다.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표적이 되기에 아주 좋게끔.
‘저깄다.’
바짝 세운 폭주족 헤어스타일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폴은 미니언 뒤에 몸을 아주 잘 숨기고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몬드가 ‘앞’에 있다고 가정할 경우였고.
‘빈틈이 있다.’
지금은 빈틈투성이다.
‘지금.’
날아가는 시간까지 계산한다면, 지금이다.
흡.
완벽한 호흡의 절제, 그리고 한 치 흔들림 없는 조준.
단 한 번의 릴리즈에 모든 걸 걸었던 그때처럼.
아몬드의 오른손이 가상의 활시위를 놓았다.
파아앙──!
새하얀 파장이 터져 나오며, 아몬드의 신형이 뒤로 밀렸다.
그와 반동하여 튕기듯이 날아간 순백의 결정이 포효했다.
쉬이이이익!!
바람을 집어삼켜 가며 나아가는 새하얀 에너지의 덩어리.
그것은 때마침 드러난 폭주족 폴의 이마에, 적중한다.
퍼엉!!!
새하얀 충격에, 딸기슈터의 머리가 뒤로 획 젖혀졌다.
* * *
타코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시작하자마자 헤드에 순백의 결정 풀차지를 맞았죠!?”
아몬드의 에임 집중력은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미니언이 꽤 많았는데! 그 사이로 정확히 뚫고 넣었습니다아!”
기습이라고 해도, 장애물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몬드가 쏜 하얀 마탄은 마치 미니언 사이를 피한 것마냥 매끄럽게 폴의 머리에 꽂혔다.
첫 타에 그 사이를 정확하게 노린다는 건 정말이지 재능의 영역이다.
사격으로 따지면 영점 조절도 안 한 채로 정가운데 때려 박는 격이다.
“머리에 꽂히는 바람에 크리티컬까지 터졌어요! 지금 체력의 3할을 잃고 시작합니다! 딸기슈터!!!”
시작부터 강타를 때려 맞은 딸기슈터는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주춤했다.
“어? 그런데 딸기슈터도 만만치 않죠?”
그러나 그도 마스터. 판단력만큼은 아몬드보다 우위다.
그는 포션을 먹으며 자세를 가다듬고 오히려 아몬드에게 뛰기 시작했다.
“아 붙으면 내가 이겨! 이런 마인드죠! 지금! 실제로 아몬드 붙으면 위험하거든요?!”
타코의 흥분한 목소리가 말하는 그대로다.
란같은 종이짝이 폴을 정면에서 마주친다? 그러면 살 가망이 없다.
아몬드는 첫 타를 욱여넣기 위해, 자신을 보호해 줄 포탑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였다.
딸기슈터는 그걸 역으로 노려서 달려가는 중이다.
철컥!
무시무시한 샷건의 장전음이 울려 퍼졌다.
“그런데 지금 란도 딱히 도망을 안 가는데요!?”
파지지직.
도망갈 줄 알았던 란은 다시 한번 마나를 모으고 있었다.
“뭐죠? 정면으로 붙으면 집니다! 아몬드!”
도망가다가 폴의 빠른 이동속도에 따라잡혀서 샷건에 벌집이 될 게 뻔했다.
그럴 바엔──
‘여기서 끝낸다.’
“아, 이거 무슨 판단이죠?!”
아몬드는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검지 끝에 계속 마나를 모았다.
어차피 체력은 한 대 먼저 맞은 폴이 더 적은 상태다.
여기서 아몬드는 치킨 게임을 건다.
‘난 한 판 이긴 상태고, 딸기는 한 판 지면 끝난다.’
이 심리적 우위를 절대 놓치지 않고 플레이할 셈이다.
딸기가 여기로 뛰어올 건 예상 못 했지만, 지금 이게 최선의 대처였다.
아몬드는 그렇게 믿었다.
왜냐면…….
“아몬드 지금 쏩니다! 빗나가면 진짜 희망이 없어요! 너무 도박수입니다! 폴은 지금 좌우로 왔다 갔다 흔들고 있고요!”
그의 화살은 빗나가지 않으니까.
파지지직……!
새하얀 마나가 날개를 펼치며 만들어낸 활의 형상.
날뛰는 순백의 결정을, 아몬드는 곧바로 놓아주었다. 방향만 정해준 채로.
파아앙──!
그의 신형이 밀려나고, 반동을 타며 날아간 순백의 결정.
폴의 머리에 또 적중했다.
퍼어엉!!!
“아니! 대놓고 피하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또 맞힙니다! 이러면 또 모르죠!?”
폴의 머리가 휙 뒤로 꺾였으나, 그의 손가락은 움직였다.
─철컥.
샷건이 불을 뿜었다.
쾅! 콰아앙!!
[체력이 3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아몬드의 세상이 위아래로 뒤집혔다.
“동시에 딸기도 반격! 샷건은 제대로 맞으면 두 방 판정입니다! 두 방 맞으면 저렇게 넉백이 되면서 캐릭터가 날아가거든요? 란은 체력이 종이 쪼가리라서 더 심해요!”
순식간에 거덜 난 체력. 잠시 붕 떠버린 몸.
여기서 이대로 떠밀리면, 끝이다.
‘안 돼.’
아몬드는 잠시 감겼던 눈을 번쩍 뜬다.
곧장 허리를 튕겨 몸을 일으켰다.
얼른 상대를 향해 검지를 내밀었는데.
“란 다시 일어납니다! 이젠 도망가나요? 아니면 싸움?! 지금 폴도 체력이 20% 밑입니다!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판단을 빨리 해야 합니다!”
그의 손가락 그 끝.
파지지지지직!
그곳에 이미 순백의 마나가 충전되고 있었다.
“어!? 지금 저거 뭐죠? 마나가 이미 모여 있어요! 아몬드는 애초부터 피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싸우기로 결정 난 거였습니다! 반면 딸기슈터는──”
샷건의 가늠쇠 뒤, 아몬드를 노려보던 딸기슈터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콩알만 해진 동공, 그 안엔 타오르는 하얀 빛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파앙!
‘뭐……?’
딸기는 반응하지 못했다.
“아몬드! 충전을 70%만 완료하고 쏴버립니다! 대미지가 될까요!?”
아몬드의 슈팅이 본래보다 반 박자 더 빨랐기 때문이다.
그 하얀 빛은 점차 커지더니, 시야 전체를 하얗게 태워 버렸다.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망]
이 두 글자만이 아른거릴 뿐이다.
아몬드의 딜 계산은 정확했다.
“아아아! 70% 충전으로도 충분했군요! 정확한 결단이었습니다! 반면 딸기는 아주 잠깐이지만 망설이고 말았죠!”
딸기슈터는 망설였다.
여기서 지면 끝이라는 그 걱정이, 그를 정말로 끝으로 내몰았다.
아주 잠시였을 뿐이지만, 그 미세한 차이.
0.01초의 차이로 아몬드는 승리해냈다.
“승자는───!”
타코의 흥분한 음성을 다 담지 못한 마이크 음량이 터져 버렸다.
이날 터져 버린 건 마이크 음량뿐이 아니었다. 커뮤니티 사이트 릴프로도 잠시 먹통이 되어버렸다.
실버가 마스터를 이겼다는 소식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