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82화
63. 지각 변동(1)
“기사?”
“어. 그냥 게임 관련 언론 같은 거 있잖아. 메이저는 아니더라도.”
“아…… 게임메카 같은?”
“어. 이건 일단 올튜브 렉카들이 달려드는 건 확실하고…….”
보통 때라면 기사가 나는 거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거나, 전략을 세워야겠지만.
지금은 회식이다. 그리고 술이 한 모금이라도 들어가면 주혁은 귀찮은 생각 같은 건 안 한다.
“어그로 잔뜩 끌렸네. 그러면 스트리머로선 더 축하할 일이 아니냐?! 어?! 건배!!”
“그렇지?! 건배애!”
상현도 넙죽 받는다.
지아의 것까지, 3개의 맥주잔이 시원하게 부딪친다.
짠!
* * *
첫 회식은 아주 즐거웠다.
너무 즐거웠던 게 오히려 흠이랄까.
셋은 모두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택시까지 거의 기어가다시피 했다.
“후아.”
“야, 얼른 타. 타.”
다행이라면 셋 다 같은 방향이라 택시를 같이 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후계로 가주세요.”
자동차 불빛들이 눈가를 몇 번 스쳐 가고, 택시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패널의 저급한 농담을 흘려들었더니, 어느새 그 높은 계단 앞이었다.
계산은 상태가 가장 멀쩡한 상현이 했다.
“으으. 이거 또 언제 올라가냐.”
후아. 주혁은 택시 타고 오는 사이에 거의 다 회복한 건지 기지개를 켰다.
이젠 익숙한 일이라는 듯 잠시 준비 운동을 하는 모습.
“내가 업을게.”
“되겠냐?”
“어. 데드 리프트 한다고 생각하려고.”
“스쿼트 아냐?”
“그게 그거지 인마.”
전혀 다른 것 같은데. 상현은 굳이 말꼬리를 잡진 않았다.
주혁이 지아를 이미 들쳐 매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자식…….’
상현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알아차려 버렸다.
‘안 취했잖아.’
지아가 실눈을 뜨고 있다는 걸.
상현의 시력은 일반 성인의 2~3배 이상인 데다가 밤눈도 굉장히 밝다.
본래라면 보이지 않아야 할 장면이 보인 셈이다.
지아는 역시나 상현의 위치에서 보이는지 모르는 듯.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고 있다.
“으으응…….”
“왜, 왜 그래?”
지아의 팔이 주혁을 더 조였다.
“떨어질까 봐 그러냐? 그럼 제발 취하지를 마!”
주혁은 다리에 힘을 꽉 주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열심히는 올라간다.
아니, 사실 기분 좋은 거 아니야?
‘참내.’
상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 * *
지아의 방 안쪽까지 데려다준 주혁은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
“후아. 죽겠다.”
잠시 침대에 앉아서 허리를 두들기는 주혁.
그는 지아의 상태를 한번 살피고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응…….”
주혁의 팔 소매를 당기는 손길.
“……!”
주혁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잠시 기다렸다.
지아의 손은 여전히 소매를 잡은 채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창가로 들어온 푸른 달빛 때문이다. 그의 안경 안쪽 눈빛이 보이지 않았다.
지아로서는 알 수 없었다.
주혁이 어떤 점에서 망설이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주혁은 고개를 휘휘 젓더니, 도망치듯이 집에서 나갔다.
쿵.
현관문까지 닫히는 소리.
“뭐야.”
스륵.
자리에서 일어난 지아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으로 보니 상현과 주혁은 잘 걸어서 올라가고 있었다.
푸른 보름달이 상현의 집 지붕 위에 커다랗게 떠올라 있었는데. 저들이 꼭 달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았다.
언젠가 그곳에 닿을 수 있다는 듯이. 비틀거리며 열심히도 오른다.
피식.
지아의 입가엔 푸른빛의 미소가 맺혔다.
지잉. 지잉.
그러나 휴대폰 진동 한 번이면 충분했다. 그녀의 미소를 뺏어가는 건.
[개새끼]
전화가 울린다.
가만히 안 받고 무시했다.
그러자 메시지가 왔다.
[개새끼 : 너 혹시 오늘 판다에 있었냐?]
지아의 입가는 다시 딱딱하게 내려앉았다.
역시 눈이 마주쳤었구나.
괜히 화장실에 간다면서 쳐다봤다. 그냥 눈길도 주지 말 걸 그랬다.
“그냥 가지 말지.”
괜한 원망을 중얼거려본다.
지아의 시선이 다시 푸른빛이 스며드는 창으로 향한다.
그녀의 눈이 커다란 달을 담는다.
가끔 이 지구를 떠나고 싶던데.
저기로 도망가면, 어떨까.
저들은 달에 도착했을까?
보이지 않는다.
* * *
다음 날.
숙취로 띵한 머리와 함께 일어난 상현을 엄습하는 감각은, 일단 고소한 북엇국 냄새.
탁탁탁탁.
도마에 칼날이 부딪히는 정겨운 소리.
거실로 나가보니 주혁이 열심히 요리를 하는 중이었다.
부지런한 건 알고 있었는데, 어제 술을 꽤 많이 마시지 않았던가? 조금 놀라웠다.
‘지아라도 부르려고 그러나.’
상현은 주혁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그는 이제 습관적으로 자신의 SNS 계정에 들러서 댓글을 확인하고, 커뮤니티 반응을 살폈다.
그러던 중.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서 아몬드와 전자파를 발견한다.
4위) 전자파
.
.
.
8위) 아몬드
아무거나 클릭해 보니, 제일 상단에 기사가 하나 노출된다.
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인기 기사다.
「600만 팔로워 전자파가 팔로우하는 단, 10명. 그중 하나는 신입 스트리머 아몬드?」
언론사는 게임 메카라는 곳이다.
게임 업계에서는 나름 메이저 언론이다. 그러니 제이버 같은 포털에서도 메인 노출이 되는 것일 터.
-와 ㅋㅋㅋ
-아몬드 게임 메카에서 기사도 나누
-이 새끼는 왜 휴방일 때 더 유명해지는 거냐?
└그거슨…… 인싸쉑이기 때문이지
└ㄹㅇㅋㅋ
└인싸라서 밖에 있을 때 더 잘나가는 것…….
-전자파랑 대체 무슨 관계지? 예전에 댓글도 달아줬자나
└뭔 무슨 관계임 그냥 ㅈㄴ 잘하니까 팔로우하는 거지
└ㅈㄹ 월챔 2회 우승한 플레이어도 팔로우 안 했는데?
└아몬드가 더 잘하나 보지
└이 새끼는 일부러 아몬드 욕먹이네 ㅋㅋ
사람들이 또 투닥거린다.
사실 상현도 저런 말다툼이 이해는 간다.
본인이 봐도, 전자파의 팔로잉을 (이게 별거냐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받기엔 아직 그리 대단치 못한 사람이니까.
‘팔로잉 목록이 9명뿐이었을 줄이야.’
전자파가 만약에 팔로잉 하는 계정이 다른 사람들처럼 100~200단위였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로 이슈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야. 언제 일어나서 거기 앉아 있었냐?”
북엇국을 끓이던 주혁이 이제야 상현을 발견한 모양이다.
냄비 뚜껑을 닫아놓고 상현에게 다가왔다.
“뭘 그렇게 보는데?”
“아. 전자파가 나 팔로우했던 거. 기사로 떴어.”
“결국 그렇게 됐구나.”
주혁의 예상대로였다.
10명 중 1명이 아몬드이니, 당연히 이런 기삿거리를 놓칠 리가 없다.
‘이상하단 말이지.’
처음 팔로우 했다고 했을 때도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이젠 더 이상했다.
9명은 예전 영광을 함께 나눈 동료.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아몬드?
밸런스가 안 맞지 않나?
‘완전 특별 취급이잖아.’
주혁은 이유가 없는 호재는 경계하는 편이다. 요행으로 얻은 것은, 더 큰 불행으로 잃게 되어 있다.
인간이란 동물이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고, 그 인간이 만든 이 사회 역시 그렇게 되어 있다.
“너. 혹시 전자파랑 아는 사이냐?”
“……아니. 아니라니까.”
상현이 또 시선을 피한다.
“야. 걱정돼서 그래. 좀 이상하잖아?”
“…….”
상현은 대답이 없었다.
‘뭔가 말을 할 수 없는 일인가 보군.’
이 자식은 거짓말을 너무 못한다.
“말을 할 수 없는 거지?”
상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알았다.”
주혁은 어렴풋이 짐작 가는 게 있었지만, 말할 수 없다고 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더 캐물으면 저 녀석이 고통스러워할 거다.
“나쁜 건 아니지?”
“나쁜 의미로 팔로우한 건 아닐 거야.”
“그래. 그럼 됐다.”
드드드드.
냄비 뚜껑이 달달거리며 들썩였다. 물이 끓어 넘치기 직전이다.
“앗.”
주혁은 후다닥 달려가 불을 껐다.
“지아는 언제 온대?”
“아…… 곧 올 거야…… 응?”
국자를 집어 들던 주혁의 손이 멈칫했다.
“어떻게 알았냐?”
“뻔하지 뭐.”
“……왜?”
“뭐?”
“왜 뻔하다고 생각했냐고.”
“…….”
상현은 설명하는 대신, 지금 네 행동을 봐봐…… 라는 눈빛을 지그시 보내주었다.
“크, 크흠.”
주혁은 알아서 고개를 돌렸다.
“다 같이 먹으면 좋잖아?”
“좋지. 좋아. 아주 좋아죽겠지.”
상현이 헤실거리며 비아냥대었으나 주혁은 평소와는 다르게 반박 한마디 제대로 못 한다.
애써 그냥 요리에 집중하기로 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초인종이 울렸다.
“저예요!”
* * *
주혁이 준비한 요리는 북엇국과 고추장에 달달하게 조린 삼겹살이었다.
“와. 진수성찬!”
지아는 두 손을 모으며 팔짝 뛰었다. 이 정도로 차려놨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상현은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정성을 하도 퍼부어서 그런가, 삼겹살은 마치 동파육처럼 녹아버리는 게 상당히 맛이 좋았다.
매콤달콤한 소스가 지방 깊숙이 배어 있어서 밥이 절로 땡긴다.
북엇국은 간이 슴슴하며 시원한 맛에 집중된 게 둘의 조화가 좋았다.
“요리 올튜버 해도 되겠다. 야.”
“네가 먹방하고?”
“오. 그래. 진짜 할까?”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거의 다 마쳐갈 때 즈음.
띠링.
[타코야끼 : 오늘 파워랭킹 방송 다시 하는데. 이건 다 같이 볼 필요 없거든요. 각자 시간 나시면 보시고. 연습은 6시부터입니다.]
타코야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오늘도 하는구나. 파워랭킹 방송.’
연습 경기도 이 ‘난트전’의 주 콘텐츠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방송해 준다.
이틀간의 연습 경기를 간단하게 다시 짚고 가면서 파워랭킹을 조금씩 조정하는 것이다.
물론 겨우 이틀이 흘렀으니 거의 바뀔 일은 없다.
그냥 모여서 이 선수가 어떤지, 저 선수가 어떤지 수다를 떠는 게 다일 것이다.
‘점심시간에 하네?’
그래서인지 오늘은 피크 타임 오후 6~7시가 아닌,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진행된다.
아마 운동을 갔다 와서 관람해 주면 될 것 같았다.
* * *
“하아. 하아.”
약 3일 만에 뛰는 조깅이다.
숨이 차오른다.
게다가 어제의 음주 때문에 몸이 조금씩 삐걱댔다.
“30살 다 되어가니까, 몸이 영…….”
후우.
깊은숨을 내쉬며 벤치에 쓰러지듯이 앉은 상현은 투덜대며 물을 들이켰다.
찬 공기로 까끌해진 목구멍이 다시 촉촉하게 적셔진다.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입에선 물론이고, 뜨거워진 그의 몸에서도 하얀 김이 솟았다.
몸이 뜨겁기도 하지만 날씨가 그만큼 추운 것이다.
그래서일까 괜히 옆구리가 시리다.
벤치에 앉아서 강변을 바라보니, 팔짱을 끼고 다니는 커플들이 꽤 보인다.
아니, 사실 거의 다 커플들이었다.
“후우.”
그는 다 비어버린 물통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는 다시 일어났다.
다시 뛰기 시작하는 그의 시야로 길어진 앞머리가 출렁거렸다.
그녀의 길고 긴 검은 머리가 아른거린다.
상현은 잠시 눈을 감아 흘러 들어간 땀을 빼내었다.
* * *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마치니까 오후 1시가 다 되어갔다.
‘갑자기 너무 오래 뛰었나.’
숙취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뛰어져서 더 오래 뛰었더니.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다.
그는 얼른 컴퓨터에 앉아 트리비를 켰다.
[‘킹’귤의 파워랭‘킹’]
지하철에서 만났던 킹덤 빌런이 생각나는 제목이었으나. 상현은 애써 머리에서 그 끔찍한 기억을 지운 뒤 방송에 들어갔다.
이미 방송은 다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그럼 이렇게 정리가 될까요?]
킹귤이 뭔가를 정리하려 한다.
[뭐…… 그렇죠. 사실 이틀 만이라 그렇게 큰 변화는 없죠.]
분석관이 말을 받으며, 파워랭킹 차트를 가리킨다.
‘그대론데?’
분석관의 말대로 파워랭킹에 큰 변화는 없었다.
아니, 아예 바뀐 게 없었다.
더 밑으로 내려가기 전까진.
[딱 한 팀만 지금 변동이 큰데요?]
[크진 않죠. 3계단 상승인데요.]
[그래도 초반인 걸 고려하면 너무 큰 거 아닌가요?]
[정 별로면 다음에 내리면 되죠. 뭐.]
3계단이나 상승한 한 팀이 있었다.
12위) 벌룬 스타즈
아몬드가 소속된 벌룬 스타즈다.
12위.
어제는 15위였다.
‘오……!’
그리고 옆 비고 칸에는 해설진 3명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는데.
이런 식이다.
[코멘트 1: 아몬드. 꽤 강할지도?]
[코멘트 2: 아몬드. 내가 말했던 대로.]
[코멘트 3: 분명 화려한 플레이. 그러나 아직 검증이 필요한.]
누구 덕분에 3계단이 상승한 건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직감이 예리한 자들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저는 아몬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존재다.]
아몬드가 일으키고 있는 변화를.
[아. 그러니까 아몬드는 지진이다?]
[아니. 그게 어떻게 그렇게 돼요?]
[쓰나미가 아닌 게 어디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