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186화 (186/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86화

63. 지각 변동(5)

“하아. 야 그걸 못 막냐?!”

기간트 머신이 쓰러져 버리자, 팀원들이 아우성쳤다.

“아니, 피클! 기간트 왜 했어!”

“기간트 원거리 공격 못 막으면 탱킹력 쓰레긴데…….”

“아…… 개노답…….”

릴은 가상현실 게임이다.

모두가 1인칭으로 게임을 진행하기에, 다른 팀원들의 상황을 알기 힘들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란의 공격을 못 막아내는 기간트 머신이 멍청한 놈이다. 막상 그의 상황을 모르니까.

피클은 억울했다.

‘아니. 이게 안 막히는데…….’

골키퍼에게 골대 사각으로 쏘아지는 공을 막으라고 하는 건 무리다. 기간트 머신을 플레이하고 있는 피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 진짜 괜히 치즈버거에서 피클 빼는 게 아니라니까?”

“나도 이제 피클 빼고 먹는다.”

반쯤은 유쾌하게 넘어가는 농담들이 나오기도 했으나. 피클의 죽을 쑨 듯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클은 빼는 게 정석이긴 하지

-피클 존맛인데 맛알못 잼민이들 ㅉㅉ

-피클 빼!

시청자들도, 팀원들도 그의 실수를 놀려댔으나.

그나마 해설진들은 사실 피클의 억울함을 언급해 주고 있었다.

해설진들은 객관적으로 3인칭의 시선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몬드의 공격이 사각지대를 찔렀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반면 막상 그 일을 당한 피클은 확신할 수 없었다.

‘막을 수 없는 각 같았는데…… 제기랄.’

지금 말해봐야 변명처럼 밖에 안 들릴 터다.

현재 중요한 건, 5명 중에 하필 내가 죽었다는 것뿐이다.

[부활까지 15초]

반의반 분도 안 되는 부활 대기 시간이 오늘따라 너무 길게 느껴진다.

그 긴(?) 시간 동안 팀원들은 하나둘 자신의 라인으로 돌아갔다.

결국 앞서 얻은 이득은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몬드의 슈퍼 플레이 혹은 피클의 트롤 때문에.

* * *

“아니! 이게 뭡니까!? 아몬드 선수!!!”

킹귤은 마치 지금이 공식 경기 해설이라도 되는 듯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무쳤다 ㅋㅋㅋㅋㅋㅋ

-실시간 제일 불행한 사람: 피클 ㅋㅋㅋㅋ

-와 이건 진짜 지렸는데? 여기서 한 명을 데려가?

-실시간 제일 불행한 사람: 킹귤 옆집

“지금 다섯 명!”

킹귤이 손가락을 쫙 펼쳐 보이며 카메라에 들이댔다.

“다섯 명, 그러니까 팀 전체를 한 명의 플레이어가 상대한 거예요! 심지어 마지막엔 미호가 합류하면서 피클이 죽었습니다! 이런 게 진짜 슈퍼 플레이죠! 미호가 합류할 시간을 아몬드가 벌어준 거거든요!?”

-ㄹㅇ 슈퍼플레이 맞다;;

-이것만큼은 0.8전자파.

-란 몇 번 해보지도 않았던데 졸라 쩌네

-사거리 계산이 거의 완벽한데. 감각이 ㅈㄹ 좋은 듯

“사거리 감각, 반응 속도, 판단력! 뭐 하나라도 빠지면 이런 플레이가 안 나오죠! 아몬드 님 판단이 좋지 않을 거라는 말이 많았는데. 이러면 그런 말 못 하겠는데요!?”

-ㅋㅋㅋㅋ킹귤 지금 누구 들으라고 얘기하냐

-이 새끼 ㅋㅋㅋㅋㅋ

-빨간 안경이 옆에 있었으면 한 대 때렸을 듯. 음성 연결이라 다행인 듯 ㅋㅋㅋ

시청자들도 저게 함께 시청 중인 분석관을 향한 말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굳이 추측할 필요도 없이 킹귤은 대놓고 실실 웃으며 물었다.

“이 상황. 어떻게 보십니까. 분석관님.”

방금의 플레이는 누가 봐도 기울어질 뻔한 게임을 살려낸 슈퍼 플레이.

아무리 아몬드를 회의적으로 보던 사람이라도 인정을 할 수밖에 없을 터다.

분석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건 재능이네요.”

“오?”

생각보다 더 큰 칭찬에, 킹귤은 반가워했다.

“제가 말했잖습니까? 재능이 있다고. 이렇게 또 의견 통합이 되네요?!”

킹귤은 카메라를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씨익.

-아오 ㅋㅋㅋㅋㅋㅋ 개얄미워

-킹귤! 킹귤! 킹귤!

-킹귤이 또 옳았죠!? 킹귤이 또 옳았죠!? 킹귤이 또 옳았죠!?

“에이 내가 이기긴 또 뭘 이겨. 그냥 의견 통합. 의견 통합.”

-ㅋㅋㅋㅋ맥이네

-외교식 용어 ㅋㅋㅋㅋㅋ

-딜교식 용어 ㅋㅋㅋㅋㅋㅋ

-딜교부 장관 킹귤! 대 단 하 다!

“어허! 그런 말 하지 마. 여기 그런 방 아니야. 분석관님도 다 자기 역할이 있는 거야.”

-저희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임?

-또 이상한 연기하넼ㅋㅋㅋ

-아니 ㅋㅋㅋㅋㅋ 이 새끼 분석관한테 괜히 꼽 줄려고 저러네 ㅋㅋㅋㅋ 무슨 말 나온 것처럼ㅋㅋㅋ

킹귤은 모른 체 화제를 슥 전환한다.

“어찌 됐든. 굳이 재능이란 표현을 쓴 이유가 있을까요? 분석관님?”

“저런 슈퍼플레이는 정말이지 재능의 영역입니다. 담력이라든가 결단력은 타고나는 게 크죠. 게다가 그 플레이로 게임을 살려냈어요. 결과까지 좋습니다. 보통 시도만 좋고 결과는 안 좋게 끝나거든요.”

“스타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까요?”

“음. 만약 이게 프로 대회였다면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려면 고랭크와 실전에서 검증이 필요하겠죠.”

“아! 또 검증인가요? 솔직히 지겹네요!”

“제가 또 그 단어를 썼나요?”

킹귤의 농담에 분석관과 킹귤이 동시에 웃는다.

-ㅋㅋㅋㅋㅋ그만! 그만!

-빨간 안경 해탈 ㅋㅋㅋㅋ

-정신 잃고 헤헤 웃네 ㅋㅋ

-이미 다운됐다고 이 새끼야 ㅋㅋㅋㅋ 그만 때려!

* * *

해설진들만 화기애애해진 게 아니었다.

아몬드의 슈퍼 플레이에, 다운됐던 벌룬 스타즈의 분위기가 살아났다.

[와 방금 아몬드 오빠 쩔었다. 그쵸?]

[어…… 장난 없는데!? 난 게임 완전 터지는 줄 알았는데.]

[근데 풍선껌 오빠. 아몬드한테 릴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요. 그거 아직도 유효?]

[큭…….]

-ㅋㅋㅋㅋㅋ 풍선껌니뮤ㅠㅠ

-껌 형도 잘하는 게 있을 거야. 힘내!

-아몬드를 가르쳐?

끓어오른 분위기를 타코가 그만 제지했다.

[크흠. 아몬드가 잘하긴 했지만, 이제 겨우 게임 시작이다. 침착들 하자. 우리 팀이 2 대 1로 지고 있는 거야.]

타코의 말대로였다.

릴이란 게 킬 스코어가 승리로 직결되는 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불리를 파악하는 데 킬 스코어만 한 지표가 드물다.

[벌룬스타즈] [1]

[그린티배깅] [2]

킬 스코어가 1:2로 벌룬스타즈가 지고 있다.

“아몬드.”

타코는 보이스 채널을 끄고, 옆에서 미니언을 죽이고 있는 아몬드에게만 들리는 육성 채널로 이야기했다.

“잘했어. 이게 진짜 대회였으면, 그런 플레이가 게임 뒤집는 거야.”

아몬드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크. 타코쉑 참 리더네

-아몬드한테만 알려주는 거 무냐고!!!

-아니… 나 왜 대머리에게 심장이 쿵쾅대지?! 미친 거야!?

아몬드의 시청자들은 타코의 육성을 그대로 들을 수 있었기에, 타코의 진심도 들을 수 있었다.

팀 보이스에서는 5인 전체가 듣기 때문에 한 명을 콕 집어서 칭찬하지 못하지만, 그 당사자에겐 확실히 잘했노라고 칭찬해 주는 모습.

꽤나 코치로서 바람직한 방식 같았다.

“근데 조심은 해야 된다.”

“예.”

“그린티는 마스터인 데다가, 2킬이나 먹었어. 지금 성소도 들렀다 와서 아이템도 챙겨왔다. 우리처럼 1킬로 산 아이템하고는 많이 달라. 2킬부터는 제대로 된 장비 살 돈이 나오거든.”

아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위험하겠네.’

저 끝에 그린티가 보인다.

당장 위협이 되고 있진 않았다. 그린티 역시 일단은 조용히 미니언을 처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린티에게 조금의 기회가 오면 아몬드는 죽을 수도 있다.

템 차이 때문이다.

1킬로는 쓸 만한 아이템을 살 수 없어 포션 따위나 구매한 반면, 2킬로는 싸구려일지라도 장비를 하나 맞출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 스펙상으로는 2킬 차이가 난다고 봐도 무방했다.

팡! 팡!

척 보기에도 그린티는 미니언들을 수월하게 죽이고 있다. 대미지를 올려주는 아이템 덕분일 터다.

깔끔하게 미니언들을 정리하는 그린티의 솜씨를 보며 타코는 땀을 삐질 흘렸다.

‘역시 현직 마스터. 팔팔하네.’

반면 아몬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연사를 할 줄 모르네?’

아몬드가 생각하기에 사나를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연사 기술이었다.

사나는 여러 번 맞힐수록 얻는 이득이 큰 화신이니까. 짧은 시간 안에 여러 번 쏠수록 유리한 것이다.

물론 그린티도 충분히 빠르게 쏘고 있었다.

다만 그게 아몬드의 눈에 차지 않았을 뿐이다.

‘마스터라고 해도…… 사나 플레이는 평범한 건가?’

심지어는 상대가 사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의 눈엔 그렇게 보이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겠어.’

그리고 그게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그가 보기엔 적의 공격 사거리를 예민하게 오가며 스텝을 밟는 무빙도, 활을 조준하는 방식도…….

‘이렇게 형편없나?’

솔직히 별로였다.

활을 쓰는 화신만큼은, 아몬드의 기준에선 다른 플레이어들의 플레이가 못 봐줄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아몬드가 뭔가를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킬 각 나온 것 같은데.”

그의 손가락에 마나가 깃들었다.

* * *

[킬각 나온 것 같은데]

이 말이 해설자들의 보이스로 흘러들어온다.

“예!?”

킹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몬드 님에게만 보이는 킬각이 있나요? 제 눈엔 전혀…….”

분석관, 빨간 안경도 고개를 젓는다.

“음…… 저도…….”

본래라면 아몬드의 허튼 발언에 조금 더 쓴소리를 퍼부었을 그이지만, 아까의 5 대 1 플레이를 본 이상 함부로 말할 순 없었다.

정말 본 거일 수도 있잖은가?

“만약에 저게 킬각이라면, 궁금하네요. 어떤 킬각인지.”

그리고 그의 의혹은 곧바로 해소된다.

펑──

하얀 마나탄이 사나의 머리에 적중했다.

[아씨 뭐야!?]

미니언 뒤로 완전히 몸을 가리고 있다고 믿었던 그린티는 인상을 찌푸렸다.

[힐! 힐 넣어.]

[지금 넣은 거야!]

[더 넣어!]

[빛의 화살이 없어! 그림자를 맞혀야 생기잖아!]

[그럼 맞혀!]

[그게 그렇게 쉽게──]

옥신각신하는 사이 란의 마나탄이 또 날아온다.

펑!

사나의 신형이 충격으로 뒤흔들린다.

[이게 맞아?!]

아무리 몸을 잘 숨겨도, 기어코 틈새를 찾아내서 끄트머리라도 맞혀 버리고 있었다.

란은 딱히 몸의 어디를 맞히든 간에 비슷한 대미지가 나오는 캐릭터다.

‘다 보이는데. 왜 숨는 거야.’

그래서일까.

아몬드의 눈엔 대체 왜 몸을 숨기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아무리 미니언 뒤에 숨어도 팔 쪼금, 머리 빼꼼, 다리 찔끔 삐져나오는데.

-아니 저거 찔끔 나오는 걸 어케 맞혔누?

-미친 ㅋㅋㅋ 히트박스 끄트머리도 맞히네

-와 저게 맞아?!

보통은 대강 몸통만 제대로 숨겨도 맞지 않아야 할 란의 공격이 계속 들어간다.

[이, 이게 왜 맞냐고!]

그린티는 당황하여 외쳤다. 그는 나름대로 마스터스러운 무빙으로 이리저리 숨으며 화살을 쏘고 있었다.

본래라면 이 정도로 무빙샷을 깔끔하게 치면 일방적인 딜교환이 이뤄져야 하는데.

퍼엉──!

오히려 일방적으로 맞고 있다.

[커헉!]

사나의 특성상,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억지로 힐을 욱여넣어도, 안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자, 잠깐. 이거 어떻게……]

옆에 있는 서포터도 딱히 방어형 서포터가 아니다.

도와줄 방법이 없다.

[어, 어디로 피해야 하──]

──쾅!

마지막 한 발을 따라오며 쏜 아몬드.

[적을 처치하였습니다!]

[망나니 용사 → 그린티]

떠오른 텍스트가 담고 있는 내용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그린티가 당연히 이겨야 할 싸움에서, 아예 죽어버렸다.

“아니!? 지금 바텀 솔로킬을 낸 거죠? 아이템 레벨 차이 다 나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분석관님!”

“음…… 축구에 비유하자면 지금 아르헨티나 국대가 토고한테 예선 패 당해서 떨어진 기분일 겁니다.”

“아……! 그, 그 정도인가요?”

“그렇죠. 당연히 이겨야 하는 조합 상성에, 당연히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아이템 장착 정도나, 레벨도 그렇고…….”

“팀원들 멘탈이 나가겠네요?”

“제가 보기엔 그린티배깅이 게임을 더 진행할 여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고 약 5분 정도 흘렀을까?

[죄송합니다. 형님들. 스크림은 여기까지 해요. 더 진행해 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린티가 사과하며 게임을 끝냈다.

이날, 릴 커뮤니티 릴프로는 ‘실’과 ‘마’를 바꿔서 쓰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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