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89화
64. 뉴 챌린저(3)
그린티배깅이 처참하게 패배한 후.
킹귤과 빨간 안경의 분석관은 이만 방송을 정리하려 했었다.
이미 그들이 보려고 했던 경기는 마무리가 된 참이니까.
“아. 지금까지 그린티배깅과 벌룬스타즈의 스크림 경기였구요. 비록 스크림이고, 엄청 짧았지만 나름대로 수확이 크네요.”
-ㅋㅋㅋㅋ 너만 수확이 크지
-분석관 이겼다고 신났구만
-폭력죄가 사라진다면 빨간 안경은 킹귤 집으로 곧장 쳐들어간다에 전 재산 다 건다.
-수확 ㅇㅈㄹ ㅋㅋㅋㅋ
-킹귤: (낫으로 빨간 안경의 머리를 베며) 수확이 크네요!
킹귤이 말하는 수확이, 자신을 이겼다는 말이란 걸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빨간 안경은 젠틀하게 웃으며 받아주었다.
“뭐…… 저도 재미있었어요. 흥미로운 구도에 흥미로운 결말이었습니다.”
-외교식 용어 남발 ㄷㄷ
-맛집 소개할 때 ‘오 이거 맛이 재밌는데?’ = 개똥맛
-흥미좌 ㅋㅋㅋㅋㅋ
-검증좌에 이어서 흥미좤ㅋㅋ
아무래도 빨간 안경은 잃은 게 많은 듯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에게 한층 더 친숙한 이미지가 된 것 같아서 만족 중이었다.
“어?!”
그런데, 그때 킹귤이 어떤 채팅에 격하게 반응했다.
“진짜야?”
분석관은 안경을 고쳐 쓰며 지켜보았다. 무슨 일이기에 방종 멘트를 치다 말고 놀라는 건지.
“단무지 팀이랑 지금 연습 경기를 하고 있다는데요!?”
“예?”
분석관마저 이 소식엔 놀라버렸다.
‘단무지 팀이라면 고단백인데…….’
꽤나 -외교식 용어가 아니라 진심으로- 흥미로운 매치업이었다.
최강의 팀으로 평가받는 고단백 vs 최근 가장 기세가 좋은 벌룬 스타즈.
일단 팀 구도부터가 인상적이었다.
프로 시절 커리어는 압도적으로 좋았지만, 서포터라는 포지션상 저평가되었던 타코야끼.
딱히 우승 커리어는 없지만, 늘 고평가받았던 ‘무관의 왕’ 단무지.
거기에 아마추어 최강 원딜이었다가 약 3년간 쉬고 돌아온 백숙과 현재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아몬드의 매치업.
‘현재 플래티넘 랭크로 참여했지만, 사실상 그랜드 마스터 이상의 실력일 테지.’
만약 백숙이 제대로 연습을 해서 기량을 끌어올렸다면, 최소 그랜드 마스터에 버금가는 실력일 것이다.
“정말 흥미롭겠는데요? 이건 외교 용어 아닙니다.”
-아까는 외교 용어였던 거야? ㅋㅋㅋㅋ
-무친 ㅋㅋㅋㅋ
-빨간 안경 극호 ㅋㅋㅋㅋ
-아조씨도 방송해요!
-킹교관 빨간 안경ㅋㅋㅋ
“그럼 어떠세요. 분석관님. 아까 경기 한 판 만에 끝나서 좀 ‘검증’이 아쉽지 않았나요?”
빨간 안경은 검증을 이제 그냥 자신의 밈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듯 웃으며 말했다.
“예. 검증 아쉬웠죠. 검증은 할 거면 끝까지 해야 되거든요?”
“그렇죠!”
킹귤이 흥이 넘치게 받았다.
“검증하러 가시죠!”
“좋습니다!”
-ㅋㅋㅋㅋ검증 고!
-킹증 ㅋㅋㅋㅋ
-공인검증서 빨간 안경 ㄷㄷ
-대체 몇 번을 검증하나요!
-ㅈ같이 여러 번 검증하는 것도 ㄹㅇ 공인검증서넼ㅋㅋㅋ
* * *
분석관과 킹귤이 경기 관전을 시작할 때 즈음엔 이미 시간이 조금 지난 상태였다.
“아니. 지금 이미 미호와 풍선껌이 당한 상태입니다?”
킬 스코어가 이미 2 대 0.
겨우 2킬 차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은 그보다 훨씬 더 좋지 않았다.
“상황이 안 좋군요. 이미 한 번 죽었는데, 지금도 압박을 당하고 있어요.”
풍선껌과 미호는 포탑 근처에서만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 중이었다.
“이런 걸 포탑 허깅(Hugging)이라고 하거든요? 포탑을 끌어안고 있다는 거죠.”
“예. 비꼬는 식의 말인데, 그만큼 타워(포탑) 허깅을 하는 상황은 좋지 않다는 겁니다.”
“왜죠. 분석관님?”
“타워 허깅은 전쟁으로 따지자면, 아군 진영 참호에서 바짝 엎드려서 몸을 사리는 중인 거죠. 그런데 이기는 전쟁은 보통 어떻습니까?”
“달려가서 다 쓸어버리고 있죠!”
“맞습니다. 진영을 점점 적군 쪽으로 밀어서 결국 적의 핵심 지역, 여기서는 성소가 되겠군요. 성소까지 진영을 미는 게 이 릴 공성전이라는 게임인데. 거기에 가장 반하는 행동이 포탑 허깅인 거죠.”
“명쾌한 설명입니다. 전쟁에 비유를 하셨는데. 정글러의 상황을 보급로라고 치면, 비슷하네요.”
“예. 이럴 때 정글러가 가장 힘들어요. 각 라인에 가서 지원과 보급을 해야 하는 신체로 치면 혈액 같은 역할인데. 혈관이 점점 좁아지는 거예요. 적에게 압박당해서요.”
“피가 도는 구역이 좁아지면…… 건강에 좋을 게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반면 고단백 정글러인 도토리묵은 게임하기 너무 편하겠습니다?”
“그렇죠. 거의 활주로죠 지금. 아몬드와 타코가 틀어막고 있는 바텀을 제외하면 전부 다 자기 세상이거든요.”
요약하자면 상황은 벌룬 스타즈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 바텀이 뭔가 해야 합니다.”
결국 아몬드와 타코가 뭔가를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룬 스타즈 팀은 자연스럽게 진다.
하나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았다.
“그렇습니다! 아몬드와 타코가 결국 해줘야 합니다!”
“방금 그 말에서 벌룬스타즈의 한계점이 조금 드러나는군요. 결국 바텀이 해내야 하는 팀인 거죠.”
“바텀이 해내야 한다…… 그럼 반대로 고단백 팀의 바텀은 그냥 포탑 허깅하고 있으면 되는데요?”
“그렇죠. 아몬드는 그걸 억지로 끌어내서 죽여야 하는데. 백숙이 보통 선수가 아니라서 아마 잘 안 될 겁니다.”
타코와 아몬드도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 질문이, 왜 저렇게 수비적으로 할까? 가 되어야겠지.]
[왜 수비적으로…… 하는지?]
[그래. 그걸 알아야 파훼가 되거든. 상대의 심리를 읽어봐. 입장을 바꿔서.]
[이기고 있어서?]
[맞았다. 그럼 이제 그런 상대를 어떻게 파훼할 거지? 상대는…….]
타코의 보이스를 들은 해설자들이 감탄했다.
“지금 타코가 아몬드에게 가르치려는 것들, 어떻게 보면 릴의 기초적인 운영 상식인데…… 타코가 정말 설명을 잘해주네요.”
“아몬드는 이럴 때 보면 초보가 맞긴 합니다. 믿기 힘들지만요.”
“그래서 더 놀라운 것도 있어요. 이런 걸 전혀 모르는 채로 오로지 감각으로 그간 상대를 압박했다는 거잖아요?”
그때, 아몬드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어요.]
승부를 봐야 하는 지점에, 적절한 깨달음을 얻은 걸까?
아몬드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앞으로 뛰었다.
파지지직……!
그의 검지에 다시 하얀 마나가 피어올랐다.
‘……될까?’
타다닥.
미니언 사이를 뛰어가는 아몬드를 보며 분석관이 입을 열었다.
“아. 이건 자기를 미끼로 던져서 상대를 나오게 하려는 건데요?”
“상대가 이성적이라면 나오지 않겠죠.”
“그렇습니다. 혹은 미끼만 쏙 빼먹고 도망갈 수도 있거든요. 그 정도 실력이 됩니다.”
“이거 위험한 전술인데요. 하지만 유일하게 먹힐 법한 전술이기도 합니다.”
“자! 상대는 호응만 안 하면 이깁니다! 베팅으로 치면 말도 안 되는 확률에 걸었어요! 역베라고 하죠!”
* * *
역베, 이성적인 대처…… 따위의 해설자들 말이 들리진 않지만, 아몬드는 이미 그것들을 감안하고 있었다.
‘될 거야.’
아몬드는 알고 있었다.
스포츠에서,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변하는지.
이미 이긴 매치에서 골을 더 넣으려다가 뒤집히는 축구 경기가 얼마나 많던가?
관중의 야유에 결정적인 순간에 갖고 있던 공을 집어 던지는 농구 선수도 있으며, 상대를 일부러 맞혀 버리는 야구 선수도 있다.
게임에서도 같을 것이다.
비록 그게 연습 게임일지라도, 만약 경쟁을 즐기는 부류라면 같을 것이다.
‘특히나 팀 게임이라면.’
타코는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했다.
상대는 한때 아마추어 최강이었다가 지금 복귀했다. 그의 현재 랭크는 저평가되어 있다.
그리고 적은 실버 랭크의 아몬드다.
다른 아군들 전부 킬을 올리면서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떨까?
욕심을 내지 않고, 나 자신을 죽이고 그대로 팀의 승리에 묻어갈까?
딱히 승패가 상관없는 연습 경기에서?
상대가 나와 비슷한 색의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면…… 어땠을까.
‘못 견딜 거다.’
타악──
아몬드의 발이 기어코 소총수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갔다.
백숙의 움직임이 멈칫하는 게 보인다.
‘나와.’
아몬드가 한 번 더 성큼 발을 내디딘다.
뒤에 타코도 함께라지만, 이건 누가 봐도 소총수에게 유리한 구도다.
란의 장점인 사거리를 포기한 포지션이니까.
그 순간, 적의 소총이 아주 미세하게 아몬드 쪽을 향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꿀꺽.
아몬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호흡을 골랐다.
그건 적도 마찬가지였다.
백숙의 눈에 극심한 갈등이 스치고 있었다.
그러나 갈등은 말 그대로 스쳐 갔을 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가 서포터에게 외쳤다.
“킬각이다! 뛰어!”
척.
동시에 어깨에 완벽히 견착한 총구는 아몬드를 향한다. 그리고 당겨지는 방아쇠.
‘미끼를 물었다.’
아몬드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해 냈다.
살아남아라 챌린지에서 느꼈던 그 감각.
바람 소리도, 입을 벌려 무어라 외치고 있는 타코의 고함도, 전부 느리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적의 총구에서 화려한 불꽃이 서서히 터져 나왔다.
타아──아아아──
길게 늘어지는 붉은 화약의 궤적.
불꽃이 납덩이를 밀어내고, 날 선 납덩이는 공기를 갈라내었다.
그 화력은 전부 딱 하나의 점으로 집중되었다.
아몬드의 눈이다.
아몬드의 동공 한가운데, 번쩍이는 총알이 비추고 있었다.
아몬드는 있는 힘껏 허리에 힘을 주었다. 그의 몸이 급격하게 우측으로 기울었다.
──아아앙!
고속에서 터지는 굉음이 귓가를 스쳤다.
칙!
왼쪽 광대뼈에 그어지는 붉은 혈선.
“!?”
소총수의 첫 발이 빗나갔다.
소총수 플레이어, 백숙의 눈이 믿기 힘들다는 듯 부릅떠졌다.
‘총알을 피해?!’
소총수가 잘못 쏜 게 아니다. 정확히 머리를 노렸는데 피한 것이다.
미리 몸을 움직인 것도 아니고, 정말 총알을 보고 반응했다.
어이가 없는 반응속도다.
‘됐다.’
팟!
아몬드의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의 손가락은 순식간에 상대를 조준했고, 모아둔 마나를 방출했다.
[방출]
손가락 끝에서 새하얀 빛이 발광한다.
파아앙──!
백색의 마나가 공기를 가로지르며 날았다.
콰앙!
소총수의 머리에서 하얀 폭발이 터져 나왔다.
그의 허리가 뒤로 휙 젖혀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란의 풀차지 공격은 파괴력이 강하다. 당하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는다.
그 틈에 아몬드는 적들의 사거리에서 벗어났다.
적 서포터가 던진 빛의 고리는 허망하게 공기만 가르고 사라졌다.
철컥!
총을 들고 다시 반격을 준비한 소총수, 백숙도 허망한 눈이 되었다.
아몬드는 이미 멀리 가버린 것이다.
“잘했어!”
타코가 외쳤다.
“그거야. 잘 파악했네. 파훼법을 이제 알았구나.”
“예.”
“그걸 반복하면, 우리는 희망이 있어.”
25% 체력을 깎아냈다.
이론상 이걸 네 번만 반복하며 바텀에서 1킬을 만들 수 있다.
‘빡빡하군.’
상대의 실력이 그랜드 마스터라서일까?
‘그마부터는 벽이 느껴진다고 하더니.’
그간 했던 게임과는 1킬의 난이도가 차원이 달랐다.
조금 더 압박하고 있었지만, 상대의 저항이 너무 정확하고 거셌다.
“전에 하던 것보단 너무 어렵네요.”
타코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킬을 내는 게 쉽진 않을 거야. 천천히 해.”
천천히?
아몬드는 미니맵을 바라봤다.
미드와 탑은 또 죽기 직전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도발에 잘 걸리던데.”
빨리 해결해 보고 싶었다.
다시 한번 자신을 미끼로 내민다.
아몬드는 다시 한번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백숙의 사거리 안으로 몸을 들이민 거다.
백숙과 눈이 마주쳤다.
아몬드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도발하는 것이다. 어차피 넌 날 못 맞힌다는 듯이.
“!”
그러자 반응이 왔다.
백숙의 총구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한 걸음 떼려는 순간.
상대 서포터도 순간 자리에 없다는 걸 확인한 아몬드.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킬각…….”
이번에야말로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