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92화
65. 옛 인연(2)
‘동수잖아.’
메시지의 발신자는 ‘이동수’였다.
한때 양궁을 같이 했었던 친구다.
상현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룬스타 피드 안으로 들어가 봤다.
‘……뭐야.’
상현이 기억하는 이동수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그대로 조금 더 푸짐해졌을 뿐이다. 하나 상현이 놀란 부분은 얼굴의 일관성 때문이 아니다.
‘너도 못 했구나.’
이동수 역시 양궁 선수가 아니었다.
상현은 사고 이후, 연습 끝에 양궁을 그만두게 되고 나서는 절대 양궁 쪽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올림픽이 개최되어도 양궁은 보지도 않았고 애초에 스포츠라는 것 자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만약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알았을 것이다.
이동수가 선수가 되지 못했다는 걸.
‘이게 현실인가…….’
그저 막연히 ‘걔네들’은 다들 올림픽에도 나가고, 메달도 따며 선수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느낌은 뭐지…….’
옛 친구를 보고 있자니, 희한한 감정이 들었다.
마치 잠시 동안 청계고의 그 등굣길을 걸어가는 듯한…….
기억이 몸 안에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단순히 회상이라든가, 떠올린다는 게 아니라, 거리를 거닐면 풍겨오던 분식집의 떡볶이 냄새, 불편하면서도 편하게 입던 교복의 거칠한 촉감, 모든 오감이 다,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뭘 그리 혼 빠진듯이 보냐.”
비빔국수를 마저 다 빨아먹으며 주혁이 넌지시 묻는다.
상현이 요즘들어 휴대폰을 멍하니 보는 일은 많았으나. 저런 표정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표정 말이다.
“……예전 동료한테 연락 와서.”
“아. 그러냐. 난 또…….”
주혁은 룬스타를 하다 보면 그런 경우 많지, 라며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하려 했다.
“잠깐.”
그러다 불현듯 뭔가 깨닫는다.
“예전 동료라는 게 뭔데…… 너 양궁 할 때?”
“……응.”
“!”
주혁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아니.”
그는 다급하게 안경을 고쳐 쓰며 상현 쪽으로 건너가서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이 사람 어떤 사람인데? 너 밝혀지는 거 싫다며? 너 설마 여기 전화 번호 연동해 놨냐?”
“아니. 그런 거 아닌데.”
“후아. 다행이다. 호두가 깨진 건 아니구나.”
주혁은 일단 안도했다.
휴대폰 안의 연락처를 연동해 버리면, 과거 인연이 있었던 놈들이 죄다 연결되어서 답이 없어진다.
“애초에 나 연락처 연동해 봐야 별 상관도 없어.”
상현이 쓰게 웃으며 자신의 연락처 목록을 보여준다. 보통의 학교 생활과 보통의 사회 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면 이거저거 합쳐서 최소 100개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죄다 회사 사람들뿐이잖아?’
상현의 연락처는 약 마흔 개 정도였다.
그마저도 주혁과 겹치는 게 거의 9할 이상이다.
과거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의 친구도, 그 이전의 친구들도 없었다.
회사에서는 낙하산이라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쳐도, 왜 어렸을 때 인연들도 전화번호가 없는가?
‘뭔 일이 있던 거야.’
양궁 했던 사람들과도 아예 척을 진 건지, 전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딱 하나.
[한소연]
소연의 전화번호다.
툭.
주혁은 일단 상현의 휴대전화를 시야에서 치우며 재차 물었다.
“그래서 연락 온 사람…… 어떤 사람인데?”
믿을 만한 놈이냐? 라는 질문이었다.
“음…… 나도 잘 몰라.”
“몰라?”
“10년 전 인연이잖아. 지금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모르지.”
“아…….”
주혁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10년이면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부터의 10년이라면, 아예 다른 사람일 거다.
학창 시절의 성격과 가치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
“입막음이 되겠어?”
“내가 알던 동수라면…… 딱히 어디다 말하고 다니는 걸 즐기는 편은 아냐. 양궁하는 애들이 원래 다들 좀 과묵한 것도 있고…….”
“그럼 다행이고.”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지켜야 할 비밀은 아니야…… 라고 말하려던 중 상현은 멈칫했다.
‘근데 동수 이제는 양궁 안 하는데.’
양궁이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활발하던 놈도 침착하고 과묵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동수는 과연 처음부터 과묵했던걸까? 아니면 양궁의 삼원색 과녁이 그에게 최면을 걸었던 걸까?
‘이젠 과묵하고는 거리가 멀 수도 있어.’
상현은 다시 한번 이동수의 룬스타 피드를 살폈다.
연인과 즐거운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 여행기, 맛있는 음식들…… 평범한 룬스타의 모습.
[팔로워 1천]
그중 눈에 띄는 건 팔로워가 무려 1천 명이라는 것.
상현에 비하면 먼지 한 줌에 불과한 숫자일지라도, 일반인이 1천 명의 팔로워를 갖는다는 건 이례적인 것이다.
만약 상현이 스트리머를 안 했다면 그는 팔로워가 50명도 안 됐을 것이다.
소위 ‘인싸’ 생활을 했다는 주혁의 팔로워가 450명 정도다.
‘옛날의 동수는 일단 아닌 것 같네.’
그가 기억하는 이동수라면, 이런 숫자의 팔로워가 나올 수는 없다. 사람들 만나는 걸 그리 즐기진 않았던 성격이었으니까.
하나 모를 일이다.
그저 그의 룬스타가 재밌어서, 혹은 동수라는 사람이 매력이 있어서 그냥 많아졌을지도.
상현은 다시 한번 메시지 내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양궁 그만두고 소식 끊겨서 다른 거 하는 줄 알았는데. 스트리머구나? 완전 신기하다ㅋㅋㅋ 여전히 잘 쏘네?]
“여전히 잘 쏘네…….”
다시 비빔국수를 먹던 주혁이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뭔 소리야.
“뭐?”
“맛있다고. 비빔국수.”
주혁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정정해 줬다.
“빅빔국수야.”
“……뭐?”
“빅선생의 비빔국수라서 빅빔국수.”
“……오케이.”
“잘못 말했다간 빅선생한테 뒷목 잡혀서 날아간다.”
“?”
“빅선생의 뒷목 식당…… 안 봤냐?”
“어……”
“거기서 그지같이 장사하는 애들 뒷목 들고 던지거든. 괜히 빅선생이 아니더라. 덩치가 2미터 넘는 것 같아.”
뒷목 식당은 꼭 본인이 화가 나서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은 이름인데.
‘뒷목을 잡고 던지는 거였구나…….’
빅빔 국수.
상현은 꼭 제대로 발음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거지는 내가 내일 아침에 할게.”
탁.
문을 닫고 침대에 드러누운 상현.
평소와 다르게, 그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연락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연락이 왔을 때. 솔직히 걱정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이젠 그도 옛 추억을 공유한 존재는 소중한 나이여서일까?
상현은 계속 메시지 화면을 만지작거린다.
‘어차피 언젠간…….’
사실 마음의 준비는 차고 넘치게 했었다.
대회에 나가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활을 쏘는 모습도 보여줬다.
망나니 용사, 그 광고는 전국 트리비 채널에서 방영됐었다.
언젠간 밝혀질 터다.
그가 양궁 선수였다는 것.
오히려 너무 미룬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주혁이는 밝히면 무조건 큰 이득이라고 했었지.’
돈 생각뿐인 매니저의 말로는 그 과거사를 밝히면 되려 이미지가 급상승할 거라 했다.
그건 상현도 예상할 수 있는 바였다.
안타까운 사연의 양궁 꿈나무, 스트리머로 꿈을 다시 되찾다.
이런 카피가 붙으면서 뉴스에 실릴 거라는 건, 누구나 가볍게 상상할 수 있으리라.
댓글 내용도 이젠 줄줄이 떠오른다.
“하아…….”
상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라고, 여태 밝히지 못하느냐…… 아마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할 터다.
아마 이유를 말해도, 공감해 주진 못할 거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니까.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젠 그만 나타나지.”
스르륵.
길고 긴 검은 머리칼이 어느새 눈에 아른거렸다.
과녁을 노려보듯이 언제나 또렷하고, 정직한 그녀의 눈동자.
그 안에 비추는 상현은 여전히 그 낡은 영상 속의 어린 모습이다.
그가 입을 연다.
늘 같은 말.
「재미없어서 그만두려고.」
어린 치기에 했던 거짓말이다.
코치님이 부탁했었다. 부상으로 그만둔다고 말하는 건, 전혀 동료들에게 좋지 못하다고. 활 앞에서 위축될 거라고.
코치는 상현이 끝까지 거짓말을 해준 것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해주었다. 그를 아성에 입사시켜주었다.
코치님에 대해 원망하진 않는다.
사실 거짓말을 하고 싶었던 건 상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코치님이 거짓으로 말해달라 숨겨달라 부탁했어도, 그녀에게만큼은 분명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
소연은 재차 그를 붙잡고 되물었다.
「정말 그만둔다고?」
「정말 네가 재미가 없어서 이걸 그만둬?」
「누굴 속이려 들어!? 얼른 제대로 말해!」
당시 누구보다 상현을 잘 알던 그녀이기에, 당연히 갑자기 그만둘 리가 없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그런데도 상현은 끝까지 거짓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녀에게 다쳤다는 말을 하기 싫었다. 언제나 날 최고, 최강으로 바라봐주던 사람에게, 난 이제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차라리 최강인 채로 어딘가로 사라지는 게 좋아 보였다. 어린 시절의 그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나중에 언젠간 제대로 알려주면 되겠지…… 가볍게 여기고 말았지.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대가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한참을 고민하던 상현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간만이다. 동수야. 언제 시간 되냐? 한번 볼래?]
그는 이제, 추억은 추억으로 대하기로 했다.
* * *
“이야. 유상현!”
회사 점심 시간의 카페. 사람이 북적이는 곳 틈에서도, 옛 친구의 얼굴은 그대로 눈에 확 들어온다.
“동수.”
“와! 반갑다!”
이동수는 한층 푸짐해진 몸집을 흔들며 온몸으로 인사했다.
“야. 너 엄청 유명하던데. 이런 데 와도 되는 거냐?”
“아…… 그렇게 유명한 건 아니야. 직장인들은 나 잘 몰라.”
상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른 다시 모자를 눌러썼다.
동수가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만 벗고 있었던 것이다.
“야. 넌 여전히 잘생겼다. 부럽구만.”
“넌 조금 바뀌었네.”
“아, 어. 살이 엄청 쪄버렸지 뭐냐. 양궁 계속 할 걸 그랬나 봐.”
“왜 그만둔 거야?”
“그야. 뭐…… 난 너처럼 딱히 재능도 없고. 그냥 몸으로 하는 일이 좋아서 했던 거거든.”
“아…….”
“나 근데 지금도 아예 다른 일 하는 건 아니야.”
“그래?”
“응. 양궁 카페 운영하거든. 나름 인기 많아.”
상현은 놀랐다.
룬스타를 나름 훑어봤는데도, 눈치채지 못했었으니까.
“그렇구나. 룬스타 봤을 때도 몰랐어.”
“아. 그야 그건 개인 계정이고. 내 카페 홍보 계정은 이거거든.”
“아…….”
남양주점, 양평점, 강릉점까지…… 전국에 체인이 있었다.
주로 외곽지역에 넓게 차려 놓는 식의 카페였다.
“와.”
“어때? 여기 좀 쏠 만해 보이냐?”
킬킬거리며 이동수가 과녁을 보여주었다.
“어. 괜찮아 보이네.”
“국궁도 있어. 어르신들 하는.”
“국궁?”
국궁이라.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이사님과 한번 쏘러 가자고 해놓고 아직까지 미뤄진 상태다.
바쁘신 분들과의 약속이란 게 원래 이렇다.
“자. 봐봐. 여기 양평 지점이 국궁.”
“오…….”
“요즘 캡슐 게임 같은 것도 재밌지만, 반대 급부로 오프라인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어.”
“아. 그렇지. 아무리 가상 현실이라도, 한계가 있으니.”
“응. 와서 자연 느끼고 힐링하면서 한 발 두 발 쏘면, 머리 확 맑아져.”
동수는 어릴 때부터 자연을 좋아라 했었는데. 그건 그대로구나. 장사를 하다 보니 말을 좀 더 능숙하게 하게 된 것 말고는 지금 보니 바뀐 게 별로 없었다.
“너 그거 기억나?”
둘은 나름대로 대화가 잘 통했다.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아하하. 그때 코치님 진짜 그지 같았지. 솔직히 말해서.”
“푸하하하!”
상현도 간만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양궁을 함께 하던 동료를 만나서, 양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이지 소중했다.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즘에, 상현은 자신이 양궁을 했던 건 비밀로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아…… 비, 비밀로 하고 있다고?”
동수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당황스러워하는 것도 고등학교 때와 똑같았다.
몰래 연습 시간에 빠져나갔다가 코치님한테 걸렸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던가.
“그, 그래? 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
“너도 내가 야, 양궁 카페를 하는 거 봐서 알겠지만…… 나, 난 우리 애들이랑 아직도 자주 보거든?”
“?!”
뭘 말하려 하는지, 상현도 직감했다.
“왜 우리 후배들도 놀러 와. 그…… 종현이랑 태우도 오고…… 혀, 현주도…….”
“……그래서?”
이동수는 고개를 테이블에 박듯이 푹 숙이고 사죄했다.
“미…… 미안하다! 말해버렸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