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196화
66. 별거 아닌 사연(3)
“뭐라고 그렇게 중얼거리시는 거예요?”
10년 만에 마주친 후배의 얼굴.
간만에 봐도 그녀가 차현주라는 건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현주……냐?”
“네.”
“넌 여기 어쩐 일로…….”
주저앉아 있던 상현은 민망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수 오빠한테 얘기 듣고. 간만에 소연이 언니 생각나서 와봤어요. 마침 생일이더라구요.”
“아…….”
“그리고 생일에 여기 왔다가 상현 오빠 비슷한 사람 봤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누가 말한 건지는 이제 기억도 안 나지만.”
“그렇구나.”
“그나저나 우연찮게 조금 들었는데.”
“……!”
상현의 반응을 본 현주는 안심시키려는 듯 슬쩍 웃어 보였다.
“저한테라도 말해줄래요?”
“…….”
상현은 고민했다.
‘지금?’
소연에게 이젠 말해야겠다고 다짐하긴 했지만. 여태껏 동료들에게 감췄던 사실을 갑자기 말해야 한다니.
아무리 강심장인 상현이라도, 그런 걸 바로 결정하긴 힘들었다.
하나, 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말하기로 했잖아.’
현주의 눈을 바라봤다.
소연을 닮은 맑고 고운 두 눈에, 다짐을 한 듯한 표정의 상현이 비친다.
“어디 가서 말할까.”
“저기 카페 하나 있어요.”
“가자.”
카페로 걷는 길에, 둘은 어색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샛강 플레이스’
추모 공원 안에 있는 카페라 분위기가 어두울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그냥 조경 좋은 카페의 느낌이다.
커피는 현주가 들고 왔다.
“근데 오빠 성격 많이 바뀌셨네요.”
현주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오는 길에 대화한 소감을 말했다.
“그래? 하긴, 고등학교 때랑 똑같을 순 없지.”
“아성 다니셨다더니. 거기서 많이 바뀐 거예요? 아님 언니 사건 뒤로……?”
“뭐…… 둘 다 아닐까.”
“동수 오빠한테 얘기는 들었죠?”
“뭘?”
그래도 앉아서 대화를 해보니.
의외로 10년 만에 만난 현주와의 대화는 매끄러웠다. 마치 원래 자주 봐왔던 사이처럼.
“제가 오빠 발견했던 거요.”
“근데…… 너 요즘도 내 방송 보냐?”
“네.”
“……웬만하면 보지 말지?”
“왜요? 너무하네.”
“그야. 아는 사람이 본다고 하니까 좀…….”
“저만 볼 것 같아요? 아는 사람들 더 있을 것 같은데. 양궁 쪽 사람들도 알 것 같고.”
상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양궁 쪽 사람들은 무슨…… 내가 뭔 유명 인사였다고…… 기억도 못 할걸. 내가 누군지.”
“알 사람들은 알았잖아요?”
“10년도 전이야. 그때 얼굴하고 지금 얼굴이 같지도 않잖아.”
현주는 피식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언니 보러 오는 거. 얼마 만이에요?”
“2년인가…….”
“역시 자주 오셨구나…… 저는 한 4년 만인 것 같아요.”
하긴.
이미 10년도 더 된 사람을, 그것도 친구였던 사람을 매년 보러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기 부모 묘에도 잘 찾아가지 못하는 게 현대인이니까.
“자. 이제 말해주는 거예요?”
현주는 싱긋 웃으며 가벼운 말처럼 묻는다.
물론,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10년이 흘렀어도, 그 일은 여전히 의문이니까.
“아까 언니한테 말한 거. 저한테도 말해주세요.”
“……그래.”
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옆의 거대한 전면창을 바라봤다.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며 공원을 뒤덮고 있었다.
“일단 내가 그만둔 이유.”
“네…….”
“소연이 생각이 맞았어. 난 재미 없어서 그만둔 게 아니야.”
현주는 별로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언니한테 들었어요. 오빠가 얼마나 어렸을 때부터 이걸 했는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할머니…… 때문에라도 계속 해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거.”
“그래. 맞아.”
“왜 그만둔 거죠? 절대 그만둘 수가 없는 상황인데. 게다가 지금도 활을 쏘는 거 보면…… 지금도 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이것 때문에.”
상현은 오른팔을 내밀었다.
“……오른팔?”
그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팔이 어디까지만 기능할 수 있는지부터, 왜 가상현실 게임에선 작동하는지까지.
“……!”
현주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다.
부상은 생각도 못 했던 모양이다.
그야 겉으로는 멀쩡했으니.
“오, 오빠…… 나, 난 그런 줄도 모르고…….”
현주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상현이 어떤 심정을 겪었을지, 현역 선수인 그녀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쳐서 키워낸 무언가가 싹둑 잘려 나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내 세상의 절반이 사라진 느낌.
“……대, 대체 왜 말을 안 했어요?!”
“코치님이 너희들 연습에 악영향이 간다고 했었고…… 자존심…….”
“예……?!”
현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 조금은 화가 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현은 이야기를 다 해야 했다.
어차피 시작한 거.
이미 동수가 자신을 발견했을 때부터. 이건 피할 수 없는 거였다.
“……자존심?”
현주의 목소리가 처음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하기야, 자존심이라고만 말하면 당연히 저런 반응이 나온다.
“소연이는 늘 내가 최고라고 했어.”
“……그래서요?”
“소연이뿐 아니라, 코치님, 친구들, 후배들도…… 모두 날 유망주라고 생각했지. 날 추켜세워 주던 사람들한테 하루아침에 내가 반병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더라.”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상현은 거기에 조그맣게 덧붙였다.
“……미안하다.”
쿵.
테이블 위, 현주의 팔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도 그냥 말해주지…….”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그랬던 걸까. 그런 가정.
상현도 수십, 수백 번은 해봤기에, 현주가 그냥 토해내게 두었다.
“그냥 좀 비겁하게, 코치님 말 어기고 자존심도 버리고 말해주지! 언니랑 친했었잖아?!”
현주의 눈화장이 흘러내렸다.
“언니한테만큼은 말할 수 있었잖아!”
틀렸다. 상현은 세상 사람 모두에게 말했더라도, 소연에게는 말하지 못했을 거다.
그녀 앞에서만큼은…… 처참한 상황의 민낯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녀에게만큼은 항상 최강이었던 유상현으로 남고 싶었다.
그러나 팔도, 소연도 잃은 지금.
“미안하다.”
상현이 할 말은 이것뿐이었다.
현주가 고개를 숙이고 오열했다.
“왜…… 왜 그렇게 혼자 떠안고 살아요? 네? 언제까지 말 안 하려 했던 건데요? 왜 언니가 죽어서도 말을 안 했어요!! 우린 그것도 모르고……!”
현주는 그런 것도 모르고, 10년 전의 장례식장에서 상현을 원망했었다.
마음 같아선 쫓아내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
후에 그 말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와,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사실 말하려고 했어.”
“그러니까 언제요!?”
“나…… 소연이가 마지막으로 전화했을 때. 재활 중이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재활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재활만 되면, 어떻게든 재활만 되면…….”
상현은 여기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힘겹게 다시 숨을 끌어올렸다.
“다 아무 일도 아닌 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날 소연이가 나랑 같은 사고로 죽었고. 난 재활도 반쪽짜리로 가능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지.”
“같은 사고……?”
“응…… 자율주행이 그때 사고가 엄청 많았잖아.”
상현의 말하는 투에서, 현주는 그의 생각을 얼추 읽었다.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그가 왜 동료들에게 더더욱 말할 수 없게 됐는지.
“설마, 같은 자율주행 사고라고, 오빠 죄책감 느끼는 거야? 그래서 언니가 죽어서도 말 못 한 거야?!”
상현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왜 그렇게 바보예요. 누가 그렇게 생각해?”
현주가 다그치듯이 말한다.
“그때 우리 고등학생이야. 고등학생! 아무도 고등학생한테 책임 안 물어요.”
상현도 안다.
실제로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것쯤은.
“……내 입장에선 내가 소연이를 죽인 거나 다름없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건 당사자가 아니면 몰라.”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니라는 것쯤은.
그러나 늘 이런 문장이 머리에 맴돈다.
‘하지만 유일하게 살릴 수 있었던 건 너야.’
이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아. 오빠. 그러면 외과 의사들은 다 살인자게요?”
“…….”
“물론…… 그때 바로 말을 안 했다는 게…… 아쉬워. 나도 너무…… 아쉬워. 언니가 살아 있었다면…… 정말 좋을 것 같거든? 하지만 오빠 상황도 고등학생으로서 제대로 판단하기는 너무 힘들었잖아.”
현주가 상현의 손을 붙잡았다.
크기에 비해 쓸데없이 묵직한 질감에서 현주는 느낄 수 있었다.
대체 10년간 이 손이 어떤 짐을 짊어지고 있었는지.
“괜찮아.”
그녀는 진심을 담아서, 상현에게 말해주었다.
“10년이나 지났어. 이제 다 괜찮아.”
현주의 손등에 촉촉한 것이 떨어졌다.
상현은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 * *
만남이 끝나고.
현주는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한층 진정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는 현주.
“다음에 동수 오빠 카페에서 봐요.”
“그래.”
“아…… 오른팔에 대한 건. 저만 알고 있을게요. 나중에 직접 이야기하시는 게…… 낫죠?”
“어. 고맙다.”
시원한 엔진 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그녀의 차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그는 현주에게 정말로 고마움을 느꼈다.
아까의 위로가 거짓이라 해도.
처음으로 꺼낸 이야기를 다 들어준 것만으로도 그에겐 은인이다.
현주의 차가 완전히 멀어지고. 상현은 다시 공원 안쪽으로 걸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시 소연의 앞에 섰다.
돌에 새겨진 문구를 만져본다.
“또 올게.”
아까보다는 한층 더 가벼운 마음으로, 소연의 앞에 서 있다.
“그때는 아마…….”
그때는 아마 세상에 널 아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질지도 몰라.
상현은 카페에서 사 온 하얀 꽃을 내려놓으며, 내년을 기약했다.
“생일 축하해.”
* * *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상현의 마음은 홀가분하기도, 붕 뜬 것 같기도했다.
뭔가 대단한 일이 해결된 것만 같은데.
사실 막상 뭐가 해결된 건 없다.
그저 그의 마음 한구석 뒤엉켜 있는 가장 큰 실타래가 조금씩 풀어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다행이야.’
그것만으로도 뭔가가 잘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는 이제 조금이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커뮤니티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그 일환이다.
[오늘 아몬드 드디어 제대로 ‘킹증’인 이유]
[캬 오늘 드디어 아몬드 챌린저랑 붙는다!]
[오늘부터 첼로는 골로라고 부르게 될 것.]
[주의! 전국 문구점 비상! 골판지를 챌판지로 변경해야……]
오늘 연습 경기 상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늘 상대가 챌린저…… ‘홍차’라고 했나?’
챌린저 원딜.
긴장해야 할 상대였다.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반응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집이다.
시간은 아직 오후 2시 정도였다.
“결혼식 어땠냐?”
마당에서 잡초를 뽑고 있던 주혁이 허리를 펴며 물었다.
“아…….”
상현은 주혁에게 결혼식을 간다고 거짓말을 해뒀었다.
‘말해야겠지?’
그는 오늘 현주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젠 아마 주혁에게도 말해야겠다고 느꼈다.
“잠깐 할 얘기가 있어.”
“……엥?”
주혁은 갑자기 진지한 모습에 놀라 테이블에 앉았다.
상현은 그에게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 예전에 한소연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부터. 내가 왜 거기에 죄책감을 느끼는지, 오늘은 누굴 만났는지.
이젠 어떻게 하고 싶은지.
“…….”
이야기를 다 들은 주혁은 멍하니 상현을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잠시 안경을 벗더니 눈을 비볐다.
“이거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간 거다.”
주혁은 혹시 자신의 강인한 남성성을 상현이 오해할까 덧붙이며 코를 훌쩍였다.
“……그래서 그간 꺼린 거구나?”
“응. 대중들한테 알려지는 것도 물론 별로였지만…… 사실 동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가 가장 무서웠지.”
“너 때문에 죽은 것 같아서?”
“……응.”
주혁은 한숨을 옅게 내쉬며 창가를 바라봤다.
‘하긴.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라도…….’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간다.
대충 짐작은 했었다. 주혁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더 있을 거라고.
“……이제야 이해가 간다.”
주혁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듯, 잠시 침묵했다.
“기분은 어때.”
“음…… 한결 나아. 현주가 용서해 주는 듯이 말해서.”
“좋은 애네.”
“그래. 좋은 애야. 원래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주혁은 상현의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어쨌든 축하한다. 한 발 나아간 것 같은 느낌인데.”
“……고맙다.”
상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약이긴 한가 보더라. 10년이란 시간이…… 무서워.”
“감정은 이미 다 사라질 시간이지.”
주혁도 고개를 끄덕인다.
인간이 시간 앞에 얼마나 쉽게 풍화되는지, 그도 어느 정도 알 나이다.
“그래도 옛날 동료들하고 연락하는 거 보니 좋다. 난 네가 고딩 때도 왕따인 줄 알았거든.”
“무슨. 나 인싸였어. 양궁부에선…….”
양궁부에서라는 조건을 소심하게 붙이고는 상현은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난 오늘 준비할 게 많아서. 나중에 더 말하자.”
오후 3시.
아직은 이른 시간이다. 하나 오늘 있을 연습 게임은 상대가 상대인지라, 나름의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타코야끼 : 오늘 연습으로 나올 원딜러 홍차의 플레이 영상, 버릇, 주요 화신 정리 파일.zip]
타코가 보내놓은 파일을 열자, 온갖 영상 파일들과 부연 설명된 텍스트들이 함께였다.
아몬드는 하나둘 열어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챌린저보다 못할 것을 가정한 후. 그녀의 약점을 어떻게든 파고 들어볼 생각이었다.
아무리 챌린저라도, 완벽한 플레이어는 세상에 없다. 그는 그녀가 습관적으로 피하는 방향까지 기록하고, 움직이는 방식까지 외워뒀다.
오로지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모든 신경을 쏟으며 집중하는 것이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았다.
그간 그를 무겁게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