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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200화 (200/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00화

67. 챌린저의 벽(4)

“끄아아아아악!”

화르르륵!

솔리아의 불길에, 부두술사 쿠이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 갔다.

그의 등짝엔 수도 없이 꽂힌 푸른 화살들의 흔적이 역력했다.

“언니이이이!”

애처롭게 홍차를 부르는 레몬. 그러나 홍차는 이번에도 뒤도 안 보고 다시 돌아서 도망갔다.

화르륵!

미호의 불덩이가 한 번 더 그녀의 뒤를 노렸지만, 홍차 역시 챌린저.

타악!

프레임 사이로 흘리면서 가볍게 공격을 피했다.

물론 그렇다고 희망이 있는 건 아니다.

도망가야 하는 건 같았다. 목숨만 겨우 지켰을 뿐.

“허억…… 허억…… 씨발…….”

홍차는 거친 숨만큼이나 거친 말을 뱉으며 달렸다.

‘미드가 똥인 걸 깜빡했다.’

홍차 팀 미드가 실버라는 걸 언제나 간과해선 안 됐다.

비단 미호가 아니더라도, 적 미드는 언제나 전장을 지배하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진짜 게임 더럽게 힘드네.”

이럴 때마다 느낀다.

릴은 팀 게임이다.

아니, 미드 게임이다.

“란 말고 다른 거 해야겠어.”

원딜러는 초반 영향력이 너무 적다.

특히 란처럼 연사력이 느리고, 조건을 많이 타는 화신은 팀빨을 많이 탄다.

홍차 혼자 캐리해야 하는 이런 팀에 어울리는 픽은 아니었다.

단순히 아몬드의 주류 픽 하나를 가져온다는 느낌으로 고른 것이다.

“후우…… 살았나?”

한참을 도망간 뒤에야, 홍차는 안심한 듯 보였다. 그녀는 가만히 숨을 고른 후. 합장을 했다.

우우우웅……!

귀환 텔레포트의 인지 동작이었다.

[성소로 귀환 중]

[비전투 상태를 8초간 유지해 주세요]

이제 성소에 가서 아이템을 사고, 앞으로 어떻게 버텨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20분만 지나면…….’

20분만 지나면 한 번도 죽지 않은 홍차의 란이 캐리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몰랐다.

저 멀리서 솟구치는 붉은 전격. 강신기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

[강신기(降神技) - 데미안의 해방된 화살]

“……어?”

뭔가 오싹한 기분을 느낀 다음엔 이미 늦은 뒤였다.

콰아아아앙!

푸른빛의 마나가 그녀를 휩쓸고 지나갔다.

[사망]

갑자기 세상이 흑백으로 변했다.

‘아. 미친. 레벨 6이었어?’

홍차는 자기가 뭐에 당했는지 깨달은 뒤.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스택을 벌써 다 쌓았어?’

6레벨도 6레벨이지만. 레이나는 강신기를 쓰려면 ‘마궁수의 자긍심’이라는 콤보 스택이 필요한데.

아까 쿠이판을 두들겨 팰 때 다 쌓은 모양이다.

기가 찰 정도의 속도다.

‘하…… 서렌이나 치자.’

이번 판은 전투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 * *

“잘했어. 계약자.”

현실에 강림한 화신, 레이나가 아몬드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그녀의 활 데미안에선 아직도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몬드! 좋았어!”

타코가 아몬드의 어깨를 팍 두들겼다.

“아까 혼자 판단한 거. 아주 좋았어.”

뭐라 꾸짖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래요?”

“그럼! 아까처럼 내가 위급할 땐 제대로 된 판단이 안 되거든! 게다가 네 판단이 옳았잖아?”

아몬드는 미호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포지션임을 확인했고, 미드 라인의 상황도 여유로운 걸 감안해서 ‘콜’을 한 것이었고.

그건 올바른 판단이었다. 거기서 게임이 뒤집어졌다.

그 전투 이후 5분이나 지났을까? 적들은 결국 항복을 선언한다.

[스크림 이번 판은 여기까지 할게요.]

잠시 후.

대기실에 모인 벌룬 스타즈.

타코는 몇몇 플레이어들에게 개인 코칭을 하고 있었고, 아몬드는 후원을 받고 있었다.

[미션 성공!]

두두두둥!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쏘아진 50만 원의 후원.

[루비소드 : 축하드려요!]

“와! 루비소드 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리액션 없음?

-ㅋㅋㅋㅋㅋㅋ어떻게 죽을 건지 생각해 보셈

-이번엔 죽는 거냐 아몬드!?

“아. 리액션은 죽는 걸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이게 팀 게임이라. 나중에 배틀 라지 켜든가 하죠.”

-아니 ㅋㅋㅋㅋ 배틀 라지 왜 그렇게 된 건데 ㅠㅠ ㅋㅋㅋㅋ

-야 킹덤은 리액션으로도 안 쓰냐!?!

-무친넘ㅋㅋㅋㅋㅋ

“아, 아니면 망나니 용사 플레이할 때 리액션 해보죠.”

-그거 모바일 게임이잖아 ㅆㅂ

-광고가 리액션?!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 광고가 리액션인 무친 스트리머가 있다!?

-와 나도 스트리머 할래 ㅋㅋㅋ

-자본의 무한 궤도 ㅋㅋㅋㅋ 무쳤누

“어. 2경기 시작합니다. 갈게요.”

아몬드는 결국 어떤 리액션을 보여줄지는 알려주지 않고 가버렸다.

아마 안 할 확률이 높아 보였다.

* * *

2경기는 밴픽 구도가 상당히 달랐다.

일단 가장 먼저 밴되는 건 역시나 레이나.

[냉혈의 마궁수 - 레이나]

밴이 확정되자, 레이나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말 한심하네.〕

이 음성은 적에게도 들린다.

홍차는 적잖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으나, 무시하고 계속 밴을 진행했다.

[순백의 저격술사 - 란]

[빛의 선율 - 사나]

이렇게 3개가 밴되었다.

활을 쓰는 원딜러를 거의 다 밴한 것이다.

‘남은 건 서리 궁수인가…….’

제어 능력이 좋긴 하지만, 대미지가 너무 적어서 꺼려지는 캐릭터다.

그래도 남은 게 그뿐이라면 해볼 생각이었다.

“어……?”

다음 순간, 아몬드의 표정이 멍해졌다.

홍차가 ‘서리 궁수 - 레온’을 가져가 버린 것이다.

-와 활 쏘는 놈들 원천 봉쇄

-오 파악당한 것 같은데?

-아몬드 활캐 말곤 못 함??

-자기들이 선픽인 걸 이렇게 쓰네

-이걸로 봉쇄되나!?

밴픽을 진행하던 타코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게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연습 게임에서 나올 줄은 몰랐네. 그것도 레드카펫츠에서…….”

-ㅋㅋㅋㅋㅋㄹㅇ

-챌린저가 비겁하게 올밴 하고 뺏어가기까지 하냐 ㅋㅋ

-진짜 가차 없네

-저렇게 해야 챌린저 가나요!?

홍차는 아몬드가 다룰 수 있는 화신 가짓수에 제한이 있는 게 큰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얼추 맞는 분석이긴 했다.

“몬드야. 어떻게 할래? 남는 게 있긴 해?”

“한 손으로 하려고 조금 연습한 게 있긴 한데…….”

결국 아몬드는 ‘독침 버니 - 재키’를 골랐다.

〔뭐야. 이 몸을 부른 게 너냐?〕

재키는 특유의 시건방진 말투와 함께 등장했다.

아몬드의 머리에 토끼 귀가 생겨나고, 키가 한 절반 정도로 줄었다.

그리고 손엔 독침을 쏘는 독침 피리가 생겨났다.

레이나를 선택했을 때와는 너무 다른 허접한 차림이었다.

-헉ㅋㅋㅋㅋ 개커엽누 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

-독침버니 개시하는 거냐!?

-헐 ㅠㅠ 토끼몬드

-이거는…… 귀하군요.

[아몬드 토끼귀 존버단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드디어!? 성불!]

[아몬드수플레 님이 3만 원 후원했습니다!]

[와 ㅠㅠㅠ 맨날 독침 버니 해줘어어!]

이상한 포인트에서 후원이 들어오고 있다.

아몬드는 괜히 창피한 느낌이었으나, 어찌 됐든 ‘난 스트리머다!’를 머릿속으로 5번씩 외치며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존버단 님, 무려 10만 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몬드 수플레 님. 아몬드로 수플레 어떻게 하죠? 여튼 감사합니다.”

-ㅋㅋㅋ 와중에 그게 궁금하냐?

-그런 게 될 리가…….

-걍 수플레에 아몬드 얹어놓는 거 아니겠음?

-더러운 세상…… 난 토끼 귀 하면 경찰에 신고 들어갈 텐데. 얘는 후원받네.

-제발 개처발려라 ㅠㅠㅠ

채팅창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으나.

아몬드는 걱정이 되었다.

‘이게 되려나.’

독침 버니를 급하게 고르긴 했는데.

상대는 이런 급조된 픽으로 이길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그야 챌린저니까.

사실 레이나로도 홍차를 이겼다고 보는 건 힘들다.

아까 전 판은 바텀의 승리가 아니라, 미드 정글의 승리였다.

미호와 딸기슈터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길 수 없던 경기다.

그런데 독침 버니로 홍차를 상대할 수 있을까?

심지어 타코가 이렇게 덧붙인다.

“여기서 지면 다른 팀들이 이 밴픽을 다 따라 할 거야.”

이런 식으로 아몬드가 봉인된다는 게 밝혀지면, 모두가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실전에선 아마 다 이 밴픽을 준비해 올 것이다.

적이 선픽을 하는 경우에만 유효한 거지만, 어찌 됐든 최소 한 판, 많게는 두 판을 꽁으로 이길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여기서 네가 봉쇄되어 버린다는 게 드러나면, 곤란해지는 거야.”

“그럼 다른 라인 밴이 풀리니까 그래도 좋은 거 아닌가요?”

“지금은 그렇지. 레드카펫츠는 말했듯이 바텀에 몰빵하는 팀이고, 위쪽 라인이 그다지 랭크가 높지 않으니까.”

“아…….”

“만약 적 팀이 미드 탑 티어가 높고 원딜러는 그저 그런 수준인데. 이런 밴으로 아몬드랑 반반 가는 전략을 짜면?”

가정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몬드는 독침 버니를 들고 그 녀석과 바텀에서 하루 종일 썩고, 나머지 팀원들은 실력 차이로 터질 터다.

아몬드는 캐리만 못 하게 봉쇄하고 나머지를 찍어누르는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볼 땐 지금인 것 같다.”

타코가 결단을 내린 듯 말했다.

아몬드는 순간 알아듣지 못하고, 뭔 말인가 싶었다. 하나 다음 순간 타코의 말을 듣고 바로 알 수 있었다.

“미호.”

“네?”

“서포터로.”

“……네?!”

“딸기슈터 네가 아몬드가 고른 독침 버니 가져가고.”

“예!”

“내가 정글. 풍선껌 형은 그대로 탑. 그리고 아몬드…….”

지금 포지션을 변경하고 있는 것이다.

‘서브 포지션!’

팀 전체가 서브 포지션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화신마저도 바꾸고 있다.

아몬드가 고른 독침 버니는, 원래 이 캐릭터가 메인인 딸기슈터에게 스왑(Swap, 교환)하기로 되었고.

다른 플레이어가 아몬드를 위한 캐릭터를 골라주게 되었다.

“형. 그럼 여기서 그거 하라는 거예요?”

그거라면 점멸검이다.

시청자들도 모르기에, 최대한 조심스레 부르는 모습이다.

-??? 뭐야 이 새끼들 뭐 숨겨놨냐!?

-ㅋㅋㅋㅋ 어이 플랜 D 다시 2로 간다.

-컨셉질이지 ㅂㅅ아 ㅋㅋㅋ

-소년 만화냐? ㅋㅋㅋㅋ대장…… ‘그거’ 쓸까? ㅋㅋㅋㅋㅋㅋ

물론 시청자들은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어떡해요?”

점멸검을 제외하고는 미드에 갈 만한 화신을 연습하지 못했던 아몬드.

“그냥 아무거나 땡기는 거 사서 골라.”

지금 상점픽을 하라고 지시하고 있는 건가? 시청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뭐 이딴 팀이 다 있엌ㅋㅋㅋㅋ

-니가 코치냐 문어 쉑아 ㅋㅋㅋㅋ

-무친ㅋㅋㅋㅋ

-적이 생각을 못 읽게 아무 생각도 안 한다!!

-도랏맨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말이 되냐며 아우성이었으나.

타코도 다 생각이 있었다.

“상대는 실버야. 네 상대가 못 된다.”

“그렇군요. 상대가 실버라서…….”

-쟤도 얼마 전에 실버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실버 멸시

-마버랑 실버랑 같냐 ㅉㅉ

-ㄹㅇ 무친 팀이 온다!

채팅창엔 여전히 미쳤다는 반응이 주류였으나. 막상 당사자인 아몬드는 별로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태연하게 상점창을 열었다.

그에게 있어선 상점픽이란 게,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일전에 봤던 것 중에, 좀 재밌어 보이던 게 있었다.

‘이거 단무지가 하던데.’

빠른 속도로 전장을 휘젓던 화신.

[폭풍 닌자 - 하루키]

“이걸로 할게요.”

그는 곧바로 하루키를 구매해 놨다.

타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점멸검과 플레이 패턴이 유사한 화신이었다.

“좋아. 그걸로 가자.”

픽이 전부 다 완료되고, 스왑 시간에 아몬드는 독침 버니를 딸기에게 넘겼다.

그리고 미호가 하루키를 골라서 아몬드에게 주었다.

“좋아. 드가즈아아아!”

아몬드의 첫 미드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 * *

“뭐…… 뭐야?”

상대의 이상한 픽을 본 홍차는 머리가 띵했다.

“어…… 그, 그러게요? 아몬드가 폭풍 닌자?”

레몬이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호가 아니라?”

“사실 미호도 칼 쓰는 암살자 류는 잘 못 해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타코는 망치 전사인데…… 정글 망치 전사 같은데.”

상대팀의 픽이 여러모로 헷갈렸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딸기도 독침 버니인데?”

“허…… 일단 미호가…… 그…… ‘레아’를 골랐거든요. 이건 미드로는 좀 그렇죠?”

“되긴 되는데…….”

픽들이 다 범용성이 높은 것들이라, 전부 헷갈렸다. 확실한 건 풍선껌은 여전히 탑이라는 것이다.

“이거 그거잖아!? 서브 포지션!”

“……아!”

그제야 홍차는 상대가 로스터에 제출한 서브 포지션으로 바꿨음을 눈치챘다.

사실 명목상 적어놓을 뿐.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게 서브 포지션인데.

“이 새끼들이…….”

빠득.

홍차는 이를 갈았다.

“날 무시하는 거야?!”

지금 하필 이 연습 게임에 쓴다니. 홍차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오늘 한두 개 나는 게 아니다.

“어, 언니…… 언니를 무시한다기보단 우리 미드를 무시하는 게 아닐까요? 아몬드가 미드로 대피한 거잖아요. 올밴 당해서.”

“아…… 그런가?”

홍차는 머리를 긁적이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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