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02화
68. 서브 포지션(2)
딸기슈터와 라인전을 벌이고 있던 홍차는, 흠칫 놀랐다.
‘……아몬드보다 수월하잖아?’
전 판에 비해서 플레이가 너무 쉬웠다.
이렇게 놓고 비교하니까 확실했다.
왜 타코가 아몬드를 주력 원딜로 지정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현재 딱히 딸기슈터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딱 그의 실력만큼 해주고 있었다.
오히려 아몬드보다 훨씬 단단하다.
홍차도 쉽게 뚫어내긴 힘들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아몬드처럼 말도 안 되는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송곳 같은 플레이가 없다.
날카로움이 없다.
아니, 날카로움이 없는 게 아니라 홍차를 상대로 날카로울 수 없는 거다.
‘이번 판은 좀 할 만하겠어.’
결국 게임이 무난하게 흘러가 버린다면 홍차가 유리하다.
레드카펫츠는 홍차만 잘 크면 승률이 95%가 넘는다. 그전에 미드가 터지면 지고, 그때까지 미드가 안 터지면 이기는, 그런 단순한 팀이다.
‘아무리 초코송이가 실버라도, 미드 처음 하는 놈한테 털리진 않겠지.’
가장 취약한 미드 라인도, 지금은 안심이다.
아몬드는 미드 플레이가 처음이니까.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망나니 용사 → 초코송이]
홍차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 * *
‘됐다!’
초코송이가 무력하게 쓰러지는 순간.
-와 돌았다 ㄷㄷ
-닌자의 직감을 첫 킬에!??
-미쳤누
-와아아아아아아아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헐ㅋㅋㅋㅋ
-챠크라가 세상을 지배할 거야! 챠크라가 세상을 지배할 거야! 챠크라가 세상을 지배할 거야!
-번개…… 잘랐다고.
아몬드의 채팅창 스크롤이 마구 솟구쳤다.
그가 ‘닌자의 직감’이 보여주는 길 그대로 암살을 성공해 냈기 때문이다.
[챠크라의 총 출력이 10% 증가합니다!]
폭풍 닌자 숙련자들도 한 게임에 세 번 정도 해내면 게임이 터졌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건데.
그걸 첫 시도에 성공했다.
거기에 화신, 하루키의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크큭…… 재미있구나. 계약자. 왜 오른손은 안 쓰지? 그곳에 좋지 않은 것이라도 봉인해 뒀나?〕
당연한 얘기지만, 화신 하루키의 기준은 상당히 높다.
그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는 게 칭찬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아몬드에겐 재밌다는 말이 나왔다. 극찬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뒤의 대사가 꽤 충격적이다.
정말 흔히 들을 수 없는 대사.
-또 오른손을 안 써?
-농락. 그것도 일종의 폭력입니다! 아몬드 님!
-뭐냐 ㄹㅇ 뭘 봉인해 두는 컨셉이냐? ㅋㅋㅋㅋㅋㅋㅋ
-하루키를 오른손 안 쓰고 한다고?
-와 저런 대사 처음임 ㄷㄷ
폭풍닌자를 왼손만으로 플레이한다는 건, 사실상 플레이 역량을 절반가량 제한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흑염룡 메타 ㄷㄷ
-상대가 실버라고 농락하시는 건가요?! 상대가 실버라고 농락하시는 건가요?! 상대가 실버라고 농락하시는 건가요?!
-속보) 아몬드 골드로 올라서자마자 실버에게 갑질!
-란 한 손 형상화에 이어서 하루키 오른손 봉인 플레이 뭔데!
-흑염룡ㅋㅋㅋㅋㅋ
그걸 두고 시청자들은 흑염룡 메타라고 부르기도 했고.
고액의 후원까지 터졌다.
[구름신전사제 님이 무려 10만 원 후원하셨습니다!]
[끝났네…… 오른손엔 상처 입은 흑염룡이, 하체엔 엄청난 포텐셜의 사나운 피넛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걸 통제할 호두까지 어깨 위에 있어. 이거 답 안 나온다.]
“와. 감사합니다. 사제님. 그런데 밴 되실 것 같습니다. 피넛이 금지어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혁의 마우스가 움직였고. 결국 10만 원을 헌납한 구름신전사제는 3일간 정지를 당하고 말았다.
-유료밴ㅋㅋㅋㅋㅋ
-아니 ㅋㅋㅋ-
-ㄹㅇ 가차없누
-땅콩은 안 되지~
-(삭제된 메시지)
정리되어 가는 채팅창을 확인한 후.
아몬드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폭풍 닌자 생각보다 굉장히 좋네요. 상대가 실버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도 실버였잖아 ㅋㅋㅋ
-실버 멸시 “멈춰!”
-아몬드는 마버고, 초코송이는 실버인데. 뉴비들 좀 쳐내!
-아몬드: 이틀 전 실버였다.
-이게 그 소싯적 올챙이가 개구리를 이긴다인가 뭔가 그건가요?
채팅창은 다시 실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아몬드는 피넛보단 이게 낫다고 생각하며 만족했다.
그리고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성소 좀 갔다 올게요.”
아몬드는 성소로 돌아가서, 얻은 돈으로 간단한 아이템으로 공격력 등을 업그레이드하고.
3레벨이 되면서 새로운 스킬도 익혔다.
[수리검 폭풍 난사]
사용 방식은 간단했다.
허리춤에서 수리검을 꺼내서 던지면서, 검결지를 위로 들면 된다.
그러면 알아서 개수가 늘어나면서 날아간다. 레벨마다 5개, 7개, 9개씩 늘어난다.
“이게 밥줄 스킬이라면서요?”
-수리검이 복사가 된다고!
-ㅇㅇ 그걸로 거의 다 딜함
-개사기 스킬임.
-쿨도 빠르고 쓰기도 쉬워성 ㅇㅇ
아몬드는 잠시 이 스킬의 활용도를 머릿속으로 구상해 본 후.
다시 미드 라인에서 초코송이를 마주쳤다.
초코송이는 처음보다 훨씬 더 주눅 든 듯한 모습이었다. 라인의 절반 이상을 절대 넘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약 2분이나 지났을까.
[적을 처치했습니다!]
[망나니 용사 → 초코송이]
초코송이가 또 쓰러졌다.
“오. 챠크라 늘어나는 거 진짜 좋은데요?”
챠크라의 총 출력이 늘어나서, 속도와 폭발력이 상승했기 때문에 초코송이가 제대로 거리를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지금 초코송이가 죽으면서 챠크라의 총 출력이 또 늘어났다는 점.
[닌자의 직감 달성!]
[챠크라 총 출력이 늘어납니다!]
휘이잉…….
몸을 감싸고 있는 희미한 바람 같은 것이 더 거세졌다.
‘이대로면 쉽게 이기겠는데?’
하나, 적들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킬!]
[홍차 → 딸기슈터]
[홍차 → 미호]
홍차가 미호와 딸기슈터를 결국 죽여냈다.
-오 ㅋㅋㅋ
-아니 딸기슈터 ㅋㅋㅋ
-홍차 챌린저 맞네~~~
-와 딸기랑 미호가 더블킬을 따이네 ㄷㄷ
-아몬드 님…… 대체 바텀에서 어떤 싸움을 하셨던 겁니까…….
그 이후로도 아몬드는 초코송이를 두 번 더 죽이고, 홍차도 딸기와 미호를 한 번씩 더 죽였다.
[아, 죄송해요…….]
[하. 쉽지 않네요. 포탑 체력 절반 밑으로 떨어졌는데. 지원됩니까?]
바텀 포탑의 체력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단다.
이 시간대에 포탑 체력이 저렇게 떨어진다는 건, 위험했다.
‘뭐야. 생각보다 너무 터지는데.’
-이건 아몬드가 해줘야 한다
-ㅋㅋㅋㅋ ㄹㅇ
-사실 첫판도 미드 탑이 이겨준 거니…… 이번엔 아몬드가 이겨줘야지
-챌린저 원딜을 어케 이김 ㅋㅋ
시청자들의 말에 아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레드카펫츠 상대로는 미드 정글이 해주는 게 맞지.’
첫 판 플레이 당시. 아몬드는 홍차와 비등하게 가고 있었다.
혼자서 홍차를 압박해서 그녀를 이긴 게 아니었다.
미드와 정글이 위쪽을 전부 정리하고 내려와준 게 결정적이었다.
‘결국 나도 도와야 하는구나.’
미드 라인은 원딜러와는 많이 달랐다.
게임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라인이다.
전장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본인의 상황이 여유로우면 다른 모든 아군을 도울 수 있다.
미드라이너의 판단 한 번에 게임이 흔들린다.
‘어딜 가야 하지?’
그나마 버티고 있는 탑을 가야 할까?
아니면 터지는 바텀을 도와줘야 할까?
이럴 때 타코가 옆에 있었다면 도움 받기가 쉬운데.
‘혼자하는 라인은 어깨가 무겁구나.’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마침 타코에게서 보이스가 들려왔다.
[몬드야. 나랑 바텀 가서 기강 한번 잡자.]
* * *
“레몬아! 포탑! 포탑 쳐!”
“예이!”
홍차와 레몬은 미호와 딸기슈터를 밀어붙인 후. 포탑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미호와 딸기슈터는 자기 팀의 포탑임에도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했다.
‘괜히 갔다가 정글러 올 수도 있어.’
‘어떡하지…….’
상대 정글러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어설프게 포탑을 지키겠다고 앞으로 나섰다간 그대로 3:2 당하면서 포탑과 함께 사라져 버릴 거다.
콰앙! 콰앙!
쿠이판이 소환한 끈적한 늪지 문어의 발이, 포탑을 때릴 때마다 기둥째로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체력 13%]
포탑은 이제 거의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이히! 너네 팀 문어도 불러와 봐! 어?! 한 판 뜨자고!”
레몬은 -대부분의 부두술사 플레이어들이 그렇듯- 자신의 입까지 공격 무기의 일부라는 듯이 상대를 마구 놀려댔다.
“문어 문어 촉수 난타아아──”
──촤악!
그녀의 말을 싹둑 자르기라도 하듯, 경쾌한 검격이 스치고 지났다.
푸슛!
“……엥?”
두 팔을 쫙 벌리고 있던 레몬의 몸통 한가운데에서 붉은 혈선이 터져 나왔다.
스쳐 지나간 신형이 바닥에 착지했다.
치익!
달려왔던 속도를 알려주듯이 긁히는 흙바닥.
흙먼지가 흩어지고, 그제야 닌자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났다.
레몬이 뭔 반격을 하려 했으나. 타코의 망치가 그녀의 머리를 강타한다.
쿠우웅……!
묵직한 충격에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끄어어!”
레몬이 잠시 기절해 버린다.
타코는 그녀를 마무리하려 했으나. 홍차가 그새 타코를 얼려 버렸다.
파방!
순식간에 전신에 화살이 꽂히면서, 하체 상체 할 것 없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전투에 개입한 건 타코 혼자만이 아니었다.
[챠크라 방출 모드]
쾅!
바닥이 움푹 파이며 아몬드의 신형이 흩어졌다.
스슷……!
뭐가 지나가는 건가 싶더니, 어느새 쿠이판을 도검으로 베고 있는 아몬드.
촤아아악!
이번엔 목에 검격이 적중했다.
[치명타!]
치명타가 떴다.
쿠이판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사이, 딸기슈터가 달려와 독침을 날렸다.
완전한 마무리를 하려는 생각이다.
쿠이판 하나에게, 타코, 딸기, 아몬드 셋의 공격이 박히고 있다.
그러나, 홍차가 막아섰다.
파앙! 파앙!
그녀의 활 시위가 빠르게 진동했다.
얼음 화살 두 개가 쏘아졌다.
아몬드는 도검으로 화살을 쳐내느라 제동이 걸렸다.
캉!
독침은 화살과 부딪혀 튕겨 나갔다.
홍차는 순식간에 타코를 얼리고, 아몬드와 딸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좀 하잖아…….’
다른 플레이어가 궁수 관련 캐릭터를 하는 걸 보고 잘한다고 느낀 적은 없는데.
홍차의 것은 확실히 달랐다.
심지어 홍차는 아직도 자신의 주캐릭터를 고른 적이 없다.
란, 서리 궁수 둘 다 사실 아몬드를 견제하기 위한 픽일 뿐. 본인이 잘 다루는 픽이 아니다.
‘주캐릭터는 대체 어느 정도야?’
챌린저의 수준을, 아몬드는 다시 한번 체감했다.
피융! 피융!
그것과는 별개로, 홍차의 연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활시위가 끊임없이 진동했다.
‘나다.’
이번엔 전부 아몬드를 향해서 날아온다.
대부분의 화살을 쳐내거나 흘려냈으나.
펑!
한 발 정도는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연일까?
‘엇.’
그게 아까 맞았던 부위였다.
서리 궁수의 화살은 한 번 맞았던 부위에 또 맞으면 그 부위가 얼어붙는다.
[상태 이상 : 빙결]
‘일부러 앞의 공격을 피하게 유도한거야…….’
홍차는 처음부터 이 왼손에 빙결을 넣고 싶었던 거다.
앞의 공격들은 일부러 피하라고 내어준 것들. 피하는 중에 완벽하게 왼손만을 정밀 사격했다.
‘이건 배워야겠다.’
챌린저의 노하우.
아몬드는 머릿속에 잘 넣어두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레몬은 결국 살아남았다.
“으히히히! 살았다아아!”
쿠이판 특유의 오도방정을 떨며 도망친다.
죽이고 싶지만.
[체력 27%]
남은 체력이 애매하다.
따라오던 타코가 외쳤다.
“아몬드! 빼! 쟤네 뒤쪽에 정글러 있어! 함정이야!”
함정?
타코가 그렇게 말한다면, 적 정글러가 매복 중인 모양이다.
적 포탑과 정글러, 그리고 홍차와 레몬의 반격까지 감안하면 들어가면 죽을 터다.
‘그래도 하나는 죽여야 수지타산이 맞는데.’
아몬드는 고민됐다.
그냥 죽이고 나도 죽으면 어떨까.
“안돼! 너 죽으면 챠크라 스택도 다 사라진다고! 네 목숨이 더 중요해!”
그때였다.
〔사냥감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것. 그만한 쾌감은 없지.〕
폭풍 닌자의 패시브가 다시 발동했다.
파직!
시야가 흑백으로 변하고, 시뻘건 붓이 칠해놓은 듯한 ‘길’이 보였다.
그 길의 끝엔, 도망치고 있는 레몬이 있었고.
‘?!’
놀랍게도 그 옆의 홍차까지 연결되어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몬드는, 오른손에 도검을 고쳐 쥐었다.
‘둘 다 죽이면 이득 아냐?’
둘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