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07화
70. 대회 시작(2)
상현이 머물고 있는 대기실에,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참가자들은 포탈로 진입해 주세요.]
꿀꺽.
몇몇 팀원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정도로 대기실은 조용했다.
딱히 더 준비할 것도 없었고, 할 만한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포탈에 들어가기 직전.
그제야 타코가 한마디 뱉었다.
“마음의 준비는 다들 됐을 거라고 믿는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팅은 전부 껐지?”
규정상 실제 대회에선 채팅을 볼 수 없다.
상대방의 정보를 알려주는 시청자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채팅이 사라져서 허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포탈에 발을 들이는 순간 깨달았다.
그럴 일은 없었다.
[경기장에 진입합니다.]
[Sponsored by……]
화면이 잠시 어두워지며 경기 스폰서의 로고들이 차례차례 떠오르고.
다시 하얗게 밝아지는 순간.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거센 환호성이 고막을 때렸다.
“!”
덕분에 상현의 발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이 정도야?’
비록 가상이지만,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함성은 참가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형형색색 개성이 넘치는 코스튬을 입은 관중들이 흔드는 발광봉.
어떤 이의 발광봉은 여의봉처럼 위로 쭉쭉 늘어지면서 시선을 끌기도 했다.
무엇보다 상현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경기장 우측이다.
아몬드 모양의 모자를 쓴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다아아!
-와아아아! 아몬드!
채팅창에서나 보던 아몬드 연호를,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비현실, 아니, 초현실적인 감각이 등골을 스쳐 갔다.
“……와.”
상현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채팅창이나, 커뮤니티에나 존재하던 수많은 팬들이 이렇게 실재하고 있다.
비록 가상현실이지만, 날 응원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티켓을 끊고 저기서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이보다 벅차오르는 감정은 겪기 힘들 터다.
“몬드야. 손 한번 흔들어줘.”
풍선껌이 먼저 나서서 방방 뛰며 손을 흔들며 말했다.
상현도 풍선껌만큼의 호들갑은 안 떨더라도, 천천히 손을 흔들어봤다.
-와아아아아아!
-꺄아아아! 오빠 나 죽어어어!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또다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을 전부 덮는 음성이 있었으니.
[버~~~얼룬 스타즈! 입장~~~~합니다!]
경기장 위에서 소리치는 김상훈 캐스터다.
팔을 격하게 흔들 때마다 화려한 복장이 반짝거렸다.
[와, 인기가 굉장한데요!?]
김상훈이 아몬드의 팬들이 있는 쪽을 향해 손짓하며 말한다.
카메라도 슥 돌아가 그 관중석을 보여준다.
아몬드 모자를 쓰고 자지러져라 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들어왔다.
시청자들이 웃어댔다.
-ㅋㅋㅋㅋㅋ미친 견과류단
-광‘견’병
-쟤네 저런 거 언제 맞췄냐? ㅋㅋㅋ
-아몬드 인기 쩌네 ㅋㅋㅋ
-사람도 광견병이 걸리나요!?
그도 그럴 게 아몬드 모양의 모자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으니까.
하나 이건 우스운 것도 아니었다.
[와! 무지성 고라니! 캐릭터가 확실합니다!]
-ㅋㅋㅋㅋㅋㅋ무친넘들
-ㄹㅇ 개또라이들이네 ㅋㅋㅋ
-돌았누 ㅋㅋㅋ
-저러고 파워랭킹 5등임. 찐실력파.
무지성 고라니 팀은 무려 반인반마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했다.
이히이이잉!
그들은 일렬로 서서 벌룬스타즈 팀을 향해 투레질을 해 보였다.
타코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경전을 거는 거네.”
저놈들이 단순히 관중들을 웃기려고 저런 복장을 한 게 아니란 걸 눈치챈 것이다.
“자기 팀한테 지면 바보같이 느껴지게 하려는 거야. 무시해. 없다는 듯이 행동하면 된다.”
팀원들은 타코의 조언대로 평소처럼 행동했고, 각자의 자리에 섰다.
[선수들이 각자 자리에 섰습니다!]
파앗!
번쩍이는 조명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며 곧바로 픽창이 떠 올랐다.
[금지할 화신을 고르세요.]
일단 밴이 시작된다.
중계도 이때부터 시작이다.
캐스터가 운을 떼었다.
[이제 밴픽 시작합니다! 자, 오프닝 매치인 만큼, 여기서 어떤 전략이 나오냐에 따라 이번 대회 자체에 영향을 줄 수가 있거든요!?]
김상훈 캐스터의 말을 옆의 킹귤이 받았다.
[그렇습니다. 어느 대회든 개최되는 중에 메타가 최소 한 번은 바뀌거든요? 그게 수준이 조금 낮은 난트전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 수준이 낮긴 하군요?!]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죠…….]
.
.
.
캐스터와 해설의 만담이 진행되는 사이, 어느새 밴이 다 끝났다.
[밴 리스트 - 벌룬스타즈]
[광란의 폭주족 - 폴]
[초신성 - 솔리아]
[굳건한 날개 - 발키리]
벌룬스타즈의 밴은 대체적으로 적들의 돌진 조합을 막기 위한 밴이다.
폭주족 폴은 강신기를 쓰면 오토바이를 소환해서 타고 다니며, 솔리아는 강력한 열을 추진력 삼아서 전장을 빠르게 날아다닌다.
발키리는 어디에서든 원하는 아군의 위치로 낙하할 수 있기 때문에, 탱커 중에 가장 돌진 조합과 잘 맞는다.
‘이 정도면…….’
타코는 이 정도면 적의 조합 중 가장 까다로운 건 다 막아낸 것이라 여겼다.
돌진 조합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저 셋이 포함된 조합만큼 강력하진 않을 터다.
‘문제는 저쪽 팀 밴이네.’
타코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의 밴 리스트를 올려봤다.
[밴 리스트 - 무지성고라니]
[냉혈의 마궁수 - 레이나]
[서큐버스 - 시트리]
[아이언볼 - 렛트]
레이나와 서큐버스까지는 무난한 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밴이 하나 끼어 있다.
“엥!? 굳이 나를?”
풍선껌의 주캐. 아이언볼.
원할 때마다 쇠공으로 변신해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상대를 교란하는 탱커 화신이다.
그게 밴됐다.
아이언볼은 풍선껌의 숙련도가 높다는 거 말고는 딱히 성능 평가가 좋지도 않고, 위협적인 픽도 아니다.
“와. 풍선 오빠가 한 도발이 제대로 먹힌 거 아니에요!?”
“나, 나한테 지면 개망신이라고 한 거? 참내! 내 캐릭 밴하고 이기면 망신 아닐 것 같냐!!”
풍선껌이 상대팀한테 삿대질을 하며 외치던 중.
[선택]
[켄타로우스 - 체스터]
적의 첫 번째 픽이 나왔다.
“아.”
타코는 뭔갈 알았다는 듯 끄덕인다.
“쟤네들 탑 돌진 조합을 짜온 것 같은데요?”
“설마…… 계속 나만 죽이겠다는 건가?”
“그럴 확률이 높죠. 돌진 조합은 안 그래도 포탑 다이브가 쉬워서…….”
“으…….”
그 이야기까지 들은 풍선껌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해 보였다.
게임 내내 계속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어떤 채팅들이 올라올지 벌써 눈에 훤하달까?
“어쨌든 픽은 진행하죠. 서폿부터 고릅시다.”
차례차례 픽이 진행되었다.
적은 타코의 예상대로 골랐다.
“정글러는 야수로 가자. 어때?”
“저는 좋습니다.”
정해진 수순처럼 진행되는 픽.
뭔가 찝찝하다.
‘얘네 탑 공략 전략은 연습 경기 때는 한 번도 없었는데.’
이상했다.
무지성 고라니는 연습 경기에선 무조건 원딜 죽이기만을 연습했다.
그걸 애써 연습해 놓고 실전에서 갑자기 탑을 공략한다?
그게 될까? 프로팀도 아닌데.
타코는 급하게 오더를 정정한다.
“잠깐!”
“?”
“정글 이거 독침 버니로 바꾸자. 야수 말고. 독침 버니. 재키.”
“예~”
타코는 마지막 보루를 남겨놓기 위해 조금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범용성이 높은 독침 버니를 골랐고…….
[점멸검 - 스위프트]
상대가 미드픽으로 스위프트를 골랐다. 상대 미드 토마토의 모스트다.
‘무난하네.’
기우였나? 타코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음 픽을 고르려 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다.
“알았다. 다음 픽은 폭풍 닌자로 고른다.”
갑자기?
모든 팀원이 그를 쳐다봤다.
* * *
픽이 하나둘 완성되어 가고 있을 때.
해설진은 처음엔 뭐가 다른지 알지 못했다.
“아. 이번에도 벌룬스타즈는 독침 버니 정글을 가져가는 것 같죠? 야수랑 잠시 고민했던 것 같은데. 조합상 야수가 더 좋지 않았을까요?”
“동의합니다. 그보다, 미호 님에게 남은 선택지가 뭐가 있죠? 솔리아랑 서큐가 밴돼서요.”
그때.
[폭풍 닌자 - 하루키]
미드 화신으로 폭풍 닌자가 등장했다.
중계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미호가 닌자를 하던가요?”
“음…….”
스크린을 슥슥 넘겨보던 분석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안 합니다.”
그때 킹귤이 끼어들었다.
“아! 이거 미호가 아니라, 아몬드 미드로 가는 포지션입니다. 1주일 정도 전에 한 번 보여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상점픽으로 많은 화제가 되었죠.”
“그렇습니까?! 서브 포지션이군요!”
“예! 독침버니를 골라놓은 것도 딸기가 바텀에서 원딜을 할 것을 염두에 둔 거고요!”
“이건 의외입니다. 풍선껌을 공략하는 전략을 준비해 온 적을 상대로, 아몬드를 미드로 올려서 뭘 어쩌려는 걸까요?”
“글쎄요…….”
킹귤도 그건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폭풍 닌자 픽 자체는 단순 미드 라인전만 놓고 봐도 상당히 좋았다.
“일단 상대 미드가 점멸검인데 폭풍 닌자가 나오면 그야말로 지옥이거든요? 6렙 전에는 적어도 그래요!”
“아, 말하는 중에 픽이 전부 끝났습니다!”
두둥!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참전자 전원의 몸이 어딘가로 사라졌다.
[ALL DIVE SYSTEM OPERATED]
콰과광!
벼락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스타디움에 거대한 전장이 펼쳐졌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우아 이거 뭐야!?
-죽인다아아!
엄청난 현장감에 관중들이 탄성을 흘렸다.
관중들은 스크린이 아니라, 필드를 자기 눈으로 직접 내려보면서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캐스터가 제작사로부터 부탁받은 멘트를 외쳤다.
“이번 시즌부터 적용되는 올 다이브 시스템의 관람 방식입니다! 경기장 안에 전장이 펼쳐지고, 참가자들도 관중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축구처럼요!”
“와! 기술 발전이 무시무시하네요!”
“자, 난트전 첫 번째 경기. 벌룬스타즈 대 무지성 고라니! 무지성 고라니 대 벌룬스타즈! 한번 보러 갑시다아아아!”
* * *
아몬드는 갑작스러운 포지션 변경이 이해되지 않았다.
‘뭐지? 단순히 닌자가 스위프트의 카운터라서 골랐다기엔…….’
미드 라인 하나 보고 밴픽을 구성했다는 건가?
“점멸검을 뽑아 들었잖아.”
타코가 아몬드의 생각을 읽은 듯이 첨언했다.
“예?”
“탑 부수기가 아니라, 점멸검 키워서 원딜 죽이기 조합을 짠 거야.”
아몬드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점멸검은 토마토 님의 모스트 1이라서 그런 거 아니에요?”
“맞긴 한데, 그렇다 해도 스위프트는 탑 공략 조합엔 너무 안 맞아.”
“왜요?”
“미드가 같이 탑으로 올라가서 돌진을 해야 탑 공략이 되는데. 그게 안 된다고. 스위프트는 레벨 6전엔 바보니까.”
“아…….”
스위프트는 6레벨이 되어야 점멸검을 2개를 쓸 수 있다. 그때부터 진짜 점멸검 플레이가 가능하다.
“보니까 점멸검 키우기야. 탑은 껌 형 주캐 밴해서 바보 만들고 미드 위주로 케어하면서 나중에 잘 큰 점멸검이랑 같이 돌진해서 원딜 잡겠다는 거지.”
스위프트에겐 무장 해제 스킬이 있다.
상대의 무장을 잠시 없애버리는 건데, 원딜러들에겐 치명적이다.
라인전은 무난하게 간 뒤, 나중에 원딜러가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라는 조합인 셈이다.
“설마 그래서 레이나를 밴한 건가요?”
“그래. 그 많은 원딜러 중에 하필 레이나만 밴했지. 딱 레이나만.”
레이나가 아몬드의 상징적인 픽이라, 레이나만 밴하더라도 별로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서 저들의 진짜 의도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름이네.’
생각해 보면 레이나는 돌진 조합의 카운터다. 특히 아몬드의 레이나는 더욱이 그렇다.
4명이 돌진하든, 5명이 돌진하든, 아몬드의 레이나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질 수가 있다.
‘원딜 죽이기 조합이어서 밴한 거구나.’
적 주캐를 밴하고 아군 주캐를 픽하면서 전략을 숨기다니.
1석 몇조인지 모를 놀라운 심리전이다.
“그리고, 쟤네 스크림 때 내내 연습하던 게 그거잖아?”
“원딜 죽이기…….”
“그래. 연습하던 거 그냥 계속 하는 거야.”
심지어 가장 많이 연습한 전술을 펼칠 수 있는 조합까지 구성한 것이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들어맞는다.
턱.
타코가 아몬드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점멸검 위주로 돌아가는 픽을 짰으니, 쟤네들은 미드 방어에 엄청 열을 올릴 거야.”
“그러겠네요.”
“그 방어를 뚫어버리는 거. 그게 네 일이야.”
그렇다. 상대가 점멸검 키우기 전략을 가져왔다면, 반대로 점멸검만 죽이면 게임은 끝난다는 거다.
그래서 타코는 다른 라인보다 미드 라인의 상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밴픽을 짠 것이다.
[전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눈앞에 성소의 빛이 솟구치고, 함성이 들려온다.
-와아아아아아아!!!
-가즈아아아!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함성?
그렇다. 게임 안에서도 관중들이 보인다.
평소 릴을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다.
이번 시즌부터 시범적으로 적용되는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나름 베테랑 방송인들인 팀원들도 긴장한 모습이다.
“와씨…….”
“헐. 어, 어떡해. 이거 진짜 긴장되는데요?!”
아몬드도 사실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 떨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괜찮아. 몸이 기억하고 있다.’
긴장이 돼도, 목이 까끌까끌하게 메말라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의 머리가 아닌 손이 검을 휘두르고, 머리가 아닌 발이 적의 공격을 피할 거다.
‘뚫어버리자.’
아몬드는 그렇게 타코의 말을 되뇌며 미드 라인으로 발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