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13화
73. 시력을 포기한 실력(1)
경기 시작 직전.
타코는 브리핑 중이었다.
그는 솔로이즈백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주의할 점은 당연히 미드가 챌린저인 모솔이라는 점.”
일단 챌린저의 존재.
그게 첫 번째 주의할 점이었다.
“스크림에선 항상 별거 못 하고 다른 라인이 다 터져서 졌지만…….”
둘째로는 라이너들의 전체적인 실력 향상.
“이걸 봐.”
띠링.
타코가 띄운 전적표에는 스크림 때와는 사뭇 다른 결과들이 보인다.
“전 라인 티어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지금 전투력 측정이 안 된다. 특히나 바텀의 소맥 듀오.”
소맥 듀오.
이 팀의 바텀 듀오인 소주와 맥주를 말한다.
플래티넘이었던 소주와 브론즈였던 맥주가 각각 한 계급씩 상승했다.
소주는 아몬드와 같은 다이아 4티어가 되었고, 맥주는 무려 실버 1티어. 골드 직전까지 랭크를 올려뒀다.
“이런 일이 흔한 건 아닌데…… 모솔이 괜히 재능충이라 불리는 건 아닌가 봐. 가르치는 데에도 재능이 있는 모양이야. 팀원 경매할 땐 그렇게 못 하더니…….”
아몬드는 중간에 긴급 투입된 거라 경매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팀별로 랭크를 골고루 가져갈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
다만 모솔은 나이가 어린 탓인지, 경매 노하우가 굉장히 떨어졌다.
덕분에 이상한 곳에 포인트를 날리고 저랭크 플레이어들을 잔뜩 데려와 버렸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오히려 지금 리그 1위로 달리는 중이다.
“소맥 듀오는 무려 한 랭크가 상승하고, 다른 모든 라인들도 티어가 소폭 상승했다.”
“와…….”
풍선껌이 감탄하며 타코에게 ‘넌 왜 가르치는 재능이 없느냐’고 한마디했으나, 타코는 ‘형의 못하는 재능이 더 강하다’며 일축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보다 전체적인 랭크는 낮아. 그냥 긴장 놓치지 말라고 말하는 거야. 스크림 때랑은 많이 다를 테니까.”
이 말을 끝으로 브리핑은 끝났고.
밴픽이 곧장 시작됐다.
* * *
일단 솔로이즈백의 밴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아몬드를 견제하기 위한 레이나와 사나, 그리고…….
“어? 독침버니?”
독침버니를 밴했다.
중계진은 의문을 품었다.
“이건 그리 흔한 밴 패턴은 아니죠?”
“그렇습니다.”
킹귤이 예상을 말해본다.
“아. 이건 그거죠. 우리 헷갈리게 하지 마라!”
“무슨 말이죠?”
릴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캐스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분석관이 부연했다.
“독침버니는 원딜, 정글, 탑 등 쓸려면 거의 모든 라인에서 쓸 수 있기 때문에, 밴픽할 때 헷갈립니다.”
“아! 그렇군요! 상대가 벌룬스타즈다 보니, 포지션 변경도 고려해야 할 테니. 머리가 많이 아파지겠군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타코는 서브 포지션 출전 시에는 늘 독침버니를 쓰는 패턴을 보였거든요. 그거 하지 말라고 밴하는 겁──”
“──아아아앗!”
그때, 킹귤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또 보입니다?”
“뭐죠!?”
“서큐버스를 밴을 안 했습니다!?”
모솔은 미호의 서큐버스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많다. 물론 솔로킬을 당했다거나 하는 굴욕은 아니었으나. 플래티넘을 상대로 비등한 플레이를 해야만 했었다. 당연히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다.
“이거…… 되나요?”
“왜 살려줬을까요. 이건…… 미호더러 미드 오라는 거죠? 그러라고 지금 독침버니도 밴한 거잖아요. 서브 포지션으로 바꾸는 것도 힘들게.”
“그렇죠. 카운터가 준비되어 있는 걸로 보입니다.”
“아. 그나저나 시청자분들 중에서 왜 플래티넘인 미호의 서큐를 이렇게 밴픽에서 심각하게 다루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캐스터가 흐름을 잡자, 킹귤은 그 이야기를 기다렸다는 듯 피식거렸다.
“모솔 선수가 말 그대로 모솔이거든요?”
“아! 여러분. 모스트 솔리아 말하는 겁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시구요.”
우하하하.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모솔인 게 창피할 나이는 아닙니다. 이제 20살이잖아요?”
“그렇죠! 사실 그 나이 전엔 사귀어 봤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혈기왕성할 나이에, 모태…… 아니, 모스트가 하필 솔리아인 터라!”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웃음이 크게 터졌다.
채팅창에서도 ‘ㅋㅋㅋ’로 도배가 되면서 모솔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힌다.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다.
“아! 더 말씀하시죠! 모스트 솔리아인데?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미호 선수의 미모가 또 유명하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모솔 선수가 스크림에서 미호 선수를 어떻게 하질 못한다는 말이 되게 많았어요!”
“아~ 역시 하필 모스트가 솔리아라서 그렇습니까?”
“예. 특히 이 미호 선수가 서큐버스를 장착하면 아예 게임 장르가 바뀌거든요?”
이번엔 캐스터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그, 그렇죠!”
“모솔 선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저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엄청난 수련을 했다고 인터뷰를 했던데.”
“예. 미호 화보를 전권 구매해서 매일같이 봤다고…….”
“아니. 그거 도움 되는 거 맞습니까!?”
“글쎄요. 제 생각엔 그냥 핑계대는 거 같기도 합니다.”
“아. 지금 말하는 사이에!”
[서큐버스 - 시트리]
“벌룬스타즈! 서큐버스 골랐습니다!”
“결국 결정을 했군요? 상대 쪽에서 일부러 서큐를 고르라고 판을 깔아준 느낌이 있는데요…….”
“예. 솔로이즈백의 밴이 뭔가 수상하긴 하지만, 주캐를 고르고 싶은 유혹을 피하긴 힘들거든요! 미호가 서큐버스를 하고 아몬드가 원딜을 갔을 때 벌룬스타즈의 밸런스가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핑크빛 마기가 퍼져 나감과 동시에 미호의 복장이 바뀌었다. 관중석이 술렁인다.
“근데 미호 님 화보를 전권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거 왠지 그냥 서큐버스가 보고 싶어서 고르게 한 게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그건 킹귤 님이 방금 서큐버스 미호를 보고 든 생각 아닐까요!?”
-엌ㅋㅋㅋㅋㅋ
-캐스터님 개웃기넼ㅋㅋㅋㅋ
-에이 아무리 킹귤이라도 그렇게까지 미친놈일까.
-솔직히 이득 ㅇㅈ
-???: 난트전 이겨서 뭐함!? 미호 서큐버스나 더 보고 가지!
미호의 서큐버스에 이어서 딸기슈터는 야수, 타코는 피셔맨, 아몬드는 란을 골랐다.
그리고 풍선껌은 당연히 자신의 주캐인 아이언볼을 골랐다.
“이제 마지막 픽 남았죠?”
“모솔이 뭘 고를까요?”
“음…… 서큐버스의 단순 카운터라면 환영술사나, 레프러칸 같은 게 있겠는데…… 지금 모솔 선수는 서큐버스의 기능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렇죠! 다른 문제죠?”
관중석에선 또 웃음 파도가 지나가고 있을 때.
모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 모솔? 웃고 있습니다!”
“뭐죠!”
[눈먼 수도승 - 쟈가르]
쿵.
그가 고른 화신은, 눈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이 초월적으로 발달한 수도승.
쟈가르였다.
“아아아아! 이런 묘수가!?”
“미쳤군요! 이거 사실 미드 화신도 아닌데!”
“정말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건가요!?”
“아니, 근데 이럴 거면 미호 화보는 왜 봤죠?!”
“그건 그냥 본 거죠! 그냥요!”
해설진의 반응이 뜨거웠다.
본래 미드용이 아니라 탑이나 정글로 가는 화신을 미드로 끌고 왔으니, 그럴 만했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눈을 뽑아버리네
-시각을 포기한 모솔 ㄷㄷ
-수도승 미드??? ㅋㅋ 챌린저의 자신감……ㅋㅋㅋ
-와 쟈가르 ㅋㅋㅋ
“매우 흥미로운 밴픽입니다.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궁금하군요. 마침 준비됐답니다! 들어가시죠!”
* * *
콰광!
5명의 계약자들이 성소에 소환되었다.
다들 급하게 자신의 템을 사는 와중. 타코는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이거 왠지 낚인 느낌인데…….’
상대의 노림수에 걸려든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타코도 당연히 상대가 뭔가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건 눈치챘었다.
그러나, 미호가 서큐버스를 고르고, 아몬드가 란을 고른다.
이 안정감을 쉬이 포기하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쭉 이겨온 조합이니까.
‘수도승이 미드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수도승을 플레이하면 정말로 눈이 안 보이게 된다.
플레이어는 대신 초진동파 같은 제2의 감각을 쓰게 되는데.
바로, 몸으로 상대의 ‘파동’을 느끼는 거다.
장점은 아주 멀리 있는, 혹은 눈으로는 볼 수 있을 리 없는 수풀 안쪽과 벽 너머의 적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시커먼 배경에 파동만 둥둥 떠다닐 뿐. 눈에 보이는 게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이는 수풀과 벽이 많은 정글 쪽에서는 유리하지만 벽도 거의 없고 수풀도 거의 없이 광장 같은 평지인 미드 라인에선 별로 쓸모가 없다.
한마디로 단순히 미호를 안 보기 위해서 시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다.
보이지만 않으면 이길 수 있다는 마인드.
과연 그게 먹힐까?
* * *
게임 시작은 무난했다.
각자 할 것들을 진행하면서, 슬그머니 전술에 시동을 거는 구도였다.
딱히 주목해서 볼만한 곳은 없었다.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까.
그러던 중──
미드에서 사건의 조짐이 터진다.
──쾅!
수도승이 날린 진동파 공격이 미호의 복부에 적중해 버렸다. 쩌렁쩌렁한 굉음이 울리며 파르르 몸이 떨린다.
미호는 당황한 눈빛.
‘이게 맞아?’
반면, 모솔은 어느 때보다 침착했다. 그는 파동으로 미호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다시 인을 맺었다.
키잉!
스킬이 발동된다.
[파동 추적]
수도승의 신형이 진동파의 근원지로 쏘아진다.
파아아앙!
수도승은 눈이 안 보이는 대신, 이런 파동 추적 기능이 굉장했다.
특히 자신이 쏘아낸 파동 쪽으로는 굉장히 빠르게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진동파에 맞아야만 이런 파동이 생기기 때문에, 스킬 정확도가 중요하다.
“어…… 어?!”
서큐버스는 빠르게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지만.
그 상대가 어디로 도망가든, 진동파가 만들어내는 파동은 계속 그를 인도했고, 수도승은 순식간에 미호에게 달라붙었다.
퍼억!
수도승의 킥이 적중한다.
“윽!”
서큐버스는 핑크빛 마기를 손에 품으며 수도승에게 날렸다.
스킬이 쏘아지는 순간 보이는 핑크빛 파동.
슥!
수도승은 허리를 납작 숙여 피했다.
‘끝이다.’
모솔은 그렇게 되뇌며, 숙였던 몸의 반동을 그대로 발에 담아 스프링처럼 위로 차버렸다.
서큐버스의 턱에 적중했다.
퍼어억!!!
[아아앗! 올라가 버립니다!]
[이러면 콤보가 시작되죠!]
마치 격투 게임처럼, 공중에 뜬 서큐버스의 몸을 향해 주먹을 연타로 내지르는 수도승.
퍼벙! 퍼버벙!
연타가 전부 적중하면서, 다시 몸이 뜨는 서큐버스.
퍽!
마지막, 옆차기로 꽂히는 발차기에 서큐버스의 몸이 힘없이 날아갔다.
[진동파]
놀랍게도 모솔은 그 상태로 다시 진동파를 발사하여서 맞힌다.
[파동 추격]
그리고 날아가는 서큐버스의 몸을 따라잡아, 내리찍었다.
쿠웅!!
[퍼스트 블러드!]
[와!!! 현란한 콤보!!]
[이거 진짜 눈이 호강이네요!]
[그렇죠! 미호의 서큐버스만 눈 호강인게 아니죠! 이런게 게이머들에겐 눈 호강입니다!]
[모솔! 이제 강합니다! 난 강한 남자다!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모솔이 극복했다는 의미로 위로 주먹을 들어 올립니다!]
척!
모솔이 세레머니를 보여주자.
관중들의 환호가 경기장을 죄 뒤덮었다.
-모솔! 모솔! 모솔!
-솔로들의 희망!!! 정기찬!!!
-정기찬! 정기찬!
심지어 모솔의 실명을 연호하는 자들까지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경기장 한편에서 더 큰 환호성이 들려오며 모든 게 묻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미쳐 버려어어어!
-죽여! 죽여어어어!
[아군이 당했습니다!]
익숙한 메시지에 모솔의 표정이 굳는다.
그가 맵을 확인하려는 사이.
바로 다음 음성이 따라온다.
[망나니 용사 더블킬!]
‘아…….’
[아몬드!! 포탑 안에 넣고 소맥 듀오를 무지하게 패더니! 결국 포킹으로 잡아버립니다!]
[아니, 이게 포킹입니까!? 콕콕 찌르는 게 아니라 퍽퍽 때리는데요!?]
[상대편 입장에선 퍽킹이죠!]
이거 왠지 겪어봤던 일 같았다.
좋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스크림 때마다 나오는 그림이다. 미드에서 미호 상대로 겨우 버티고 있으면. 늘 바텀이 터졌다.
모솔은 머리를 저으며 그것들을 물리친다.
‘그래도 이번엔 달라.’
그래.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겨우 버티고 있는게 아니다. 나도 잘 컸다.
‘내가 다 죽이면 돼.’
모솔은 이제 캐리력을 갖고 있다.
원딜러 따위. 수도승 앞에선 거의 할 수 있는 게 없다.
* * *
약 5분 후.
아몬드는 그사이 다시 한번 더 2킬을 추가했다.
모솔의 수도승도 딸기슈터와 미호를 한 번씩 죽이며 2킬을 추가 득점하고, 적의 정글 진영까지 점점 먹어갔다.
“아, 역시 미드가 릴에선 최고인가요? 솔직히 맵 장악력이 말도 안 되네요!”
“수도승한텐 또 몰래 기습이 안 먹히거든요!”
“미호는 물론이고 딸기슈터까지 말라죽습니다!”
그때, 솔로이즈백의 바텀 포탑이 깨졌다.
“이번 경기의 구세주는 이 둘이 되겠네요! 타코, 아몬드!”
“아몬드와 타코! 바텀 포탑까지 시원하게 밀고 미드로 올라갑니다!”
“모솔은 최대한 그전에 미드 포탑을 깨려고 하는데. 딸기슈터와 미호가 그래도 저항해 보고 있어요!”
퍽! 퍽!
포탑을 열심히 발로 차고 있던 모솔이 멈칫했다.
좌측에서 강한 파동이 느껴졌다.
‘왔나.’
파지지직!
킬로 얻은 골드로 잔뜩 강화된 순백의 마나가 날아오고 있었다.
“아! 지금 구도가 재밌네요. 이제 곧 각 팀에서 제일 잘 큰 선수 둘이 박 터지게 싸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