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19화
75. 아몬드 빵(1)
“아~~~ 쥐쥐~~~!!”
퍼엉……!
3세트의 성소가 터지는 모습을, 모솔은 가만히 서서 멍하니 지켜봤다.
‘……아.’
결국 졌구나.
기적처럼 리그전 전승을 밟아오던 기세가, 벌룬 스타즈 앞에서 꺾이는 순간이었다.
“와 3세트 2세트보다도 폭풍처럼 몰아쳤죠?”
“예! 마치 너네 약점 다 알았다! 이렇게 선언하는 것 같았습니다!”
“3세트 밴픽에서 서리 궁수를…….”
해설들이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슬슬 들려오기 시작한다.
선수에게 이 소리가 들린다는 건, 경기가 끝나버렸다는 뜻이겠다.
모솔의 움켜쥔 주먹이 덜덜 떨렸다.
* * *
솔로이즈백의 대기실.
“……미안해. 형들.”
모솔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무릎에 푹 묻어버렸다.
팀원들이 손을 내저었다.
“야, 모솔아. 괜찮아. 너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래. 아직 리그전이잖아. 개못하는 팀 데리고 이 정도 성적도 대단한 거지.”
“플레이오프 가면 또 기회 있어.”
그들의 말이 맞다. 기회는 많았다. 리그 1패는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까지의 전적이 좋으니까. 그건 모솔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이라고 이길 수 있나?’
다음에 벌룬스타즈를 만나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모솔은 자신의 팔을 내려본다.
덜덜 떨리고 있다. 팔뿐만이 아니다. 다리도 감각이 이상하다.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는 건 덤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소매로 눈을 훔쳤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행히 여긴 디스월드였다. 창피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
그는 다시 머리를 재정비하고 일어났다.
‘그래. 인정하자.’
그는 자신이 모솔이라 미호를 상대로 제대로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아몬드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인정했다.
타코의 게임 이해도가 나보다 더 높다는 것도.
‘……인정해야 길이 보여.’
아직 어린 나이지만 수많은 솔로랭크를 해쳐오면서 터득한 교훈이다.
일단 상대를 인정하고 나서야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난 미호를 보지 않고 싸워야 한다.
아몬드의 로밍도 봉인해야 한다.
“……어?”
모솔의 머릿속에 뭔가 스쳐 간다.
어차피 이미 리그전은 끝났지만…….
‘다음엔…….’
어쩌면 다음은 다를 수도 있다.
* * *
치이이이익──
캡슐의 유압기 소리가 울렸을 땐 오후 10시쯤이었다.
오늘 무려 3세트를 치렀기 때문에 평소보다 늦었다.
“야. 진짜 잘했다.”
소파에서 잠시 쉬고 있던 주혁이 달려와 말했다.
“지금 커뮤니티에서 반응도 장난 없…… 어?”
그런데, 그는 캡슐에서 나오는 상현을 보고 말문이 닫혔다.
“후아.”
상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슥 일어나서 욕실로 향했지만.
‘뭐야. 땀이 이렇게나 많이 난다고?’
상현이 캡슐에서 땀을 많이 흘린다는 건 충분히 알던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만큼 많이 흘린 적은 거의 손에 꼽았다.
아니, 어쩌면 없었다.
‘이 자식…… 엄청 집중하고 있었구나.’
첫 세트에선 한 손으로 잘 플레이했다.
고른 캐릭터가 ‘란’이었으니까.
그러나 서리 궁수 같은 픽은 한 손으로 플레이하는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활을 당기는 화신은 무조건적으로 두 팔을 다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두 게임인데.’
양팔을 다 쓰는 게,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게임 플레이타임만 적절하면 별문제는 없다고, 의사도 그렇게 말했었다.
오늘도 양손으로 플레이한 게임은 두 게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저렇게 지쳐 있다니.
‘역시 대회는 다르구나.’
역시 대회가 주는 압박은 다른 것이다.
멀쩡한 사람도 긴장감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게 대회다.
상현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늘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와 표정 때문에 잘 알지 못했지만.
‘너도…… 긴장이라는 걸 하는구나.’
주혁은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상현도 사람이었다.
‘견과류가 아니었다니.’
그는 장난스러운 생각을 한번 되뇐 후. 휴대폰을 집어 들고 어딘가에 메시지를 남겨둔다.
* * *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니, 한결 나았다.
‘오늘 경기는 좀 힘들었다.’
2, 3세트를 통쾌하게 이기긴 했지만.
첫 세트를 져서인지 조금 더 무리해서 움직인 감이 있다.
아무래도 자존심에 상처를 씻어내려고 뭔가를 계속 더 보여준 것이다.
사실 우스운 일이다.
이제 막 릴 시작한 놈이 챌린저 같은 베테랑이 있는 팀을 상대로 자존심을 부린다는 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볼까.’
상현은 뽀송한 피부가 주는 산뜻함을 만끽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고 커뮤니티 글들을 슥슥 내려본다.
그의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오…….’
주혁의 말대로였다.
커뮤니티 반응이 뜨겁다는 거 말이다.
수많은 게시글이 아몬드에 관한 것이었다.
심지어 대부분은 오늘 그의 플레이를 찬양하는 글들.
‘……이렇게 놓고 보니 엄청 잘하는 것 같네.’
클립을 따놓은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아몬드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특히, 모솔과 맞붙었을 때의 장면들이 그래 보였다.
[아몬드 모솔 자강두천.gif]
가장 먼저 이슈가 된 아몬드의 란과 모솔의 수도승 대결.
-치키챠 무친련……ㅋㅋㅋ
-모솔 저걸 살아?
-와 아몬드 페이크 두 번 넣는 거 뭔데!!
아몬드의 페이크와 모솔의 순간 센스가 빛났던 전투였다.
-이게 진짜 자강두천이지 ㅋㅋㅋㅋㅋ
-발로 차서 멀리 가면서 콤보가 안 들어간 게 ㅈㄴ 컸네. 모솔이 나이가 3살만 더 많았어도 뒤졌다
-아몬드 다이아 아님? 챌린저랑 저런 게 되누
상대가 챌린저라서인지, 마스터들과 붙었을 때와는 다르게 아몬드 쪽에 호평이 많았다.
아무도 이 장면을 보고 모솔이 못했다거나, 실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역시 상대도 어느 정도 실력이 되어야 이런 그림이 나오는 것이다.
-솔직히 아몬드 챌린저 보내줘~!!!
-이게 어케 다이아임ㅋㅋㅋ
-저 새끼가 얼마 전에 실버였다는 게 놀라울 따름…….
-실버는 훌륭하다!
사실 1세트는 패배했던 터라, 여론이 좋을 것 같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상현은 그 부분에 놀라워하며 게시글을 더 내렸다.
[와 졌잘싸!]
[모솔이 시력까지 포기했는데 이길 순 없지]
[벌룬스타즈도 잘했네]
[아몬드가 아까 미드에서 못 잡은 게 너무 까비 ㅠ]
[와 디스월드 티켓 끊고 싶어 ㅠㅠ 진짜 개쩐다]
[눈 호강하는 경기였다 ㄹㅇ]
[이게 릴이지 시발]
대부분 게시글들은 재밌었다, 눈이 호강한다, 너무 흥미진진하다 등의 반응이었다.
사실 1세트가 진 거로 적잖이 놀림받을 거라 확신했었다.
그간 자신에게 졌던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봐왔던 상현이니까.
‘괜한 생각이었네.’
근데 나와서 확인해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경력도 낮고, 랭크도 낮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우리의 결과보단, 성장하는 과정에 더 집중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기세 좋았던 모솔도 꺾었으면 진짜 우승도 되는 거 아님?]
[난 아몬드 실력 느는 거 보면서 ㄹㅇ 감탄함]
[우리 껌 형도 실력 겁나 늘었어 얘들아]
어떨 땐 이겨도 인정해 주지 않아 야속하지만, 어찌 보면 고마운 일이다.
과정까지 시청자들과 함께하는 것.
그게 난트전의 매력이다.
그러니 연습 경기까지도 전부 이 콘텐츠의 일부인 것이다.
뭐…… 물론 결과적으로도 이기면 제일 좋다.
일단 지면 놀리는 사람이 반드시 생기긴 하니까.
특히, 만약 당신이 기존에 쌓아놨던 명예가 있다면 더더욱.
[모솔 새끼 이럴 거면 미호 잡지 왜봄?! ㅋㅋㅋㅋ]
-ㄹㅇㅋㅋㅋㅋㅋ
-그냥 사심 채운 거 아니냐?
-수도승 안 하면 걍 소용이 없는데?ㅋㅋㅋㅋ
[아니, 모솔 부수기는 벌룬스타즈가 아니라 킹귤이 하고 있는데 ㅋㅋㅋ]
-ㄹㅇ
-모솔아 ㅠㅠ
-킹귤 솔랭에서 모솔 만나서 처맞았었냐? ㅋㅋㅋ
[릴 소식) 모솔, 미호 잡지를 보면서 수련 마쳐! 최강의 재능러 명예를 회복하러 금일 출격!]
-ㅋㅋㅋ 언제 적 기사누
-ㅁㅊ 맥이는 거네
-ㅋㅋㅋㅋㅋㅋㅋ개웃기네
-아~ 아몬드 개 거품이지 모솔이 진짜 재능러라니까?
-아니, 솔직히 30살이 19살을 어케 이기냐고~~
이런 식으로 과거의 기사들까지 끄집어내서 놀리곤 한다.
그나마 오늘은 놀리는 게시글이 적은 편이다.
그만큼 관중들은 오늘 경기 내용에 만족했던 것이다.
[오늘 승리를 이끌어낸 한 발.]
2세트 경기 내용을 칭찬하는 게시글도 이제 눈에 들어온다.
이 게시글엔 아몬드가 보드를 타고 날아가면서 쏜 빙결 화살 짤이 담겨있었다.
-커브샷 개쩌네. 나 저런 거 첨 봐.
└유입 개많아졌네 ㅋㅋㅋ 저거 아몬드 특장기인데.
└유입 당연히 많지 아몬드 지금 시청자 수 2만 돌파 중인데
-저런 게 된다고??? (나도 유입)
-와 저 상황에 저걸 커브샷을 쏠 생각을 하네 ㅋㅋㅋ
└ㄹㅇ 깡이 장난 없음
└저거 빗나가면 그냥 로밍 끝나는 건데 나 같으면 더 가까이 가서 쏘려다가 모솔한테 역으로 뒤졌을 듯ㅋㅋㅋㅋ
-킹귤 저기서 존나 익룡 소리 내더라 ㅋㅋ 개쩔긴 했음
└익룡ㅋㅋㅋㅋㅋㅋ
피식피식 웃으며 커뮤니티를 감상하던 상현.
그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뭔가…… 팬 서비스 같은 게 있어야 하나.’
힘든 매치업을 이겼는데, 너무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없었달까. 힘들어서 그냥 바로 나와버렸다.
[아몬드 쉑 방종 바로 하는 거 실화?]
[모솔이랑 자강두천하다가 떡실신?]
[아몬드 방종튘ㅋㅋㅋㅋ]
[아사장! 문 열어! 아니, 좀 천천히 닫아!]
[헐 소감이라도 말해주지 ㅠㅠ]
역시나.
찾아보니 이런 의견들이 꽤 많다.
‘음……’
상현은 이만 커뮤니티를 끄고, 룬스타그램을 들어가 봤다.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팬 관리를 할까?
팔로우 되어 있는 사람들의 게시물이 떠오른다.
그중 미호의 게시물이 가장 먼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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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수고 많았어요!
아몬드 오빠랑 커플 화신 캐리!
@Almond_Arrow
#수영장파티 #미드승리 #난트전 #성소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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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도 기억 나는 사진이다. 룬스타에 올려도 되냐고 묻길래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올린다고 한 게 이거구나.’
2경기 끝나고 적군의 성소가 터질 때 인증샷을 찍은 것이다.
릴에 있는 기능 중 하나다. 게임 안에서 셀카를 찍을 수 있다. 보통 적을 놀릴 때 쓰인다.
미호는 조금 다르게 쓴 것 같지만, 역시나 반응이 좋다.
-와 언니 너무 이뻐 ㅠㅠ
-쒯. 핵인싸 모임……
-ㅋㅋㅋ 저 뒤에 모솔 ㅋㅋㅋ 보인다 ㅋㅋㅋ
-두, 둘 사이에 낄 수가 없어.
-엄청난 비주얼 커플이다;;
└커플 아닌데?
└커플 아닌데?222
└너네 무서워……
-이걸 두고 어케 라인전을 제대로 함!
-미호는 반칙이야! 반칙이야!
-근데 옆에 저 건방진 견과류는 뭐죠?
-아몬드! 사랑해요!
-아몬드는 수영장파티 안 입음? ㅋㅋㅋ
└헉…… 제발 ㅠㅠ
└오…… 오히려 좋아……
-낼도 이기자 형~
-저는 오빠밖에 안 보여요>
미호의 게시글인데도, 아몬드의 이야기가 거의 절반이다.
‘내 팬들이 갈 데가 없나?’
파티가 끝나면 뒤풀이가 있어야 했다.
오늘의 경기는 큰 파티였는데. 게다가 아몬드의 팬들이라면 아몬드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할 게 많은 경기였는데.
그런 걸 풀 곳이 없다.
커뮤니티에 이야기해도 되지만, 대부분은 커뮤니티를 안 하니까.
이런 장소를 마련해 둬야 하는 것이다.
‘확실히 필요해 보이네.’
상현은 이제 이해했다.
스타들의 SNS는 팬들이 다시 한번 결집할 수 있는 장이 된다.
미호는 확실히 이런 SNS 활용이 자연스러웠고, 풍선껌도 꽤나 괜찮게 쓰고 있었다.
반면 상현의 룬스타엔 오로지 광고밖에 없었다. 애초에 게시글이 2개뿐이었다.
[팔로워 7.4만]
팔로워도 7만 대에서 정체되고 있었다.
‘음…….’
그는 뭐라도 올려야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그는 누워서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평생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지만, 별로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휴대폰 카메라가 알아서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찰칵’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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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힘들어서 바로 방종했어요.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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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근데 그가 예상했던 내용은 아니다.
슈퍼 플레이 칭찬하는 댓글들이 대부분일 줄 알았더니만.
‘……뭐야.’
-뜬금 셀카 투척? ㅋㅋㅋㅋㅋㅋ
-형님…… 셀카 처음 찍습니까?
-이게 아몬드야?
-미친ㅋㅋㅋㅋㅋ
-그냥 광고만 올리십쇼. 형님.
-아! 알았다! 이건 아몬드가 아니라 아몬드 빵이야!
-웬 빵이 하나 있죠? 베이커리 광고인가요?
상현은 당황했다.
그는 다시 한번 사진을 확인했지만.
‘음…….’
그의 눈엔 똑같은 얼굴이다.
‘잠이나 자자.’
난 이런 데에 재능이 없는 게 분명해라고 생각하며 상현은 그냥 눈을 감았다.
상현이 잠든 밤.
그의 룬스타에선 수도 없이 알림이 울려댔고.
-초 귀여운 셀카 올린다는 곳이 여긴가요?!
-와 ㅋㅋㅋ 아몬드 빵
-팔로우 바로 눌렀습니당
-베이커리 론칭했다길래 왔습니다.
[팔로워 8.4만]
[팔로워 9.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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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되고 있던 팔로워 숫자에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