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20화
75. 아몬드 빵(2)
다음 날.
간만에 연습도 없이 쉬는 날이었다.
앞으로 약 3일은 경기가 없었다.
‘오늘은 좀 쉬겠네.’
아침에 일어난 상현은 그리 생각했으나.
애석하게도 그의 예상은 상당히 빗나가 버린다.
어제 그가 올린 셀카는 생각보다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몬드 이거 뭐냐?]
[ㅋㅋㅋㅋ빵떡이네]
[존잘러라서 겨우 살았다 이 새끼……]
[엌ㅋㅋㅋ개귀여워 ㅠ]
커뮤니티에서도 그의 사진을 퍼다 나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다행히 대부분 게임 관련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이슈글에 오르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 올랐어도 관리자가 삭제 처리했을 터다. 게임과 관련 없는 게시물이니까.
대신 룬스타 팔로워는 순식간에 늘어나기 시작했다.
[10.4만]
상현의 룬스타 팔로워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새로운 소통 창구로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처음 만들었을 때 이후로 상당히 급격하게 오르고 있었다.
-여기가 아몬드 빵 셀카의 근원지입니까?
-헐 셀카 초커엽 ㅠㅠ
-와 오빠! 내 심장 폭행해 달랬더니, 왜 횡격막을 때려?!
-아이고난 ㅠ
-그 얼굴을 그렇게 쓰지 맙시다.
-와 릴에서 우리 팀이 경험치 골드 다 몰아준 놈이 갑자기 꼬라박으면서 트롤하는 거 보는 기분임.
└뭔 말이야
└신께서 우리의 외모를 전부 아몬드에게 몰아줬는데. 그걸로 꼬라박는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병신이네. 아몬드 얼굴을 보고도 아직도 유신론자라니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
└미친 이거닼ㅋㅋㅋㅋㅋㅋㅋㅋ
└개 시밬ㅋㅋㅋㅋㅋㅋ 맞네
수많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한다.
‘오…… 이거 좋은 거야, 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댓글 알림 외에 다른 것들이 눈에 띈다.
[안녕하세요. 에이프릴 코스메틱 마케팅팀의 김수현 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쓰리립스 마케팅팀의……]
“……?”
이게 뭘까.
* * *
푸하하하하!
꼴사나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주혁이다.
“아. 왜.”
상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묻는다.
“야. 넌 이게 어디가 이상한지 모르겠냐?”
주혁이 웃음을 겨우겨우 참으며 물었다.
그가 들고 있는 건 어젯밤에 상현이 룬스타에 올린 셀카다.
“으허허허허허헉!”
거의 숨이 넘어가려고 하는게, 꼭 일부러 나 기분 나쁘라고 더 웃는 것 같다.
“야. 오죽하면 메이크업 좀 하라고 광고 요청이 오냐.”
“…….”
상현은 할 말이 많았지만, 더 이상 반박하진 않았다.
왜냐?
-아이고……ㅠㅠ
-형 그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줘
-ㅋㅋㅋㅋ와 근데 ㅈㄴ 막 찍어도 잘생기긴 했다
-잘생긴 빵임
-아몬드 빵ㅋㅋㅋㅋㅋ
-머리만 있으니 호두과자 아니누?ㅋㅋㅋㅋ
상현도 양심이 있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보고 웃고 있는데,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거 다 광고할 거냐?”
“……내가 메이크업 광고를 왜 해.”
이 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냥 별일 없이 편히 쉬는 날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퉁. 퉁.
문 앞에 택배 박스가 쌓였다.
“허허.”
주혁은 그 택배 박스들을 보더니 헛웃음을 쳤다.
“누구는 셀카만 찍어서 올려도 화장품이 선물로 들어오네.”
“……이게 머야.”
상현이 화장실 창문에서 양치를 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뭐긴. 광고해 달라고 보내온 뇌물들이지.”
“……네물?”
“어. 어제 화장품 광고 어떠냐고 걔네가 물었잖아.”
상현은 우선 입을 다 헹궈내고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냥 줬다고?”
“요즘엔 원래 이렇게 일단 써보라고 주는 것 같더라.”
찍. 찍.
박스를 열어보니 깔끔한 디자인의 화장품들이 들어 있었다. 여자들이 쓰는 게 아니라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대충 피부 톤을 맞춰주는 것들이랑 입술 바르는 용도. 거기에 눈썹을 다듬고 그리는 키트였다.
“허…….”
룬스타를 시작하니 이런 일도 있구나. 상현은 그리 생각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광고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네가 진짜 화장을 할 것도 아니고.”
화장품 광고는 당연히 안 할 생각이었다.
택배를 반송할까도 생각했다. 반송이 쉽게끔 관련 방법도 안에 들어 있었는데.
그 안엔 직접 손으로 적은 편지까지 함께였다.
‘음…….’
왠지 마음이 약해지는 상현.
‘그냥 두자. 언젠간 쓰겠지.’
그는 그냥 상자째로 창고에 쌓아 두기로 했다.
나중에 언박싱 컨텐츠라도 하든가. 어딘가에라도 쓰일 터다.
이 날, 그는 연습 게임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스케줄이 똑같이 비어 있던 고단백과의 스크림 경기였는데. 결과는 당연하다는 듯 참패였다.
미드가 챌린저인 솔로이즈백을 이기고 꽤 자신감이 차 있었는데.
단무지는 아예 차원이 다른 플레이어였다. 거기에 그의 팀원들도 솔로이즈백보단 훨씬 강했다.
스크림이 끝난 후.
벌룬스타즈는 어떻게 단무지를 파훼할지에 대해서 한참을 논의한 후 헤어졌다.
물론 대다수는 벌룬스타즈가 고단백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 중이었다.
-단무지를 이겨먹을 생각을 하누 ㅋㅋ
-야망 1티어! 벌룬스타즈!
-솔직히 지금만 해도 진짜 잘한 거임
-스크림 폼으로는 이기긴 힘들 것 같다…… ㅠㅠ
-단무지가 아몬드 형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고 작정했네.
이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전력 차이가 있었다. 솔로 이즈백하고는 차원이 다른 갭이 있다.
하나, 벌룬스타즈의 멤버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방종을 하는 척하고, 몇 시간 후에 다시 모였다.
“점멸검은 팀원들도 같이 움직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해.”
이러한 이유로 이젠 점멸검을 필두로 팀 단위 훈련을 한다.
“점멸검을 혼자서 잘해도, 보통 팀원들이 얘가 어디까지 들어갔다 빠져나올 수 있는지 적응이 안 돼서 안 풀리는 경기들이 태반이거든.”
최대 난이도의 AI들을 설정해 놓고 아몬드가 미드 점멸검을 플레이하는 상황에 맞춰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물론 AI로는 연습에 한계가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스파링 상대가 없으면 샌드백이라도 두들겨야 하는 법이다. 와중에 풍선껌은 AI에게 솔킬을 한 번 당해서 꽤 현실감 있는 훈련이 되기도 했다.
“와하하! 난 우리 팀 훈련 질을 좀 높이려고…… 일부러 죽었어. 킹부러!”
풍선껌은 그게 민망했는지 얼굴이 벌게져서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 근데 왜 하필 점멸검이야?”
그는 화제를 돌리고 싶었는지 이런 질문도 했다.
“단무지도 점멸검을 꽤 잘하니까 뺏어오는 의미도 커요. 걔네는 점멸검을 밴할 생각은 추호도 못 하고 자기들이 직접 픽하려고 할 테니까.”
“아……!”
픽을 뺏어오면 밴 카드를 하나 소모하지 않고 적을 봉쇄할 수 있다.
“거기에 단무지의 주류 픽들이 대부분 점멸검이 카운터 칠 수 있거나 유리한 상성이야.”
“……그래?”
이건 타코도 추가적으로 리서치를 하다가 알게 된 거라고 한다.
“걔가 점멸검을 주로 하게 된 이유가, 자기 캐릭터들 카운터 못 치게 뺏어오다가 잘하게 된 거더라고.”
“아…….”
“이건 아무나 아는 사실은 아니고. 내가 옛날 걔 팀 멤버한테 연락해서 물어봤습니다.”
프로의 인맥까지 동원했다는 것이다. 타코는 정말이지 이 난트전에 진심인 셈.
“좋아.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다들 방송도 아닌데 열심히 해줘서 고맙습니다!”
“네! 오빠도 들어가 쉬세요!”
“감사합니다~!”
“내일 경기도 잘해봅시다!”
상현은 그날 꿈에서도 점멸검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아성으로 출퇴근을 했다.
‘아, 씨…….’
진짜 기분이 이상한 꿈이었다.
* * *
다음 날.
벌룬스타즈와 그린티배깅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다시 보게된 그린티배깅의 순위에 새삼 다시 놀라는 아몬드.
‘왜 저럴까…….’
현재 8위를 유지 중이었다.
16개 팀 중에 8위라면 딱 중간이지만, 플레이오프는 딱 5개 팀이 참가한다.
이래서는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무지성 고라니보다도 순위가 낮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단, 저쪽 팀에 무슨 불화가 있는 건 거의 분명해 보이거든?”
오죽하면 타코가 이렇게 단정 지어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방심하진 말자.”
브리핑은 간단했다.
아마 타코도 예감하고 있는 거다. 이번 경기는 너무 쉬울 거라고.
[선수들은 포탈로 입장해 주세요.]
밴픽이 시작된 후.
아몬드는 승리를 확신했다.
“어!? 지금 희한한 밴픽을 시도합니다!”
적 밴픽에 뭔가 실수가 있었다.
“그린티배깅? 자신 있나요? 아몬드의 레이나가 오픈됐는데요!”
레이나가 열린 것이다.
“아니, 서리궁수를 밴하고 레이나를 오픈? 이건 뭐죠?”
* * *
“레이나를 왜 열었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될 거다. 여기서부터 밴픽이 꼬이기 시작하지.”
그린티배깅의 최고 티어이자, 브레인(?) 담당.
그린티가 검지를 치켜 세우며 말했다.
“머릿속을 지배하기는 무슨. 전장의 지배자 망나니 용사 뜰 듯.”
피클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아니, 그건 네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지!”
“밴픽이 꼬이는 게 아니라 우리 게임이 꼬일 듯.”
피클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네가 그러니까 햄버거 크루에서 쫓겨난 거야, 인마!”
그린티는 피클의 과거를 들추며 받아쳤으나. 딱히 피클에게 대미지가 들어간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야. 그리고 쟤 레이나 안 한 지가 벌써 몇 주째야. 데이터상으로는 서리 궁수가 더 무서워. 프로 게임 국룰인 거 몰라? 필밴 카드라고 해서 맨날 밴하다가 어쩌다 한 번 풀어주면 막상 연습 안 해서 터지는 거.”
“아니, 근데 연습 착실히 해놓은 상태면?”
“그럼 나도 다 계획이 있지.”
“누구나 계획은 있지. 처맞기 전까진.”
퍼억!
결국 그린티의 주먹이 피클을 후려쳤다.
피클의 머리가 이리저리 진동하며 우스꽝스럽게 바뀌었다.
“후. 폭주족으로 레이나 상대하는 법 익혔어.”
그린티는 퉁퉁 부은 자신의 주먹을 불며 설명했다.
“다들 알겠지만 최근 패치 때문에, 은근히 카운터더라고.”
폭주족 캐릭터에 미미한 상향이 있었다.
바로 ‘상남자’라는 패시브의 상향이었는데.
상남자는 적에게 맞을 때마다, 자신이 때릴 때마다 방어력이 오르게 해주는 패시브다.
이게 좀 더 많이 오르게 됐다.
한마디로 그냥 좀 더 튼튼해졌다는 뜻이다.
“그 작은 차이 때문에 초반 딜교에서 레이나보다 미묘하게 우위를 가져가지. 이거에 적응 못 해서 퍼블 따이는 원딜러 엄청 많아.”
폭주족은 본래부터 레이나 상대로 좋은 픽이었다.
폭주족의 약점이라면 샷건의 사거리인데. 레이나도 원딜러치고는 사거리가 긴 편이 아니고, 순간 대미지는 폭주족보다 약한 터라, 폭주족이 상대하기에 딱 맞는 것이다.
더군다나 폭주족은 그린티의 모스트 픽 중에 하나다. 숙련도도 굉장했다.
실제로 거의 꼴찌로 추락하던 그린티배깅을 그나마 8위로 살려놓은 픽이기도 했다.
“근데 레이나 안 고를걸? 너무 오래 안 해서. 사나 고를 거야. 아마. 그럼 우린…….”
* * *
그린티의 계획은 반만 맞았다.
일단 아몬드의 생각은 그린티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뭐야. 왜 레이나 밴 안 하지?’
이런 의문이 든 건 맞았다.
‘바보들인가.’
그러나 그린티의 예상만큼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형. 레이나 갈게요.”
“그래? 근데 뭔가 준비된 게──”
“그냥 갈게요.”
화르륵!
마나의 불꽃이 작렬하고, 화사한 금빛 머리칼의 신형이 아몬드의 뒤로 내려앉았다.
〔간만에 용기 있는 사람들이네.〕
푸른 비단결의 후드 밑에 레이나의 붉은 입술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레이나! 레이나! 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