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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223화 (223/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23화

76. 새로운 카드(3)

적이 죽었다.

령의 파동만 맞다가 그냥 죽었다.

‘결국 죽긴 하네.’

아몬드는 사라져가는 적의 육신을 흘끔 보고는 다시 미니언 파밍에 집중했다.

-와아아아아아!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개간지다아아!

적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파동만으로 때려잡은 모습에, 팬들이 열광했다.

그 열광에 호응해 준다면 좋겠으나, 상점픽을 고른 이상 아몬드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그는 지금 혼령사를 쓰면서 알게 된 정보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뒀다.

‘1레벨엔 약해.’

일단 1레벨에 약한 캐릭터인 건 확실했다.

령의 파동과 레이나의 화살을 비교하자면, 기본 대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레이나는 콤보를 넣을수록 대미지가 증가(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낮다)하지 않던가?

령의 파동이란 녀석은 기본 공격도 아니기 때문에 1.5초라는 쿨타임이 존재하고, 대미지 증가도 없다.

‘대체 몇 대를 맞힌 거지.’

체감상 15~20대는 맞힌 것 같았다.

1.5초마다 쏠 수 있는 걸 감안하면, 최대 30초간 상대를 때렸다는 뜻이다.

30초면 릴에선 계약자 5명 전부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인데.

이 시간 내내 상대를 패야만 죽는 대미지라는 뜻이다.

그래야 상대가 죽는다.

상대가 골드여서 망정이지, 모솔 같은 숙련자였다면 정말 고전했을 거다.

‘이 스킬의 장점도 있긴 해.’

하나 대체 불가능한 장점이 하나 있다.

투사체를 컨트롤 할 수 있었다.

‘기회가 두세 번 있는 느낌.’

화살은 한 번 빗나가면 끝인데. 이건 다음 기회가 있다.

령의 파동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방향을 틀어댈 수 있다.

컨트롤에 능숙하기만 하다면 이론상 유도 미사일처럼 쓸 수 있다.

물론 이런 컨트롤이 가능한 사람은 극소수다.

아마 그래서 멜리도 이런 반응인 것이다.

〔와아아! 너 잘하잖아!?〕

멜리의 영혼이 아몬드에게 들러붙는다.

보통의 화신들은 자신의 영혼을 바깥으로 꺼내는 짓은 잘 하지 않는데.

혼령사라는 컨셉 때문인지, 아니면 성격 때문인지 멜리는 꽤 자주 튀어나온다.

〔왜 이제야 나랑 놀러 왔어?! 앞으로 나랑 자주 놀자! 응?!〕

멜리가 아무에게나 이렇게 들러붙는 건 아니다.

아이 같은 성격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막말도 서슴지 않는 편이다.

그녀의 세 치 혀에 상처를 받고 포기한 계약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 멜리가 이러는 건, 아몬드가 멀티태스킹이라는 진입 장벽을 너무 쉽게 극복했기 때문이다.

멜리는 이런 자들을 ‘영혼 친화적인’ 계약자라고 인지하는데.

〔내가 봤을 때 넌 혼령사에 재능이 있어!〕

한마디로 혼령사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화신 성격은 조금 단점…….’

반면 아몬드는 멜리가 귀찮게 구는 걸 혼령사 픽의 단점으로 꼽고 있었다.

멜리는 그것도 모르는 채 잔뜩 신난 얼굴로 다음 스킬을 제안했다.

〔얼른 사념체들을 소환해 봐! 잔뜩 쌓였잖아?〕

“지금? 적도 없는데.”

〔적이 왜 없어?〕

멜리가 꺄르르 웃으며 앞으로 슥 나왔다. 그녀의 작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적군의 포탑이 서 있었다.

〔저거 있잖아.〕

포탑?

아몬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2레벨에 포탑을 깨라고?’

2레벨의 대미지로 포탑을 치려면 한세월이다.

릴에서 포탑은 최소 4레벨 이상, 보통은 5~6레벨 전투에서 깨진다.

계약자 둘이 함께 가는 바텀 라인이라면 모를까. 미드 라인에서 2레벨에 포탑을 깬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화신들이 틀린 판단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아몬드는 잠시 고민하더니.

‘어차피 상대는 골드잖아.’

골드 멸시를 동반하며 소환을 해보기로 한다.

“그래. 해볼게.”

〔동작을 취한 채로, 주변에 시체들을 하나둘 시야에 들어오게 해봐.〕

그녀의 말대로 일단 해보기로 했다.

사념체 소환을 발동시키는 인지 동작을 만들어낸 후. 미니언들이 죽어 나간 자리를 슥 훑었다.

팅! 팅! 팅!

청량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미니언들의 시체가 하나둘 희미한 보랏빛으로 빛났다.

〔보라색으로 빛나는 시체들은 일으킬 수 있다는 거야!〕

굳이 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인 디자인이다.

그런데…….

‘시체가 모자라잖아?’

모아놓은 사념 개수에 비해 시체가 모자랐다.

‘일단 되는대로 해보자.’

시체야 미니언들이 오면 또 생길 테니.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소환을 시작하는 인지 동작을 만들어냈다.

[사념체 소환]

쿠웅──

묵직한 소리와 보랏빛 안개가 낮게 깔린다.

안개 속에서 검은 인영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사념체]

[사념체]

[사념체]

.

.

.

무려 41기의 사념체가 생겨났다.

그들은 보랏빛으로 타오르는 검과 활을 들고 안광을 번뜩였다. 혼령사의 명령만을 기다리면서.

‘공격로가 꽉 차다니.’

생각보다 큰 규모에 아몬드는 내심 놀랐다.

41기의 사념체들은 미드라인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 규모라면 정말 포탑을 파괴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이제 저 귀여운 사념체들을 움직여줘! 그래야 재밌게 놀 수 있어!〕

아몬드는 멜리의 제안에 따라 의식을 집중해 봤다.

령의 파동 하나를 컨트롤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무려 41기를 한 번에 일으켰으니까.

〔너무 많으니까 하나씩……〕

파직……!

41기의 사념체의 눈에 동시에 스파크가 일었다.

〔헉! 한 번에 다!? 와아앗!〕

아몬드는 멜리의 호들갑을 한 귀로 흘리며, 명령에 집중했다.

‘앞으로.’

가장 앞에선 보라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검을 든 사념체들이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비행했다.

반 영혼 상태이기 때문에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다녔다.

스스스……!

그 덕분에 이런 규모의 인원이 움직이는 데에도 불구하고 발소리 하나 울리지 않는다.

──퍼엉!

가장 선두로 가던 사념체 하나가 포탑의 공격에 연기로 흩어졌다.

단 한 방에 죽는 셈이다.

‘하나, 하나는 약해. 하지만…….’

그러나, 포탑의 공격 속도는 상당히 느린 편이었고.

가장 선두에 가던 사념체가 죽은 사이에, 다른 사념체들이 포탑을 둘러쌌다.

‘공격.’

척!

일제히 들어 올려지는 자색 마나의 검.

콰과과광!!!

거의 스무개에 가까운 검이 포탑을 쳐대니, 무슨 폭격 소리가 터져 나왔다.

포탑은 사념체들을 없애기 위해 맞대응하며 분전했으나 공격 속도의 한계 때문에 들러붙은 사념체를 다 제거하려면 한세월이었고.

사념체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꺄하! 재밌다! 다 부숴 버려! 이제 활도 당겨봐!〕

아몬드는 이제 활을 든 사념체들에게 의식을 집중했다.

‘드로우.’

기리릭──

스무개에 가까운 활의 시위가 당겨진다.

하나같이 당기는 자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홀딩.’

노킹, 드로우, 홀딩…….

그 후, 쏘는 듯한 기색도 없이 놓아지는 릴리즈.

──파아아앙!!!

자색의 마나가 깃든 수많은 화살이 벌떼처럼 날아올랐다.

그리고, 일제히 포탑의 정중앙에 명중했다.

퍼버버벙!

포탑 체력이 순식간에 30% 이상이 거덜 났다.

〔와아아앗?! 너 왤케 잘 쏴! 뭐야!〕

멜리가 방방 뛰며 아몬드를 칭찬한다.

* * *

“허억…… 허억…… 아, 안 돼!”

이제야 부활한 양파.

그는 전격 마법을 양손 가득히 캐스팅해 둔 채로 허겁지겁 뛰어가고 있다.

이제 포탑이 보이는데.

‘저게 뭐야 미친…….’

거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사념체가 뿜어내는 자색 안개와, 활활 타고 있는 포탑.

체력이 절반가량 없는 모습이다.

‘포탑 체력이 거의 절반이 사라졌어?’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양파는 속으로 불만을 품었으나, 사실 그는 운이 좋은 거였다.

아몬드가 혼령사가 처음이라 소환을 바로 감행하지 않고 헤메는 바람에 포탑 체력이 절반이라도 남은 거지, 바로 판단해서 공격했다면 지금쯤 폐허만 남았을 테니까.

[야! 정글! 어디야!]

양파는 일단 정글을 불러들였다.

혼자서 막아선 손해가 더 클 것 같았다.

[하아. 미드 똥 미쳤네. 가고 있어. 어떻게 40스택이나 줄 수가 있냐!?]

[하하…….]

정글러는 오고 있다는 싸인을 보냈고, 양파는 사념체들에게 곧장 광역 마법을 퍼부었다.

파지직!

퍼엉!

한 번에 너덧 개씩 사라지는 모습.

상성은 역시 상성일까.

‘한 대만 치면 사라지는 놈들인데…… 이렇게나 숫자가 불어나 있다니.’

사념체들은 계약자의 공격에 한 대만 맞아도 사라진다. 계약자들은 강한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컨셉인데.

단순하게, 그냥 체력이 매우 약하다.

평타로 한 대만 맞아도 죽으니, 광역 마법이라면 휩쓸리는 건 순식간.

‘금방 정리되네.’

그렇게 포탑에 달라붙은 사념체들을 거의 다 정리해갈 때.

“어……?”

아몬드의 사념체들이 갑자기 뒤로 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실 양파는 포탑 파괴를 막은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으나.

“저거 남겨두면 나중에 짜증 나는데.”

사념체가 도망가고 있는 꼴을 보니, 쫓아서 조금만 더 죽이고 싶었다.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적은 뒤돌아서 뛰고 있고, 우리는 정글러도 오고 있다.

양파는 별생각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그게 실수였다.

“어딜 도망…… 엥?”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망각한 것 말이다.

탁.

미드 라인에 어느 시점을 밟는 순간.

‘뭐야.’

등 뒤에서 스산한 감각이 스쳤다.

화르륵!

보랏빛 불이 활활 타올라 솟구쳤다.

그의 등 뒤에서, 새로운 사념체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체가 모자라서 미처 다 소환하지 못했던 사념체들.

‘아니.’

양파는 놀라서 다시 아몬드 쪽을 돌아본다.

보아하니, 아몬드가 소환을 캐스팅하고 있는 게 맞다.

눈이 마주친 그가 빙그레 웃었다.

당했다.

‘함정이었어……?’

일부러 따라오게 해서 둘러싸 버린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념체를 소환하려면 사념이 필요한데.

‘어떻게 사념이 또 있지? 그것도 저렇게 많이?’

40기의 사념체를 보면 누구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할 터다.

양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로서는 예상할 턱이 없었다.

아몬드가 63개의 사념을 모았었다는 걸.

‘대체 내가 몇 대나 맞아준 거야!?’

이제야 사태를 파악해 봐야 늦은 듯했다.

그의 뒤를 잡은 근거리 사념체들이 하나둘 날아오기 시작했다.

후웅!

자색의 검로가 시야를 휘저었다.

양파는 얼른 전격 마법을 뿜었다.

[버스트]

자신의 몸 주변을 전기 폭풍으로 휩쓰는 마법이다.

퍼어엉!

근거리에 있던 사념체가 연기로 사라졌다.

운이 좋다면 최대 10마리까진 날려 버릴 화력이었다.

하나, 사라진 건 한 마리다.

‘일부러 한 마리씩 띄엄띄엄 보내고 있어.’

퍼엉! 퍼엉!

아무리 마법을 날려도, 한 번에 두 마리 이상 잡는 게 힘들었다.

사념체들은 절대 서로 붙지 않고, 마법으로 쓸릴 각을 내주지 않았다.

그저 양파의 진로만 방해할 정도로 덤볐다.

‘뭐 하자는 거야.’

한데 이래서는 사념체 쪽도 양파에게 별 대미지를 주지 못한다.

그야, 눈속임이니까. 괜찮았다.

“!?”

양파는 그제야 눈치챘다.

기리릭──

저 멀리에서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수많은 원거리 사념체들.

분명 도망가는 걸로 보였는데.

‘언제 다시 온거야?’

치고 빠지는 게 마치 정말 살아 있는 군대 같았다.

그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놓았다.

파아아앙──!

스무 발이 넘는 화살이 빨려들어 가듯이 양파의 머리에 박혔다.

──퍼버버버벅!

“쒯……!”

[체력 50%]

체력의 절반이 거덜 났다.

사념체 하나의 대미지는 별게 아닌데, 20마리가 쏜 화살을 다 맞으면 얘기가 다르다.

‘어이가 없네…….’

애초에 20마리분의 화살을 다 맞으리라 상정하고 만든 대미지가 아니니까. 당연히 어이없는 대미지가 나온다.

사실 진짜 어이없어해야 할 부분은 20마리의 화살을 다 맞히는 아몬드의 컨트롤이다.

‘대체 어떻게 다 맞히는 거야!?’

이러다 또 죽는 게 아닌가 싶은 때였다.

“내가 왔다!”

정글러가 등장했다.

“오, 왔……!”

양파보다도 아몬드의 반응이 더 빨랐다.

휘릭!

그 순간 모든 원거리 사념체가 정글러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본래라면 양파에게 갔을 화살이 일제히 정글러를 향해 날았다.

기세 좋게 달려오던 정글러의 안면에 벌집이 만들어졌다.

퍼버버버벅!

“미친!”

정글러가 양팔로 얼굴을 막아내며, 고함을 질렀다.

“아오!”

“후, 후퇴할까?”

양파가 한껏 자신감이 사라진 소리로 되묻는다. 그러자 정글러가 버럭 외친다.

“무슨 미친 소리야! 어차피 이거 다 컨트롤 못 해! 그냥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오느라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달려들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양파는 자신이 없었다.

‘다 컨트롤 못 한다고……? 정말?’

정글러는 아몬드의 사념체 컨트롤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하는 소리다.

척.

정글러가 힘차게 손도끼를 손에 쥐며 외쳤다.

“본체 노려!”

후웅! 훙!

살벌한 소리를 내며, 아몬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가는 도끼.

아몬드가 피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으나, 그는 미동도 않았다.

카아앙!

사념체 하나가 끼어들며 검으로 그 도끼를 튕겨낸 것이다.

물론 그 사념체는 계약자의 공격을 받은 충격에, 연기로 흩어져 버렸으나.

반격은 굳이 그가 할 필요는 없었다.

푸욱!

정글러 뒤에 있던 사념체가 뛰어들어 등에 검을 꽂아 넣었다.

“뭐야!?”

정글러가 뒤로 돌며 도끼를 휘둘렀다.

후웅!

사념체가 허리를 날렵하게 젖히며 피했다.

어이가 없는 광경에, 정글러는 입을 떡 벌렸다.

그러고는 양파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이 새끼들 살아 있는데?”

그게 유언이었다.

파바바바방!

그의 옆면으로 수많은 화살이 박혔다. 역시나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다.

“히익……!”

양파는 그때부터 죽어라 뒤로 뛰었으나, 등에 화살이 우수수 박히며 쓰러졌다.

[망나니 용사 더블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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