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40화
83. 히든 카드(2)
벌룬스타즈 vs 솔로이즈백의 플레이오프전.
여기서 지면 탈락해서 집으로 가는 토너먼트식의 경기다.
두 팀 다 난트전을 진행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해낸 팀이었기에, 이 대결은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이제 겨우 1세트가 진행된 것일 뿐이지만 관련된 내용이 이미 빅프로 게시판을 다 잠식해 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를 장식하고 있는 건.
[아몬드 손 빼서 쏘는 거.gif]
아몬드가 모솔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야수에게 덮쳐졌는데도 불구하고 손만 빼내서 쏘는 그 장면.
-이거 연습한 거임? 나도 해보려는데 왜 안 되냐?
└연습으로 잘생겨지는 소리하네 ㅋㅋㅋ
└내가 아몬드 방송 매일 봐서 아는데. 얘 이거 연습 안 함 ㅋㅋ 그냥 하는 거임
└될놈될. 넌 안될놈
└너무하네 ㅁㅊ ㅋㅋㅋ
그다음은 모솔의 심리전 모음집도 인기가 있었다.
[모솔 치키챠 심리전ㅋㅋㅋㅋ.mp4]
-개커엽네
-모솔쉑ㅋㅋㅋ
-핵인싸누 ㅋㅋㅋ
-얘 방송 별로 인기 없었는데. 이번에 부스팅 좀 되겠네? ㅋㅋㅋㅋ
└벌써 2천 명 늘었음 거의 2배 늘어난 거임
└한국인이면 제발 모솔 방송 봐주세요 ㅠㅠ
└……왜죠?
-모솔 드디어 여자친구 생기냐?
뒤이어서는 아몬드의 치키챠 시리즈도 인기가 있었다.
[아몬드 치키챠 뒤끝]
아몬드가 처음 모솔을 잡고 중얼거렸던 장면이다.
-미친ㅋㅋㅋㅋ
-개귀여워 ㅠㅠ
-이거 더 있지 않음?
└더 올림 ㄱㄷ
아몬드는 한 번만으로 뒤끝을 끝내지 않았고, 그 덕에 게시글은 이렇게 시리즈로 되어버렸다.
[치키챠 뒤끝-2]
[치키챠 뒤끝-3]
-이 정도면 모솔 죽일 때마다 매크로로 켜놓은 거야?
-ㅋㅋㅋㅋㅋㅋ미친
-아몬드 쿨한 줄 알았더니. 그냥 호두가 안 좋았던 거야!?
└게임에서만 뒤끝 있는 듯
└승부욕이 넘나 강한 것……
└호두 비하 발언을 삼가주세요. 그 또한 범죄입니다.
└아몬드는 쿨해. 그의 호두가 뜨거울 뿐.
-평소엔 누가 뭐 했는지 잘 기억도 못 하면서 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네 ㅋㅋㅋㅋㅋ
-아몬드 성소 앞에서 모솔 죽일 때도 치키챠라고 한 거였네 ㅁㅊㅋㅋㅋㅋ
└ㄹㅇ 이 정도면 이제 치키챠가 좋아서 말하는 거 아니냐고 ㅋㅋㅋ
그다음으로 인기가 있었던 건 풍선껌에 관련된 게시글이다.
[기억이 돌아온 껌]
[다시 기억을 잃은 껌형]
[또 기억이 돌아온 껌]
[또 기억이 사라진 껌형]
[이걸 껌이 먹어?! 아무거나 삼키는 껌형]
-ㅁㅊ 이 정도면 헤마?에 문제 있는 거 아님?
└ㄹㅇㅋㅋㅋㅋㅋㅋ
-제발 병원에 가 봐 형……
└릴을 못하는 걸 누가 치료해 줘ㅋㅋㅋㅋㅋ
└기억을 제대로 해놓으라는 거지 인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원에 가서 기억 다 돌아오면 개망하는데 무슨……
-마지막은 뭐여 ㅋㅋㅋ 유아퇴행이냐?
-펜타 뺏어먹은 건 진짜 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몬드 왠지 자면서 펜타타……하고 중얼거릴 거 같은데.
-누가 채팅에서 껌형한테 낯선 천장 좀 보여주라던데 ㅋㅋㅋㅋ 그거 개웃김ㅋㅋㅋ
-크 이맛이지! 껌형은 원래 씹어도 씹어도 끝이 없어! 껌이거든!
└ㄹㅇㅋㅋㅋ 마음껏 이 악물렴! 난 껌이거든! 아이고난!
그다음은 타코에 대한 칭찬도 의외로 꽤 많은 추천을 받았다.
[솔직히 타코 밴픽이 캐리했다. 추천 눌러라.]
-ㄹㅇ 속임수 밴픽 진짜 오졌다. 킹귤까지 속은 건 오랜만에 봄. 난트전이라 대충 드립만 쳐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무친놈임ㄹㅇ
-천재문어ㄷㄷ
-예언가 문어ㄷㄷ
-문과의 희망 타코!
└타코 문과 대학 나왔어?
└아니 공대생임.
└근데 왜……
└문이 그 문이 아니잖아 ㅄ아 ㅋㅋㅋㅋㅋ
└문과쟁이야…… 아직도 희망을 찾고 있누
그리고 뜨거운 관심 속에서, 2세트가 시작됐다.
밴픽이 시작되고 잠시 후.
릴프로 게시판엔 곧바로 새로운 픽에 대한 이야기들이 마구 올라와 자리를 차지했다.
[와 저거 뭐야?]
[저게 아직도 됨?]
[미친 저거 ㅈㄴ 옛날에 하던 건데 ㅋㅋㅋ]
[키야 라떼전술 ㄷㄷ]
[모솔 같은 애송이는 저런 전술 모르지 ㅋㅋㅋ]
[나도 첨보는딩…… 뭐냐 저게ㅋㅋ]
* * *
밴픽 시작 전.
늘 그렇듯이 캐스터가 먼저 운을 떼었다.
“자. 지금 5판 3선 매치에서 벌룬스타즈가 1승을 챙기면서 유리한 고지를 만들어냅니다.”
[벌룬스타즈] [1]
[솔로이즈백] [0]
캐스터의 말에 따라 모든 관중들 앞에 떠오르는 홀로그램엔, 벌룬스타즈의 1승이 새겨져 있었다.
“분석관님! 이번 밴픽.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분석관이 빨간 안경을 고쳐 쓰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예. 일단, 아몬드 선수가 미드로 나올 걸 계속 염두에 두고 픽을 짤 것 같습니다.”
“아몬드 선수가 또 미드로 갈까요?”
“안 갈 이유가 없습니다.”
“왜죠?”
“일단 1세트의 결과를 보시면 아몬드 선수가 미드에서 모솔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오히려 이기는 장면들도 있었어요!”
“그게 아몬드 선수가 모솔 선수와 상성이 좋아서입니다.”
“그래요? 인간 상성 같은 건가요? 인싸와 모솔의……?”
-교실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뿌리 깊은 전통……ㅋㅋㅋㅋㅋ
-이제 캐스터마저 ㅠ
-수학자들은 이걸 담당일진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사자성어로 담당일진이라고 하던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아…… 네.”
캐스터는 왠지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모솔 선수가 선호하는 화신 계열 때문입니다. 아몬드 선수가 숙련도 높은 원딜 화신을 미드로 들고 간다는 전제하에 모솔 선수와 상성이 좋을 수밖에 없죠.”
“엥? 왜죠?”
“원딜형 화신의 가장 카운터는 암살자형 화신인데. 모솔 선수가 의외로 암살자형 화신을 하지 않습니다.”
“예? 아…… 데이터를 보니 진짜 그렇네요?!”
“예. 모솔 선수는 게임을 넓게, 크게 보고 로밍을 다니면서 맵 전체를 휘젓는 운영을 좋아하는 선수입니다. 그런 면에서 원딜을 들고 미드로 가도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아…… 이런 상성 문제가 있었군요?”
“또…… 이건 게임 외적인 이야기인데. 타코 선수는 아몬드를 미드로 고정하고 싶어 합니다. 뒤에 있을 단무지와의 대결까지 고려하고 있는 거거든요? 모솔 같은 미드라이너를 상대로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아. 그러니까, 모솔은 그냥 경험치다?”
-모솔 ㅠㅠ
-모솔 미니언행
-모솔이 경험이 어딨어 ㅡㅡ 캐스터 선 넘네
-캐스터 몰아가기 쩌네 ㅋㅋㅋ
“타코야끼 님의 눈에선 그렇다는 거죠.”
빨간 안경은 허허 웃으며 위기를 넘겼다.
“아 타코야끼 선수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지금 세간에서는 타코야끼 선수를 예언가 문어, 천재 문어라고 부른다던데요? 두 분은 동의하십니까?”
-미친ㅋㅋㅋ
-예언가 문어 ㅋㅋㅋ
-뒤에 야끼는 어따 팔아먹고 맨날 문어야 ㅋㅋ
킹귤이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쳤다.
“캬~! 그럴 만하죠? 이번 대회에서 베스트 밴픽을 뽑아보라 하면 타코 선수의 밴픽이 무조건 탑5 안에는 들어간다고 봅니다! 상대의 노림수를 예측해서 카운터 치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예언가 문어라고 할 만합니다!”
캐스터도 끄덕였다.
“그렇죠! 카운터를 잘 치는군요! 근데…… 이번엔 모솔 선수 쪽이 마지막 카운터 픽을 가져갈 수 있거든요?”
“아~! 그렇죠! 이제 모솔이 카운터를 칠 차례였군요?”
진영에 따른 픽 순서로 인해 이번엔 솔로이즈백이 마지막 순서를 가져간다.
그러면 적의 5개 화신을 전부 살펴본 후 마지막 하나의 화신을 고를 수 있게 된다.
즉, 상성이 좋은 화신을 무조건 고를 수 있다.
“아마 마지막 픽은 에이스인 모솔 선수에게 주겠죠. 게다가 모솔 선수는 다루는 화신이 엄청 많거든요. 이번만큼은 예언가 문어도 고려할 게 많아질 겁니다.”
“그렇죠! 말씀하시는 순간, 밴이 진행됐습니다! 보러 가시죠! 예언가 문어의 힘이 진짜일지? 아니면 모솔 선수의 후픽 카운터가 더 셀지!”
* * *
화면엔 중계진 대신 밴픽을 진행하는 선수들이 담겼다.
양 측이 치열하게 무어라 무어라 말을 주고받았고.
시작되는 순간 일단 밴되는 화신이 있었다.
모솔의 솔리아와 아몬드의 레이나였다.
레이나가 밴되는 건 이제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타코는 미동도 없이 다음 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다음 밴은 사나일 것 같은데. 우리는 노가리 광대 밴하고…….”
그런데 그때.
쿵!
밴이 확정되는 소리에 타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솔로이즈백 밴#2]
[아이언볼 - 디노]
“……?”
풍선껌의 아이언볼이 밴당했다.
‘아이언볼을 밴해?’
예상치 못한 밴이었다. 그간 아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어서 미쳐 생각을 못 했다.
사실 이러나저러나 상관이 없으니까 신경을 끄고 있던 건데…….
막상 저게 밴당하니까, 탑에 거대한 구멍이 하나 뚫린 것 같은 기분이다.
밴픽을 진행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 막상 당하고 나서야 저게 밴당하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어…… 날 밴하는 거야?”
“와. 오빠가 잘했나 봐.”
타코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그리 놀란 눈치는 아니다.
아몬드는 자기 화신이 밴 안 당해서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거…… 곤란한데.’
하나, 타코의 머릿속에서 뻗어 나가기 시작하는 경우의 수의 가지들 중. 어느 한 부분 전체가 빨간색으로 물들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타코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괜히 사기를 떨어뜨릴 순 없잖은가?
“허. 흥미롭네. 우리는 준비한 대로 광대 밴. 발키리 밴!”
아무렇지 않게 다음 밴을 명령하고 있긴 하지만, 그도 머리 한구석에서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건 단순히 준비한 체크리스트를 읊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밴픽이 아니었다.
진정한 실시간 수싸움이 아니라, 그냥 나 혼자 하는 솔리테어(Solitaire)였다.
이런 걸더러 ‘벽밴픽’이라고 한다.
벽 보고 만든 밴픽이라는 뜻인데. 적의 전략은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전략만 생각하는 밴픽이다.
그 결과는 대부분 처참하다.
리그 1위 팀이 꼴찌 팀한테 지게도 하는 게 바로 이 벽밴픽이다.
‘생각을 부여잡아야 된다. 일단…….’
타코는 새하얘지려는 머릿속을 열심히 다시 정돈했으나. 이어지는 픽을 보고 더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용 조련사 - 제레미아]
용 조련사 제레미아.
미드로 쓰이는 화신이다.
이게 두 번째 픽으로 나왔다.
말도 안 돼.
‘뭐야. 왜…… 왜 미드를 먼저 골랐지?’
모솔은 맨 마지막에 미드를 고를 수 있었다.
모든 픽을 다 보고 카운터 칠 수도 있었는데. 먼저 미드 화신을 골라버렸다.
‘설마 저거 미드가 아닌가?’
용 조련사가 미드가 아닐 수도 있던가?
용 조련사 정글러도 하는 사람이 있긴 했다. 효율? 당연히 쓰레기다.
미드 용 조련사는 2티어지만, 정글러 역할의 용 조련사는 4티어로 분류된다.
4티어는 고르면 아군에게 일단 쌍욕을 먹는 픽이다.
몇몇 장인들이나 제대로 다룰 수 있는 픽이다.
‘데이터에도 그런 건 없었어.’
장인은커녕 정글러인 노가리의 데이터에는 한 번도 플레이한 흔적이 없었다.
장인들이나 할 수 있는 걸, 데이터에도 없는 노가리가 플레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뭐지? 왜 미드를 먼저 골라? 뭘 노리는 거야?’
그런데, 이때 타코의 머리에 스쳐 가는 탑 밴.
‘아……’
그러고 보니, 저쪽이 우리 탑의 모스트를 밴했었지.
‘노리는 곳이 탑이야?’
풍선껌의 모스트인 아이언볼을 밴하고, 탑라이너인 막걸리에게 막픽 카운터픽까지 쥐여준다면?
안 그래도 구멍인 탑에 더 큰 구멍이 뚫린다.
‘그건 안 되는데…….’
구멍 하나가 네 명의 에이스를 압도하는 게 이 게임이다.
특히나 풍선껌은 아이언볼이 아닐 경우엔 멘탈이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적의 노림수가 날카롭다. 타코도 뭔가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든 버티는 픽 쥐여주고. 정글을…….’
탑을 커버칠 수 있는 픽을 쥐어짜 보자.
근데, 불현듯 이런 생각도 든다.
‘아니야. 만약 미드를 카운터 치려고 과하게 속이고 있는 거면?’
우리도 점멸검이라는 카드를 갖고 왔는데.
저쪽도 데이터에 없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만약 그게 용 조련사 정글이라면?
만약 용 조련사 정글 장인에게 노가리가 과외라도 받았다면?
‘탑을 박살 내려는 깔끔한 밴픽이냐…… 아니면 미드를 이기고 가자는 무모한 밴픽이냐…….’
깔끔하게 약한 쪽을 두들겨 박살 내거나, 무리해서라도 강한 쪽을 억제하거나.
둘 다 말이 되는 전략이다.
‘이래서였구나.’
아이언볼이 밴되는 순간 느낀 불길함은 이 때문이었다. 생각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져 버린다. 심리전에서 말리고 들어가는 거다.
하나 어쩔 수 없다. 말리면 말린 대로 안고 가는 게 밴픽이다.
타코는 있는 힘껏 머리를 쥐어짜 냈다.
‘둘 다 커버칠 수 있는 사안이 있나?’
옛날 프로 시절부터 사용했던 철 지난 메타까지 싹 다 뒤져본다.
그의 머릿속 아카이브엔 반드시 정답이 있을 터다.
단지 그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뿐.
“형……? 픽해야 하는데.”
어느덧 이제 아몬드의 화신을 픽할 차례였다.
“잠깐…….”
시간은 흐른다.
[9초]
남은 시간 9초다.
[8초]
아무 생각도 더 떠오르지 않은 채로 1초가 더 지났다.
타코는 딱 2초. 2초만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6초]
마침내 2초가 지났다.
“몬드야.”
그때. 타코가 아몬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매번 이놈에게 의지하는 것 같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네가 해줘야겠다.”
“……뭘요?”
“정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