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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249화 (249/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49화

88. 점멸검(1)

툭.

전화를 끊은 뒤, 사랑은 집사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딱히 매니저한테 말한 것 같지도 않네요.”

“다행이군요. 근데 이 녀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집사는 ‘타임트러블’이라는 올튜브 채널을 화면에 띄우며 물었다.

“저번에도 각별히 주의를 줬는데. 또 이 업계 근처로 발을 들였습니다. 처리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일전에 타임트러블이 전자파에 관하여 조심스레 조사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하나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역으로 본인 신상만 이들에게 들켜 버렸다.

“처리라…….”

사랑은 턱을 괴며 고민했다.

그녀는 이 올튜버의 신상을 알고 있다. 밝히기만 한다면 굳이 손에 피 묻힐 것도 없이 알아서 자멸하리라.

고소는 물론이고, 심하게는 목숨까지 노릴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테니.

하나 고민하던 사랑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은 제가 관련된 업계라고 생각을 못했을 테고, 둘째로는 얘를 처리하면, 또 누가 생겨나겠죠. 그럼 신상 캐는 거부터 다 비용이에요. 차라리 아는 놈 잘 길들여요.”

“길들이기라…… 알겠습니다.”

집사는 뭔가 생각해 둔 길들이기의 방법이 있는지, 희한한 눈빛을 내었다.

그러던 중, 그의 표정이 다시 인자하게 바뀐다.

“그래도 이번에는 별다른 조사 없이 영상을 올려서 다행입니다. 의료 관련 기록은 열람된 적이 없다는 확답이 왔습니다.”

“급했나 봐요. 오늘이 결승이니까. 그리고, 지금 이 친구가 다루고 있는 다른 영상들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의 이슈니까…… 영상도 가볍게 간 보듯이 만들었겠죠.”

그리고 반응이 좋았다면 후속 조사를 시작해서 추가 영상을 만들어댔을 거다. 그러다 보면 사랑의 의료기록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게 됐다.

“시간 너무 지났네.”

이제 캡슐로 들어갈 시간이다. 의사가 옆자리를 맡아둔 채 안절부절하고 있으니. 얼른 가는 게 좋을 터다.

사랑은 휠체어의 전동 버튼을 눌렀다.

그때 집사가 사랑이 건네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갸우뚱한다.

“그런데 아가씨. 매니저랑 통화하실 때…… 음성 변조가 제대로 들어간 게 맞습니까?”

휠체어 버튼을 누르던 손이 멈칫한다.

“앗…….”

“?”

“아, 응. 당연하죠.”

집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까먹은 거다……라고 확신하며.

“여튼 난 가요.”

사랑은 후다닥 캡슐로 사라졌다.

단순히 그 자리가 민망하여서는 아니었다.

‘점멸검 픽했던데.’

오늘 경기는 그녀의 기준에서도 흥미로워, 처음부터 제대로 보고 싶었다.

* * *

단무지와 대치하던 중.

아몬드가 앞으로 검을 내던졌다.

후웅!

“어!? 지금 미니언 오기도 전에 싸움이 벌어지나요?! 아몬드 선수 달려듭니다!”

아직 미니언은 오지 않고 있다.

아몬드와 단무지, 둘만의 싸움이다.

“이거 흥분한 거 아닙니까!? 1레벨 싸움이 될까요!?”

“점멸검이 6레벨부터라고는 하지만! 1레벨 싸움은 바람검 못지않거든요! 검강으로 한 대씩 치는 게 엄청나서요!”

흔히들 점멸검이 6레벨 전에는 약하다고들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1레벨 싸움은 세고, 2~5레벨이 약하다.

다만, 1레벨 싸움이라는 것 자체를 상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그냥 편하게 ‘점멸검은 6레벨부터’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사사로운 사항은 일일이 기억하기도 귀찮을 수도 있으나.

아몬드는 이 디테일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여기서 이득을 봐야 점멸검은 6렙까지 편하게 찍을 수 있다.

[점멸]

파앗!

점멸과 함께 번뜩이며 허공에 나타난 아몬드의 신형.

“공중으로 붕 떠서 점멸이 돼버렸죠!? 이거 제대로 베기 쉽지 않은데요!?”

킹귤의 걱정이 무색하게, 아몬드는 아주 매끄럽게, 공중에 던져진 검을 낚아챘으며, 그대로 회전력을 실어 휘두를 수 있었다.

후우웅!

수십, 수백 번 연습한 매끄러운 검로.

그 위로 푸른 불길이 타오른다.

화르륵!

[검강]

[패시브. 상대에게 갑자기 접근하여 휘두르는 첫 공격에 ‘검강’ 효과가 부여된다. 검강은 적의 잃은 체력에 비례하여 큰 피해를 준다. 쿨타임 5초.]

먼 거리에서 상대에게 갑자기 접근할 때 부여되는 점멸검의 패시브, 검강이다.

“검강 발동됐어요!”

살벌한 소리를 내며 단무지를 향해 쇄도하는 검강.

시뻘건 불꽃이 작렬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카아아앙!!!

“아! 마, 막혔어요!”

“단무지 선수! 방심한 척했던 겁니까!?”

기습이 막혔다.

아까만 해도 먼 산 바라보며 멍때리던 단무지가 어느새 승리의 눈빛을 머금은 채 웃고 있다.

“아! 단무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기습 공격이 너무나 깔끔하게 막힙니다! 망했어요!”

“이거 마, 망한 겁니까!?”

“점멸검이 1레벨에 바람검보다 강한 이유는 검강 때문이고! 검강은 막히면 그걸로 끝이에요! 다시 발동시키려면 상대에게서 한참 멀어졌다가 다시 붙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선 불가능하죠! 그걸 단무지가 그냥 보고 있을까요!?”

이제 검강은 못 쓴다. 점멸도 이미 썼다.

이제 단무지가 공격할 차례다.

스윽!

바람으로 빚어진 검이 대기를 갈랐다.

──촤아아악!

결과는 상반신에 적중.

붉은 피가 흩어진다.

[망나니 용사]

[체력 92%]

아몬드는 인정했다.

‘빠르다.’

확실히 검을 내지르는 속도가 빠르고, 검로가 정확하다. 같은 챌린저라도 모솔의 서너 배는 더 매끄러운 검초.

그 덕분에, 원래라면 한 번 정도 공격할 법한 틈이었으나, 두 번의 검격이 들어온다.

스슷!

‘또 온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검로였다.

이는 바람검의 패시브 때문이다.

[바람은 늘 내 곁에]

[패시브. 바람검이 적에게 적중할 때마다 더 많은 바람을 머금어 공격력과 검의 길이가 증가합니다. 최대 10번 중첩. 스택당 5초간 지속.]

일대일 근접 전투에서 리치가 길어진다니. 상대하는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심지어 바람검은 검이 바람으로 되어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몬드는 바람의 실루엣만으로 어림짐작해서 피해내야 했다.

차라리 감으로 느끼는 게 더 나았다.

‘이쯤인가.’

흡.

아몬드는 있는 힘껏 허리를 뒤로 젖혔다.

거센 바람이 가슴팍을 훑고 지나갔다.

“이걸 피했네요!?”

“오. 이러면 한 대 맞고 끝난 걸로 하고 다시 도망가면 되죠?”

“우리 비긴 걸로 하자! 시전!?”

위험한 공격이었으나 피해냈다.

이러면 도망갈 수 있다. 상대는 공격하느라 거리가 벌어진 상황이다.

하나 아몬드의 눈은 자신의 시야 한쪽에 뜬 점멸 쿨타임으로 향해 있었다.

‘2초.’

한 번 더 해보려는 것이다.

애초에 아몬드가 봤던 킬각은 이제부터다.

「고수들의 전투는 피지컬임과 동시에 항상 수 싸움이야.」

타코가 그에게 가르쳐 줬던 말을 되새긴다.

「마치 체스를 하듯이,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체크’를 연이어 넣고.」

그래. 첫 공격은 ‘체크’에 불과했다.

그의 발이 앞으로 내디뎌졌다.

「마지막에 ‘체크메이트’로 몰아넣는 거야.」

타악!

바닥을 박차며, 흩어지는 신형.

‘계산이 맞다면 필요한 체크는 3회…….’

도주할 기회를 내다 버리고 돌진하는 아몬드를 보며 중계진이 반문한다.

“아몬드! 안 도망가나요!?”

“검강이 없으면 전면전은 힘든데요!”

“무슨 생각이 있나요!?”

이에 대답이라도 하듯 아몬드의 속력을 실은 찌르기 공격이 들어간다.

단무지가 가볍게 쳐낸다.

카앙!

“찌르기 막혔어요!”

“반응 속도! 빠릅니다!”

아몬드는 아랑곳 않고, 쳐내진 방향 그대로 돌며 칼 대신 발을 욱여넣었다.

거리를 좁히려는 거다.

거리가 좁혀지면 장점이었던 긴 검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다.

하나 그걸 쉽게 허용해 줄 단무지가 아니다. 뒤로 물러나며 검을 올려친다.

아몬드는 급하게 허리를 틀며 막아낸다.

카강!

다시, 반복.

카가강!

검과 검이 부딪힌다.

찔러넣는 검격과 쳐내는 검격.

파고들려는 자와, 걷어내려는 자의 싸움.

카강!

카아앙!

이리저리 돌며 앞으로 발을 들이미는 아몬드와 그에 맞춰 자세를 틀어대며 뒤로 물러나는 단무지.

둘이 춤을 추는 거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와 미친

-지린다

-이게 1레벨의 싸움이냐!?

-뭐야 ㅈㄴ 빨라

-ㄷㄷㄷ

캉! 카앙! 카가강!

두 칼날은 마치 탁구 랠리처럼 이리저리 튕겨졌다.

하나 랠리는 언젠가 끝난다. 승자는 아몬드였다.

그의 단검이 결국 빈틈을 찾는다.

스릉!

살벌한 소리를 내며 단무지의 목으로 쇄도하는 칼날.

‘이게 두 번째 체크.’

이번엔 검으로 쳐낼 각이 없다. 애초에 단검과 단무지의 목이 너무 가깝다.

그 거리가 한 뼘도 채 남지 않은 때.

“단무지! 간발의 차로 목을 비틀면서 피했어요!”

스슷!

단무지는 가볍게 목을 틀어 피해낸다.

얕은 생채기만 생겼을 뿐. 체력에 변화는 없다.

아몬드의 공격은 빗나간 것이다.

한데 난색이 스쳐야 할 것 같은 아몬드의 얼굴에, 승기가 깃들었다. 어차피 그의 목적은 목을 베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적은 거리를 좁히는 것!

단무지가 목을 꺾느라 잠시 주춤한 틈에 아몬드는 완전히 밀착했다.

턱─

서로의 가슴이 닿아버릴 정도로.

결국, 극단적으로 좁혀진 거리.

“어?! 아몬드 선수! 아예 딱 붙어버립니다!”

“이러면 서로 못 때리지 않나요!?”

“아니죠……!?”

기다란 바람검은 공격할 방법이 없지만.

단검 형태인 점멸검은 방법이 있다.

휘릭.

단무지의 등 쪽으로 삐져 나가 있던 아몬드의 손이 검을 역수(逆手)로 쥐었다.

이대로 힘을 실어서 상대의 등으로 꽂아 넣었다.

‘세 번째 체크.’

푹!

깊게 파고드는 단검.

이 정도면 충분히 대미지 판정이 들어간다.

“점멸검은 단검이라 역수로 쥐고 막 찌를 수가 있네요!”

[단무지]

[체력 92%]

단무지의 체력이 달았다.

공격으로 판정이 된 것이다.

반면, 단무지는 바람검으로 어떻게든 아몬드를 베어보려 해봤으나, 차라리 검을 비비는 것에 가까웠다. 그게 공격 판정이 될 리가 없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오히려 검의 길이가 방해가 되어버립니다! 찌르거나 벨 수가 없어요!”

“반면에 아몬드 선수는 계속 찌릅니다! 끌어안은 채로 등을 찌릅니다!”

푹!

한 번 찌르기 시작하자, 아몬드의 단검은 멈추지 않았다.

푹! 푹! 푹!

단무지의 등에서 피가 한가득 솟구친다.

“얼른 빠져나가야죠 단무지!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이게 마음처럼 안될 거예요! 단무지는 뒤로 걸어서 빠져나가야 하고 아몬드는 앞으로 걸어서 따라가는 거라! 속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단무지는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뒷걸음질 쳤으나, 뒷걸음질 치는 것과 앞으로 달리는 건 당연히 속도 차이가 난다.

단무지가 힘겹게 허우적거려서 뒤로 거리를 벌리려 하면 아몬드는 아주 쉽게 따라가서 다시 등에 칼을 꽂아 넣었다.

-미친 이게 무냐 ㅋㅋ

-억ㅋㅋㅋ 처키 메타

-사거리 차이 활용 지린다. 처음 꺼내는 거 맞아?

-센스는 거의 장인급인데

-1레벨 점멸검이 저렇게 세냐?

“아! 단무지! 체력이 거덜 납니다아!”

[단무지]

[체력 23%]

결국, 체력이 바닥을 기는 시점에서야, 단무지는 빈틈을 찾아낸다.

바로 좌측 하단이다.

그는 재빠르게 그쪽으로 발을 박차며 몸을 빼내는 데 성공한다.

“드, 드디어 빠져나옵니다!? 근데 체력이 너무 빠졌어요!”

“그래도 검강을 막은 게 다행이네요. 그거까지 있었으면 죽었습니다!”

단무지는 아몬드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다.

관중석과 중계석에서 동시에 탄식이 흘러나온다.

-ㄲㅂ

-못 죽이네

-그래도 이러면 라인전 이득 많이 볼 듯.

“아! 아몬드 선수는 아쉽겠어요! 진짜 끝장을 볼 수도 있었는데요!”

“검강 다시 발동시키려면 멀리 갔다 다시 접근해 와야 하는데. 1레벨엔 이게 힘들죠. 아쉽네요. 그래도 유리한 상황에서 라인전을…… 어, 근데!?”

킹귤이 뭔가를 본 듯 테이블을 탕, 후려치며 일어나는 그 순간.

[점멸]

파앗!

눈부신 빛과 함께, 단무지의 등 위에서 등장하는 아몬드의 신형.

-뭐야!?

-칼 언제 던짐?

-검도 없이 점멸?

칼을 던지는 모션도 없이 점멸을 썼다.

그것도 단무지 바로 뒤쪽으로.

모두가 이것에 의문을 가질 때, 킹귤이 외쳤다.

“아니! 이거 등에 칼이 꽂혀 있었네요!”

-와 진짜네

-소름;

-단무지 ㅈ됐다

그렇다. 아몬드는 일부러 단무지가 도망가게 두었던 것이다.

왜냐?

[검강]

화르륵!

검을 감싸는 푸른 불꽃.

검강의 패시브 발동을 위해서다.

“거, 검강! 다시 발동됐어요! 거리를 벌렸다가 좁혀서요!”

“이, 이거 위험합니다! 검강은 잃은 체력 비례 대미지거든요!? 체력이 낮을수록 피해를 많이 받습니다!?”

등에 꽂혔던 단검을 뽑은 뒤.

휘익──

퍼렇게 타오르는 안광이 좌로 쭉 늘어지며, 몸이 허공에서 크게 회전했다.

허벅지, 허리, 어깨로 전달되는 힘.

그건 곧이어 검에 전해졌고.

‘체크…… 메이트.’

그대로 눈앞의 상대를 그어버렸다.

──촤아아아악!

처음 봤던 킬각이 완성되는 순간.

[퍼스트 블러드!]

[망나니 용사 → 단무지]

아몬드가 단무지를 처음으로 죽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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