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53화
89.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2)
결국 다시 점멸검이 나오자, 중계진들이 잔뜩 흥분하여 소리쳤다.
“아니, 이게 열리네요?”
“그리고 선픽을 그대로 박습니다!?”
캐스터가 놀란 눈이 되어서 해설진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저희야 또 아몬드의 점멸검을 볼 수 있으니 좋긴 합니다만…… 이거 괜찮나요? 폭풍 닌자는 밴된 상태거든요? 뭘로 카운터 칠 건가요!”
점멸검을 카운터 치려고 일부러 줬다고 생각하려 해도, 대표적인 하드 카운터인 폭풍 닌자는 밴당한 상태.
캐스터나 게임을 잘 모르는 라이트 유저가 언뜻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아니 왜 점멸검 열어줬냐
-누가 봐도 준비해 온 걸 왜 열었지?
-계획이 있겠지.
-밴할 정도는 아님. 슈퍼 플레이 좀 한다고 바로 밴하냐? ㅋㅋㅋ
-얘들은 밴픽이 무슨 마음에 안 드는 거 지우는 거인 줄 아나 ㅅㅂㅋㅋㅋㅋ
실제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왜 열어주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겨우 한번 흥했다고 밴하면 밴픽 체계가 다 흔들린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계진은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저는 이거 고단백이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아요! 프로 경기에선 자주 나오는 그림입니다!”
“뭐죠?!”
“너 점멸검? 별거 아냐. 아까는 갑자기 당해서 진 거야! 한마디로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1세트는 그냥 실수했다는 거예요!”
그렇다. 1세트 경기가 완패는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승기가 뒤집힐 뻔한 기로가 있었다. 단순히 후반까지 잘 큰 점멸검을 막지 못해서 진 경기다. 그러나, 그게 과연 점멸검을 밴할 이유가 될까?
프로들의 기준에서 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한번 슈퍼플레이 했다고 바로 밴하고 그러면 밴픽 엄청 꼬이거든요! 무엇보다 점멸검을 상대가 확실히 픽할 거라는 것도 열어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게 이유가 돼요?”
“물론이죠! 보통은 상대가 뭘 픽할지 몰라서 전략을 못 짜잖아요? 근데 상대가 점멸검 픽할 게 뻔하다면? 굳이 막아야 할까요? 그러면 다른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이야! 그렇군요! 알면 대처가 된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1세트는 몰라서 진 거구요!”
“그렇죠!”
킹귤이 끄덕이더니, 갑자기 테이블을 탕! 쳤다.
“그리고!”
그가 단무지 쪽을 가리키며 열변을 토한다.
“단무지도 사람인데! 전프로로서! 챌린저로서! 자존심이 많이 구겨졌을 거예요!”
킹귤이 이런 말을 갑자기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방금 고단백의 미드 픽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바람검 - 세이코]
쿵!
화려한 바람과 함께 착지하는 세이코의 신형.
“다시 한번 붙어보자! 하고 싶겠죠!!!”
-엄대엄 리벤지 ㄷㄷ
-와우
-미친 ㅋㅋㅋㅋ 복수전?
-엌ㅋㅋㅋ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우틀않! 시전!
“이거. 커뮤니티가 뜨거워지고 있는 게 벌써 느껴지죠?”
“설마 다른 조합도 똑같이 가나요?”
이어서 다른 라인의 픽도 하나씩 등장했는데.
-와 지독하다 지독해
-진짜 또 한다고!?
-ㄹㅇ?
-우틀않 진짜 ㅋㅋㅋㅋ
-자존심인가;
“이야~”
킹귤이 감탄했다.
“이거 완전 똑같은 리매치죠?”
양쪽의 픽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아무래도 고단백은 1세트는 그냥 운이 안 좋았다고 여기는 거고! 벌룬스타즈는 운이 아니라 니네 실력이야!라고 말하는 거죠!”
“이야 이거 흥미롭네요? 이런 거 가끔 릴챔스나 월즈에서 나온 적이 있긴 하죠?”
“그렇습니다. 특히 강팀들의 경우 밴픽엔 문제없다! 우리 플레이에 실수가 있었다! 이렇게 피드백이 되는 경우 이렇게 나오는 경우가 있죠.”
“실제로 결과가 다른 적도 많았죠?”
“그렇습니다. 실제로 똑같은 밴픽인데 결과가 반대인 경우 많았죠.”
그렇다.
밴픽은 그저 판을 까는 방식일 뿐.
막상 가장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어떻게 플레이하느냐이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점멸검 저거 너무하던데
-점멸검 또 봐서 개이득
-근데 아까는 점멸검이 퍼블 따서 너무 컸었음 이번엔 다를 듯.
양쪽 팀의 픽이 전부 완성됐다.
딱히 해설진이 코멘트할 건 없었다. 그냥 똑같은 픽이니까.
“자~ 픽이 전부 완성됐습니다! 단무지의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가 과연 리벤지를 성공할 수 있는지! 2세트 같이 보시죠!”
* * *
확실히 시작부터 1세트와는 다른 흐름이었다.
우선 초반 교전이 일어나지 않았다.
단무지가 굳이 그걸 유도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만 플레이해도 1세트와는 완전히 다른 결괏값이 나오죠? 벌써 흐름이 상당히 다릅니다!”
“그렇죠. 1세트의 메인 이벤트는 누가 뭐래도 그 미드 퍼스트 블러드였는데. 그게 없어졌으니까요?”
서로 적 미니언을 죽이면서 파밍에 집중하는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이는 안정적으로 6레벨을 찍어야 하는 아몬드에겐 분명 좋은 일이었으나.
당연히 고단백은 무난하게 갈 생각은 없었다.
“어? 근데. 고구마 선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 저기 왜…….”
정글러들은 몬스터를 잡는 ‘최적화 동선’이라는 게 보통 정해져 있는데.
최적화 즉, 최대 효율 동선을 기준으로는 많이 쳐줘 봐야 가짓수가 서너 개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강 정글러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나 제3자 시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계진들은 그 예측이 더 쉽다.
그런데 고구마가 그들의 예측과 전혀 다른 동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최적화는 개나 주고 난 아몬드 죽이러 간다? 방식이죠?!”
고구마가 본격적으로 미드로 뛰기 시작했다.
“고구마 슬슬 들어갑니다!”
“아몬드 선수! 모르고 있어요!”
“단무지 선수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죠! 여기서 눈치채야 하는데요!”
[돌풍]
파앙!
바람검의 돌풍이 쏘아졌다.
평소 같으면 그냥 뛰어서 피하려고 했을 텐데.
아몬드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얼른 뒤로 검을 내던졌다.
“아몬드 선수! 눈치챘네요! 도망 성공할…….”
그리고 바로 점멸.
파직!
하나 도착한 곳은 전혀 엉뚱한 곳이다.
“……어!?”
“이야! 고구마! 살신성인!!!”
야수, 고구마의 옆구리에 박혀 있는 단검.
몸으로 점멸검을 막아낸 것이다.
“아. 이거 가불기죠!?”
“이러면 도망갈 방법이 일단은 없죠!”
“아몬드! 이판사판이야! 그냥 때립니다!”
아몬드는 이럴 바엔 야수를 죽이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촤악!
발톱과 단검이 서로를 할퀴고 베어댔다.
와중에 아몬드는 그의 공격을 몇 번 흘리는 데 성공한다.
“아니, 근데 이 와중에 무력이……!?”
“진짜 거의 죽일 기세로 싸우죠!?”
[고구마]
[체력 73%]
기습을 감행한 고구마의 체력이 더 낮아져 버린 이상한 상황.
“하지만 단무지가 합류하면!”
뒤에 바람검이 합류하며 아몬드의 등을 찔렀다.
푹!
아몬드의 체력이 절반 이하로 바닥 쳤다.
그는 좌측으로 포지션을 옮기며, 둘을 동시에 상대하기 좋게 검을 고쳐 쥔다.
카아앙!
쇄도하는 야수의 발톱을 막아내고.
캉!!
찔러오는 바람검을 쳐냈다.
야수가 덮치기를 시전했으나, 단순한 무빙으로 피해버렸고 바람검의 베기는 칼로 재차 쳐냈다.
카강!
단무지는 제대로 썰어버리겠다는 듯 양손으로 제대로 된 초식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검격이 훨씬 더 빨라진다.
캉! 카앙!
카가강!
불꽃이 용접마냥 튀어오른다.
거기에 야수까지 합세하여 몰아붙이자, 아몬드의 체력이 슬슬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이거 점멸 쿨 돌아갑니다!?”
점멸 쿨 4초가 어느새 1초도 남지 않았다.
“못 잡으면 큰일 나요! 이거! 고구마 선수 투자 많이 했거든요!”
“에이. 그래도 이건 잡히죠!”
[퍼스트 블러드!]
[단무지 → 망나니 용사]
결국 쓰러지는 아몬드.
“후아! 잡았어요!”
“아니. 이게 이렇게 힘들게 잡을 일인가요? 이거 좀 불안한데요?”
-아니, 뭔…… 레이드냐?
-단검으로 저렇게까지 막는다니.
-허…… 점멸 삑사리 난 게 이 정도임?
-단검이라 더 빨라서 막기가 쉬운 거?
완벽하게 뒤를 잡았고, 2레벨 갱킹의 기습도 완벽했는데.
막상 전투에서 밀릴 뻔했다.
“아니, 1세트 때 그 점멸검! 역시 운이 아니었죠? 이렇게 버틸 수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검 숙련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물론 그래도 단무지 선수에 비하면 아직 초식이 깔끔한 맛은 떨어지지만. 그냥 반응 속도가 미쳤어요!”
“어쨌든! 정리하자면 단무지! 리벤지 성공했습니다. 언제나 결과가 가장 중요하죠?”
-아무튼 성공ㅋㅋ
-결과적으로 죽긴 했으니 ㅋㅋ
-흐름은 좋다.
“그리고! 이거 킬은 일부러 고구마 선수한테 넘긴 느낌이 있거든요?”
킹귤의 의심이 맞았다.
단무지의 이번 판 전술은 고구마에게 투자를 많이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2레벨에 무리해서 왔으니까 포상을 준 거 같긴 한데. 고구마 선수 또 동선이 심상치 않죠!?”
고구마는 뭔가 얘기된 게 있었는지. 1세트와는 전혀 다른 동선으로 다른 라인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속속들이 비보가 전해져왔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도토리묵 → 풍선껌]
[아군이 당했습니다!]
[백숙 → 미호]
탑에 가면 탑이 죽고, 바텀에 가면 바텀이 죽었다.
이미 한 번 죽어버린 아몬드도 뭔가 해볼 방법이 없었다.
1세트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아. 전 라인 다 불리하게 시작하는데요……?”
“이건 1세트도 마찬가지긴 했어요…….”
“근데 1세트에는 아몬드는 흥했었잖아요!”
“그렇습니다. 그게 차이가 크죠.”
1세트에 그 흥했던 점멸검도 6레벨을 빨리 찍는 게 최선이었다.
그만큼 점멸검은 2~5레벨엔 할 게 없다.
단무지와 고구마는 지금 그 약점을 극대화해서 다른 라인을 부숴 버리고 있는 거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고구마! 전장의 지배자!]
“아……! 또 죽나요!?”
“아니, 거의 같은 조합인데 이렇게 상황이 갈릴 수가 있는 겁니까!?”
“풍선껌 지금 3데스째예요! 정신 놓으면 안 됩니다!”
-헐 우틀않이 먹히나 ㅋㅋㅋ
-와 진짜 이걸로 지면 벌룬스타즈 이제 밴픽 어쩌냐
-ㅠㅠ 껌형 제발 뭐라도 해봐ㅠㅠ
-이게 원래 실력이지 뭐…….
풍선껌의 3데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3번이나 아웃되면 포탑은 지킬 수가 없다.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으아……! 포탑 퍼스트까지 먹게 되는군요! 이러면 차이가 좀…….”
초반 흐름은 거의 희망이 안 보이는 것처럼 흘러갔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역시 그거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미드 포탑은 살려놨거든요!?”
“예. 무슨 일이 있어도! 아몬드 6레벨은 무난히 찍게 해주겠다는 타코의 의지죠!”
바로 점멸검의 6레벨.
“점멸검이 6레벨로 어떻게 슈퍼플레이하면! 또 모릅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아몬드는 경험치를 꾸준히 받아먹으면서 레벨을 착실히 올렸다.
추가 데스 없이 이제 곧 레벨이 6이다.
“이걸요? 이건 플레이어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않나요!”
“그렇죠! 그냥 또 모른다구요!”
-ㅋㅋㅋㅋ
-아님 말고
-아님x로
-킹귤쉑 ㅋㅋ
하나 아무리 점멸검 6레벨이 강하다고는 해도, 이런 상황을 뒤집을 만능 조커 카드 같은 게 될 순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프로씬에서 밴픽률이 100%로 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 진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잖아요!? 우리가 슈퍼플레이라고 부르는.”
“그렇습니다. 당연히 벌룬스타즈는 그걸 기대하고 버티고 또 버텨야겠죠!”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냥 포기할 순 없었다.
길이 그것밖에 없다면, 가능성의 유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해야 되는 건 해야 될 뿐.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 따져보는 건 어차피 결과가 말해줄 거다.
‘해야 된다.’
아몬드는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6레벨 이후의 플레이를 머릿속에 그렸다.
“자! 6레벨! 곧입니다! 과연 뭔가 보여줄 수 있나요!?”
“아! 근데 지금 아몬드 잡겠다고 5명이 다 미드로 모이고 있거든요!? 너 6레벨 찍기 전에 죽인다아! 이거죠!”?
단무지는 슬그머니 다시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맵 상에선 고단백의 4인이 전부 미드로 뛰고 있었다.
아몬드도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하지만 여기서 미니언을 조금만 더 잡으면 레벨이 오른다.
그는 칼을 앞으로 쭉 내던진 뒤.
[어검술]
어검술을 일직선 상의 미니언들을 그어냈다.
파바밧!
한 마리씩 칼로 때려잡는 거보다야 훨씬 효율이 좋았다.
게다가 완벽하게 체력이 낮은 미니언들만 골라서 경로를 선택했기에……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
“아아아! 아몬드! 고단백이 도착하기 전에 레벨이 올랐죠!? 이러면 도망이 수월하죠!”
우웅……!
하늘에서 붉은빛이 내비치더니, 검 하나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단무지 황급히 달려갑니다! 점멸검이 2개 된 거 확인했거든요! 점멸 하나라도 미리 빼놓으려는 겁니다!”
단무지뿐이 아니었다.
후방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계약자들이 튀어나왔다.
파앗!
“두 번은 안 당한다! 고단백이 외치고 있는 거죠!!”
스릉.
아몬드는 양 검을 손목을 풀듯이 한 바퀴 굴렸다.
그리고, 팽이처럼 몸이 회전하더니.
후웅!
검 2개가 동시에 날아갔다.
적들을 향해서.
“아몬드!? 도망 안 가고! 오히려 반격!?”
여기서 도망만 가면 게임을 못 이긴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해야 돼.’
파직──!
전격과 함께 그의 신형이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