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255화 (255/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55화

90. 단 하나의 픽(1)

아몬드 3밴.

이 단순하고 무식한 전략이, 사실은 정답이었던 걸까?

고단백은 1, 2세트를 졌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3, 4세트를 이겨냈다.

[고단백 2 : 벌룬스타즈 2]

순식간에 스코어는 2 대 2가 된다.

* * *

“쥐쥐~~~!”

“이야, 아몬드 3밴으로 2연승을 챙겨가는 고단백! 역시 쉽지 않네요!”

킹귤이 고개를 끄덕인다.

“1, 2세트만 봐서는 3 대 0 가능해 보였는데. 이게 정말 한 끗 차입니다. 전자파 선수도 수틀리면 시원하게 던지게 되는 게 릴이거든요!”

-ㅋㅋㅋㅋ그건 맞지

-전자파 형이 던질 땐 ㄹㅇ 강속구지

-걍 팀 전력 차가 너무 많이 나는 듯. 비비는 라인이 미드 하나뿐임.

“아몬드 선수가 미드로 다루는 화신들이 단무지 선수를 압도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감이 있네요.”

분석관의 평이었다.

“예. 미드 란으로 엄청나게 분전했지만. 이게 원래 미드로 가는 픽이 아니다 보니 잘 안되네요!”

“심지어 그다음 경기는 란마저 뺏어갔어요!”

“무엇보다 탑 공략이 점점 노골적으로 이뤄지면서 고속도로가 계속 뚫립니다!”

“어찌 됐든 이제 2 대 2! 마지막 한 경기 앞두고 있어요!”

이제 벌룬스타즈와 고단백의 2:2 상황이 만들어졌다.

중계진이 추가로 설명해야 할 룰이 있었다. 앞서도 한번 언급했던.

“자. 이제 마지막 판이 기다리고 있죠? 이거 룰 설명이나 다시 한번 해주시죠.”

“아. 5세트는 블라인드 픽으로 진행됩니다! 밴도 할 수가 없고! 상대가 뭘 고르는지도 알 수가 없죠!”

“그렇죠! 만약 같은 화신을 고르면 어떻게 되죠?”

“그냥 미러전 하는 겁니다! 그게 또 꿀잼이거든요!”

“3, 4세트는 아몬드 3밴으로 재미를 본 고단백인데. 이번엔 어떻게 할까요? 밴을 못 하잖아요!?”

“글쎄요…… 점멸검 카운터 픽으로 조합을 꾸릴까요? 아니면 그냥 점멸검 대 점멸검 미러전 자존심 싸움 갈 수도 있죠!”

“자! 시작하기 전까진 아무도 모릅니다! 쉬는 시간 갖고 5세트로 가시죠!”

* * *

벌룬스타즈의 대기실.

그곳엔 5명의 팀원들이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었다.

서로 아무런 말도 나누지 못했다.

입을 열기에도 너무 지쳐 버린 탓이다.

1, 2세트의 승리 이후 3, 4세트를 내리 지는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스코어는 2 대 2로 동점이지만 기세로는 지금 고단백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게다가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다.

3세트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다가 졌으며, 4세트는 중간에 있던 역전 기회를 큰 실수로 날려 먹었다.

무엇보다, 그냥 실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벌룬스타즈는 심적으로 너무나 지쳐 있었다.

“음…….”

미호는 뭔 말이라도 꺼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웅얼거리며 눈치를 본다.

“어, 어떻게 이겨볼 수 없을까요? 이제 블라인드 픽인데.”

블라인드 픽.

이게 그나마 5세트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솔직히 정석대로 밴픽하고 시작하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밴픽이라는 게 결국은 선수가 다룰 수 있는 화신의 폭도 연관되는 거라.

선수 간의 실력 차이가 나면 밴픽에서도 당연히 격차가 벌어진다.

“블라인드 픽이면 저희 다시 점멸검 고를 수 있잖아요!?”

미호는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점멸검 이야기를 꺼냈으나. 어색한 침묵만 돌아올 뿐이었다.

한참 뒤. 타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멸검 고르면 이기는 경우의 수를 알려줄게.”

그는 대뜸 허공에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경우의 수를 표현하는 가짓수였는데.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상대가 폭풍 닌자를 고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거 외에도 카운터 조합을 구성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길 수 있을 거다.”

상대가 카운터를 준비 안 하면 이긴다.

“물론 아몬드의 컨디션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타코의 눈길이 아몬드에게로 향한다.

그는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아까부터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단무지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3세트는 그나마 비등한 대결이었으나, 4세트에선 완패.

미드 란은 운영이 미숙한 플레이어들 상대로만 먹히는 픽이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좌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머리 한구석에선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불순물 같은 생각이 계속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다.

잡념은 패배의 징조다.

그걸 분명 아는데도…….

“아몬드.”

턱.

타코가 그의 앞에 와서 어깨를 부여잡았다.

“?”

그제야 자신을 부르는 걸 눈치챈 아몬드가 올려다본다.

“뭔 생각해. 어차피 픽은 내가 정해줄 거야. 생각은 나한테 맡기고. 일단 컨디션을 유지해.”

아몬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뭔가 기운이 없군.’

아몬드뿐이 아니다.

팀원들의 눈빛이 영 별로다. 그나마 아몬드는 나은 편이다.

“뭐야. 이 눈빛들은.”

짝. 짝.

타코가 박수 소리로 주의를 환기시키며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자. 나도 생각이 정리됐으니. 피드백해보자. 이제 곧 마지막 경기야!”

여전히 분위기는 그대로다.

타코는 이게 뭔지 알고 있다.

작은 대회를 준비하다 보면 겪는 현상이다.

심적으로 몰아붙여져 버리면, 이런 작은 대회에서 어떤 심리가 시작되는지.

타코는 알고 있다.

“나도 알아. 뭔 생각들인지.”

그는 팀원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난트전이잖아. 이거 그냥 스트리머들, 광대들 나와서 쇼하는 거잖아. 이렇게까지 힘들여서 이겨야 할 건가…… 그런 생각이지?”

팀원들의 눈이 흔들렸다.

자기 생각을 들킨 것처럼.

“나도 이런 생각 안 드는 거 아니야. 하지만…….”

쿵.

그가 화이트보드를 두들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첫째. 이게 시청자들에게 쇼라고 해도, 우리 광대들한테도 쇼는 아니다. 서커스는 보는 사람에게만 서커스지. 하는 사람에겐 전쟁이야. 하다 죽을 수도 있어. 그렇게 만들어야 서커스가 되는 거야.”

난트전이 가볍게 소비되는 컨텐츠인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출연진들까지 이걸 가볍게 대해버리면, 난트전은 가볍게조차 소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광대의 역할을, 본분을 다하라는 이야기다.

“둘째. 프로들은, 아니, 연습생들은 가끔 작은 대회에서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이거 별거 아닌 대회야. 대충해. 난 릴챔스 가서 우승하면 되지. 릴챔스 지고 나면, 월즈 가서 우승하면 되지. 이런 애들 특징이 뭔지 알아?”

“…….”

“월즈? 가지도 못해. 릴챔스? 결승은커녕 플레이오프도 못 가. 진짜 잘하는 애들은 동네 캡슐방 대회에서도 최선을 다해. 거기서부터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는 거야.”

물론 이들이 프로는 아니지만. 상관없었다. 타코는 지금 프로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분도 다 아는 얘기일 거라고 생각해. 지금 몸이 지쳐서 머리에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에 지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야. 우리…….”

이건 그의 인생관이다.

탕!

그가 화이트보드를 치며 소리쳤다.

“인생에서 우승이라는 거 한 번은 하고 싶지 않아!? 그게 비록 난트전이라도!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어?”

팀원들의 눈빛이 조금은 바뀌었다.

이 정도 온 것도 잘한 거지…… 라며 스스로 위로하던 나약한 생각이 지워진 것이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그거 한번 확인해 보고 싶지 않냐고!”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아!”

미호가 먼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그녀는 아까부터 어떻게든 분위기 전환 기회만 보고 있던 터다.

그녀를 필두로 ‘그래! 해보자!’ 등 다시 한번 파이팅 넘치는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아몬드는 타코가 앞서 했던 말을 반복해 되뇌고 있었다.

‘우승해 보고 싶지 않아……? 비록 난트전이라도.’

비록 이 무대가 난트전이라는, 누군가의 눈엔 저급한 부류의 대회일지라도. 우승해 보고 싶지 않냐는 말.

10년 전.

비록 국내 선수권이라는 작은 대회였을지라도, 그 대회가 선물해 줬던 짜릿함은 적지 않았다.

다들 올림픽이 진짜라고, 선수권은 중요하지 않다고들 말했었지만.

돌이켜보면 상현에겐 그 대회도 무엇보다도 ‘진짜’였다.

아직도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연료였다. 무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쓰이는 아주 연비 좋은 연료였다.

그렇다.

심장을 뛰게 하는 데 있어서 무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다.

내가 이기고 싶고, 내가 우승하고 싶고, 그걸 이뤄내면,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자. 이제 내 필승전략을 들을 준비가 되었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눈빛이 마음에 들었는지. 타코가 씩 웃으며 다시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까 미호 때문에 갑자기 생각난건데. 생각해 보니까 쟤네 입장에선 이렇더라고.”

다이어그램은 복잡했으나. 요점은 이거다.

점멸검이 카운터를 만나지 않으면 진다.

“이게 저쪽 픽의 대전제일 거야. 1, 2세트를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 또 점멸검을 카운터 없이 맞이하고 싶을까?”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그럴 리가 없다. 이건 마지막 경기다.

“점멸검 카운터는 반드시 준비하겠지? 블라인드 픽에서 이거 하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득이야.”

확실히 그랬다.

저쪽이 과감하게 점멸검 카운터 픽을 배제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게 프로 경기였다면…… 정글이나 원딜 등 픽을 조정해서 카운터가 될 수도 있지만. 프로들이 아니다 보니 그 정도로 화신을 넓게 다루진 못해. 그러면 저쪽 입장에서 방법은 두 가지 같아.”

찌익.

그가 줄을 그어놓은 두 가지의 경우.

[점멸검] [폭풍 닌자]

이 두 개였다.

“점멸검을 고르면, 미러전이 되거나 다른 픽을 맞닥뜨리겠지? 근데 아마 우리가 폭풍 닌자를 고를 리는 없다고 생각할 테니. 생각보다 안전한 픽이 될 거야.”

그다음은 폭풍 닌자로 타코의 손가락이 향했다.

“폭풍 닌자를 고르면 점멸검을 만나면 완전히 땡큐고, 아니어도 이 픽은 무난하게 적용할 수 있다. 완전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역시 단무지의 모스트 픽이니까. 나쁠 건 하나도 없지.”

이 원리대로라면, 적의 미드가 픽할 수 있는 게 딱 2가지로 좁혀져 버리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서 딱 하나 더. 확실하게 뽑을 픽 하나를 알 수 있는데.”

[발키리]

타코가 위의 글자에 줄을 찍 그었다.

“성능이 OP(Over Power, 게임상 능력치가 기본적으로 매우 높아 밸런스가 안 맞는 것)라서 매번 밴되는 화신이지. 우리는 이걸 쓸 사람도 없으니까. 계속 밴했었지.”

아몬드도 익히 알고 있는 화신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칼날 비를 뿌려대는 녀석인데. 확실히 상대하기 골 아프다.

“이거 무조건 나와. 점멸검 상대하기도 좋은 화신이거든. 광역 도발에 걸리면 점멸검은 아무것도 못 하니까. 심지어 도토리묵의 모스트 안에도 있었지.”

이로써 두 라인의 경우의 수가 좁혀졌다.

“이걸 고정값으로 해서…… 아몬드의 픽을 정해보는 거지.”

스슥.

타코가 아몬드가 픽할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 * *

5경기가 치러질 게 확실해진 순간.

릴프로에선 또다시 양쪽 팬덤 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저~ 비밀병기 원툴 ㅋㅋㅋㅋ]

[점멸검 밴하니까 아무것도 못 하네]

[아몬드 없음 걍 개발리네]

대체로 고단백을 응원하는 쪽은 벌룬스타즈가 아몬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팀이라고 매도했으며.

[비겁하게 3밴으로 5꽉을 가네]

[우리는 틀렸다!]

[단무지 자존심도 없냐?]

벌룬스타즈 쪽은 3밴이 비겁한 행위라고 매도했다.

하나 일단 3, 4세트를 연이어 내준 건 벌룬스타즈 쪽이었으니.

릴프로 특성상 조금이라도 최근에 이긴 팀이 최강팀이니까, 여론은 고단백의 편이었다.

-3밴으로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는 게 문제 아님?

└ㄹㅇㅋㅋ 폭풍닌자로는 상대 안되더만.

└차라리 멜리 하지…… 멜리 한 판도 안 꺼내네

└혼령사 그거 양학용이자나…… 단무지가 그 느려 터진 투사체에 맞겠냐?

-미드 란은 진짜 안 되겠더라…… 단무지가 너무 노련하게 돌려버리던데.

└맞아…… 원래 미드 화신이 아니자나……

└단무지 정도 실력자 앞에서 이상한 미드 꺼내면 진짜 개털리는 거임. 아몬드는 정석적인 미드를 연습했어야 함.

└그래서 점멸검 했잖아. 며칠 사이에 뭘 더 연습하냐 ㅋㅋㅋ

이렇게 한참 싸움이 벌어지던 중에.

라이브 화면에선 중계진이 외쳤다.

“자! 밴픽, 아니, 블라인드픽 들어갑니다아!”

휘익.

순식간에 화면이 전환되고.

쿵! 쿵! 쿵! 쿵!

한 치 망설임도 없이 픽이 시작됐다.

“이야~! 역시 블라인드 픽이라 화끈하죠?!”

“그렇죠! 뭔 심리전 이런 거 없습니다! 그냥 준비해 온 최고 조합 꺼내! 이거거든요!”

쿵……!

그리고, 벌룬스타즈의 마지막 픽이 확정됐을 때.

-우아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아몬드의 뒤에 내려앉은 여인이 푸른 두건을 벗으며 금발을 휘날렸다.

〔오랜만이야?〕

인사를 건네는 붉은 입술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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