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263화
93. 새로운 도약(2)
높은 언덕 위. 찰랑이는 검은 머리를 곱게 묶은 채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여자.
소연이다.
상현은 별로 놀라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근처로 다가갔다. 뭐에 홀린 듯이 말이다.
저건 뭐지?
소연이가 당기고 있던 활은 푸른색.
의아하게 생각한 상현이 다가가 물었다.
‘소연아. 그거 뭐야?’
지금과는 사뭇 다른 앳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음?’
소연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현을 내려다본다.
쏴아아아…….
산들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휩쓸어가며, 곱게 묶은 머리가 흔들렸다.
눈이 마주치자 상현이 씩 웃는다.
‘그 파란색 활…… 뭐야? 예쁘다.’
예쁘다는 말에 소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사실 활이 아닌 것을 그녀도 안다는 듯이.
그녀는 머리칼을 한번 쓸어넘기더니,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아몬드.’
상현은 그 말을 잘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지만 다시 듣고 싶었던 것 같았다.
‘뭐라고?’
‘아몬드라고. 이 활 이름.’
그때, 소연의 머리칼이 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새하얀 교복이 푸른빛의 망토가 되었다.
어린 상현은 입을 떡 벌리며 놀랐다.
‘레이나?’
소연은 레이나가 되어 있었다.
아니, 릴에서 레이나를 플레이 중인 건가?
분명 얼굴은 소연의 얼굴이었으니까.
레이나의 그 특유의 서릿발같이 차가운 느낌이 아닌 앳되고 부드러운 얼굴.
발그레한 기운이 올라오며,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다.
‘자, 봐봐.’
뭘 보라는 걸까?
상현은 소연의 시선이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돌렸다.
소연이 바라보는 곳은 언덕 아래쪽 펼쳐진 평원이다.
놀랍게도, 그곳엔 머리가 다 벗겨진 박 부장이 십자가에 버둥거리며 묶여 있었다.
얼마나 높이 묶여 있었는지, 저대로 떨어져도 죽겠다 싶을 정도인데.
심지어 그 밑에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이 한가득이었다. 그가 자랑처럼 신고 다니던 명품 구두는 이미 다 녹아내려, 발이 익어가고 있었다.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한 번만 살려줘!
처절한 목소리로 애걸복걸했으나, 이상하게도 상현은 일말 동정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때 소연이 속삭였다.
‘아몬드의 해방된 화살.’
푸른 활에서 파지직 전기가 치솟았다.
강신기였다.
엄청난 화력을 머금은 화살이 박 부장의 묵직한 아랫배 하단에 명중했다.
푸욱!
회사 다닐 적, 상현이 늘 ‘쏴버리면 어떨까’ 생각했던 그곳에.
펑!
푸른 타깃이 터져 나가며, 박 부장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소연이 깔깔대며 웃었다.
상현도 따라서 웃었다.
‘뭔 꿈을 꾸길래 그렇게 웃고 있냐!’
갑자기 하늘에서 주혁이 시비를 건다.
원래 해가 있어야 할 자리인데.
아기 같은 생김새의 주혁의 얼굴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 *
“……아.”
상현은 갑자기 밀려온 꿈의 기억에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했다.
일어났을 땐 하나도 기억이 안 나더니, 왜 갑자기 지금 기억이 난 거지?
「근데 넌 오늘 잘 때 뭔 꿈 꿨냐? 계속 웃더라.」
아, 아까 전 주혁의 질문 때문이다.
그땐 기억이 안 나서 모르겠다고 했으나, 이제 와 떠올라 버렸다.
곧 방송인데, 잡생각이 나게 생겼다.
[스트리밍이 시작됩니다.]
짝짝!
상현은 자신의 뺨을 두들긴 후.
정신을 가다듬으며 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집중.’
아무리 토크 방송이라도 허투루 할 순 없다.
이젠 이게 직업이니까.
[현재 시청자 2.1천]
점차 시청자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현재 시청자 1.3만]
시작하자마자 1만이 돌파되어 버린다.
‘뭐야…….’
채팅창의 스크롤이 미친 듯이 솟구친다.
-와! 아몬드!
-ㄷㄱㄷㄱㄷㄱ
-아사장 문열어!
-견! 견! 견! 견!
-아들! 넌 아몬드가 되긴 글렀단다! 아들! 넌 아몬드가 되긴 글렀단다! 아들! 넌 아몬드가 되긴 글렀단다!
-엄마! 여기 신문에 나오는 견과류가 있어요! 엄마! 여기 신문에 나오는 견과류가 있어요! 엄마! 여기 신문에 나오는 견과류가 있어요!
팅!
이때서야 켜지는 캠.
결승의 피로는 주혁의 토마토 스튜와 신나는 꿈으로 다 회복한, 맑은 컨디션의 아몬드가 나타난다.
-어? 오늘 ㄹㅇ 뒤풀이인가 봐
-오오오!
-와 캡슐 아니네!
시청자들은 금세 아몬드의 뒤쪽에 보이는 배경이 집이라는 걸 눈치챘다.
오늘은 캡슐에서 하는 방송이 아닌 것이다.
-형 우승 ㅊㅊㅊㅊ
-우승! 우승! 우승!
-우승자 오셨다아아아아!
등장하자마자 그의 우승을 축하해 주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상현은 그제야 ‘아, 나 우승했었지’라며 겨우 다시 기억해 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그의 정신은 다른 데 팔려 있다.
[현재 시청자 7.4만]
이제 7만을 넘기는 시청자.
어느 정도 올라갈 건 예상했었지만.
‘이 정도야?’
이런 수준으로 올라갈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다.
난트전 버프로 나오던 2만 시청자도 상당한 수치인데, 훌쩍 뛰어넘는 7만이 방송 시작하자마자 들어와 버린다.
-와 시청자 수 미쳤네 ㅋㅋㅋ
-누가 보면 무슨 사건 사고 일어난 줄 ㅋㅋㅋ
-다들 난트전 후기 보러옴?
-과거 얘기 더 들으러 왔나 봄
-기사 떴자나 한해일보에 ㅋㅋㅋ
-한해일보 기사 뜨고 렉카들이 ㅈㄴ 물어가서 그런가
-이게 코리안 렉카의 힘?!
7만.
확실히 압박이 굉장한 숫자였다.
메이저 채널과 마이너 채널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숫자.
혼자서 감당할 수 있긴 한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어차피 잠깐 보러온 거잖아.’
하나, 아몬드는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이들 하나하나가 전부 내 팬은 아니다. 그 양궁 소년이 누군가 하는 잠시의 호기심에 한번 들른 것일 터다.
[현재 시청자 9.1만]
그러는 사이 어느새 9만을 돌파하는 시청자.
크흠.
아몬드는 헛기침과 함께 속의 부담감을 치워내며 인사를 건넸다.
평소와 똑같이.
“트하!”
밝게 웃는 인사에 채팅창의 스크롤이 미친 듯이 위로 올라갔다.
-오빠아아아!
-오빠 나 죽어!
-헐 ㅠㅠㅠ 존잘이다
-와 웃었어 나보고 웃었어 봤어? 어?
-엄마! 아몬드가 날 보고 웃었어! 엄마! 아몬드가 날 보고 웃었어! 엄마! 아몬드가 날 보고 웃었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채팅창.
채팅이 하도 빨리 올라가서 아몬드의 동체 시력으로도 일일이 다 답변을 하기가 힘들었다.
아몬드는 잠시 열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그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다. 이젠 후원이 쏟아졌다.
빠바밤!
[루비소드 님이 무려 20만 원 후원했습니다!]
[과거 영상 보고 엉엉 울었습니당…… 우승 축하하고 앞으로도 방송 열심히 해주세요!]
“아. 루비소드 님. 무려 20만 원 후원. 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빠바밤!
[가지볶음 님이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동생 신발 몰래 팔아서 후원합니다…… 우승 축하드려요!]
“가지볶음 님. 농담이시죠……? 동생분이 항의하시면 환불해 드릴게요.”
-ㅋㅋㅋㅋㅋㅋ동생은 뭔 죄야 ㅋㅋ
-개뜬금없네 ㅋㅋ
-닉값하네 ㅋㅋㅋㅋ 세계 3대 악질 음식
-아몬드한테 후원했다고 하면 이해해 줄 거임 ㅎ
-형이 아몬드한테 후원도 못 하는데, 동생이 신발을 신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네
-ㅁㅊㅋㅋㅋㅋ
늘 아몬드 방송의 후원 첫 타자를 책임지던 사람들에 이어서 수도 없이 많은 후원이 이어졌다.
“소수님 무려 50만 원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리액션을 못하네요…… 하하. 랄라타코 님 10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저도 긴장했어요…….”
후원 메시지가 밀릴 정도였다.
[딜레이 체크 님이 3만 원 후원했습니다!]
[현재 시각 3시 11분]
“지금 시간은 3시 25분인데…… 여튼 감사합니다.”
-형 그게 아니라 후원이 딜레이 되는 거 체크하는 거야 ㅋㅋ
-와 후원 최소 10분 치나 더 쌓인 거야?
-무쳤다…….
-거의 다 만 원 넘는 후원인데 미쳤네 이게 월클 몬드?!
‘후원이 딜레이가 된 거구나.’
아몬드는 거의 20분가량을 후원을 읽고 나서야 겨우 다시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시네요. 진짜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다려 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우승인데 이 정도는 당연
-와 대체 얼마야 저게 ㅋㅋ
-시청자 수만큼 엄청난 후원이넹
-그래서 뒤풀이는 언제 함?
-우리 형이 후원받는다는데 기다려야지 당연히ㅋㅋ
“아. 오늘 방송은 여러분이 채팅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뒤풀이 방송으로 켠 거예요.”
-와아아아!
-토크 방송!
-난 진짜 성불할 거 같아 ㅠㅠㅠ 아몬드 토크 방송이라니
가벼운 토크 방송.
아몬드 방송의 애청자들에겐 꽤나 인기 있는 컨텐츠였다.
물론 그가 말을 잘한다거나 해서는 아니고, 그냥 거의 안 하는 컨텐츠이기 때문이다.
‘잘 되려나.’
때문에 아몬드는 늘 토크 방송을 하기 전엔 조금의 걱정이 있다.
이상하게 흘러가지는 않을지, 재미없지는 않을지.
물론, 아몬드답게 그런 걱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찾아야 되는데.’
일단 말을 하려면 뭔가 다들 공감할 법한 자연스러운 주제가 좋았다.
아몬드는 아주 쉽게 그럴듯한 주제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시청자 수.
[현재 시청자 10.2만]
어느새 10만까지도 넘어버린 모습.
그곳을 한번 흘끔거린 아몬드가 물었다.
“엄청 많이들 오셨는데. 따로 이유가 있나요?”
아몬드도 실제로 궁금했던 부분이고, 아마 다들 이 시청자 수에 대해서 신경 쓰고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 숫자가 설마하니 전부 아몬드의 팬일 리는 없고, 어떤 특정한 사건 때문에 온 게 분명하니까.
-ㅋㅋㅋㅋㅋㅋㄹㅇ개많네
-뭐 이렇게 많이 왔어 ㅋㅋㅋ
-아니 아몬드 매드 무비나 보고 오라고 유입쉑들아~~
-형 지금 올튜브 실시간 화제 1위야
“올튜브 1위? 그거 때문인가?”
아몬드는 올튜브에 잠시 들어가더니, 눈이 커진다.
실시간 화제 1위에 떡하니 자기 과거사를 풀어놓은 영상이 있는 거다.
[조회 수 110.5만]
조회 수가 24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무려 110만.
아몬드 올튜브의 또 다른 기록적인 인기 영상이 탄생해 버렸다.
-와 이제 ㄹㅇ 월클이네
-너무 커져 버린 아몬드 ㅠㅠ
-쩐다;;
-이러다가 메이저 채널 나가는 거 아님?
-솔직히 비디오스타 각임 ㅎㅎ
-이제 연예인이네
-이브닝와이드 같은 데 게스트로 나갈 수도 ㅋㅋㅋㅋㅋ 예전에 큐트파이도 한 번 나갔는뎅
시청자들은 영상 하나가 실시간 1위를 찍은 걸 갖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상현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으나, 방송이 더 중요했으니 얼른 다시 진행했다.
“아. 이거 때문에 다들 오신 거군요?”
띠링.
그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후원이 들어온다.
[궁금쓰 님이 10만 원 후원해 주셨습니다!]
[혹시 Q&A 하시나요? ㅎㅎ]
“네. 하죠. 10만 원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엄청나게 빠른 대답.
-당연히 하죠 10만 원인데
-저 고민이라고는 없는 자본주의 대답 킹받는다 ㅋㅋㅋ
-얼굴색 하나 안변하누 ㅋㅋ
뒤이어 이런 후원이 나왔다.
[캇카하고웃는오덕 님이 1천 원 후원했습니다.]
[금액에 따라 대답 속도가 다른 것 같은 건 제 착각인가요?]
애석하게도 그는 아몬드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럼 Q&A 해볼까요?”
-엌ㅋㅋ 자연스런 스킵
-스킵한 거 아님! 천 원 도네라서 10분 딜레이 걸린 거임!
-???: 뭐가 있었나요?
어찌 됐든 아까의 후원 덕에 아몬드의 뒤풀이 방송은 Q&A 형식으로 가게 되었다.
“질문 주──”
띠링.
미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원이 온다.
[모솔 님이 10만 원 후원했습니다!]
[형님. 여자친구 어떻게 만들어요?]
첫 질문부터, 쉽지 않다.
-ㅋㅋㅋㅋㅋㅋㅋㅋ기찬아 ㅠㅠ
-정귀찮…… 자라.
-그걸 왜 쟤한테 물어보냐 ㅋㅋㅋ
-세계 최초 거울을 보고 물어봐도 답을 알 수 있는 질문.
* * *
[현재 시청자: 11.5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