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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265화 (외전) (265/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1화

1. 란(1)

난트전이 끝난 다음 날.

아몬드의 채널엔 이런 공지가 올라왔다.

[1주일간 휴방]

매일같이 그를 보러오던 시청자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공지였다.

본문은 이러했다.

==== ====

제가 올튜브 영상에 올렸듯이, 저는 캡슐 사용에 있어 체력적인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좋은 캡슐을 선물 받아서 많이 나아졌지만. 그 전부터 쌓여온 피로를 풀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개인 방송 외의 스케줄도 여러 개 생기기도 했고, 방송까지 계속 병행하기엔 체력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1주만 휴방한 후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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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적인 문제로 휴식을 취하겠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였으나, 시청자들은 오열했다.

-뭐, 뭐라고? ㅠㅠ 안 돼. 난 아몬드 못 잃어. 나 집에 찾아갈 거야 ㅠㅠㅠ

-헐. 이게 무슨 말이야? 1주일? 주말 휴방을 잘못 쓴 거지???

-형. 말로 해. 우리 만나서 얘기해 보자. 응?

-흐어어엉 ㅠㅠㅠ

-언능 돌아와 ㅠㅠ

-올튜브 보면서 버티고 있겠습니다……

-ㅉㅉ 구질구질하게 집착하지 마라 얘들아. 난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숨 참겠습니다.

장난 반 진담 반 섞인 댓글들이 우르르 달렸다.

“후우.”

공지를 올린 상현이 뭔가 후련한 듯 기지개를 켠다.

이제 좀 마음 놓고 쉴 수 있게 된 것 같달까?

그는 작정한 듯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대었다. 소파에 누워서 올튜브를 보고, 침대에 누워서 생전 잘 읽지도 않는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서나 인문학 서적은 아니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판타지 소설이다.

한 3권까지 재밌게 읽었는데…….

‘미친 뭐야 이게…….’

갑자기 주인공이 이상한 뒤주 같은데 갇힌 후. 주인공을 제외한 모두의 시간이 10년이나 흘러 버리는 파격적인 포스트모더니즘스러운 전개에 못 버티고 책을 덮었다.

-환불 요청합니다. 작가가 절 속였어요.

배송시켰던 업체에 리뷰를 달고, 또 다른 시간 보낼 것을 찾아 헤맸다.

‘…….’

딱히 할 게 없었다.

다른 소설을 읽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간만에 집중해서 읽은 글자가 이런 큰 배신을 때려서, 아직 머리가 띵한데, 또 뭘 읽으란 말인가?

‘운동이나 갈까…….’

운동을 가는 것도 생각해 봤으나, 밖의 날씨를 보면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휘이이이이잉…….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이 날씨엔 저 달동네 계단을 내려가는 것조차 고역이다.

그가 좋아하는 공원 조깅은 무리일 터다.

‘그냥 있을까?’

상현은 그냥 시간을 멍하니 보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봤다. 어차피 쉬겠다고 휴방까지 선언했는데. 꼭 뭔가를 해야 한다면 그건 쉬는 게 아닐 거다.

그는 얼마 전에 지아가 선물로 준 커피 머신을 써보기로 했다.

“캡슐이…….”

서랍을 대충 뒤적이니 에스프레소 머신용 캡슐이 금방 발견된다.

주혁이 늘 정리를 착실히 하는 탓이다.

‘그나저나 주혁이는 잘 갔나.’

주혁은 오늘부로 약 3일간 휴가를 떠났다. 한겨울에 어디를 갔는지 모르겠으나 산장 여행이라는 것 같다.

자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가는 여행이라 상현이 끼진 못했다.

“빌어먹을 인싸놈…….”

상현은 트수들에게 착실히 배운 단어를 써먹으며, 커피를 내렸다.

지이이이이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커피 향이 진동한다.

기계치인 그가 쓰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간단한 구조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코에 한번 가져다 댄 후.

상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오.”

커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직관적으로도 믹스 커피보다 훨씬 고급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아한테 보여줘야지.”

찰칵.

휴대폰에 찍힌 사진을 지아에게 보낸다.

[상현: 커피머신 써봤어.]

그녀도 빈둥대고 있었는지, 곧바로 답장이 온다.

[지아: ……사약 아냐?]

[상현: ㅋㅋ]

상현은 사진 찍는 데 재주가 없다.

[지아: 아니면 상했나?]

음?

상현은 혹시나 하여 캡슐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상현: 아닌데. 캡슐을 잘못 넣었나? 처음 써봐서…….]

[지아: ㅋㅋ 장난쓰.]

[상현: 아;;]

[지아: 근데 올튜브에 올릴 거 3일치 정도는 남았는데. 남은 3일은 뭐함? 그냥 쉬어?]

[상현: ㅇㅇ 너도 쉬어.]

[지아: 그래도 혹시 할 거 있으면 알려줘. 난 그냥 안 쉬어도 됭]

상현은 턱을 긁적거렸다.

‘할 거?’

그는 잠시 눈보라가 치는 창밖을 내다봤다.

이렇게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보일러를 떼면서 저런 살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니.

사람 참 살기 편한 세상이다. 새삼 그런 노인네 같은 생각이 든다.

[상현: ㅇㅋㅇㅋ 근데 없을듯]

[지아: 오키돜]

잠시 후. 지아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지아: 아. 방금 그거 룬스타에 올려봐 ㅋㅋㅋ 팬들이 좋아할 듯]

[상현: 커피 사진을?]

[지아: 응 편집자가 선물로 줬음. 하면서 ㅋㅋ]

그럴까?

상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사진을 좋아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런데 룬스타 관련, 혹은 팬들 관련 조언은 지아가 항상 맞았다. 그녀의 아이돌 팬질 경력을 고려하면 당연한 이야기.

[상현: 오키.]

상현은 알았다 대답한 뒤 사진을 룬스타에 올려봤다.

==== ====

지아가 선물로 준 커피 머신입니다. 처음 써봤어요.

==== ====

따로 해시태그는 달지 않았다. 어차피 달고 싶은 것도 없었다.

잠시 후에 바로 반응이 온다.

-편집자님이 사약 머신을 드렸나요? 원만하게 합의하시길 바랍니다.

-ㅋㅋㅋㅋㅋㅋ빵떡 사진 실력 어디 안 가넹

-보약을 타먹으시는군요?

-한의원 뒷광고인가요?

-ㅋㅋㅋㅋㅋㅋ왜 아무도 커피라고 안 해줘 ㅠㅠ

-오빠 그냥 지금 라이브라도 켜주세요 ㅠㅠ

-아몬드스러운 일상 공유 너무 커여워 ㅋㅋㅋ

-아몬드라면 토피넛 라떼를 먹을 줄 알았는데. 견과류단으로서 배신감이 드는군여……

.

.

.

꽤 많은 댓글이 달린다.

지아의 예상대로 반응이 좋다. 비록 아무도 이걸 커피라고 말해주진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피식.

상현은 혼자 실없이 웃으며 댓글을 구경했다.

한 손으로는 따뜻한 커피를 들이켜며, 쓴맛과 함께 입안을 휘감는 향을 음미했다.

그런 와중에도 눈보라는 멈출 줄을 몰랐다.

휘이이이잉.

그렇게 한참 댓글을 보던 그는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기릭.

작은 부엌의 창가를 슬쩍 열어보자, 냉기가 숭숭 들이친다.

손에 시린 것이 잔뜩 묻어 보니, 커다란 눈꽃송이가 한가득.

물론 금세 반짝이며 녹아내린다.

대체 얼마나 오는 건지…… 그는 위를 올려봤다.

‘…….’

어둑해지는 하늘을 휘젓는 하얀 눈발. 흐린 하늘이 새하얘 보일 정도로 꽉 들어찬 눈보라다.

뭔가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다.

‘음…….’

그래.

이 살벌한 설원. 그곳엔 시체를 끌어 치우던 아이들이 있었다.

한때 동료였던 시체들을, 발이 꽝꽝 얼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치우던 아이들.

‘레이나…….’

그 전장에서 도망친 레이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뒤의 이야기는 존재하는 걸까?

릴이란 게임이 그리 스토리에 열을 올리는 타입의 게임은 아니어서, 아마 없을 수도 있다.

‘아.’

이제야 자신이 뭘 생각했었는지 깨닫는다.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고, 지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상현: 아. 나 올튜브에 올릴 거 생각했어.]

* * *

띵~

[NOVA]

[ALMOND]

근처에 다가가자 웰컴 홀로그램을 띄우는 캡슐.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입을 벌려 자신의 주인을 맞이한다.

쉬이이익.

‘결국 게임이네.’

상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쉬기로 해놓고 하루도 못가서 다시 캡슐 안에 들어오다니. 하지만, 후회는 없다.

새로운 스토리 모드를 한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한다.

그렇다.

그는 새로운 화신들의 스토리를 한번 깨볼 생각이다.

-아니 방송 쉰다면서요?

-이거 버그인가?

-와 벌써 1주일이 지났구나!

-헐 이게 뭐람??

-기적이다;

-방제 좀 봐 얘들아……

채팅창에 채팅이 우르르 올라온다.

“트하.”

아몬드가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스토리 모드 깰 건데. 저 채팅은 거의 안 볼 거예요. 그냥 여러분 볼 사람 보시라고 켜놨습니다.”

이는 제목에도 있는 내용이다.

[소통X) 스토리 모드 채팅 안 보고 그냥 솔플]

-오옹

-쉬는 날에도 릴을 하는 그는 대체……

-이것도 광고인가요???

-스토리 모드 개꿀~~

처음엔 방송은 끄고 플레이해 볼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시청자들이 같이 봐주면 보는 사람들은 재밌을 거라는 생각에 방송은 켜고, 채팅을 최대한 안 보고 스토리에 몰입하기로 한 아몬드.

“자. 그럼 갈게요.”

* * *

아몬드는 교류의 장에 들어섰다.

[교류의 장]

그가 소유한 화신들이 모여 있는 숲이다. 간만에 오는 이곳은 제법 많은 화신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기분 탓인지 숲도 한껏 더 커진 것 같았다.

수많은 화신들이 한마디씩 거는 것을 대충 받아주며 란에게로 곧장 걸었다.

양들에게 마른 건초를 건네주던 란이 아몬드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절 찾아오신 겁니까?”

“그래.”

“만나러 와주신 건 감사합니다만, 지금은 이 녀석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어서요.”

란이 생긋 웃어 보이며 털이 복슬한 양들을 가리켰다.

“괜찮아. 난 그냥 얘기나 들으러 온 거니까.”

란의 스토리 모드로 진입하기 위한 조건은 이미 맞춘 지 오래다. 친밀도도 최상이며 숙련도도 상당한 상태니까.

그렇다고 란이 특별한 선물을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다.

“얘기요?”

질겅. 질겅.

턱을 좌우로 흔들며 신나게 선초를 먹는 양을 바라보며 아몬드가 앞 바위에 걸터앉았다.

“응. 옛날얘기.”

“……갑자기?”

란이 당황스러운 듯 멍하니 있다가 양에게 손가락까지 물려 버렸다.

“앗.”

란은 얼른 다시 건초를 꺼내어 손가락을 대신할 씹을 거리를 제공해 줬다.

상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갑자기 그런 게 왜 궁금한 겁니까?”

“……그냥.”

“…….”

상현은 딱히 별다른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겁나 뜬금없네 ㅋㅋㅋ

-???: 옛날이야기 좀 들려줘!(멱살을 잡으며)

-걍;

“……뭐, 좋습니다.”

이런 요청이 처음이라서일까? 란은 이런 허접한 방식에도 응해주었다.

-이걸 해줘?

-ㅋㅋㅋㅋ숙련도로 찍어 눌러서 진행하누

-란도 아몬드 편애하냐?

그는 열렬하게 건초를 씹어대는 양들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저 멀리로 건초를 던져 버렸다.

음메에에~

그러자, 제 주인은 안중에도 없이 뒤돌아 달려가 버린다.

“어떤 옛날이야기를 말하는 겁니까?”

“왜…… 이 전장에 오게 되었는지.”

“전장…….”

란은 교류의 장을 한번 둘러본다.

여기에 있는 수많은 화신들, 그들은 모두 화신으로서 전장에 참가한 전사들이다.

“이곳에 구구절절한 사연 없는 사람이 없겠습니다만, 조금 긴 이야기입니다.”

란이 아몬드의 건너편 바위에 걸터앉으며 운을 떼었다.

그러자, 시야가 암전한다.

검은 바탕 사이로, 푸른 텍스트만 하나 떠오른다.

[스토리 모드 발견]

[시작하시겠습니까?]

* * *

따사로운 햇살이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왔다. 반강제로 눈을 뜬 아몬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따뜻하다.’

일단 온도부터 느껴진다.

춥지가 않았다.

거기에 사근사근 밟히는 녹색 잔디.

푸른 초원이다.

이번엔 레이나의 스토리 모드처럼 처참한 풍경이 튀어나오진 않은 셈인데.

나쁘게 해석하면 딱히 아몬드가 도와야 할 구석이란 게 보이지 않는 곳이다.

‘대체 뭘 해야 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 ====

[클리어 조건]

★: 비밀

★★: 소녀

★★★: 복수

==== ====

-……이야?

-에이…….

-아……하하!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지나가는 하얀 옷의 아이들.

그들은 각자 허리춤에 저들 머리만 한 두꺼운 책을 끼고 있었다.

뎅~ 뎅~

묵직한 쇳소리에, 아몬드의 머리가 휙 돌아간다.

시계탑 위에 자리한 거대한 금빛의 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시계탑과 연결된 거대한 성, 그리고 그 성 사이사이를 잇는 다리에 역시 하얀 옷의 아이들이 걸어 다닌다.

‘학교?’

우르르르.

밖에서 자유롭게 있던 아이들도, 종소리에 반응하여 다시 성안으로 뛰어간다.

‘나도 가야 하나.’

아몬드는 일단 무작정 아이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란은 어딨지?’

란을 찾을 수가 없다. 레이나 스토리 때는 시작하자마자 레이나가 있었는데.

‘설마 내가 란인가?’

아몬드는 자신이 란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채, 학교 안으로 성큼성큼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이 몸의 속도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빨랐다. 키는 작은 것 같아도 말이다.

타닥! 타닥!

-늦겠다.

-가자. 얼른. 베스!

-응.

가까이 가자 아이들이 하는 말이 더 잘 들려온다. 저 녀석들을 일단 따라가 보자.

근데 책이 없는데 어쩌지? 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팔을 내려본 아몬드.

그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에겐 팔이라는 게 없었다. 다리만 넷이었고. 알고 보니 네 다리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너무 놀라 육성으로 외치고 말았다.

“메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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