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3화
1. 란(3)
갑자기 교사 뒤에서 등장한 개구진 생김새의 학생. 그는 아몬드를 ‘레테’라고 부르며 마구 손짓했다.
“빨리! 빨리!”
빨리 자신에게 오라는 것이다. 아몬드는 앞뒤 잴 거 없이 일단 그에게 달렸다.
무슨 장난이든 서슴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아군인 건 확실해 보였으니까.
타닥!
발굽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아몬드.
“조, 좀 조용히 좀 달려. 레테!”
학생은 질색하며 달려오더니 아몬드를 아예 자신이 들어 올려 버렸다.
“으으윽……!”
양 무게가 있을 텐데, 저 작은 학생이 들 수 있으려나?
“라…… 라벤테!”
우웅……!
무슨 주문을 외우자, 아몬드의 무게가 깃털마냥 가벼워졌다.
타다다닥.
그 채로 학생은 아몬드를 안고 마구 뛰기 시작했다.
‘마법사인 건가?’
아몬드는 별 희한한 주문을 쓰는 녀석을 보며 정체를 궁금해했다.
성직자들을 양성하는 곳인 줄 알았더니. 마법 학교였던 걸까? 아님 성직자들이 이런 신기한 재주까지 다 익히는 게 여기선 당연한 걸까?
“하아…… 하아…….”
쿵.
학생은 화장실 변기 칸에 들어와 문을 닫아버린 후. 숨을 헐떡였다.
그러더니 아몬드의 복슬거리는 귀에 대고 속삭인다.
“제기랄. 정말 뇌까지 양이 되어버린 거냐? 란에게 쓸 경량화 마법을 너한테 써버렸잖아…… 제기랄…… 오늘은 글렀어…….”
“메에…….”
아몬드는 뭔지 몰라도 자신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것 같아 사과했다.
물론, 그가 알아듣진 못했지만.
“됐어. 일단 다시 돌아가자.”
“?”
“퓰리-베케트.”
펑.
하얀 연기가 치솟더니, 순식간에 다시 인간이 되어버린 아몬드.
그런데 문제는 그는 아무런 옷도 입지 못한 벌거벗은 상태였다.
그는 잠시 스트리밍 채널 마이크로 돌린 뒤 물었다.
“설마 해서 물어보는데 여러분 이거…… 모자이크되고 있죠?”
-ㅔ
-넹
-아니요.
-다 보이는데요!? 에베벱베
-ㅋㅋㅋㅋㅋㅋㅋ아몬드 전라 유출
반응을 보니 되고 있는 것 같다.
“레테. 진짜 왜 그래? 하나도 기억이 안 나?”
학생은 아몬드가 허공을 보고 입만 움직이자,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어깨를 쥐고 흔들어댄다.
“아으아아…….”
고개가 마구 흔들리는 와중에 그는 겨우 끄덕인다.
“뭐, 뭐?!”
“기이억이…… 안 나.”
“기, 기억이? 그러니까 지하 감옥에 간 기억도 없어?”
“……네 이름이 뭔지도 몰라.”
“!?”
그 말에 학생은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벽에 부딪히기까지 한다.
“뭐, 뭐라고?”
자신이 걸었던 마법의 부작용이 이 정도라는 게 믿기지 않는 것이다.
“자, 장난치지 마. 여튼 난 베레드가 오기 전에 얼른 다시 교실로 가 있어야 해서…… 옷은 조금 후에 가져다줄게.”
“?”
쿵.
녀석은 그렇게 무책임하게 그냥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하기야, 베레드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교실로 갔는데 저 학생만 없어져 있다면 범인이 누군지 바로 알 테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몬드는 어이가 없어 머리를 긁적인다.
-아니 옷은 어쩌라는 거냨ㅋㅋ
-로브 하나만 주고 가지 씹…….
-아몬드 복근 감상 쌉이득 ^~^
-저 학생 누군진 몰라도 뭘 좀 아는 놈이네 ㅎㅎ
-설마 안 돌아오는 거 아니지?
-한 20년 전 청춘 시트콤마냥 까먹고 안 가져오면 레전드 ㅋㅋㅋ
“설마하니 안 가져오겠습니까. 이거 게임인데.”
-오. 채팅 본다!
-슬슬 힌트를 얻으려고 간보는 견과류 ㅋ ㅋ ㅋ
-집중하라고 견과류 ㅠㅠ
아몬드는 설마하니 녀석이 옷을 갖고 오는 걸 잊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음…….”
그는 여기서 뭔가 해볼 것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친구가 옷을 가지러 오는 동안 뭐라도 해보려는 것이다.
“일단 첫 번째 조건이 비밀이었죠.”
-ㄴㅔ
-갑자기 방송을?
-방송 거의 안 하고 게임한다면서 ㅋㅋ
-천성이 스트리머;
첫 번째 별 1개 클리어 조건이 비밀이었다. 뭔가 비밀을 알아내야만 클리어가 가능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 학교에 대한 비밀 같은데…….”
-&*@&@
-그런가~~
-알아서 하세요~~~^^
학교에 지하감옥이 있다는 것부터가 여간 이상한 곳이 아니다. 일단 이 화장실도 학교의 일부니,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있을 수도 있다.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음…….’
벌거벗고 밖에 나돌아다닐 게 아닌 이상, 일단 찾아본다.
우선 눈에 띄는 건 낙서들이다.
“낙서들 볼게요.”
「베레드 씹새끼」
「베레드 1주일 안으로 탈모 진행」
어딘가 익숙한 향기가 나는 낙서의 내용들.
“음…… 그리운 느낌이네요.”
-ㅋㅋㅋㅋㅋㅁㅊㅋㅋㅋ
-이걸 그렇게 표현하다니 ㅅㅂㅋㅋㅋ
-ㄹㅇ현실성 오지네 ㅋㅋ 판타지 주제에
수도 없이 쓰여진 베레드 관련 욕을 넘기자, 쓸 만한 내용이 하나 보인다.
「란. 마을에서 셀리랑 있는 거 봤다. 적당히 해라~」
“오. 셀리.”
-란 쉑…… 여자 만나누?
-셀리가 그건가?
-란이 셀리 때문에 벌 받고 있는가?
셀리.
여자 이름 같다. 란이 셀리나라는 여자와 접촉해서 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된 걸까?
“그런데 의외로 기숙 학교가 아니네요.”
마을에서 셀리나랑 놀 수 있다는 건 마을로 간다는 뜻이니, 일단 여긴 기숙 학교가 아니었다.
뭔가 느낌이 아이들을 가둬놓을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하. 트리뷰아는 진짜 아무것도 없네…… 나도 시내 교회로 배정됐음 좋겠어.」
낙서의 내용을 하나 더 읽으니.
‘배정?’
아이들은 어딘가로 배정받고 있다. 란도 셀리가 있는 마을로 배정된 걸까?
“기숙 학교인데, 각 마을 교회로 배정받는 건가…… 거기서 어떤 여자랑 뭔가 있었고.”
띠링.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간 기분이다.]
“오.”
이번 스토리 모드 진입 후 처음으로 뭔가 나아간 순간이었다.
“오…… 진짜 맞혔어.”
아몬드는 자신의 지능에 감탄했는지, 계속 오……를 남발하며 다른 낙서들을 둘러봤다.
-오……
-오ㅋㅋㅋㅋ.
-오……
-자신의 호두에 감탄한 아몬드.
「여색으로 지하감옥까지 갈 정도면, 정을 통한 거 아니야? 참내 ㅋㅋ 고상한 척은 다 하더니.」
「이 사건은 내가 맡지 -로랑」
「클라이드 개새끼」
……쾅!
갑자기 휙 젖혀진 화장실 문.
“후아. 기다렸지?”
좀 전의 학생이 다시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도 안 잠가놨던가.
아몬드는 일단 고맙다 하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너 내 이름 정말 기억 안 나냐?”
“……응.”
“난 로랑. 성은 알 거 없어.”
“로랑 성은알거없어구나. 알았어.”
“아니…….”
-ㅋㅋㅋㅋㅋ호두 수준;
-로랑 생른아르거브ㄷㄷ
-미친ㅋㅋㅋㅋ
-이건 킹부러지 솔직히 ㅋㅋㅋ
로랑은 얼굴이 시뻘게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안 알려줄 거야.”
“뭘?”
“……에라이. 됐어!”
-ㅋㅋㅋㅋㅋㅋ
-엌ㅋㅋ
-단단한 소통의 벽;
“일단 나와. 어떻게든 네 기억을 좀 찾아야겠다.”
“누구한테 가는데?”
“말해주면 아냐? 내 이름도 몰랐으면서.”
로랑은 그렇게 말하면서 앞장서 걸었다.
나가보니 복도가 시끌벅적하다. 모든 수업 시간이 끝난 모양이다.
그 인파를 가로지르며 어딘가로 향하는 중.
아몬드는 아까부터 걱정되던 걸 물었다.
“근데 아까 선생님들이 레테, 아니…… 나를 찾던데. 괜찮은 거야?”
“그냥 벌점 좀 맞고 말겠지.”
로랑은 뒤도 안 돌아보고 걸으며 무신경하게 답했다.
“네가 날 양으로 변하게 해서 못 들어간 건데. 왜 내가 벌점을 맞아.”
“…….”
툭.
로랑이 멈춰 섰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 아몬드.
-이, 이게 아성식 사회생활??
-미치겠닼ㅋㅋㅋㅋ
“후…… 네가 기억이 안 나서 그러나 본데. 이건 우리 둘이 합의한 거거든? 너도 란을 구하고 싶다며.”
로랑은 누군가에게 들려선 안 되는지 잔뜩 소리를 죽이고 속삭였다.
“란이 갇혀 있는 지하감옥에 들어갔다 오기로 했었고. 네가 란에게 정확한 경위를 들었어야 했어.”
“……경위?”
“그래. 란이 셀리인지 뭔지 하는 여자에게 빠져서 이런 일을 당했을 리가 없잖아?”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
“……란에 대한 기억도 지워졌나. 아휴. 됐어. 란이 만들어내는 순백을 기억하면 이렇게 말할 수가 없는데. 녀석들이 셀리랑 놀아났다고 주장하는 기간 후에도 란의 순백은 완벽했단 말이야.”
“순백이랑 여자를 안 만나는 거랑 관련이 있어?”
“……?!”
로랑은 처참한 표정이 되어서는 아몬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아…… 내가 이런 말을 하긴 뭐한데 말야. 불경한 소리 그만하고 얼른 따라오기나 하자. 내가 미안하다. 레테.”
“??”
아무래도 순결(?)을 지킬수록 순백의 마나 같은 게 강해지는 구조인 모양이다.
-모솔이 세계관 최강자인 이세계;
-뭐냐. 나 세상을 잘못 태어났네.
-내 순백의 마나는 대체 얼마나 큰 걸까……ㅎ
-정기찬이 왔어야 했넼ㅋㅋㅋㅋㅋ
-아몬드는 시커먼 마나가 나오겠구먼 ㅎㅎ
로랑을 따라 걸어가던 아몬드가 또 말을 걸었다.
“근데…….”
“뭔데, 또.”
“내 이름은 아몬드야.”
“??”
“그냥 그렇게 불러. 편의상.”
“……하아. 대체 이 마법에 무슨 저주가 걸려 있던 거야. 알았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로랑은 질렸다는 표정을 짓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ㅁㅊ
-방송 욕심 무쳤
-방송 안 한다며 ㅋㅋㅋㅋ
* * *
로랑이 데려간 곳은 양호실 같은 곳이다.
이곳에선 정화소라고 불리는 곳 같았다.
로랑은 이곳의 성직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아몬드를 보여줬다.
“양으로 변하게 해……?”
“그, 그건 비밀입니다. 아시죠?”
“로랑. 또 이상한 사술에 손을 대었구나. 대체 넌 순백을 만들어낼 생각이 있는 게냐?”
“염소도 아니고 양인데 사술이라뇨. 엄연히 ‘마법’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걸 써선 점점 여신님에게서 멀어진다 배우지 않았느냐? 그런 것부터 시작하여 여색에 취약한 정신을 갖게 되는 것을 왜 모르느냐?”
“오. 이런 선지자님. 제 얼굴을 보세요. 여색에 빠질 얼굴입니까? 전 제 의지와 상관없이 영원히 여신님의 것입니다.”
로랑의 말솜씨에 성직자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일단 아몬드를 살펴본다.
우우웅……!
새하얀 마나가 뿜어져 나오는 그의 손이 피부에 닿자, 어딘가 기분이 좋은 느낌이었다.
몸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느낌.
‘이게 순백의 마나구나…….’
란이 쓰던 순백의 마나는 공격용이었는데. 이 사람은 치료 용도로 개발한 걸까?
“음. 별 이상은 없다. 잠시의 충격으로 기억에 혼동이 오는 것일 수 있지만…… 사술에 내가 정통한 것도 아니니…… 차라리 마을로 파견 갔을 때 한 번 더 알아보거라.”
“예. 여튼 마귀에 쓰였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요?”
이 말에 성직자는 눈썹을 사납게 치켜뜨며 단언한다.
“만약 그랬다면 이 방에 발을 들이는 순간 죽었을 것이다.”
“여부가 있겠나이까~”
로랑은 능청을 떨며 다시 아몬드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후아. 다행이다. 레…… 아니, 아몬드. 일단 넌 문제 없대. 저 할배가 잔소리는 심해도 보는 눈은 확실하거든.”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여튼! 당장 마귀에 씌인 게 아니라잖아. 그럼 된 거지.”
로랑은 스스로 ‘맞아. 그럼 된 거지.’라고 높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ㅋㅋㅋ
-아몬드 표정 레전드ㅋㅋㅋㅋㅋㅋ
-뭐야 이겤ㅋㅋㅋ
로랑은 아몬드의 양어깨를 잡으며, 진중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일단 우리 계획은 계속 이어져야 해.”
“뭔 계획?”
“뭐긴…….”
띠링.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다.]
[이제 뭔가 알 것 같다.]
“란을 만나러 가야지.”
두둥!
연이어,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목표 : 란을 구출하라!]
란을 구출하라는 목표가 부여됐다.
‘구출?’
아몬드는 의아했다.
지금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있는데, 구출시켜 버리면 오히려 일이 커지는 거 아닌가?
이런 비유가 이상하지만, 벌로 나머지 공부를 시켰는데 그걸 도망치면 나중에 더 큰 벌로 돌아오는 건 당연할 텐데.
무엇보다 로랑은 란을 만나러 간다고 했지, 구출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혹시 란을 구출할 생각이야?”
혹여나 싶어 물었으나.
로랑은 입꼬리와 눈썹을 한껏 비틀어 올린다.
“에엥? 무슨 미친 소리야? 지능도 양이 된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ㅁㅊ
-호두 비하;
-질문 한번 잘못했다고 저런 표정이 나오누 ㅋㅋㅋ
-로랑 개호감이넼ㅋㅋㅋ
“……아니. 일단 가자.”
그렇다면 왜 구출 퀘스트가 뜬 걸까?
무슨 일이 벌어질 예정일까?
아몬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로랑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