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5화
2. 이상한 구출(2)
부글부글 끓는 속을 부여잡고 앉아 있던 병사는 처자고 있는 자신의 선임을 보며 쉬지 않고 욕을 해댄다.
“막상 뜨면 내가 이길 거 같은데. 그냥 확 터뜨려 버릴…….”
퍼엉──!
그의 소원이 이뤄진 것일까?
진짜 뭐가 폭발했다.
“뭐야?!”
후임 병사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고참 병사는 하얀 연기에 가려 보이지조차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마, 마법?”
마법으로 일으킨 폭발이라기엔, 너무 허접한 수준이다. 밀가루 포대를 잘못 던졌을 때 터져서 허연 가루가 날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켁…… 켁……!”
정말 밀가루였던 걸까? 선임이 켁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케엑……!”
“?”
근데…… 뭔가 소리가 점점 심상치가 않다.
“커러러러얽!”
“로, 로비드 님!”
그는 선임 병사의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쉬이 그러지 못했다.
연기 안에 정체 모를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이다.
“뭐, 뭐야!”
그는 대신에 할버드를 쥐고 거칠게 앞으로 휘저으며 윽박질렀다.
“누구야! 당신!”
그 실루엣의 주인공은 자신의 선임인 로비드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무,어으어시아으우어!”
‘물어볼 시간에 죽여!’
로비드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외친다.
“예, 예?!”
로비드의 진심이 전혀 전해지지 않은 것인지, 후임 병사는 그저 멀찍이서 창만 들고 어정쩡하게 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몬드는 쉽게 로비드를 제압해 냈다.
“……으어아랅!”
‘병신 새끼!’
로비드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며 숨을 다해 쓰러졌고. 그 뒤로 벌거벗은 한 소년의 모습이 드러난다.
“저, 정령……?”
병사는 너무나 순결해 보이는 소년의 모습에, 순간 정령 같은 것이 현신한 것으로 착각해 버릴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꼭 그의 몸만 은은하게 빛나는 것 같았을 정도로 새하얀 피부를 가진 소년이었다.
그에게 소년이 정령으로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 소년에게 자신은 적이었다.
기리리릭…….
“!?”
어느새 활을 든 소년이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이, 이봐. 왜 이러는 건데? 말을──”
──파아아앙!
화살촉이 횃불에 한 번 번뜩이더니, 주홍선이 소년과 병사 사이를 가로질렀다.
푸욱!
그것은 붉은 피를 튀며 팔에 꽂혔다.
“컥……!”
어깨를 부여잡다가, 할버드가 땅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진다.
카가가강……!
그는 얼른 다시 할버드를 잡으려 했지만…….
카앙!!
할버드 위로 다시 화살이 꽂힌다.
다시 주우려 했으나, 이번엔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다.
푸욱!
“으으윽……!”
양팔에 뜨거운 피가 흥건히 흘렀다.
이에 소년이 입을 떼었다.
“큰소리를 내거나, 다시 대항하면 그땐 혀를 쏴줄 거야.”
그렇게 말하며 소년은 이미 또 한 발을 쏜다.
쉬이이익!
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화살.
소리로 겁을 준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 무슨…….”
소리 때문이 아니라 정확도 때문이다. 소년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곳에 화살을 꽂아내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활도 아닌 선임 병사 로비드의 활로.
병사는 눈앞의 소년이 범상치 않은 자라는 걸 직감한다. 그래서인지 아까보다 한결 조심스러워진, 어떻게보면 공손해 보이기까지 하는 자세로 물었다.
“워, 원하는 게 뭡니까.”
“란 어딨어.”
“란……?”
“그래. 란.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있는 란.”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밑을 가리켰다.
“한 층 밑으로 가셔야 합니다. 란은 가장 짙은 어둠 안에 갇혀 있습니다.”
기리릭.
아몬드가 아무런 말 없이 활시위를 당기자, 남자는 다급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지, 진짜예요. 비유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렇게만 알고 있어요. 란이란 놈이 그 하얗고 곱상하게 생긴 놈 아닙니까!?”
띠링.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다.]
알림이 떠오른다. 녀석의 말이 맞다는 거다.
“됐어. 넌 이제 숲 끝까지 달려나가. 만약 돌아온다면 어떻게든 죽일 거야.”
“……예, 예.”
병사는 정말로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동굴 밖으로 나가 숲을 내달렸다.
-뒤도 안 보고 빤스런 ㅋㅋㅋㅋㅋ
-저 새끼 킹부러 선임 죽을 때까지 어그로 끈 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 충성심 보소
-아몬드 활 실력 보면 나 같아도 뒤도 안 돌아보고 뜀.
* * *
아몬드는 병사의 옷을 바꿔 입고, 곧장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다행히 옷의 크기는 얼추 맞아들었다.
아빠 옷 정도는 아니고, 큰형 옷을 빌려 입은 느낌 수준이었다.
한 20여 분을 찾아 헤매니, 드디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왜 아무도 없지.’
무려 20여 분 동안 마주친 병사가 없다. 아무래도 고작 해봐야 학교 징계나 받는 공간이라 경계가 덜한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고작 학생들 징계나 주는 공간치고는 너무 큰 스케일이었다.
만약 위치가 학교 안이 아니었다면 흉악범들을 가두기 위한 격리시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뭐지.’
계단을 내려가며 아몬드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번 스토리 모드는 플레이어 본인이 추리해 내야 하는 게 많았다.
그냥 생각 없이 행동하면 시간을 많이 날리게 될 것 같았다.
지하 2층에 도착하자, 수많은 문들이 보였다.
단순히 감옥만 있는 시설이 아닌 듯했다. 감옥이라면 감시하기 쉽게 쇠창살을 썼을 텐데 저건 꽉 막힌 나무문이다.
문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귀를 가져다 대보았다.
“아니, 그러니까…….”
“……에이. 그러겠어?”
“글쎄 오늘 그 하얀 옷 입은…….”
“아무도?”
누군가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간수들인가.’
아무래도 아까 그 병사들 같았다. 이 방은 간수들이 쉬는 휴게실쯤 되는 것 같다.
이 문을 열어서 별로 좋을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얼른 더 어두운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기다.’
마침내 감옥 쇠창살들이 보인다. 조용히, 조심스레 발을 뗀다.
텅!
“!?”
갑작스러운 소리.
팟.
아몬드는 감전이라도 된 듯 뚝 멈췄다.
‘바닥이…….’
바닥 재질이 철판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밟을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난다. 이것도 의도된 걸까?
-표정 ㅋㅋㅋ
-깜놀몬드 ㅋㅋㅋㅋ
-감전됐냐고 ㅋㅋㅋ
-견과류 전기구이;
“하아.”
그는 마이크 채널을 방송용으로 돌리며 불평했다.
“애들 가둬두는 감옥치곤 좀 빡센데요.”
-ㄹㅇ
-너무 심함;
-특수 학교인가?
시청자들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나머지 공부 느낌으로 가둬둔다기엔, 과한 면이 있다. 여긴 진짜 죄수들을 가둘 때나 쓰는 공간임이 분명했다.
“어쨌든 앞으로 갑니다.”
아몬드는 활을 꺼내 들고 조심스레 앞으로 기어가듯이 이동했다.
그렇게 하니 그나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와 ㄹㅇ 쫄린다;
-왤케 어두워
-안 보여 ㅠ
점점 빛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란이 갇힌 감옥은 나오지 않았다.
감옥은 전부 텅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문이 활짝 열려 있기까지 했다.
간수들도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다.
꿀꺽.
기분 탓일까?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울리는 듯했다.
아몬드는 천천히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앞은 완전한 칠흑이다.
오감 중에 시각이, 그 역할을 상실하는 듯한 느낌.
‘이런 데에 어떻게 있을 수가 있어.’
아무리 여기 너머에 란이 있다고 한들, 의미가 있을까? 아몬드는 의문이었다.
있어도 자기가 발견을 못 할 테니까.
-잘못 온 거 같은데?
-여기 맞음?
-ㄷㄷㄷ
아몬드도 동감이다.
발을 잘못 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나아갈 바닥이 보인다. 눈이 어둠에 완전히 적응하니, 한 30센티 정도는 앞이 내다보인다.
나아갈 구석은 계속 존재했다. 낭떠러지라든가 막다른 길이 아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나아가 볼 수밖에 없었다.
툭.
“!?”
그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옷자락에 닿았다.
앞도 아니고 뒤에서!
“뭐야.”
아몬드의 존재를 눈치챈 자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댔다.
“넌 몇 번대냐. 지금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데. 또 고장이라도 난 거냐.”
“1번대입니다.”
“음? 어떻게 대답을……?”
──파아앙!
아몬드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활을 쏴버렸다.
털썩.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걸 보니, 즉사다.
“아. 이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런, 죽여 버렸네 ^^
-아니 ㅋㅋㅋㅋ 죽은 거야?
-미친ㅋㅋㅋㅋㅋ
“급해서 걍 쐈는데. 죽었네요. 어쩌죠. 얘넨 왜 어두 컴컴한 데서 다니는 건지…….”
솔직히 누군가가 나타날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 심연처럼 어두운 이곳에서 누군가가 나타나려면 횃불이 먼저 보였을 테니까.
그런데 놈은 시커먼 어둠 속에서 돌아다녔다. 그것도 발소리도 없이. 마치 유령처럼.
물론 유령은 아닐 것이다. 화살을 맞고 죽었으니.
“적이 다가올 때 소리도 안 나고, 보이지도 않았어요.”
-ㄹㅇ 개깜짝 놀람
-회사에서 보고 있는데 키보드 존나 세게 쳐버림 ㅠㅠ
-맞아 기척이 없어 ㅅㅂ
적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등장했다.
만약에 적이 또 멍청하게 넌 몇 번대냐고 묻지 않는 이상, 이번엔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할 것이다.
“근데 놈도 저랑 마주치기 전엔 제가 있는지 몰랐던 것 같은데. 아마 지들도 안 보이는 게 아닐까요?”
다만 희망이 있다면 저들도 아몬드를 보지 못한다는 거다.
-아마 그런듯ㅇㅇ
-몇 번대냐고 물어본 거 보면 그렇지
-엎드려 있는 것도 몰랐던 거 같은데ㅋㅋ
-지들도 안 보이면서 왜 저러고 다니는 거임 ㅋㅋㅋ
‘생각을 해보자…….’
추측해 보자면, 저들은 어두운 곳에서 뭘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니다.
단지, 이곳의 길을 너무 훤히 꿰고 있어서 어두운 와중에도 걸어 다닌다.
그렇다 보니 청각 정도는 훨씬 발달했을 수도 있겠다.
‘발소리는 왜 안 나는 건지.’
그렇다면 발소리는?
모르겠다. 신발을 푹신한 걸 신은 걸까?
확실한 정보는 발소리로 미리 알 수 없다는 것 하나.
“일단 이렇게 된 거 앞으로 달릴게요.”
그러니까, 어차피 마주치면 죽는다.
미리 상대가 오는 걸 예측할 수조차 없으니 말이다.
그럴 바엔 끝까지 주파라도 해본다는 생각으로, 아몬드는 힘차게 내달렸다.
쿵! 쿠우웅!
철판이 덧대어진 바닥이 우렁차게 울린다.
-ㅋㅋㅋㅋㅋㅋㅋ
-개막장
-가즈아아아아!
잠시 후.
쿵!
아몬드는 어딘가에 부딪혀서 멈추게 된다.
파르르르…….
부딪힌 것이 떨리며 진동을 만들어냈는데.
‘쇠창살?’
쇠창살이었다.
두둥!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란을 발견했습니다!]
“누구…… 십니까?”
아몬드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란은 연이어 다급하게 말했다.
“간수님인가요? 제 밥 시간이 한참 지나지 않았습니까? 배가 고파 힘이 없습니다. 제발…… 마실 거라도 좀 주세요.”
란은 뒤이어 공포에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이대로 저를 주, 죽게 냅두실 예정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