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6화
2. 이상한 구출(3)
“마실 거라도…… 제발…….”
힘이 다 빠져 갈라져 가는 목소리.
굶어 죽어가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대로 두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뭐지??ㅜㅜ
-애를 왜 굶겨!!!
-아몬드 먹을래?
-헐 뭔 일이다냐
-어이없네 ㅠㅠ 이 자식들 란을 굶기다니 이 어두운 곳에 가둬놓고
-여자 좀 만났다고 이런 형벌이라니. 여긴 정기찬(*모스트 솔리아의 본명)이 만든 세계인가요!?
아몬드는 일단 란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에 물이 있는지부터 찾았다.
‘물이 있던가.’
하나, 이내 멍청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눈앞도 잘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물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게다가 언제 또 이상한 존재에게 기습당할지 모른다.
“란. 불. 불을 켤 수 없나?”
“불이요……? 그게 무슨…… 다, 당신은 간수가 아니군요.”
이곳 간수들은 불이 필요가 없나 보다.
“난 로랑에게 부탁을 받고 왔어.”
“그…… 로랑이…… 저를 ‘구출’하라고 하셨나요?”
“아니. 로랑은 네가 이런 상태까지 됐다는 걸 몰라. 징계 정도나 받는 줄 알지. 그냥…….”
네가 진짜로 여자랑 놀아났는지 물어보려고 날 보냈어, 라고 아몬드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네 상태가 궁금하대. 그리고 대체 왜 이런 벌을 받는 건지.”
“샐리…….”
“샐리?”
샐리라면 낙서에 있던 그 여자아이 이름이다. 란이 만나고 다녔다는.
“샐리에게 마음을 주고 말았습니다…….”
“마, 마음이 움직여? 진짜 그런 걸로 이런 벌을 받다니.”
-와 ㄷㄷ 너무한데
-서로 사귄 것도 아니고, 마음을 줬다고 이래?
-애를 뭘로 키우려는 거야;
-손만 만져도 손자 3명 낳는 나는 여기서 벌만 받다 뒤지겠네
“저는 여신님께 순백의 신도가 되기로 맹세를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샐리는 절대 제가 마음을 줘선 안 되는…… 어? 뒤!”
스릉──
아몬드는 허리춤의 검을 빼 들어 뒤를 향해 휘둘렀다.
──카앙
손에 저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그리고, 철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불똥이 튀었는데…….
‘뭐야. 이 자식은?’
놀랍게도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적어도 잠시 보인 바로는 그랬다.
“침입자아!”
놈은 목청이 터져라 그렇게 외치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몬드가 느끼기에 그랬다.
아몬드는 일단 뒤로 물러나며, 검격을 피했다.
후웅!
살벌하게 휘날리는 앞머리의 감각이 상대의 검을 겨우 피했음을 알려준다.
기리릭.
이제 아몬드의 차례다.
그는 화살을 메김과 거의 동시에 끝까지 시위를 당겨 놓았다.
파앙!
바람이 갈리는 소리 직후, 상대의 살갗에 움푹 파이는 소리가 울렸다.
푹……!
“……컥!”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난다.
아몬드는 혹시 몰라 아까 그 검으로 바닥을 긁어 불꽃을 일으켜봤다.
카가가강……!
‘죽었어.’
찰나의 시야지만, 적의 머리에 화살이 꽂혔음을 확인했다.
‘그나저나 얼굴은 인간인데.’
지금 보니 얼굴은 인간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를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
카가가강.
다시 한번 불꽃을 일으켜 하체를 본다.
‘상체만 덩그러니 있어.’
하체가 검은 연기로 휩쌓여 있었다.
그러니까 마치 유령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뭐지.”
“심연 감옥을 지키는 귀병(鬼兵)입니다.”
란이 뒤쪽에서 설명해 줬다.
“귀병……?”
“저도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사형수들의 몸을 반으로 자른 뒤 반은 유령화하여 만든 간수입니다. 대부분의 귀병은 간단한 명령만을 듣습니다만…… 상위 귀병은 인간처럼 판단도 합니다.”
반은 귀신이라는 거다.
“이들은 빛이 없어야 온전히 활동할 수 있습니다.”
“얘네는 어두운 데서 뭐가 보이는 거야?”
“아뇨. 상체는 똑같은 인간이라, 어둠 속에서도 뭘 본다거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길을 외워서 다닙니다. 그래서 특정 지역을 벗어나면 역할을 못합니다.”
지박령 같은 개념 같다.
지박령과는 다른 이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근처에 머물러야 한다는 게 같다.
“근데…… 여신님의 신도로서 이런 말을 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마는…….”
“?”
“급소를 한 번에 깨부수지 못하면 다시 일어납니다.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의 말에 아몬드는 다시 한번 칼을 긁어서 확인해 봤다.
“……확실히 죽었어.”
“운이 좋았네요. 하지만 다음에 오는 자들은…… 어쩌실 계획입니까?”
“다음?”
“귀병들은 최소한 스물은 됩니다. 빛이 있는 곳으로만 가시면 따라가지 못하니. 얼른 도망치세요.”
스물이라.
아몬드는 잠시 셈을 해보더니 고개를 까닥한다.
“별로 되지도 않는데. 뭘 도망가라는 거야.”
-크으
-란이 반하는 거 아니냐?ㅋㅋㅋ
-아몬드한텐 별거 아니지 ㅉㅉ
-여기도 키스신 있나요!?ㅎㅎ
란이 놀라 되묻는다.
“예……?”
“넌 귀병이 어딨는지 느낄 수 있는거야?”
“도망가시는 게──”
“묻는 말에만 대답해. 언제 올지 모르잖아.”
“느, 느낄 수 있지만, 말로 설명해서 되겠습니까?”
“지금 당장 누가 오고 있는지만 말해주면 돼.”
“…….”
란은 집중하는 건지 잠시 말이 없어졌다.
“……옵니다. 정면에. 이번엔 둘입니다. 지능이 떨어져 보이는.”
“무기는 뭐야.”
“그런 것까지는…….”
“활을 쏘기도 하나?”
“그러진 않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능이…….”
“알았다.”
아몬드는 활을 등에 다시 둘러메고, 검을 잡았다.
‘……무기를 휘두를 땐, 느껴져.’
상대의 무기는 근접형으로 국한된다. 어떻게 클리어해야 하는지 감이 왔다.
그는 눈을 감고, 몸의 감각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후우우……
아까보다 훨씬 느린 소리가 전달된다.
‘여기.’
아몬드는 발걸음을 살며시 옮기며, 예상되는 곳에 검을 가져다댄다.
카아아아……앙!
적의 메이스와 맞부딪치며, 불꽃이 터진다.
역시나 그 기괴한 몰골의 귀병이 불꽃 사이로 보였다.
허벅지에 힘을 꽉 주며, 발을 들어 올렸다.
──퍼억!
귀병이 저 뒤로 밀린다.
그 반동을 이용해 아몬드도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쿵!
그 자리에 다른 귀병이 휘두른 철퇴 비스무리한 것이 꽂힌다. 옆에 있던 또 하나의 귀병이 휘두른 것이다.
‘저기군.’
철퇴가 일으킨 불꽃 덕에, 아몬드의 조준이 한결 쉬워졌다.
파아앙!
화살이 날았다.
처음 아몬드와 무기를 맞댄, 메이스를 든 귀병의 머리에 화살이 명중했다.
푹!
결과는 명중이다.
‘다음은.’
이제 철퇴를 든 놈을 처리해야 하는데.
다시 시야는 암전이다.
아까처럼 검을 한번 맞대고, 위치를 가늠해 주는 수밖에 없다.
‘얘넨 비명도 안 지르나.’
분명 처음 만났던 귀병은 말도 하고 다 했는데. 얘넨 아무런 소리도 없다. 일부러 기척을 감추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촤르르르……!
철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끌린다. 덕분에 아몬드는 곧장 다시 활시위를 당길 수 있었다.
‘이쯤.’
잠시 보였던 귀병의 키를 가늠해, 머리가 있을 위치에 대고 시위를 놓는다.
팽팽하고 사납게 당겨졌던 시위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수축한다.
이 모순적인 두 과정이 화살을 밀어내고…….
푹!
놈의 머리에 명중한다.
콰광!
철퇴와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엎어지는 모습.
“더 옵니다! 세, 셋입니다.”
“대충 어느 쪽이야.”
“저, 전방이요! 전방에서 옵니다!”
아몬드는 들고 있던 검을 힘차게 던져 버렸다.
후우웅! 후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검. 그것은 이내, 적의 무기와 부딪혔다.
카아앙!
터져 나오는 불꽃이 세 명의 신형을 대강이나마 보여줬다.
‘한 번에 됐다.’
여러 번 던져야 할 줄 알았더니. 운이 좋게도 한 번에 적을 가늠할 수 있었다.
파앙! 파앙! 파아앙!
그는 연이어 3개의 화살을 나란히 쏘아버렸다.
-???
-이게 된다고?
-헐……
-와
콰당탕……!
귀병들이 나란히 쓰러진다.
쓰러지는 중에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다. 독한 녀석들.
“우, 우측에서 둘 옵니다! 당신 기준으로 아마 2시 방향!”
란의 감각이 점점 정확해지고 있다.
아몬드 역시 점점 더 동선이 단순해졌다. 그는 적이 쓰던 메이스를 빠르게 집어 던져 버렸다. 란이 말한 방향으로.
후우웅!
이번에도 적의 무기와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위치가 파악됐다.
기리리릭……!
이번엔 한 번에 두 발의 화살을 넣어 당겨 버렸다.
피융!
두 개의 화살이 나란히 날았다.
퍼벅!
적은 살갗이 깊게 뚫리는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쓰러졌다.
쾅과광……!
“10시입니다!”
“12시!”
“3시!”
이후로 란은 계속 아몬드에게 대강의 위치를 알려줬고. 아몬드는 계속 쓰러진 귀병의 무기를 던져 정확한 위치를 확인 후. 화살로 쏘는 것을 반복했다.
정확도와 속도가 기계와 다름이 없었다.
쿵……!
콰광!!
우당탕!
적이 쓰러지는 소리로 심연의 감옥은 한동안 요란법석해졌다.
귀병을 죽이는 기계를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 것 같았다.
쾅……!
방금 쏜 적이 쓰러진 후.
화살 통으로 향한 아몬드의 손이 어색하게 허공을 저었다.
‘화살이…….’
화살 통에 화살이 한 발뿐이다.
이제 귀병이 더 온다면, 아몬드는 검으로 싸워야 했다.
“……또 있나?”
꿀꺽.
란이 마른침을 삼킨다.
“……이럴 수가. 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없나 보네.”
아몬드는 란의 감탄사를 그렇게 알아듣고는 쓰러진 간수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주머니를 뒤졌다.
막상 본인은 자신이 한 일에 별 감흥이 없는 듯하다.
-와 미쳤네
-미, 미친 이걸 그냥 이렇게 죽인다고???
-이거 이렇게 하는 거 아닌데;
아몬드가 시체를 뒤지는 사이, 시청자들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적들의 머리를 연속으로 꿰뚫은 실력에 감탄하기 바빴다.
‘안 보이는 채로 뒤지려니 힘드네.’
시체의 무게가 상당해서 뒤지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것도 안 보이니 다 더듬거려서 찾아야 했는데. 뭔가 촉감이 더러워서 꺼려진다.
그러던 중…….
“!”
손끝에 닿는 작은 철 덩어리의 감촉.
‘열쇠다.’
열쇠를 찾았다.
역시 열쇠가 있었다.
그야, 말 그대로 이 감옥을 지키는 간수니까.
“열쇠를 찾았어요.”
-ㅊㅊㅊ
-캬~
-칭찬을 바라는 아몬두 ㅋㅋㅋ
-채팅 안 보겠다던 분이 맞나요? 일일이 보고를 하시네
열쇠를 찾았으니 이제 바로 란을 탈출시킬 수 있게 됐다. 아몬드는 곧바로 철창으로 달려가 이곳저곳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철컹. 철컹.
어디에 열쇠를 넣어야 하는지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딱 만지기에도 묵직한 잠금장치가 철창 딱 중앙에 있었으니까.
탁…… 타닥…….
그런데, 열쇠를 아무리 넣으려고 해도 들어가질 않는다.
“……뭐, 뭐야.”
“왜…… 그러시죠?”
“열쇠가 안 들어가.”
“……다른 열……쇠인 것 같습니다.”
다른 열쇠라고?
란을 지키던 간수들이 갖고 있던 열쇠인데. 이게 란의 철창 열쇠가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또 있다는 건가.’
결국 다시 간수들 옷을 뒤져야 한다. 하나 뒤를 돌아보니 깜깜한 어둠뿐.
간수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일일이 기억하는 건 불가능했다.
“란. 불을 어떻게 켤 방법이 없나?”
“귀, 귀병…… 들이 불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은…….”
콜록! 콜록!
마른 잔기침 소리가 말을 잘라낸다.
란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갈라져 있다.
‘말을 너무 시켰나.’
앞의 정보들을 묻느라 쓸데없이 말을 많이 시킨 것 같았다.
‘어쩌지.’
혹여나 열쇠를 찾는다고 해도 열쇠 구멍이 안 보인다. 어쨌든 불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불을 피울 방법 같은 게 있을까?
‘저 위로 올라갔다 와야 하나.’
결국 위에 올라가서 횃불을 들고 와야 할까? 안 된다.
란이 없으면 귀병을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미리 오는 걸 알 수 있고 없고 차이는 반응속도에 거의 2배 이상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란이 미리 온다고 알려주니까, 작은 바람 소리에도 완벽히 검격을 막거나 흐릴 수 있는 거다. 갑자기 기습을 당한다면 장담하기 힘들다.
‘이거로라도 좀 보자.’
아몬드는 칼을 바닥에 긁어, 불꽃을 일으켜 잠시 시체들을 확인했다.
‘아!’
퍽.
그는 멍청한 자신의 머리를 한 대 때리고야 말았다.
“이게 불이네!’
아까부터 쓰던 게 불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로브 천 쪼가리를 잘라낸 뒤, 검을 부싯돌 삼아서 불씨를 붙여본다.
카가강!
불꽃이 튀어오르더니, 화르륵! 하고 한 번에 붙는다.
열댓 번은 해야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붙는 것으로 보아 이렇게 하라고 만들어놓은 게 분명하다.
아몬드는 뿌듯한 마음으로 채팅창을 바라봤다.
-와 ㅅㅂ 드디어 하네
-하아 이걸 이제야 하다니 ㅋㅋㅋㅋㅋㅋ
-미쳤다 ㅋㅋㅋㅋ
-뭐야 이 믹스넛츠? 아몬드는 달콤한데 호두는 너무 매워 ㅠㅠ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왜 이제야 불을 붙이다니? 이게 그렇게 늦은 건가? 열쇠 하나 시도해 보고 바로 깨달았는데.
자신의 지능을 칭찬받을 줄 알았던 아몬드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제가 불을 느리게 붙인 건가요?”
-ㅅㅂ 이걸 안 하고 간수들을 다 잡다니 ㅋㅋㅋ
-바보야 그거로 간수들을 잡는 거라구 ㅠㅠ
-원래 불붙여서 간수들 잡는 거예여
-불은 비추기만 해도 걍 한 방임
-이걸 손수 다 잡았네 ㅋㅋㅋ
그렇게 된 거였구나.
“아…… 이걸로 잡는 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