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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1부-276화 (276/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1 외전 12화

4. 마녀(1)

결국 포션이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었다.

“포, 포션이요?”

아몬드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은 건 레테의 상태 때문이다.

그리고 레테가 이 상태가 된 경위를 듣고 나선 완전 확신했다.

“레테가 다쳤을 때. 포션 먹였을 거 아냐. 너네 학교에 포션 만드는 공장까지 있는데.”

“……아. 그렇죠.”

“레테는 크게 다쳤으니 포션을 많이 마셨겠지 얼마나 마셨지?”

“그야 매일같이 지속적으로…… 어?”

그렇다.

지속적인 복용.

「……장기간 지속적인 복용 시, 일상에서도 환각을 보기 쉬운 상태가 되어. 최면자가 원하는 환각을 일으키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 상태를 우리는 ‘트랜스 상태’라고 부른……」

“지속적인 복용 시 트랜스 상태가 되지. 트랜스 상태는 흔히 말하는 접신이 용이한 상태인 거고.”

레테는 포션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바람에 계약자 비스무리한 상태가 됐던 거다.

아마 레테 말고도 다른 학생들 중에 이런 녀석이 있었다면 그렇게 됐을 거다.

“포션의 성분 중에 블루홀이 있는거야. 대체 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샐리 아버지는 그걸 알아내셨던거야.”

이어서 아몬드는 자신이 술이라고 착각했던 그 병에 있던 음료가 왜 포션이었는지도 깨닫는다.

‘병사가 취해 있던 건 술이 아니라 마약이었어.’

병사가 착각하고 마신 건지, 아니면 혼자 뭘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는 포션에 취해 있던 거고, 그걸 아몬드와 후임병사는 당연히 술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 술을 급한 대로 란에게 먹여서 란을 살린 거고.

“그러니까. 포션은 확실히 효능은 있어. 대신 부작용도 엄청 큰 거야. 특히나 여러 번 마시면.”

“그, 그럴 수가…… 그럼 샐리 아버지는 그걸 알아내셔서 죽임을 당하신 겁니까?”

“그렇지. 근데 교단은 샐리 아버지가 어디까지 알아낸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 왜냐면…….”

촤륵.

아몬드는 논문집의 페이지들을 빠르게 넘겨 보인다.

“아직 논문이 안 써졌거든. 그렇다고 논문이 써지는 걸 기다릴 순 없었겠지. 그랬다간 온 세상이 다 알 테니. 그래서 그냥 미리 죽인 거야. 대신 네게 딸을 감시하라고 시킨 거야. 딸에겐 어쩌면 이야기했을 수도 있을 테니.”

“만약 샐리가…… 아버지의 연구 과제를 몰랐다면…… 살았다는 건가요?”

“아니. 어찌 됐든 죽이려 했겠지. 다만 딸이 그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더 했는지, 또 다른 죽일 놈은 없는지 알아보는 작업이 아니었을까?”

란은 잠시 고민하더니,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며 말해준다.

“샐리가……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포션은 일반인들에게 가격이 비싸 꽤 귀한데. 제가 교단으로부터 공수해서 그녀에게 줬던 적이…… 있는데…….”

샐리는 결국 그 포션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가벼운 몸살이라 둘러대며 포션을 거절했다.

“제가 그 사실을 보고할 때. 선지자님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그때부터 ‘처형’이 아니라 ‘집행’으로 급하게 작전이 변경됩니다.”

“집행?”

“예. 처형은 법적 절차를 밟아 공개적으로 형을 실현하는 것이고. 집행은 신성 집행관이 단독으로 형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아…….”

한마디로 그냥 암살을 해버리라고 했다는 거다.

샐리가 포션을 거부한 그 시점부터 교단은 그녀를 마녀로 규정한 거다.

“다만 관찰을 2주간 더 이어가라고 했죠. 이미 마녀인 게 확실하다면서 2주간 더 보라는 처분은……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란에게 계속 추적 관찰을 시키는데. 이 사실을 다른 누군가에게 알렸는지에 대해서 관찰을 시킨 거다.

란에게는 쓸데없는 생리 여부, 머리카락의 길이, 손톱의 길이 따위를 보게 했으나.

실상 그들이 궁금했던 건 샐리가 타인과 접선했는지의 여부였다.

란은 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보고하면서, 그녀가 포션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풀었는지 알려주고 있던 거다.

“와. 어쨌든 큰 걸 알아냈네.”

아몬드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은근슬쩍 채팅창을 보는 게, 자신의 추리에 대한 평가를 감상하려는 것 같았다.

-와 아몬드 호두 스핀 미쳤네

-할 땐 하는 그의 능지

-크

-오 생각보다 안 헤맸어 ㅋㅋㅋㅋ

-여기서 고구마 3천 개 먹방 기대했는데 아쉽네요 ㅠㅠ

-아몬드 머리 쓸 때 왤케 신나 보이냐 ㅋㅋㅋㅋㅋ

-못하는 걸로 칭찬받는 게 좋은가 봐 ㅋㅋ

시청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몬드가 마지막만큼은 꽤 머리를 잘 써주었으니.

피식.

아몬드는 기분이 좋아서 슬쩍 웃었다.

‘이제 여기서 멈춰도 클리어는 되는 거구나.’

이제 아몬드는 란의 스토리모드를 클리어해 낸 것이다. 여기서 멈추면 2별 클리어가 될 것이다.

그러나 2별에서 만족할 아몬드가 아니다.

‘복수만 남았나.’

복수라는 과제가 남았다. 아마 복수의 대상은 교단일 터다.

“교단이 절 죽이려 했던 이유도…… 제가 뭔가를 알아냈다고 생각해서겠군요.”

“그렇지. 네가 갑자기 샐리를 죽이는 걸 거부하니까.”

“……하아.”

란은 테이블 위로 쓰러지듯 고개를 파묻는다.

“혼란스럽습니다.”

나지막이 조아리는 이 말이, 지금 그의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

아몬드는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그가 어떤 기분일지 차마 헤아릴 수 없으니.

다만 네 탓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어.’

시야가 암전한다.

레테가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 * *

눈을 뜬 지금은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난 시점인지 알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앞서 눈을 떴을 때 봤던 장소들 중 지금 이곳이 가장 평화롭다는 것.

천장은 따뜻한 색감의 나무로 마감되어 있고, 실링팬이 조용히 돌아가며 바람을 솔솔 불어냈다.

달그락. 달그락.

주방 쪽에선 접시를 정리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햇살도 따사로운…….

‘집이다.’

집이었다.

어떻게 된건지 몸을 일으킨 아몬드.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레테. 벌써 일어난 거야?”

수건으로 젖은 손을 털어내며 걸어오는 란.

“……?”

란은 꽤나 놀란 듯이 아몬드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아몬드 님…… 입니까?”

“어. 그래.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거야?”

“…….”

털썩.

란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는다.

“왜, 왜 그래?”

아. 이거 설마…… 아몬드의 머리로 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이제야 오신 겁니까…….”

엄청 지났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후로 두 달이 지났습니다.”

두 달.

점점 레테로 들어오는 기간이 길어진다 했더니. 이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예 두 달…….

“미안. 나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미안하실 건 없습니다…….”

하아.

란은 주방 쪽으로 가더니, 두툼한 빵 몇 조각과 와인을 하나 대접해 왔다.

나름대로 함께 발라먹을 마멀레이드도 있다.

“같은 몸이라…… 배가 고프시진 않겠지만. 일단 그래도 드세요.”

포크를 집으며 아몬드는 주변을 한번 더 슥 둘러본다.

생활이 여유로워 보이진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없어 보인다.

보아하니, 이건 에필로그다.

2별 클리어만 할 생각이라면 여기서 끝나는 것 같다.

“그간…… 많은 일이 있긴 했지만. 나름대로 정착해 냈습니다. 여긴 국경의 사막 도시인 ‘페르스타’입니다. 저희가 있던 곳과는 다르게 자유로운 곳이죠. 종교도 여러 가지입니다. 저희는 처음 알았습니다. 신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관점으로 여러 개가 있다는 걸…….”

쭉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자유 도시 페르스타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 잘살고 있었다.

하루 두 끼라도 꼬박 챙겨먹고, 후식으로 이렇게 빵과 와인도 내올 수 있다.

몸을 뉠 침대도 있으며,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이 있다.

‘이대로 그냥 쭉 살아도 되겠는데.’

이미 여기서 뭔가 더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평화롭고 너무나 일상적인 삶이었다.

그곳에 아몬드가 불청객처럼 끼어들어 있다.

여기서 뭘 해야 할까?

정말 3별 클리어를 해야 할까?

복수의 길을 걸어야 할까?

만약 이게 게임이 아닌 실제였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아몬드는 란의 심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건가?”

“어떤 게 말입니까.”

“여신교…….”

두 달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잊기에 터무니 없이 짧은 시간이다.

아몬드도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다.

“여신교와 샐리, 그리고 그간 당했던 것들은…… 이제 괜찮은 거냐고.”

란은 그 말에 조용히 일어나, 테이블을 밀고, 그 밑에 숨겨둔 비밀스러운 뚜껑을 연다.

끼이익.

거기서 나온 건 양피지 두루마리다.

촤락.

펼쳐진 양피지엔 거대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평범한 지도는 아니다.

“레테와 제가 한 땀 한 땀 그려넣은 포션의 유통 경로입니다. 이 유통 경로를 추적해 나가면 공장 시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역시.

란도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둥하던 녀석이 이런 일까지 준비해 놓은 걸 보면.

“괜찮을 리가…… 없습니다. 아마 10년이, 100년이 흘러도, 저는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샐리를 죽이라 명령한 그자와 교단의 비리를 제 손으로 밝히려 합니다.”

“그, 그게 되겠어?”

“나와보니, 교단의 뜻이 모두의 뜻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들을 견제하는 세력들도 있덥니다. 제대로 된 증거를 잡는다면…….”

란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제야 전 사후에도 샐리를 볼 면목이 있을 테죠.”

란은 분노를 삭이는 듯 잠시 침묵한다.

“이 일은 레테도 동의했습니다. 그는 현재 교단의 만행 때문에 포션에 중독된 상태니까요. 저희는 내일 이 근처를 지나는 마차 중 하나를 추적해 볼 생각입니다.”

띠링.

여기서 아몬드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1. 그만두자. 지금의 평화가 더 중요해.]

[2. 잘했어. 같이 추적해 보자.]

2번이 3별 클리어로 나아가는 길임은 명확해 보인다.

-닥 2222

-무조건 2

-3별 클리어 가즈아아아

“좋아. 같이 추적해 보자.”

띠링.

[에피소드가 더 이어집니다.]

“근데…… 추적을 다 하고 나서는 어쩔 건데.”

“공장의 위치만 알아낸다면…… 증거를 잡아 폭로가 가능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여신교를 견제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 이 사실을 말하겠다는 건가?”

“예.”

“너희 둘…… 아니, 우리 둘이서 될까? 조력자를 좀 더 모아보는 건 어때. 로랑이라든가…….”

“로랑……?”

“응. 로랑. 처음 널 보러 날 감옥에 보낸 게 로랑인데. 이상한 재주가 많아서 쓸모가 있을 거야.”

뭐야,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서 기억을 못 하나? 뭐…… 그럴 수 있다.

로랑 같은 성격에 지 혼자 란이랑 친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친하지도 않은데 순수한 호기심으로 레테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그놈은 미친놈이니까.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로랑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우릴 도와주는 붉은 용병단이라고 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과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아. 있구나.”

있으면 됐다. 용병단이라니.

로랑 같은 녀석보다 서너 배는 더 쓸모 있을 것 같긴했다.

“나쁘지 않네.”

아몬드는 이 계획에 딱히 문제는 없어 보였다.

원래 대체로 모든 계획들이 그렇다.

들었을 땐 그럴듯하다.

들어가서는 아니지만.

“저…… 아몬드 님.”

“?”

“내일 싸움은 험난할 수 있습니다. 레테는 자신의 가족에게 안부 편지를 보내려 했었는데…… 혹시 대신 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전서구에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아. 그래. 물론이지. 그 정도야…….”

그때였다.

팟!

화면이 껌껌해진다.

아무래도 편지를 보내는 그 장면으로 바로 이동하려는 것 같았다.

스윽.

다시 화면이 밝아지더니, 역시나 전서구 창고였다.

이제 편지를 동봉하기만 하면 된다.

띠링.

[편지를 통해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편지를 누구에게 쓰느냐에 따라, 결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뭐야.

꽤나 갑작스러운 요구였다.

‘이 말은 레테의 편지만 보낼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뭔가 써야 한다는 거잖아.’

아몬드는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뭐지? 갑자기 대뜸 누구에게 편지를 쓰라는 거야.’

분명 뭔가 힌트가 있었을 거다.

이 분기점이 3별 클리어를 하느냐 마느냐를 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충분히 시간을 투자하기로했다.

그는 이것저것 편지에 적어보며 경우의 수를 짜봤다. 심지어는 이곳 ‘페르스타’의 시장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까지 생각해 봤으나…….

그는 고민 끝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삭, 사삭…….

* * *

[초보자 Tip: 마력이 담긴 전서구들은 주소를 정해주지 않아도 가끔씩 정확하게 주인에게 전달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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